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종종 인상에서 운명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운명의 상대라던지, 비극적인 운명, 같은 어휘들은 이미 여러 창작물과 매체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 이런 어휘들을 대체로 운명을 무언가 명확하게 정해져 있는 결과, 혹은 어떤 방법으로든 특정한 결과가 도출되는 것이라는 정의를 내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운명의 사전적인 정의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것을 지배하는 초인간적인 힘. 또는 그것에 의하여 이미 정하여져 있는 목숨이나 처지’이다. 이 정의에 대한 내 나름의 결론을 말해보려 한다. 

 

며칠 전, 우연히 책장을 정리하다 예전에 가지고 다니던 수첩을 발견했다. 어렸을 적의 나는, 운명에 대한 통념에 조금은 의문을 품고 있었던 것 같다. 운명은 무엇이 어떻게 이루어질지 정해놓은 각본이라고 생각하는 점은 같았지만, 일이 발생하는 바로 직전, 정말 근소한 차이로 앞서는 시점에 순간순간 시나리오를 적어나가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따라서, 아주 먼 미래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으며, 우리가 현재의 노력을 통해 아직 완성되지 않은 미래를 작성해나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었다. 

 

지금의 나는, 운명을 수없이 많은 경우의 수를, 그리고 그에 이어지는 결과를 하나도 남김없이 전부 기록해둔, 거대한 공략집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비유하자면, 게임의 분기 같은 것이다. 우리가 그 분기에서 어떤 선택지를 고르냐에 따라 스토리의 진행이 달라지고, 얻는 보상이나 호감도 같은 부분에서 차이를 보이듯, 우리가 살아 숨 쉬는 매 순간순간이 연속적인 분기이며, 그에 따라 수많은 결과가 도출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동전을 하나 던져 손바닥 위에 올린다고 해보자. 동전이 앞면이 나올 수도 있고, 뒷면이 나올 수도 있다. 정말 드물게, 아예 수직으로 세워질 수도 있는 것이다. 사실, 하늘로 올라간 동전이 꼭 손바닥 위에 떨어지리라는 법은 없다. 때마침 주위를 날아다니던 까마귀가 그것을 낚아채 날아가 버릴 수도 있고, 손바닥이 아닌 땅에 떨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동전을 던진 우리는 결국 하나의 결론밖에 관찰할 수 없다. 분명 운명이라는 것은 일어나는 모든 결과를 기록한 것이라고 했는데, 우리는 한 가지 결과밖에 관측하지 못했으니, 나머지 결과의 정당성을 의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글을 단지 교묘한 말장난이나 궤변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 역시도 이런 부분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곤 했으나, 평행우주라는 개념을 도입하는 것으로 이 문제를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었다. 다시 동전 던지기의 비유로 돌아가 보자. 현재 우주에서 내가 보는 것은 내 손등 위에 올라가 있는 동전의 앞면이라고 한다면, 그것이 뒷면인 우주도 있을 것이고, 아예 바닥에 떨어지거나 새들이 채가 동전이 유실되는 우주 역시 존재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동전을 던지는 그 시점, 즉 분기에, 모든 결과 하나하나에 대응하는 우주가 새로 파생되며, 따라서 각 우주의 관찰자들은 단 한 가지 결과만을 관찰하고, 그것을 현실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모든 경우의 우주에서, 각각의 관찰자들이 관찰한 이 모든 결과는, 전부 운명에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결코 운명을 바꿀 수 없다. 운명은 확실히 정해져 있는 결과임은 분명하지만, 결과 그 자체가 운명이므로, 아킬레우스와 거북이의 비유처럼, 우리가 영원히 결과에 가까워지기만 할 뿐, 도달하지 않는 경우가 아니라면 우리는 운명에 따를 수밖에 없다.

 

시간여행을 다룬 창작물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타임 패러독스라는 개념이 있다. 이 중 할아버지의 역설이 있는데, 우리가 만약 과거로 돌아가 할아버지를 죽인다면, 우리는 어떻게 되는지를 묻는 것이다. 

 

답은 간단하다. 과거로 돌아가는 것은,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시간여행을 한다‘라는 분기 뒤에 이어지는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분명 과거로 돌아갔지만, 결과의 연결고리까지 되돌아간 것이 아니라, 그 아래에 새로운 고리를 단 것에 지나지 않는다. 설령 그곳에서 할아버지를 죽인다고 해도, 우리는 사라지지 않는다. ‘할아버지를 죽인다.’라는 결과에, 할아버지가 죽은 수많은 경우의 우주들이 파생되어, 우리가 존재하는 가능성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 세계가 새로이 만들어지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