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 그린 어디있어! 건물 잔해에 깔린 사람이 있어! 그린 응답해!"

"이쪽은 그린! 현재 소형 괴수와 교전중, 인명구조는 블랙한테 시켜봐!"

"블랙이다. 대형 막느라고 혼자서 메카 끌고 움직이고 있는 게 지금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야!"


검은 연기와 비릿한 피냄새. 묘소에서 맡았던 그대로다. 동요하지 말자. 이제 나와는 관계없는 것들이다. 무너지는 시가지 속에서 마검이 내게 묻는다.


"우유 사긴 그른 거 같은데, 어쩔거냐 이제?"

"뭐가 글러. 저기 눈 앞의 마트는 아직 안 부숴졌잖아."

"주인이 도망쳤잖아. 그리고 이 난장판에서 우유만 건지겠다고?"

"주인이 도망쳤으면 돈만 놔두고 알아서 집어가면 그만이고..."


'짤그랑'하고 동전 떨구는 소리가 울린다. 동전 소리가 미처 다 끝나기도 전에, '와장창'하는 굉음이 주위를 지운다.


"꺄아악!"

"옐로!"

"이쪽은 그린, 갑자기 뭐야? 무슨 일이야!"

"블랙이다, 옐로가 혼자서 간부급한테 덤비다가 날아갔어. 부상이 큰 거 같다. 2구역인데 지금 가까이에 있는 사람 없어?"

"이쪽은 화이트, 지금 3구역이라서 2구역이면 내가 제일 가까울 거 같지만..."

"같지만 뭐?"

"거기까지 도착하려면 지금부터 출발해도 5분은 걸릴 거 같다."

"제길! 다른 가까운 사람 누구 없어?"

"4구역."

"6구역."

"1구역이지만 도로가 봉쇄됐다."

"알았으니까 그만 좀 따라해."


분명 무전기에다 대고 하는 말일텐데 나에게 내용이 들리는 이유는 마검이 무전기의 내용을 캐치해서 나한테 쫑알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말투랑 목소리까지 흉내내가면서. 기분 나쁘게시리. 내 면박을 들은 녀석이 볼멘소리를 한다.


"왜~ 비슷했는데."

"하지 마."

"진짜 안 돕고 돌아갈 거야?"

"안 도와."

"네 동료 다 죽어가던데."

"들었어. 알아."

"한명이라도 손이 필요한 때던데."

"안 간다고."

"그러지 말고..."

"안 간다고."


'쨍그랑'. 또 한차례 큰 소리가 난다. 유리 깨지는 소리란 점으로 미루어, 전투중에 가게 하나가 박살난 거 같다. 마검이 다시 무전내용을 실시간으로 떠들기 시작했다. 방금 전처럼 목소리와 말투를 흉내내면서.


"제길 옐로, 조금만 더 버텨! 화이트가 지금 이리로 오고 있어!"

"...못 버텨."

"무슨 말이야, 그게!"

"아까와는 달리 아프지가 않아. 다리에 감각이 안 느껴져..."


여기까지 들어서야 나라도 고개를 안 돌릴 수가 없다. 옐로가 있는 곳까지 500m다. 뛰면 도착할 수는 있지만 다시 그 세계에 뛰어들 생각은... 잠깐 저건?! 설마... 설마 저건!


"마검."

"응?"


분노가 치민다. 당장이라도 모든 것을 부숴버리고 싶다. 입술을 깨물며 말한다.


"나는 변신기기를 이미 반납했어, 전대의 일원이 아냐."

"어."

"그래도... 날 변신시킬 수 있겠어?"


죄악감은 아직 남아있다. 블루는 내가 죽인 것이다. 하지만 저것을 보고 가만있을 수는 없다. 마검이 나를 한번, 쓰러진 옐로 쪽을 한번 보고는 실망한 얼굴로 말하였다. 검이라 어떻게 얼굴이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너... 이런 속물을 봤나. 지금까지 망설이기만 하고 꿈쩍도 않다가 마음을 다 잡는다는 계기가 고작 저거냐?! 너 같은 게 전대의 리더였단 말이야? 정의감 같은 건 눈을 씻고..."

"할 수 있어 없어, 빨리 말해."

"... 소원으로 빈다면 가능하지."

"나를 다시 한번 레드로 변신시켜줘."

"... 이뤄지리라..."


변신할 때의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 몸이 산산히 부숴졌다가 재조립되는 느낌, 오랜만에 느끼는 감각이다. 다시는 느낄 일 없을 줄 알았는데. 다시는 느낄 생각 없었는데.


그러나 기어코 내가 돌아왔다. 기다려라, 너희의 악행이 어떤 의미였는지 똑똑히 새겨줄테니.


... ...


아프다. 다리가 움직이지 않는다. 아니, 아'팠'다. 지금은 아프지 않다. 고통이 느껴지지 않는다. 단지 무섭다. 이렇게 죽는다는 게 무섭다. 전대의 일원이라고 누구나 죽음을 각오하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제일 중요한 것은 자신의 목숨이다. 그런 의미에서, 고통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이 상황은, 죽음이 가까이에 왔다는 의미라서 너무도 무섭다. 무서워서 견딜 수가 없다.


간부급은 세구나. 스스로 강하지 않다고 소개한 녀석도 이 정도인데 리더는 정말 대단했다는 생각이 든다. 리더는... 아니, '레드'는 강했다. 혼자서 간부급을 몇명씩도 상대했다는 이야기가 내려올 정도로 강했다. 물론 지금이야 조금 다른 이미지가 되었지만, 내가 벤치마킹하던 사람은 예전의 그 사람이었다. 내가 꿈꾸던 전대는 그 사람이었다. 사람을 지키고, 정의를 지키고. 사랑... 과는 조금 먼 감정같다. 내게는 따로 사귀는 사람이 있으니까. 하지만 그 사람은 강하고, 든든했고, 믿음직스러웠다. 상황판단도 능했고, 지휘도 잘했다. 바람직한 히어로의 상이자, 바람직한 리더의 상이었다.


간부라던 괴수가 다가오고 있다. 이번 일이 끝나면 짬뽕 레시피를 바꿔보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힘들 거 같다. ...아 이건 사망플래그인가? 아니면 거창한 게 아니라 고작 중국집 메뉴 변경이니까 그렇지는 않은가? ...아무렴 어떤가. 살아나갈 가능성은 안 보이는데. 슬슬 유언을 생각해두는 게 맞을 거 같다. '레드 매정하다'로 해둘까? 설마 입때껏 안 와줄 줄은 몰랐기도 하고. 아니면 가게를 누구한테 잇게 하는가도 좋을 것 같다. 나까지 3대째인데 이렇게 망하게 할 수야 있나.


"...눈 감으면 안돼, 정신차려!"


...그전에 일단은 블랙을 조용히 시키는 게 먼저일 거 같다. 방금 전부터 무전기로 시끄럽다. 머리가 울리는 게 짜증까지 나려한다...


"블... 랙."

"말하지 말고 있어! 조금만 버티면 된다고! 회복 도구도 챙겨오고 있다고 했으 ...어?"


블랙이 말을 끊는다. 뭐야, 뭔데 또... 저기에 뭐 그리 대단한 게...


뭐야? 뭐야?! 진짜 뭐야?! 왜 저쪽에서... 저쪽에서 리더가 달려오고 있지? 그냥 달려오는 것도 아니야. 저건... 전대로서의, '레드'로서의 모습이잖아! 변신기기는 반납하셨을 텐데 어떻게? 그 짧은 시간 동안 본부까지 달려갔다가 온 거란 말이야? 말도 안돼! 게다가 저 칼... 저 검은 칼은 또 뭐지?


"이 천하의..."


괴수도 뒤를 눈치를 채고 돌아본다. 도대체 저 모습은 어찌된 영문이지? 내용물은 다른 사람인건가?


"상쓰레기야아아아!"


아니야, 저 목소리는.... 저 목소리는 틀림없는 '레드', 리더다!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돌아오셨어! 괴수가 흔적도 없이 날아가버렸어. 이 힘도 틀림없어! 왜인지 화난 듯 보였지만 틀림없어!


"블랙!"

"ㄴ,네!"


갑작스레 맞닥뜨린 믿기 어려운 상황에 블랙이 당황한다. 그야 당연하지, 나도 그랬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다! 지금은 빛이 보인다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못 이길 상대 같으니 뒤로 빠져서 옐로를 들고 날라라, 아직 그 정도 체력은 있을 거다. 메카는 1구역으로 자율주행시키고! 지금 상대하고 있는 그 놈은 내가 붙잡는다. 다음 화이트! 지원 가겠다고 한지가 언젠데 아직도 꾸물거리고 있는 거지?"

"거리에 괴수들이 너무 많습니다. 하나하나 밟고 가는 건 시간이 오래 걸리고, 무시하고 가기는 힘들어요!"

"그럼 5구역, 4구역 멤버들이 3구역으로 집결해서 화이트를 원조해라! 8구역은 퇴로 확보해서 옐로가 빠질 길만 잡아두고 쓸데없는 이동하지 않는다! 블랙은 옐로 데리고 3구역에서 화이트와 만나면 4, 5구역 멤버들은 3구역에서 대기시키고 셋이서만 8구역 쪽 지하도로 빠진다! 지하도는 지하철역을 이용한도록!"

"ㄹ...리더! 1구역은 어떻게 할까요?"

"블랙이 보낸 메카가 도착하면 그 메카를 타고 2구역으로 와서 나와 합류해라. 그거라면 길이 봉쇄됐든 안 됐든 문제 없겠지! 6구역, 7구역은 적들의 주의를 끌고 있어!"


신속, 정확한 지시. 딱 부러지는 목소리. 무엇때문에 이리 화난 목소리인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당신없이는 밀리기만 하는 우리를 보면서 화난 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내가 죽기 직전인 걸 보시고 화나신 건지도 모르겠다, 리더는 은근히 잔정이 많으시니까. 좌우간 리더 본인이 맞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정말로 돌아왔구나. 그렇게 망설이시던 분이 뭐로 심지를 굳힌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건 상관없다. 이젠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이긴다. 이건 이긴다! 이길 수 밖에 없다!


"잠, 잠깐만 메카를 1구역으로 보내면 리더는 뭐로 싸우게요?"

"그건 방법이 있으니까 보내기나 해!"


리더의 손에 들린 검이 빛난다. 리더가 높이 뛰어오르더니 그대로 대형 괴수에게 덤벼들었다. 그 빛나는 검과 함께.


"크아아아"


... ...

... ...


그후, 리더의 지시대로 현장에 돌아온 메카와 협력하여 대형 괴수를 쓰러뜨리고, 중형과 소형은 나를 후진으로 뺀 후에 다같이 협력하여 깨끗이 정리했다. 과거에 유례가 없던 수준의 총력전은 이렇게 허무하게 막을 내렸다. 나는 끊어진 다리의 신경을 어떻게든 치료하여 -어떻게 치료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본부측에 물어보니 영업기밀이라고 한다- 열흘이 지난 현재는, 이전과 일절 다름없는 생활을 하고 있다.


단지, 리더가 썼던 검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사라질 때 리더에게 인간은 정의의 상징은 어디갔냐 어쩌고하는 알 수 없는 이야기만 퍼부은 채. 말하는 검이란 것은 놀라웠지만 당시엔 놀라는 것보다도 전후 상황정리가 더 급했기 때문에 미처 못 물어봤다.


"배달하면 햄버거라니까!"

"햄버거는 어제도 먹었잖냐, 오늘은 피자가 좋을 거 같은데."

"족발로 하자 양놈들아. 우리 것이 좋은 거라고."


... 이 아수라장도 그대로다. 이건 그대로가 아니었으면 좋았을텐데. 리더를 보고 좀 본받아라 이것들아, 쿨하게 앉아계시잖냐!


"그러지 말고, 기껏 리더가 돌아왔는데 환영회를 아직 못했잖아."

"그렇지. 요전까진 바빴으니까."

"그러니까, 리더가 좋아하던 음식으로 정하자고."

"리더가 좋아하던 거면 아마... 치킨이었나?"

"그럼 못 시켜. 치킨은 열흘 전에 부숴진 게 마지막 치킨집이었어."

"그래? 다른 가까운 데 없어?"

"다른 마을에도 몇 군데 안 남아있어서... 가까운 데라도 1시간은 걸릴 걸?"


화이트가 골똘히 생각한다.


"열흘 전이면... 그때인가?"

"그럴 걸? 그... 옐로가 간부급 괴수랑 싸우던 때. 싸우다가 괴수가 부숴먹은 가게 중에 하나였을 거야, 아마."


열흘 전이라... 되짚어보면 리더가 달려오기 전에 보였던 간판 중에 치킨집 간판이 언뜻 보였던 것도 같다. 리더가 달려온 건 그 직후였지. 그게 마을의 마지막 치킨집이었구나...


...응?


...잠깐만. 잠깐만 기다려 봐. 아니지, 이건 아니지. 어? 진짜로? 설마... 내가 잘못 생각한 거겠지? 자, 다시 천천히 생각해보자.


첫째. 리더는 치킨을 좋아한다. 매우 좋아한다. 일주일에 5번은 시켰다.

둘째. 나와의 전투중에 괴수가 부순 게 마을의 마지막 치킨집이었다.

셋째. 왜인지 분노한 모습으로 달려오셨다.

넷째. 무엇을 시킬지 다들 고르고 있는 데 혼자서만 말이 없다.


... 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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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가던 음식점이 하나 망했습니다. 올해 들어 코로나로 우울해진 건 이번 건이 처음이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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