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쿵 쿵 쿵'

"계세요?"


또 그 녀석들이다. 목소리는 다르지만, 성대모사 같은 걸 테지. 요새 같은 시국에 택배면 집 앞에 놓고 가지, 저렇게 나오길 독촉하듯 문을 두드릴 리가 있나. 그리고 하다못해 택배면 세대주 이름을 부르겠지.


"하... 그냥 다 사라졌으면."


조용히 씹던 말을 누군가 잡았다.


"죽이는 게 소원이야? 소원은 살리는 쪽이었으면 좋겠는데..."


눈 앞에는 검붉은 색의 칼이 허공에 떠 있었다. 방금의 말은 이 검이 낸 것 같다.


"욥, 안녕 새 주인?"


...이거 아무래도 방콕 생활 오래했더니 머리가 맛이 갔나. 아니지, 한번씩은 밖에 나가니까 방콕은 아닌가?


"이 패턴 오랫만에 보는 거 같네. 이거 환각 아니다, 내가 말하고 있는 거야."


뭐야 내 맘을 읽었나? 어떻게... 역시 환각인 게 틀림없군.


"아 거 주인 의심 많네. 뭐, 끝말잇기라도 한판 해야 믿어주겠어?"

"뭔 소리야."

"야? 야돈."

"돈... 돈가스."


어느샌가 페이스에 휘말렸다. 미친 게 맞는 거 같다 나는.


"스ㅋ림"

"임시"

"시... 시... ㅅ스"

"그게 뭐야."

"스ㅌ워즈에 나오는 최종보스 비슷한 애"


그런 걸 어떻게 알아 내가.


"이제 알겠냐?"

"뭘."

"너가 모르는 단어잖아. 내가 니 머리에서 나온 환각이면 이런 단어를 쓸 수 있을리가 없잖아."


찾아보니 진짜로 있는 단어이다. 저 녀석의 말이 일견 맞는 것도 같다. 내가 모르는 단어를 내 환각이 알 리가 없지.


"그래서, 넌 뭔데."

"나? 나는 너희들이 마검이라 부르는 존재. 혹은 하나, 혹은 전체, 혹은 우주, 혹은 신. 그리고 난... 지니야."

"무슨 개근지 모르겠으니까 제대로 말해봐."

"네가 원하는 소원을, 뭐든지 하나 들어줄 수 있다."

"소원을...?"


나는 비슷한 메카니즘의 장치를 하나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과는 뭔가 다른 거 같다. 이 검도 그것처럼 초현실적인 것이라도 이룰 수 있다는 걸까?


"...죽은 사람도 되살릴 수 있어?"

"죽은지 얼마나 됐는데?"

"일년 좀 더 됐어."

"에이 그럼 안되지. 옛날이면 모를까, 지금은 못해요."


됐어 그럼. 하고 짧게 뱉는다. 애초에 빌고 싶었던 건 하나뿐이었으니까. 다시 기분이 내려 앉는다. 잠깐동안 들떠서 올라갔던 기분이 식어간다. 뭘 기대한 거냐 나는. 잠깐이나마 들떴던 나에 대한 환멸이 올라온다. 에라이, 잠이나 자야지. 옆에서 마검이 시끄럽지만 알 바 아니다. 저딴 것.


... ...


-리더

누구지?


-리더

독특한 중저음, 익숙한 호칭, 그래, 너구나 블루.


-맞아요 리더, 저에요. 오랜만이에요.

하하, 그러게 오랜만이다. 그쪽에선 잘 먹고 다니는 거 맞냐? 얼굴이 아주 창백한데. 자세히 보니까 팔다리도 앙상하고.


-리더, 지금 농담이 나와요?

...왜 정색을 하고 그래, 오랫만에 만나서는.


-얼굴이 창백한 것도 팔다리가 앙상한 것도 리더 때문이잖아요. 농담이 나와요?

...


-리더

...응


-저번에는 다른 멤버들이랑 외식을 하셨더군요.

어, 응, 그렇지. 내가 요새 집돌이 생활에 빠져서... 밖에도 좀 나돌아다니고 그러라고 애들이 데리고 갔어.


-돼지고기였죠, 맛있었나요?

...맛있었지. 너 데리고 같이 한번 더 가고 싶을 정도로 맛있었다. 후식으로 나온 냉면도 시원했고. 아, 넌 소고기 파였나?


-리더

...어


-날 죽이고 먹는 고기는 맛있었나요?

...아니... 그런 의미가 아니고...


-날 죽이고 고기가 넘어가요?

...


-대답해봐요 리더!

-리더가 죽였잖아!

-나는 살고 싶었다고!


... ...


"와아악"


발버둥치며 일어난다. 꿈이란 걸 알고 있었음에도 살이 떨린다. ...오늘은 블루의 묘나 찾아가야겠다. 외출준비를 해야겠다.


"오 일어났냐."


시끄러운 것이 또 튀어나왔다. 귀신은 뭐하나. 저거 안 잡아가고.


"이미 한번 잡혔으니까 그런 생각일랑 하덜 말아. 얼마나 끔찍했는지 넌 모를거다."


마검이 검을 부르르 떨며 말했다. 끔찍하든 말든.


"식칼로도 쓰이고 지져지고 볶이고..."


마검이 쫑알거리는 동안 어느새 묘소에 도착했다. 뒤에서 도시의 검은 연기와 비릿한 피냄새가 날아든다. 난 그 틈새에 담배냄새를 섞는다. 정의의 상징일 무렵엔 안 피던 거였는데 큰일이다. 요새 담배 구하기도 힘든 것을 계속 소비만 해대니...


"어? 리... 더?"


쯧, 오늘은 길일이 아니었나.


"리더, 저에요! 옐로!"

"...어, 그래, 반갑다. 저번에 밥 먹으러 모였을 때 넌 안 왔으니까... 내가 탈퇴하고 처음인가?"

"그렇죠. 근데 웬 일이에요?"


옐로가 내 담배를 가리키며 물었다.


"원래는 안 피지 않으셨어요? 동심의 상징의 이미지가 안 산다고."

"안 폈지. 근데 이젠..."


잠시동안 침묵이 오간다. 서로 머릿속의 말과 내뱉을 말 사이에 타협점을 찾던 중에 옐로가 먼저 입을 뗀다.


"아, 리더는 취업했어요?"

"백수다. 왜, 너희 가게 취업 시켜주려고?"

"저희 요즘 적자거든요?"

"그럼 말을 말았어야지."

"그런가? 하하하."


하하하는 개뿔. 난 못 웃는다 임마. 대략 이런 식의 한담을 30분 쯤 나누었다. 짜장면집인데 볶음밥이 더 잘팔려서 걱정이라느니, 다른 멤버들은 요새 어떻다느니 하는, 그런 이야기. 아니면 실제론 훨씬 짧았는데 내 체감상으로 30분이 지난 것이거나. 잘 모르겠다.


"저기 그런데 리더..."


역시 온다. 또 온다. 이래서 만나기 싫었던 건데.


"다시 팀에 돌아오시는 게 어때요?"

"옐로, 그거라면 말했었잖아. 난..."

"리더가 없으니 규합이 안 되고 있는게 현재 상황이에요."

"...사부님도 있을 거 아니야."

"사부님은 저번에 부상을 입고 일선에서 잠시 물러나기로 하셨어요. 애초에 사부님은 남을 통솔하는 데에 적합한 분도 아니었고."

"...스승님 뒷담화 까는 제자라, 거 훌륭한 제자인데 그래?"

"리더, 진지한 이야기에요."


옐로가 내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오면서 보셨을 거 아니에요! 괴수들은 점점 강해지고 있고, 도시는 반파되었어요. 짜장면에 넣을 양파 사러가는 것만으로도 목숨을 걸어야 한다고요. 이젠 민간인 사상자도 많이 나오고 있어요!"

"거기서 짜장면이 왜 나오냐..."

"외곽이라고 안심할 것도 못 된다고요! 한번 내려올 때 바로바로 잡지를 못해서 다른 곳으로 넘어가 대니까!"


담배 한개피 다 폈다. 땅에 떨궈서 불을 밟아끄며 말했다.


"오늘 블루가 꿈에 나왔다. 꿈에 나와서는 나보고 내가 자기를 죽였다더라. 나도 그렇게 생각해. 난 그 일에 대한 자신이 없다."

"그건 리더때문이 아니었잖아요. 단지 판단미스였던 것 뿐인데..."

"중요한 순간에 판단을 잘못하는 리더만큼 못미더운 아군이 어딨냐! 심지어 그 미스란 걸로 부하를 죽이기까지 했는데! 이제 됐어. 난 이 일을 할 자신이 없다. 변신기기는 전에 반납했으니까, 맘없는 사람 붙들고 있지 말고 적당한 그릇을 하나 찾는 게 더 빠르지 않겠어?"

"지금 필요한 건 베테랑이지 신입이 아니에요. 사태가 그렇게 안이하지 않다고요."

"그렇다해도 난 무리다. 나도 하고 싶은 맘이 없는 건 아니야. 하지만 어쩌란 말이야, 주먹질 한번, 발길질 한번 할 때마다 걔 얼굴이 생각이 나는 거를."

"리더..."

"그만해. 난 이제 리더 아니다. 차라리 겁쟁이라고 욕하든가 해. 그 편이 마음 편하니까."


그리 말하며, 산을 내려갔다. 집으로 돌아가야겠다. 가서 엊그제하다만 포ㅋ몬이나 마저 하자.


"어디가세요 리더!"

"사천왕 깨러"

"사천왕이요? 앗! 혹시 팀에 다시 들어와주시겠다는..."

"그 사천왕 아니다. 포켓ㅁ 모르냐?"


괴수 간부 사천왕 말고 ㅍ켓몬 사천왕. 이것이 지금 내 인생이다. 왠지 씁쓸해서 담배 한대를 더 뽑는다. 정의의 상징이었던 전대 레드는 어디로 갔는가. 연기와 함께 탄식도 날려보낸다.


"야"


마검이다. 방금 전에 옐로랑 떠들 때는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이제서야 슬그머니 튀어나왔다. 방금 떠들어 줬으면 시끄러운 제안도 안 받고 만사형통이었는데 퉷.


"그땐 투명화 썼지. 둘이 좋은 분위기던데 내가 끼어들어 쓰겠수?"

"좋은 분위기는 무슨. 걔랑은 그냥 동료사이다."

"원래 다들 그렇게 말하지~."

"걔 남친 있어."

"누구?"

"전대 동료 있어."

"아 맞다, 너 전대였냐?"

"그래, 전대 레드'였'지. 지금은 아니야. 난 나갔으니."


정의의 수호자, 동심의 상징. 전대. 곧은 마음의 일반인을 끌어들여 강한 힘을 주고, 괴수를 퇴치하게 시켜서 인류를 지키는, 그런 일이다. '파ㅇ레인저'나 '가ㅁ라이더' 같은 거 생각하면 대충 이미지는 맞을 거 같다. 그리고 나는 그 전대의 '레드' 겸 리더였다.


일년 전, 나는 괴수들과의 전투 도중 그릇된 판단으로 당시 내 부하였던 '블루'를 죽게 했다. 나는 부하를 죽였다는 죄악감을 덜 수가 없어서 '블루'의 사망 이후 얼마 안되어 전대를 탈퇴하게 됐다.


그 이후로 나는, 전대와는 연을 끊기로 했다.


"으흠."

"안 놀라네."

"나야 뭐 크툴루도 보고 미소녀 여고생쟝도 보고 했으니까. 남은 건 마법소녀랑 뱀파이어 정도 밖에 없을 걸?"

"아 그러셔."


흥미없다. 그런 건.


"아무튼 기운내라. 골키퍼 있다고 골 안 들어가는 거 아니다."

"뭔 소리야."

"방금 걔, 남친 있다며?"

"헛소리 집어쳐."


갈 때와 마찬가지로 마검의 쫑알거림을 들으며 걸음을 옮기다보니 어느샌가 집 앞에 도착했다. 번호를 누르다 돌연 방금 전 생각이 났다.


'... 잘 들어갔을까...'

"누구? 방금 걔?"

"..."

"역시 리더시구먼 그래. 츤데레의 자질이 아주 제대로야."

"시끄러워."

"그러지 말고, 한번 가 보는 게 어때. 걔네 집은 여기서 멀지도 않잖아?"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날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냐! 난 마검이다! 내 초능력은 하늘을 뚫을 초능력이란 말이다!"

"무슨 개근지 모르겠으니까 하지 말라고."


귀찮다. 난 더 이상 같은 팀도 아니고. 무슨 일이 있었다고 해도 내가 가서 해결될 일도 아니다. 내가 갈 이유가 없다. ...하지만...


"왜 갈 이유가 없어. 너, 집에 우유 떨어졌잖아. 우유 살려면 걔네 집 근방에 들러야 하는 거 아니야? 들르는 길에 한번 봐보자고."


...그래, 우유가 떨어졌다. 사야 되긴 한다. 지금 나가는 건... 우유를 사러가는 김에 상황을 보는 것뿐이다.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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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믹호러며 무협이며 다 나왔는데 특촬물이 없어서 특촬물로. 다만 분량조절에 실패한 관계로 상하로 나누겠습니다.

하편은 개인 사정상 다음 주 월욜이나 화욜 즈음에 올릴 거 같슴다. 사실 거의 다 쓰긴 했는데 수정이 아직인지라. 물론 분량은 하편이 더 많음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