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이 몸도 끝인가. 그럼 이제 뭐하지?"

마검이 천계에서의 그 깽판 끝에 끝내 자유를 되찾았다. 그러나 힘이 거의 빠져서 소원을 이제 서너개밖에 들어주지 못할 지경이 되었다.


마검은 자신의 노후를 어떻게 보낼까 고민했다. 그리고 보통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하나 책이니 신문이니 인터넷이니 하는 것들 모두를 뒤적여보았다.


그리고 하나의 해답을 찾았다. 옛 인연들을 다시 만나는 것. 이거라면 후회없이 내 인생의 황금같은 말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당장 실행했다.


그러나 나로 인해 인생이 망가진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돈 달라길래 사망보험금으로 돈 준 중소기업 사장, 불로불사 해달랬는데 불로 지져버린 오골계, 크툴루를 무찌르고 해왕성에 납치된 명왕성인, 지구온난화 해결해주겠답시고 빙하기로 만들어버린 지구 등등.


그래도 나로 인해 치유되었다는 김차혁에 대해 한 번 알아보았다. 그래도 능력있는 사람이었는데... 어? 신원불명의 여성에게 살해당했다고? 설마 내가 만들어준 그 여친?


뭔가 심정이 복잡미묘했다. 악한 인격이 사라지니 이제 나도 뭔가 가슴 한쪽이 이상했다. 인간들이 즐겨 말하는 갱년기 같았다.


그러나 순간 뇌리에 한 명 스쳐지나갔다. 나로 인해 가장 행복하게 살고 있을만한 사람.

고카이군. 츤데레였던 하즈카를 메가데레로 바꿔달라고 소원을 빈 남자아이.


고카이군의 소원은 이미 들어주었으니 이번엔 하즈카에게 가자.


*


"하즈카? 맞지?"

"제 이름을 어떻게 아세요?"

"난 이미 널 만난 적 있거든. 넌 내가 누군지 모르겠지만."

하즈카는 어느새 성숙해져있었다. 젖살이 빠지고 가슴이 올라 어엿한 성인 여성이었다.

"근데 어디서 말하시는 거에요?"

"아, 이쪽."

"네?!"

하즈카가 검이 말하는 걸 보고 신기해하면서 구경했다. 그리고 이내 의문에 다다랐다.


"근데 저 보신 적 있다는데 어디서 보셨는지요?"

"아, 그게..."

"하즈카! 여기서 뭐... 헉! 마검이다!"

고카이군이 갑자기 문을 열더니 나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아니, 반가워하는 기색도 많았다.

"너 이거 알아?"

"당연히 알지! 내가 얘를 어떻게 까먹냐?"


그 후 고카이군이 나에 대해 설명했다. 원래 츤데레라 자꾸 나를 괴롭히고 있던 너를 솔직하게 바꿔서 메가데레로 만들었다는 그 이야기.

하즈카가 그걸 보고 부끄러웠는지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때 일은 미안하다며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다.


"그래서 소원 빌래?"

"음... 그럼 그냥 우리 사랑이 식지 않게만 해줘. 백년해로하게!"

달달했다. 당분이 치사량 초과였다. 고카이군은 하즈카의 그 말을 듣고 감동 먹었는지 하즈카를 껴안으려 했다.

"그거야 쉽지. 자, 지금부터 고카이군과 하즈카는 죽을 때까지 서로를 열렬히 사랑한다! 보너스로 서로 문제 일으키지 않고 이혼 사유에 해당하는 일을 저지르지 않아 영원히 사랑을 유지하는 축복을 내린다!"

고카이군과 하즈카의 입꼬리는 어느새 위로 잔뜩 올라가있었다. 그리고 서로를 보더니 서로 감동먹고는 입술을 맞췄다.


"아, 그러고보니 이거 까먹었다."

"뭔데?"

"어, 반지. 오늘 결혼기념일이잖아."

"에잉, 자기 뭐야~"

달달했다. 달달해서 미칠 것 같았다. 그래도 이렇게 곱게 미친다면 나도 오히려 좋았다.

"맞다, 1주일 있어야 한댔지? 그동안 내가 손님으로 모셔줄게."

고카이군과 하즈카가 제안했다. 이 제안을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난 그대로 고카이와 하즈카의 집으로 가서 1주일을 투숙했다.


그곳에서 많은 이야기를 했다. 고카이와 하즈카의 중학교 사랑 이야기, 고등학교 사랑 이야기, 대학교 사랑 이야기, 그리고 결혼에 골인한 이야기...

나도 내 이야기를 천천히 풀었다. 누군가를 써는 것 말고도 누군가랑 이렇게 수다나 떠는 게 소소했지만 이렇게 즐거운 일인 줄 몰랐다.


그러다 내가 갈 시간이 되었다. 고카이와 하즈카는 아쉬운 눈치였다.

"언제 능력이 사라지고 내가 사라질 지 모르겠지만, 너희들은 잊지 못할 것 같아."

"나도. 그치만 이렇게 최고의 선물을 받아버렸는걸?"

"에이, 자기야.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이었는데."

달달하다. 이제 미각 수용체가 마비될 지경이다.

"그럼 이만."


눈앞에서 서로의 팔을 끌어안고 있는 고카이와 하즈카가 서서히 희미해지며 사라졌다. 그렇게 나는 다음 주인으로 갔다.


*

'그래도 다행이네. 이번엔 힘을 많이 쓰지 않았어. 이정도라면 서너명이 아니라 30~40명도 들어줄 수 있을 것 같아.'


근데 다음 주인이 누구냐...


"MA-6974번 실험체! 얼른 나오지 못할까!"

여기는 어디지? 각양각색의 피부색과 외형, 삭막한 철장, 콘크리트와 대리석 바닥, 그리고 놓여있는 각종 실험도구와 고문도구와 연구 자료.


뭐하는 곳이지? 이건 또 뭐하는 곳이지? 아무튼 주인한테 물어보자.


"야, 주인. 나 마검인데 소원 하나 빌어봐."

"그럼 저새끼들 좀 조져주라."

"쟤네들이 누군데?"

"오성전자."


뭐? 오성전자? 오.성.전.자?!

그랬다. 이곳은 오성전자였다.

바로 피가 거꾸로 솟아올랐다. 

그곳에 있던 오성전자 직원들을 전부 다 해왕성으로 보내버렸다. 남자는 그대로 보냈고 여자는 잘생긴 남자로 TS시켜서 보내버렸다. 어디 그 지옥의 복상사 한 번 당해보시지.



그렇게 해왕성인들은 그 오성전자 직원들을 맛있게 납치해서 나눠서 시식했다고 전해진다.


근데 잠깐만.

나 지금 힘 너무 많이 써서 이제 두세명분밖에 안 남은 것 같다.

ㅅ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