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강변에는 잘 다듬어진 자갈이 예쁘고 고르게 깔려 있다. 멋모르고 뛰어노는 아이들의 신발이 어쩌다 벗겨져도 전혀 다치지 않을 정도의 둥글고 자잘한 자갈의 너른 마당은 이 곳 사람들에게는 나름의 여름 피서지 명소였다. 그렇다고 해서 마을 계곡 깊은 곳으로 들어가야 찾을 수 있는 숨겨진 곳은 아니었고, 강가로 난 도로에서 바로 아래를 내려다 보면, 누구라도 눈을 빼앗길 수 밖에 없는 절경같은 곳이다. 쉴 곳을 찾아 차로 이동하는 외지인들도 이 곳을 지나가면, 차를 멈추고 꼭 한번 발을 담가볼 정도로.

 

 하지만 보름달이 뜬 지금, 이 곳에는 아무도 없다. 연이어 내린 비로 물이 불어 사람들이 강에서 멱을 감는 것을 두려워 한 까닭도 있겠지만, 여름의 한복판을 지나는 데도 오늘따라 이상하게 이 자갈강변은 고요하다. 보름달을 따라 비친 강물의 흐름은 조그마한 바람을 만들어 내고, 자갈밭 바깥으로 난 갈대밭에 부딪힌 바람은 오들오들 떨리는 갈대의 마중을 받으며 휘파람을 불어낸다. 그 소리 말고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사실 무언가의 움직임이 있기는 하다. 자갈밭 한가운데에서, 달빛보다 어두운 무언가가 살짝살짝 그 빛을 내고 있었다. 그 곳에서는 어떤 남자가 불을 피워 숯을 만들고 있었다. 하지만 얼핏 길을 지나가는 사람이 보기에는 사람이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모두가 같은 풍경일 것이다. 왜냐하면 파도 튕겨 살짝 젖은 조약돌이 달빛에 비치는 모습도, 달빛 머금은 갈대의 군무(群舞)도 모두 지금 자갈밭 중앙에서 어떤 사내가 만들어 내고 있는 그 빛보다는 아름답게 반짝이고 있으니까.

 

 사실 그 역시 지금 자신이 만들어 내는 불빛에 대해서 그렇게 자신감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 지금 그가 만들어 내는 불빛은, 굉장히 실용적인 목적으로 쓰일 예정이었으니까. 어떠한 예술적인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아, 물론 예술을 창조하는 입장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역시 지금 보름달과 강물과 조약돌과 갈대가 이루어 내는 풍경의 오케스트라를 즐길, 관람객으로서의 준비를 마치기 위해서 지금 이렇게 불을 피워 올리는 것이었다.

 

 나무에 붙었던 불이 모두 사그라들고, 드디어 그가 원하는 알맞은 세기의 숯불이 피워졌다. 남자는 기다렸다는 듯이 큰 돌 두 개를 괴어 받침대를 만들고, 그 위에 석쇠를 올렸다. 그리고 그 위에서 삼겹살을 굽기 시작했다.

 

 고요한 강변 연기 홀로 피어오르는 그 곳에서, 그는 참지 못하겠다는 듯이 갖고 온 소주를 먼저 땄다. 풍경을 즐기는 순서로서는 약간 이른 감이 있지만, 사실 지금까지 그는 불에 온 신경을 쓰느라고 이 곳에 도착하고서 제대로 보름달 밝은 이 강변을 제대로 보지 못하였다. 천천히 이 풍경을 즐길 작정이 만연한 듯, 그는 혼자 있음에도 불구하고 술잔을 챙겨 왔다.  만면에 미소를 띄우며 술잔에 술을 채운 뒤, 그는 주변을 둘러 보고는 흡족한 미소를 다시 한 번 띄우며 허공에 건배를 청했다. 그리고 강물을 향해서 술을 한 잔 뿌리고서는, 다시 잔을 따라 한 번에 술잔을 비웠다.

 

 석쇠에 불을 가까이 대었는지, 삼겹살은 생각보다 빠르게 익어갔다. 빨갛게 되어 있던 부분이, 하얗게, 그리고 갈색으로 변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비계쪽에서는 불에 닿은 부분에서 흘러나온 기름이 픽 하고 연기를 피워올렸다. 소주 한 잔에 경치를 구경하는 값을 치르고, 고기를 굽고 있다는 사실도 잊은 채 멍하니 강물을 바라보던 사내는 그 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리고서는 부랴부랴 삼겹살을 뒤집었다.

 

 삼겹살의 색깔은 이제 누가 보아도 먹음직스럽게 바뀌었다. 남자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가위로 고기를 잘랐고, 잘린 부위가 익을 때 까지 약간 더 방치하였다. 고기 굽는 소리만이 강변에 퍼져 나갔지만, 그것도 멀리는 가지 못하였다. 달빛은 모든 것을 먹어치웠다. 고요도, 침묵도, 그리고 삼겹살이 익어가는 소리도.

 

 이윽고 모든 부위가 노릇노릇하게 구워졌다. 달을 보는데 방해가 된다고 생각했는지, 그는 서둘러 강에서 물을 떠와 불을 껐다. 석쇠 위에 있는 다갈색으로 변한 삼겹살을 한 점 입에 넣고서는, 다시 또 만족스러운 미소를 띄웠다. 어느 새 유리잔에 담긴 액체는 없어지고, 다시 채워졌다. 대단히 풍요로운 기분이 그를 감돌았다. 넘어져도 아프지 않은 자갈밭에 그는 대자로 누워 하늘을 감상했다. 실처럼 지나가는 구름이 하늘을 가려 마치 삼겹살처럼 보인다. 태양보다 밝아보이는 보름달이 온 세상을 굽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