1942년, 독일 베를린.


"그래, 그 마검은 찾았는가."


"저... 총통 각하, 죄송합니다. 첩자를 보내 유럽 전역을 뒤져봐도 마검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흠..."


얼굴을 매우 몹시 찡그리며 서류뭉치를 보고 있는 자는 다름 아닌 제 3제국의 총통, 아돌프 히틀러였다.


그때 부하 한 명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총통 각하, 사실 그 마검이라는 게 유니콘이나 드래곤같이 동화책 속에만 전해져 내려오는 거라 실제로 존재하지 않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방금 뭐라고 했나?"


"..어.."


총통이 그 부하를 노려봤다. 그 방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숨죽이며 그를 곁눈질했다. 대충 '쟨 이미 요단강 건넌거다' 이런 눈빛으로.

무거운 정적이 감돌았다. 잠시 후 총통이 서류뭉치를 뭉개서 그 부하의 머리에 던졌다.


"뭐 마검이 없어서 못들고 온다고?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가져와야지!!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에 따르면 그 마검이 있어야만 우리가 이 전쟁을 이길 수 있단 말이다!! 젠장.. 그 마검이 처칠이나 스탈린 손에 들어가기라도 하면 우린 좆되는거다. 알았어? 우리 좆되는거라고!!!!!"


"......,"


"너넨 전부 아리아인 자격도 없는 쓰레기들이다! 일주일 뒤에도 그 망할 검을 찾아오지 못하면 유니콘이나 드래곤이라도 잡아와!! 안 그러면 너넨 전부 가스실이야!"


"네, 총통 각하!"



같은 시각, 한창 전란에 휩싸인 스탈린그라드.  

천둥같은 총알이 폭우처럼 내리고 7초에 한 명씩 사람이 죽어나가는 아수라도의 한복판, 어느 무너지기 직전인 건물에 몸을 은폐하고 있던 이등병 이반 이바노비치 이바노프스키는 22년 인생 중 가장 당혹스러운 순간을 맞이했다. 


그의 앞에 갑자기 불길한 황금빛 오오라를 발하며 공중에 떠있는 한손 양날검이 나타난 것이다.


"하찮은 인간이여, 이 몸은 친히 네놈을 찾아오신 전지전능하신 마검이다. 일주일 동안 아무 소원이나 한 가지를 들어주도록 하지!"


"와 말까지 하네?"


"어서 소원을 말해라. 시간은 일주일밖에 없다고?"


"갑자기 그렇게 말해도.... 아무래도 가장 큰 소원은 역시 전쟁이 끝나는 거겠지.."


"..못 해."


"뭐야 이 새끼 전지전능하다면서"


"전쟁이란 게 "멈춰!!" 하면 멈춰지는 건 줄 아냐? 얼마나 많은 복잡한 역학관계와 다양한 요소들이 엮여있는데. 그런 거  말고 다른 걸 빌어보거라."


이반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말했다. 


"그럼 히틀러 좀 죽여줘라."


그제서야 마검은 기분 좋은 듯 미소지었다. 마검은 얼굴이 없지만 그런 부수적인 건 미소짓는 데 문제가 되지 않는 듯 하니 넘어가도록 하자.


"그거야 쉽지. 그런데, 내가 그냥 여기서 마법 써서 죽여버리는 것보다 니가 나를 들고 가서 직접 히틀러를 죽이면 너는 전쟁 영웅이 될 수 있는 건데, 그렇게 하는 게 더 낫지 않겠는가?"


"뭐? 미쳤어?? 내가 어떻게 단신으로 과도 하나 들고 가서 히틀러를 죽이냐? 그쪽은 전투기랑 탱크도 있고 잘 훈련된 렙틸리언 부대도 있는데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이 우매한 새끼가 돌았나 보구나, 누구보고 과도라고... 나만 손에 쥐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히틀러를 죽이는 것뿐만 아니라, 세계를 손에 넣을 수도 있고  외계 행성을 식민지로 삼을 수도 있다고. 이반 이바노비치 이바노프스키, 이건 네 이름을 지구의 역사에 새겨넣을 절호의 순간인 것이다.!"


"오"


"잘 훈련된 렙틸리언 부대는 또 뭐냐? 그런 것도 있다고?"


이반은 잠시 생각하더니 무언가 굳게 결심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마검의 손잡이를 잡고 일어났다.


"그렇다면 네 말을 믿어보도록 하지. 그런데 내가 히틀러를 직접 죽이러 가면 그건 소원으로 치지 않는 건가?"


"뭐 그런 거지."


"ㅇㅎ"


"그럼 일단 출발하도록 하지, 붉은 군대의 전사여!"


마검의 외침과 동시에 기세좋게 건물 밖으로 나가려던 이반은 멈춰섰다.


"잠시만, 이건 무단 탈영 아니냐?"


"일단 나를 믿고 진격하라!"


이렇게까지 된 이상 별 수 없다고 생각하며 이반은 건물 밖으로 나왔다. 


놀라운 일은 그때부터였다. 그의 몸 주변으로 황금빛 방어막이 생겨 총탄이 빗발쳤지만 그는 단 하나도 맞지 않았던 것이다. 갑자기 전신에 힘이 넘쳐흐르는 것을 느낀 그는 당장에 교전구역으로 달려갔다. 적군에게 총기를 난사하는 전우들을 지나쳐 적진의 한복판으로 뛰어든 그는 독일군 병사들에게 검을 한 번 휘둘렀다. 그러자 굉음과 함께 천지를 뒤흔드는 충격파가 발생하면서 적군의 팔다리가 사방팔방으로 날아다녔다!


"아아, 이 피의 맛!!! 도대체 몇 년 만인가!!"

"성능 확실하구먼."

"그러니까 과도 아니라고."


갑작스러운 사건에 고요해진 전장 한복판, 황금빛 스파크가 튀는 양날검을 들고 그는 연기 속에 서 있었다.

그를 찾고 있던 부대장이 그를 발견하고 다가갔다.


"이바노프스키, 지금 무슨 상황인가?"

"아 부대장님, 저 지금 히틀러랑 나치 친구들 죽이러 갑니다."

"그게 무슨..."


부대장은 그의 손에 들려 있는, 빛을 발하는 괴이한 물체를 보고, 또 아마 그가 죽인 것으로 보이는, 뒤편에 처참하게 죽어있는 적군 병사들을 보고는 말문이 막혔다.


"하... 이건 뭐.. 하느님, 아니 위대하신 레닌 동지의 뜻인 것 같네. 원래 자네가 하고 있는 짓은 명백한 무단 탈영이지만 지금은 막을 수도 없고 막아서도 안 될 것 같군. 어서 가보도록 하라. 꼭 성공하기를 빈다."


"네, 부대장님."


의외로 무단 탈영 문제가 쉽게 해결되자, 이반의 진격을 막을 것은 이 세상에 없었다. 스탈린그라드를 공격하던 자기 나라 군대가 갑자기 섬멸당했다는 전보를 받은 독일 정부는 그곳에 마검이 있을 것을 직감하고 군사를 보냈지만 그곳에 이미 마검은 없었다. 마검을 든 이반은 이동속도가 비약적으로 증가해 천문학적 숫자의 추축국 군사들을 쳐부수면서 끊임없이 나아갔다. 총구가, 미사일이, 탱크가 그의 앞을 가로막아도 마검의 일격이면 전부 반갈죽이 되어버렸다. 그가 밟는 땅마다 불길이 일고 폭발이 폭발했으니, 그야말로 지옥의 사자가 다녀간 듯한 광경이 되었다. 그렇게 걸어서 6일만에 독일 국경에 도착했다.


'흠 여기서부터는 조용히 이동해야겠군. 겁먹은 히틀러가 별장으로 도망가는 상황은 원하지 않으니.'


그는 잠입을 해서 국경을 넘기로 했다. 이반이 마검을 들면서 그에게는 새로운 신조가 생겼는데, 바로 살아서 보고할 자가 남아있지 않다면 그게 바로 성공적인 잠입이고 암살인 거라는 것이다. 그는 대각선 내려베기 한번으로 일대를 초토화시키고 잠입에 성공했으며 거기서 베를린까지는 마검을 접어서 주머니에 넣고 정말로 조용히 이동했다. 그렇게 7일째 되는 날에 마침내 총통 관저에 도착했다. 이반이 오는 길에 모든 병사들을 잠입 암살해버렸기 때문에 히틀러는 아직 아무것도 모르고 관저에 있었다.


당당히 정문으로 들어가려는 이반을 병사 하나가 막았다. 


"잠깐 이새끼 지금 소련군이냐? 어딜 들어가?"


그렇다. 조용히 이동한다면서 군복도 자기 진영 걸 떡하니 입은 채로 마검의 마법으로 인해 고도로 상승한 근력으로 나치들을 간단하게 다 패죽이면서 여기까지 온 것이다. 하지만 폭발을 일으킨다거나 고주파 레이저를 쏜다거나 하진 않았으므로 그 기준에서는 나름 조용히 이동한 것이었다.


그는 융해된 원자로 노심마냥 빛나는 마검을 꺼내들고 정문을 박살내서 녹여버린 다음 관저에 '잠입'했다.


안에 들어서자 당황에서 도망가려는 병사도 있고, 침착하게 그에게 총구를 겨누며 견제하는 병사도 있었다. 그는 조용히 검을 치켜들 뿐이었다.

검 끝에서 무형의 검기(劍氣)가 형체를 입고 서늘한 기운을 내뿜었다. 땅을 내려치자 천장이 흔들렸고, 거기에 매달린 거대한 샹들리에가 무너져 내렸다!


"끄아아아아아!!!"


깔려죽지 않은 사람들은 모두 연이은 공격에 맞아 죽었다. 이반은 천장에 난 구멍을 통해 2층으로 뛰어올랐다. 그곳에는 완강기를 통해 밖으로 탈출하려는 히틀러와 부하들이 있었다.


"드디어 찾았다 이새끼!! 죽어라아아앗!!"

"으아아아아악"


검끝에서 광선이 나오고 히틀러는 힘없이 타죽었다. 불에 그을린 히틀러의 시체를 부하들이 말없이 쳐다보았다.


"아아.. 제18번 총통님.. 이렇게 허무하게 가셨구려..."

"빨리! 19번 클론 꺼내와! 다음 암살시도 대비해서 여분의 히틀러 대량생산 준비하고!"


"...뭐?"

이반의 동공이 흔들렸다. 18번 총통? 여분의 히틀러?


그때 뒤에서 한 남자가 천천히 걸어오면서 웃음을 터뜨렸다. 독자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바로 이 작품 초반부에 나와서 히틀러에게 유니콘 얘기하던 바로 그놈이다. 물론 이반이 그런 내부사정을 알 리는 없지만.


"많이 당황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붉은 군대의 병사여."


"...이게 다 뭐지?"


"네가 들은 그대로다. 네가 죽인 건 히틀러의 18번째 복제품일 뿐이지. 원본 히틀러는 이미 진작에 암살시도에 당해서 죽었어. 하지만 우리 나치당은 권력을 유지하지 위해 히틀러라는 마스코트가 계속 필요했고 그래서 선택한 것이 바로 히틀러의 시체에서 추출한 DNA를 바탕으로 클론을 만드는 것이었지. 알았나, 빨갱이? 너랑 연합군 놈들이 아무리 애써도 히틀러와 나치당은 영원할 거라는 얘기다! 니가 지금 들고 있는 망할 노스트라다무스의 마검 따위가 없어도!!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히틀러들이 양수에서 배양되어서 깨어나고 있다고!"


"윽 역겨워!"


"뭐가 역겹다는 거냐!"


"저그마냥 부화장에서 알까고 나오는데 안 역겹냐?"


이반은 마검에게 말했다.


"내 한 번 남은 소원의 기회를 지금 쓴다. 히틀러의 클론이 만들어지고 있는 장소가 어디지?"


마검은 씨익 웃었다.


"그래, 결국 그렇게 쓰는구나. 히틀러 클론 부화장은 바로 이 관저 지하 60층에 있다."


그는 그 말을 듣자마자 다시 1층으로 뛰어내려 검을 바닥에 꽂아넣었다. 그러자 바닥이 산산조각나며 지하 1층 바닥이 드러났고, 또 지하 2층이, 지하 3층이 계속해서 드러났다. 그런 식으로 지하 60층까지 통하는 구멍을 뚫어놓은 뒤, 이반은 검을 들고 그 구멍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천천히 눈을 감았다.


"..전사여. 전사여!"


"..응? 왜?"


마검의 목소리에 눈을 뜨자, 이반은 그의 손에 들린 검이 점점 더 흐려져 가고 있는 것을 눈치챘다. 


"나는 이제 조금 뒤면 네 손을 떠나 다음 주인의 손으로 떠날 것이다. 아마 히틀러 부화장은 부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너는 이대로 떨어져서 콘크리트 바닥에 뚝배기가 깨져 죽을 거고."


"...아...."


"망연자실해하지 마라. 비록 진정한 의미에서 히틀러를 없애지는 못했지만 너는 히틀러의 18번째 클론을 죽였고 나치 독일에 상당한 피해를 입혔다. 너는 전쟁영웅이다, 이반 이바노비치 이바노프스키."


"..."


"이렇게 말하긴 좀 오글거리지만 너는 참 좋은 주인이었다... 나랑 있으면서 너만큼 피맛을 많이 보게 해준 놈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또 인간 치고는 욕망과 사사로운 분노에 휘둘리지 않는 놈인 것 같고.."


"하아.. 그딴건 모르겠고 이왕이면 히틀러 죽이고 고향으로 돌아가 어머니를 보고 싶었는데, 뭣하러 구덩이로 뛰어들어서는... 아, 널 들고 밖으로 나갔어도 죽는 건 매한가지였겠군..."


"그럼 사요나라다."

마검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뭔데, 그건 또 어느 나라 말인데.."


그때였다. 마검이 사라지자 엄청난 한기가 그를 엄습해 왔다. 그 한기의 정체는 애당초 하려던 것도 이루지 못하고 부화장 바닥에 부딪쳐 10초 이내에 생을 마감하게 될 것이라는 현실에 대한 직시였다.


환상이 걷히고 나자 어둠이 찾아왔다.

"쑤까 블ㄹ.."


그는 결국 그 비명을 끝내 다 지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