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뒤로 그 어떤 습격도 없어서 시즈오카가 철수하자고 했다. 나도 지금 미야자키 씨와 한혜림 씨의 상태가 나빠보였기 때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와 시즈오카 씨는 각각 다리를 크게 다친 미야자키 씨와 충격에 휩싸인 한혜림 씨를 부축해서 겨우 밴에 들여보냈다. 공대생 특유의 근육부족 때문에 미야자키 씨를 부축하는 데만 큰 힘이 들었다. 이제 공원 한가운데에 엎어진 안드로이드를 다시 이 밴까지 실어날라야 한다는 것에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시즈오카 씨는 미래에서 훈련을 받고 와서 그런지 아직도 힘이 남아있었다.
 
저 안드로이드도 내가 날라야 하는구나 하고 투덜거리며 안드로이드가 있는 곳까지 걸어갔다. 바닥에는 아직도 전자석이랑 권총이 널브러져 있었다.
 
내가 옮기기로 한 안드로이드는 첫번째로 우리를 습격한 놈이다. 지금 보니 이 놈의 외모도 평범한 중국인이었다. 그리고 두번째 놈이랑 다르게 남성형이었다.
 
나는 그 안드로이드의 허리와 다리부분을 잡고 들어올렸다. 여간 무거운게 아니었다. 결국 들어올리는 것을 포기하고 손목 부분을 잡아 바닥에 질질 끌며 옮겼다. 이 놈들은 죽어서도 사람을 고통스럽게 하는 재주가 있구나 싶었다.
 
안드로이드의 손목을 잡고 밴까지 끌고가니 시즈오카 씨는 이미 그가 맡은 안드로이드를 트렁크에 눕혀놓은 상태였다. 내가 힘든 걸 눈치챘는지, 시즈오카 씨가 내가 끌고 온 안드로이드를 트렁크에 대신 넣어주었다.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별 말씀을요. 그리고 오히려 제가 더 감사합니다."
시즈오카 씨가 진심으로 말했다. 아까 내가 총을 쏴서 두번째 안드로이드를 제압한 것이 생각났다. 막상 감사인사를 들으니 쑥스러웠다.
"아, 아니에요. 저도 살아야 했고, 당신들이 여기서 죽으면 저도 갈 곳이 없어지잖아요. 중국어도 기초밖에 모르고......."
"괜찮습니다. 쑥스러워하실 필요 없습니다. 무슨 생각을 하셨든간에 저희들을 구해주셨잖습니까? 사실 따져보면 하현수 씨도 끌려오신거나 마찬가지인데....... 그래서 저는 거기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시즈오카 씨가 트렁크를 닫았다.
 
*
 
그 뒤로는 시즈오카 씨가 지휘했다. 시즈오카 씨가 밴을 숙소까지 몰고, 미야자키 씨의 다리를 치료했다. 그러나 이미 다리는 절단된 상태였기에 움직이게 할 수 있도록 그녀에게 줄 의족을 3D프린터로 프린팅했고,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휠체어와 목발의 프린팅도 고려하는 중이다.
 
다행히 그 뒤로 안드로이드의 습격은 없었으나, 한혜림 씨의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전직 의사였던 시즈오카 씨가 3D프린터로 신경안정제를 만들어 한혜림 씨에게 먹였다.
 
시즈오카 씨와 미야자키 씨는 안타깝지만 장백 조선족 자치현 쪽의 의료지원은 취소하기로 결정했다. 아무래도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일행이 찢어지면 더 위험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아까 내가 쏜 권총에서 끈적한 물질이 나왔는데, 시즈오카 씨에게 원리를 물어보니 끈끈한 물질로 안드로이드의 초음파 센서와 적외선 센서에 붙여 방향감각을 잃게 하는 데 쓴다고 한다.
 
그리고, 시즈오카 씨는 각오를 하고, 나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
 
다음 날, 우리들은 리와인더가 쓰여진 복장으로 갈아입은 후 밴을 타고 도시 한가운데에 있는 광장에 도착했다. 미야자키 씨가 압록강 주변 모든 도시의 음향시설을 해킹해 긴급재난 사이렌을 울린 후였다.
 
주차장에 도착하고 약 5분 뒤, 리와인더 대원들의 말대로 백두산이 폭발하며 큰 지진이 났다. 건물들에 균열이 갔고, 사방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다롄 저우수이쯔 공항에서 겪었던 느낌과 비슷했다.
 
진동이 끝나자, 우리들은 적절한 타이밍에 의료구호단으로 위장해 린장 시 한복판에서 구호작업을 진행했다. 시즈오카 씨가 빠른 속도로 천막을 치고 그 안에 나노로봇이 든 가방을 포함한 의료품들을 옮겼다. 미야자키 씨는 의족에 아직 적응이 덜 되어서 의료 보조를 담당했고, 한혜림 씨는 상태가 나름 호전되었지만 아직 완쾌가 되지 않아 밴에 남아있었다.
 
나는 트렁크에서 어제 숙소에서 작동법을 배운 로봇들을 사용하며 사람들을 구조했다. 로봇을 사용하니 공대생 특유의 허약한 체질을 가진 나도 손쉽게 잔해를 들어올리거나 사람들을 빼낼 수 있었다.
 
그렇게 빠낸 사람들은 로봇들이 알아서 시즈오카 씨에게로 데리고 갔다. 천막에 시즈오카 씨가 설치해놓은 센서 비슷한 것 덕분에 모두 그쪽으로 갈 수 있었다.
 
시즈오카 씨와 미야자키 씨는 부상자들이 오는 족족 치료를 완료하였다. 부상자들을 병상에 누워놓고, 신체가 절단된 사람들에게는 지혈을 해주고 나중에 의족을 찾아오라고 중국어로 말해주었다. 수술이 필요해보이는 사람들은 나노로봇이 든 물을 수면마취제 등의 약으로 속이고 복용시켰다. 물론 나노로봇의 효과는 놀라웠다. 과다출혈인 사람이 이틀만에 완쾌될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들이 의료활동으로 직접적으로 구한 생명들은 수백명에 달하게 되었다. 물론 그 뒤로 대홍수가 난 압록강 주변 모든 도시들의 수백만명이 넘는 생명까지 합하면 우리가 구한 사람들은 끝도 없을 것이다.(나중에 확인해보니, 우리들이 습격을 받았던 광장과 건국 주택지구도 물에 잠겨있었다.)
 
*
 
3일 째 되었을 때, 내가 시즈오카 씨와 미야자키 씨에게 비자가 만료되었으니 이제 가야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더이상 도움을 주지 못해 아쉽지만 다시 돌아가야봐야했기 때문에 리와인더의 대원들과 작별인사를 나누고 공항으로 향했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서, 나는 리와인더 대원들과 교환한 구글 이메일 주소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시즈오카 씨가 나를 섭외한 이유, 그것은 곱씹을수록 참 가혹한 운명같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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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기획한 사건들 중 2번째 사건이 끝났습니다. 원래 기획한 대로 잘 돌아가고 있습니다만, 현재 기획이 정리된 사건들은 모두 8개인지라 다 하면 36화를 넘어갈것 같네요. 그래서 저는 4번째 사건에서, 그러니까 약 20화 정도에 이야기를 끝마치고 리부트 화를 다시 쓰려고 합니다. 기존의 설정들도 다시 정립할 필요가 느껴지거든요.
 
아무튼, 지금까지 읽어와주신 분들께 감사합니다. 이어질 3번째와 4번째 사건은 한국을 무대로 펼쳐집니다. 이번에도 동네 이름이나 기차역 등 실제 장소를 모티브로 펼쳐질 예정입니다. (스포일러 하자면 대전-수원-서울 순으로 펼쳐집니다. 물론 대전은 사건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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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리부트 계획을 철회하였습니다. 이유는 귀차니즘. 대신 1~4화의 설정충돌들을 갈아엎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이번화의 내용도 약간 바꿨습니다. 돌아가는 이유에 비자만료를 추가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