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고(事故)

 

 

 

죽음은 굉장히 불친절하다. 지금만 해도 그렇다. 언제 찾아온다고 살짝 귀띔이라도 해 주면 어디 덧나나. 나는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이렇게 불쑥 찾아오는 것은 심히 당황스럽다. 죽음은,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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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례하다.

 

아래를 본다. 희미한 시야 사이로 기어 스틱을 꽉 쥐고 있는 내 손이 보인다. 이 각도로 내 손이 보인다는 것은 저 손이 내 몸뚱어리에서 떨어져 나갔거나, 내 머리가 분리되어 날아가고 있거나 둘 중 하나의 상황이라는 것을 인식한다. 호기심에 눈동자를 굴려 보지만 사방이 붉은빛으로 가득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우울한 생각은 그만두기로 한다.

 

이번엔 가족에 대해 생각을 해 보자. 나는 아직 독신이다. 당연히 자식도 없고. 이는 나의 죽음에 슬퍼할 사람이 줄어들었다는 뜻이다. 이걸 기뻐해야 하는 건가? 모르겠다. 이번 출장을 갔다 온 후에는 윤경 씨에게 내 마음을 고백해보려고 했는데. 윤경 씨는 나의 죽음을 슬퍼할까? 모르겠다. 단체회식 날 술에 만취한 윤경 씨를 집 앞까지 바래다준 날, 가로등 아래에서 윤정 씨와 나누었던 키스가 생각난다. 들어가시라는 말에 말없이 나를 쳐다보던 윤경 씨는 갑자기 다가와 키스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윤경 씨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나는 욕정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곰팡내 나는 싸구려 모텔 방에 누워 있었고, 윤경 씨는 없었다. 술에 취해서 그랬을까? 모르겠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윤경씨는 그것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다. 아마도 회사 사람들이랑 다 같이 와서 향을 꼽고 의미 없는 조문의 말 몇 마디를 흘린 후에 별 생각 없이 육개장을 먹을 것 같기도 하다.

 

 

맞아. 내 장례식장에는 꼭 육개장이 있어야 한다. 가끔 장례식장에서 다른 국이 나올 때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사람을 조문하러 왔는데 고작 국 따위에 기분이 좋지 않다니. 내가 제정신이었던 건가? 모르겠다. 육개장은 우리 어머니가 끓여 주는 게 제일 맛있는데. 아,

 

-어머니….

 

죽고 싶지 않아. 어머니가 우는 것이 싫다. 어렸을 때 놀다가 넘어져서 무릎이 살짝 까졌을 때도 우리 아들 흉터 생기면 어쩌나 하며 펑펑 우시던 어머니인데, 이제 취업했다고 매일 아침 밥 먹고 가라며 환히 웃는 어머니인데, 훈련소에서 처음 전화할 때 아들 목소리 오랜만에 들으니까 좋다고 울다 우시던 어머니인데…

 

-죽고 싶지 않아.

 

심장이 거칠게 뛰는 것을 느낀다. 한 번 세차게 요동칠 때마다 그 자그마한 심장에서 내 몸 전체로 뜨겁고 붉은 피가 뜀박질하며 움직인다. 모르겠다. 정말 거칠게 뛰고 있나? 만약 그렇다면 피도 많이 흘릴 것 같은데. 심장아, 조금만 살살 뛰어라.

 

심장아조금만살살뛰어라왼쪽팔아너는계속붙어있어라눈깔아괜히빠지지마라다리야어디찔리지마라몸통아너도찔리지마라차야영화처럼괜히폭발하지마라지나가는행인들아빨리신고해줘라구급차야너는한시라도빨리와줘라상대차량운전자너는두고보자내가꼭복수한다 의 사 선 생 님 수 술 잘 해 주 셔 야 돼 요 간 호 사 님 주 사 살 살 놔 주 세 요 하 나 님 믿 은 적 은  없   지   만   이   제    부     터      ㅁ      ㅣ       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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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싫은 냄새가 뭐냐고 내게 묻는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병원 냄새를 택하겠다. 병원 냄새를 맡으면 괜히 건강한 나도 괜시리 아파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래서인지 나는 예전부터 병원에 가는 것을 싫어했다. 그 인정머리 없이 깨끗한 것 같은 무자비한 소독약 냄새가 맘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병원 냄새가 그 어떤 꽃향기보다 달콤하게 느껴졌다. (사실, 정말 병원 냄새가 나는지는 모르겠다.)

 

난 살아 있구나. 어머니가 정말 많이 울긴 하겠지만, 그래도 육개장을 끓이시진 않겠구나. 실없는 생각을 하며 크게 웃어 본다. 눈은 떠지지 않고, 사지에 힘이 하나도 들어가진 않고 있지만 살아 있는 것이 어딘가. 나는 조용히 박동하는 심장의 두근거림을 들으며 가만히 누워 있다. 조용히 박동하는 것이 맞나? 크게 들리는 것 같기도 하고. 아예 안 들리는 것 같기도 하다. 사실 잘 모르겠다.

 

철커덕, 하고 나지막하게 문을 여는 소리가 들린다. 의사 선생님인가? 아니면 어머니? 어느 쪽이든 좋다. 문 여는 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봐서 내 상태가 생각했던 것만큼 심각하지는 않은 것 같으니 금방 일어나 인사를 건넬 수 있겠지.

 

-삐-익.

 

멀리서 뭔지 모를 사이렌 소리가 들린다. 그러고 보니까, 드라마나 영화 같은 데서 보면 환자 옆엔 계속 띠띠거리며 으레 심박 수를 나타내는 기계가 하나씩은 있었던 것 같은데. 의아함에 귀를 기울여 본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조금 더 집중해 보자. 심호흡을 한 번 한다. 내가 호흡을 하고 있나? 모르겠다. 어쩌면 안 하는 것 같기도 하다. 호흡을 안 하면 죽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그래도 내 호흡 소리가 들리지 않아서, 다른 소리를 듣기엔 더 편하다.

 

희미하게, 무슨 소리가 들린다. 무슨 소리지? 모르겠다. 꺽꺽대는 소리, 무언가를 삼키는 소리, 무절제한 고함….

 

누군가 울고 있다. 아니, 많은 사람이 울고 있다. 아니, 모두가 울고 있다.

 

-왜 울지?

 

갑자기 너무 궁금하다. 주사를 너무 세게 맞았나? 시한부 선고라도 받은 건가? 눈만 뜰 수 있다면 무슨 일인지 알 수 있을 텐데.

 

-삐-익.

 

이번엔 사이렌 소리가 아까보다 가까이에서 들린다. 눈은 아무런 저항 없이 떠졌다. 마치 처음부터 뜰 수 있었다는 듯이. 내 시야를 가득 메우는 건 갈색 천장-

 

갈색? 왜 갈색 천장일까. 그리고 천장이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가깝다. 주먹 하나가 겨우 들어갈 거리에 천장이 있다. 대체 무슨 병원으로 온 거지. 관도 이거보단 크겠…

 

-삐-익.

 

사이렌 소리는 이제 바로 앞에서 들린다. 나는 고개를 살짝 들어(혹은 고개를 든다고 생각하며) 내 몸을 바라본다. 하얀색 삼베 한복 사이로, 대충 기운 게 뻔해 보이는 오른쪽 팔이 덜렁거린다. 울음소리는 하나의 아리아처럼 엮여서 메아리친다. 따뜻하다. 뜨겁다. 빌어먹을, 존나게 뜨겁…

 

 

 

2. 사고(四苦)

 

 

꿈을 꾼다.

 

 

꿈속에서 나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운전대를 잡고 있다. 고물 에어컨이 털털거리며 한숨처럼 차가운 바람을 내뿜는다. 백미러 밑에 걸어둔 아들의 사진은 환하게 웃으며 나의 야간 운행을 지켜보고 있는 것 같다. 여느 때와 다를게 없는 평범한 운행을 끝내고 집으로 가는 길에서 아들의 사진을 바라보며 어색하게나마 웃어본다. 착각일까? 사진 속 아들의 표정이 어두워지는 것 같다.

 

- 쾅!

 

둔중한 충격이 몸을 덮친다. 머리가 멍해지며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얄궂게도 가장 먼저 머릿속에 떠오른 문장은, ‘차 수리비가 얼마나 나올까?’ 였다. 깊게 한숨을 내쉬고 차에서 내린다. 손이 덜덜 떨린다.

 

조그마한 마티즈가 아주 박살이 나 있다. 형체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파손된 흰색 마티즈 운전석에서 붉은 피가 바닥으로 스멀스멀 배어 나온다. 마치 나를 잡으러 오는 것 같아 나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난다. 시침은 새벽 2시를 가리킨다. 그 흔한 새소리 하나 들리지 않고 적막한 강원도 산골에서, 나는 엄습해오는 오한에 몸을 바르르 떤다.

 

추워서 안 되겠다. 한겨울에나 쓸 것 같은 두꺼운 이불을 머리까지 덮는다. (8월에 겨울 이불을 찾는 날 보고, 아내는 미쳤다고 했지만 내 재촉에 결국은 이불을 내어주었다.) 현실로 돌아온 나는 새벽에 있었던 사고에 대해 생각한다. 상대방도 잘못한 점이 없지는 않았지만 이를 설명해 줄 CCTV는 없었고, 상대방은 그 자리에서 즉사했을 터였고, 내 악트로스는 몇 군데 움푹 파인 것 말고는 신기할 정도로 멀쩡했다. 나는 반파된 마티즈 밑으로 선홍빛 혈액이 울컥 번져나가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다 홀린 듯 자리를 떴다. 새벽 2시의 강원도 산길은 천지창조부터 지금까지 누구도 방문하지 않았던 양 고요했고, 내가 입만 다물고 있으면 아무도 모를 터였다.

 

피를 생각한다. 태어나서 그렇게 많은 피를 본 적은 없었다. 피해자는 몇 살이었을까? 성별은? 우그러진 흰색 마티즈를 생각한다. 그 사고 현장은 언제 발견될까? 장례식은 언제일까?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잠깐 머리를 스쳤다가 사라진다. 대체 어떻게? 싸늘한 냉기가 두꺼운 이불을 뚫고 올라온다. 안 되겠어. 보일러를 올리기로 한다.

 

옆에서 곤히 자는 아내를 뒤로하고 몸을 일으킨다. 이불에서 몸을 빼내자마자 거짓말처럼 떨리던 몸이 가라앉는다. 8월의 여름밤은 가만히 있어도 땀이 축축하게 배어 나올 정도로 더웠다. 덮고 있던 먼지 풀풀 날리는 겨울 이불을 바라본다. 허탈함에 웃음이 난다. 그제야 옆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자는 아내가 눈에 들어온다. 아마 내가 뜬금없이 춥다고 발버둥 치는 바람에 에어컨도 켜지 못했을 터다. 리모컨을 집어 에어컨을 켜고, 이불을 땅바닥에 내려놓고 다시 잠이 든다.

 

어쩌면, 새벽에 있었던 일은 다 꿈일지도 모른다.

 

꿈속에서 나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운전대를 잡고 있다. 이제는 다 커버린 아들이 제일 귀여웠던 때로 돌아가 조수석에 앉아 나를 보며 웃고 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어디선가 구수한 육개장 냄새가 난다. 아들은 어렸을 때부터 육개장을 참 좋아했다. 한번은 먼 사촌 할아버지 장례식장에서 왜 육개장이 아니라 미역국이 나오냐고 투정 부리다가 아내한테 대차게 꿀밤을 맞은 적도 있다. 그때가 언제쯤이었지. 딱 요만했을 때인데. 기억에 젖어 흐뭇하게 웃으며 운전하다 다시 귀여운 아들을 바라본다.

 

 

 

뻘건 육개장 같은 아들이 앉아 있다.

 

 

 

 

뻘건 육개장 같은 아들이 웃고, 정색하고, 깨지고, 소리치고, 으적으적, 콰앙….

 

 

 

 

“여보, 여보. 일어나 봐.”

 

온몸이 포르말린에 절인 과학실 개구리 모형처럼 노곤하다. 혼미한 정신을 부여잡으며 억지로 눈꺼풀을 들어 올린다. 잠에서 깨어나는 나를 반기는 건 걱정 가득한 아내의 얼굴과 지긋지긋한 육개장 냄새다.

 

“육개장 끓였어?”

 

아내는 내 질문을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눈치다.

 

“민철이가 어젯밤에 온다고 했는데, 연락이 안 돼. 여보 퇴근하는 시간에 맞춰서 온다고 했는데.”

 

빌어먹을 육개장 냄새가 코를 뚫고 들어와 뇌를 헤집는다. 머리가 깨질 듯 아프다.

 

“육개장 끓였냐고.”

 

별걸 다 물어본다는 듯, 아내가 흘깃 나를 쳐다본다.

 

“그럼, 민철이가 이걸 얼마나 좋아하는데.”

 

이제는 역겹게까지 느껴지는 냄새를 피해 마당으로 나간다. 주머니를 뒤적거리니 반쯤 구겨진 담뱃갑이 만져진다. 쭈글쭈글한 담배 한 개비를 물고 불을 붙인다. 니코틴이 좀 들어가니 머리가 맑아지는 것 같다. 카아아악, 퉤. 푸른 잡초 사이로 피섞인 가래침이 떨어진다. 집 안에서 휴대폰 벨소리가 아스라이 메아리친다.

 

"네, 네. 경찰이요? 네. 흰색 마티즈. 맞아요. 네. 8359...? 맞는 것 같아요. 며칠 전에 샀다고 했거든요. 네. 네?"

 

 

 

3. 사고(死告)

 

 

 

민철 씨의 장례식에 온 건 내가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일탈이자 충동이었다. 월요일 아침, 여느 때와 다름없이 회사로 출근해서 인트라넷에 로그인하고 습관처럼 사내메일을 뒤적거리다가 이틀 전 서민철 대리가 죽었다는 부고를 보았다. 나는 슬며시 내 옷차림을 내려다보았고, 장례식장을 확인했고, 퇴근 후 당연하다는 듯 이곳에 왔다. 넋이 나간 민철 씨 아버지와 고맙다는 듯 연간 손을 마주 잡는 어머니를 어색한 미소로 대하고, 국화꽃 한 송이를 들고 민철 씨의 영정사진 앞에 섰다. 조문객이 많이 왔다 가진 않았는지 몇 송이 없는 얄팍한 국화 더미 사이로 배시시 웃는 민철 씨의 얼굴이 보였다. 급하게 포토샵으로 편집한 듯 단정한 양복 위에 어설프게 올려져 있는 민철 씨의 머리를 쳐다보며 국화를 올려놓았다.

 

왜 왔을까. 아는 사람 하나 없이 와서 덩그러니 앉아 있다 문득 든 생각이었다. 친척인지, 동생인지 모를 젊은 여자가 호기심에 가득 찬 눈으로 와서 육개장과 편육, 과일 쪼가리가 담긴 쟁반을 두고 사라졌다. 무의식중에 플라스틱 숟가락을 들고 육개장을 한 숟갈 떠먹었다. 짰다.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

 

민철 씨와 대화를 한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같은 사무실에 있긴 했지만, 부서도 달랐고 업무 분야도 달라 마주칠 일 자체가 별로 없었다. 그저 아침에 출근할 때 마주치면 가볍게 목례 정도를 나누는 사이였다. 그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언제나 방실방실 웃고 다녔다는 것과, 침대 위에선 굉장히 부드러운 남자였다는 것.

 

가끔 회사 복도에서 마주칠 때면 배시시 웃던 민철 씨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민철 씨는 죽고 나서도 자신을 찾아오는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며 웃고 있었다. 역겨웠다. 졸을 대로 졸아서 짠 육개장이 역겨운 건지, 아니면… 욕지기가 올라오는 것 같았다.

 

도망치듯 황급히 자리를 떴다. 이제 이 소소한 일탈의 끝이 다가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빈약한 화환 몇 개가 부끄러운 듯 자리를 지키고 있는 입구를 나와 한숨을 쉬며 계단을 올라 두리번거리며 사방을 둘러본다. 멀지 않은 곳에 허름한 흡연실이 보인다. 또각, 또각. 하이힐 소리를 등 뒤로 질펀하게 흘리며 걷는다. 무더운 여름밤의 습기는 몸 이곳저곳을 붙잡고 늘어져 떨어질 생각조차 하질 않는다. 텁텁한 육개장의 뒷맛은 입 안에서 맴돈다.

 

핸드백을 뒤져 노란색 카멜 갑을 꺼낸다. 반쯤 벗겨진 흰색 매니큐어가 간신히 매달려 있는 손톱으로 비닐을 찢는다. 담뱃갑을 열고 은박지를 입으로 물어 뱉어낸다. 노란 색소로 칠해진 필터 부분을 살짝 물어 한 개비를 꺼낸다. 터보 라이터가 푸슛, 불을 뿜어낸다. 몸 깊숙이 들어오는 니코틴을 음미하며 혀로 굴린다. 코로 슬쩍 뱉어내고, 다시 한 모금 문다.

 

전 남자친구는 내가 담배를 피우는 것을 참 싫어했다. 여자가 왜 이렇게 독한 담배를 피냐고, 왜 이렇게 많이 피냐고 옆에 달라붙어 앵무새처럼 종알거렸다. 그러는 전 남자친구의 입에서는 알싸한 멘솔 냄새가 났다. 나는 그 역겨운 멘솔 냄새를 맡으며 말없이 담배를 꺼내곤 했다. 손에 잡힌 카멜 갑에 묻은 내 빨간 립이 반짝거린다. 입에서 맴돌던 싸구려 육개장 냄새는 자취를 감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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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하 원룸은 20대 여자가 서울에서 살기 위한 합의점의 마지노선이었다. 또각, 또각. 집 앞에 서서 나는 잠시 머뭇거렸다. 전 남자친구는 내 입에서 담배 냄새가 나는 것이 싫다고 말했다.

 

붉은 립이 피처럼 번진 카멜 갑을 꺼내 불을 붙인다.

 

나는 예전부터 손힘이 약해서 제일 싼 싸구려 라이타를 잘 못 켰다. 그런 날 보며 전 남자친구는 윤경이가 약하니까 자기가 끝까지 보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내가 구한 집에서, 매달 내가 월세를 내고 있는 집에서 그렇게 말했다. 나는 전 남자친구의 가녀린 팔목과 불뚝 나온 배를 바라보며 담배를 입에 물었다. 전 남자친구는 자기만 믿으라며 웃으며 나에게 다가와 입에서 담배를 빼내고 강제로 키스했다. 그렇게 다가오는 전 남자친구의 입에서는 알싸한 멘솔 냄새가 났다. 그 멘솔 담배는 내가 그에게 주는 용돈으로 산 것이었다.

 

또각, 또각. 하얀 담배 연기가 축축한 바람에 씻겨내려간다. 희미한 가로등 불빛 아래, 검은색 자켓 밑 내 하얀 와이셔츠가 빛을 먹어치우며 은은한 빛을 낸다. 민철 씨는 항상 이 와이셔츠처럼 맑게 웃었다. 이 가로등 아래에서, 그는 비참한 나의 삶을 구원해 줄 천사처럼 보였었다. 나는 가끔 그가 나의 남자친구라면 어떨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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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들어오자 이상한 냄새가 났다. 나는 더듬거리며 현관문 옆에 불을 켰다. 싸구려 형광등이 몇 번 깜빡거리더니 이내 불이 들어왔다. 나는 핸드백을 내려놓고 바닥에 앉았다. 축축하고 달큰한 썩은내 때문에 숨을 쉴 수가 없다. 나는 이 역겨운 냄새를 없애기 위해 내려놓은 핸드백에서 카멜 갑을 꺼낸다. 하얀 담배 연기가 방안에 퍼지자 역겨운 냄새가 조금은 가시는 것 같기도 하다. 나는 방 한켠에 누워있는 전 남자친구를 바라본다. 그의 입에서는 그렇게 맡기 싫었던 알싸한 멘솔 향 대신 썩어가는 육개장 냄새가 난다.

 

민철 씨는 죽어서도 웃고 있는데, 전 남자친구는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죽어있다. 나는 한 번 더 민철 씨가 나의 남자친구라면 어떨까 생각했다.

 

 

 

4. 사고(思考)

 

 

 

죽음은 생각보다 천천히 찾아온다.

 

시시각각 목을 조여오는 죽음을 벗어나려 노력하기도 했다. (낼 수 있는 한 최대한)큰 소리를 내고, 몸을 버둥거려도 보고, 가끔 집으로 들어오는 윤경이와 필사적으로 눈을 마주치려 노력했다. 하지만 변하는 건 없었다. 이제 나는 멀리서 다가오는 죽음을 재촉하며 그저 가만히 누워 있다.

 

윤경이는 착한 여자였다. 단 한번도 내 말에 '싫다'고 대답한 적이 없었으니까. 대학생 때 처음 만나, 7년 간 연애를 이어나가며 윤경이가 내 부탁을 거절한 적은 없었다. 전역하고 클럽에서 껄떡거리며 놀다가 윤경이 친구에게 걸렸을 때도 용서해달란 말에 알겠다 해주었고, 친구의 권유로 푸드트럭을 열었다가 쫄딱 망해서 전 재산을 탕진한 후에 갈 곳이 없어 같이 살아도 되냐고 물어봤을 때도 그녀의 대답은 '예스'였다. 담배를 피지 말라는 내 말을 무시하는 것만 제외하면, 윤경이는 모든 남자가 꿈꾸는 최고의 여자였다.

 

며칠 전까지는.

 

평소처럼 집에서 뒹굴거리며 휴대폰 게임을 하다, 퇴근한 윤경이가 차려주는 밥을 먹은 후에 설거지를 하는 윤경이를 뒤로 하고 TV를 보며 낄낄거리다 나도 모르게 잠이 든 것 같다. 그리고 잠에서 깨어나보니 난 죽어 있었다. 눈과 코를 제외한 온 몸이 청테이프로 둘둘 감겨져 있었다. 어찌나 꽁꽁 감아놨는지 팔다리는 조금도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니, 죽어 있었다는 표현은 좀 틀린 것 같다. 난 아직도 살아있고 이렇게 생각하고 있으니까.

 

난 죽을 준비가 끝나 있었다.

 

- 1일차.

 

처음엔 장난인 줄 알았다. 그동안 내가 지은 죄에 대해 반성의 시간을 가지라는 윤경이 나름의 반항인 줄 알았다. 윤경이가 퇴근하기 전까지 몇 시간을 어둠속에서 끙끙거리다가, 그녀가 돌아온 후에 버둥거리며 다가가려고 노력했다. 흐으, 흐으. 많이 뉘우쳤다고. 잘못했다고. 사죄의 의미를 담아 펑펑 울면서 꿈틀거렸다. 그녀는 말없이 쩝쩝거리며 밥을 먹더니, 침대 위로 올라가 귀마개를 끼고 잠이 들었다.

 

난 침대 밑에 곤충처럼 웅크리고 엎어져 오줌을 누었다. 청테이프 사이로 새어나간 오줌이 방을 누렇게 물들였다. 기분나쁜 축축함은 사정없이 내 옷을 파고들어 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난도질했다. 나는 버둥거리면서 울었다.

 

- 2일차.

 

어느새 까무룩 잠들었을까. 일어나니 윤경이는 없었다. 오줌 지린내가 진동하는 방바닥을 그대로 둔 채로. 이 빌어먹을 반지하 방은 북향이라 불을 켜지 않으면 언제나 어두웠다. 나는 윤경이가 퇴근해서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불을 켜고 나를 풀어주는 상상을 했다. 그리고 화해의 키스를 하고, 나는 가만히 윤경이의 옷을 벗긴다…

 

한 번 소변을 누고 나니 두 번째는 쉬웠다. 나는 수치심을 잊고 누워 끊임없이 배설했다. 대변을 볼 때는 잠깐 멈칫했지만, 그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어쩌면 나를 이렇게 만든 윤경이에 대한 복수심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는 푸대자루처럼 퍼질러져서 킬킬댔고, 윤경이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이 지독한 냄새를 맡으면 얼굴을 찌푸리겠지. 그게 나를 죽일 사람에 대한 작은 복수라고 생각하며.

 

태어나서 이렇게 배가 고파 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허기보다 더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무료함과 흡연 욕구였다.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방 한켠에 내가 피던 아이스블라스트 갑이 놓여 있었다. 나는 꿈틀거리며 담뱃갑 옆으로 가 냄새를 맡았다. 킁, 킁. 알싸한 멘솔 냄새가 나를 잠깐이나마 기분 좋게 했다. 그렇게 몇 시간이나 담뱃갑에 코를 처박고 있었을까.

 

바스락. 윤경이가 돌아왔나? 하고 고개를 돌린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밤색 바퀴벌레 한 마리가 꿈지럭거리며 나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공포심에 몸부림친다. 괴성을 지르며 그 녀석을 위협한다. 위협이 먹힌 것일까? 바퀴벌레는 잠시 머뭇거리며 내 주변을 돌더니 이내 침대 밑으로 사라진다. 식은땀이 줄줄 흐른다. 한시라도 긴장을 놓아선 안 된다. 저 징그러운 상대방에게 대적할 무기가 지금의 나에겐 없다.

 

또각, 또각. 설핏 잠이 들던 나는 귀를 찌르듯 들어오는 하이힐 소리에 눈을 뜬다. 몇 시간이고 기다렸던 시간이다. 똥과 오줌으로 범벅된 바닥을 보며 인상을 찌푸려라. 구토라도 하면 더 좋을 것 같은데. 따라락. 문이 열린다. 갑자기 미치도록 시린 빛이 내 눈을 덮쳐 눈을 뜰 수가 없다. 몇 번 눈꺼풀을 깜박이고, 진정되자 윤경이를 노려본다. 그녀도 나를 바라본다. 하지만, 아무런 감정이 담겨있지 않다. 몇 시간 전 나와 사투를 벌인 바퀴벌레를 바라보는 것과 하등 다를 바가 없는 눈빛이다.

 

선반에서 육개장 컵라면을 꺼낸 윤경이는 물을 붓고 담배를 피운다. 구수한 라면 냄새와 비릿한 담배 냄새가 지독한 구린내를 뚫고 내 코로 전달되어 온다. 입에 침이 그득하게 고인다. 이틀 동안 아무것도 마시지 못했는데, 어디서 이렇게 많은 침이 나오는지 내가 다 놀라울 지경이다. 담배를 보고, 컵라면을 바라본다. 읍, 읍! 윤경이가 흘끔, 나를 바라본다. 윤경이는 담배꽁초를 버리고, 라면을 먹고, 다시 담배를 피우고 잠이 들었다.

 

어두워진 방 안에서 서러움에 눈물이 북받쳐온다.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은데, 말 할 수가 없다. 아마도 윤경이는 나에 대해 일말의 동정심이 있는 것이 틀림없다. 목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약해질 테니 일부러 이러는 것이겠지. 내일 아침에 최대한 처연하게 누워 있자.

 

그녀가 나에게 자비를 베풀도록….

 

- 3일차.

 

내가 일어나기도 전에 출근한 그녀는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 4일차, 새벽.

 

새벽에 들어온 그녀의 몸에서는 짙은 술냄새가 났다. 어느 남자와 마신 거지? 흐트러진 옷매무새와 목의 키스마크가 또렷하게 보였다. 질투심이 용암처럼 타올라 몸을 불사른다. 그녀는 흘깃 나를 바라보고 화장실로 향한다. 이틀만에 내리쬐는 밝은 빛 아래서 나는 배신감에 몸부림친다. 어떻게 다른 남자랑 외박을 한 것을 저렇게 티내며 들어올 수 있지?

 

그녀는 화장실에서 나신으로 나왔다. 내가 바닥에 지린 수많은 분비물들을 밟지 않기 위해 수건을 바닥에 깔고는 유일하게 깨끗한 장소인 침대로 올라와서 머리를 말린다. 나는 제정신이 아닌 탁한 눈빛으로 그런 그녀를 바라본다. 오늘은 목요일이니 이제 바로 출근을 하겠지.

 

그녀를 바라보는 이 잠깐의 순간이 내 일상의 유일한 활력소가 되었다. 매일 당연하게 마주치는 것이 아닌, 간절하게 바라고 원하는 대상이 되어 버렸다. 만약 예전의 관계로 돌아간다면 지금까지 저질렀던 일들을 다 용서하고 공주님처럼 아껴 줄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외박을 한 것은 추궁을 해야겠지만.

 

하지만 그럴 일은 없을 것 같다. 난 죽어가고 있다. 말하고 싶지만, 그러지 못한다.

 

그녀가 떠나고 난 이 집에 외로이 혼자 남는다. 바퀴벌레가 내 배설물 사이로 다가오지만, 뿌리칠 기력도 없다.

 

가만히 누워 생각한다. 그녀가 전날 밤에 만났을 남자를 생각한다. 그녀가 먹었을 안주와 술을 생각한다. 휴대폰 게임에 대해 생각한다. 나흘째 출석 체크를 하지 못했으니 아이템이 산처럼 쌓여 있을 터이다. 그것을 아까워하는 내 자신이 한심해서 웃는다. 금방 죽을 텐데, 대관절 그런 사소한 것들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한심한 나에 대해 생각한다.

 

이제는 나올 오줌도 없다. 할 생각도 없다. 나는 그저 조용히 누워 금방 다가올 죽음에 대해 생각할 뿐이었다….

 

- 5일차.

 

꿈을 꾼다.

 

꿈속에서 난 바퀴벌레다. 뽈뽈거리며 청테이프로 묶인 시체 사이를 건너 알맞은 고기 조각을 찾아낸다. 뷔페와 다를 바 없다. 이 사실을 동료 바퀴벌레들에게 알리기로 결심한다. 먹을 것은 넘치도록 있고, 온 가족이 다 와서 먹어도 부족함이 없을 터다.

 

꿈에서 깬다. 아니. 꿈에서 깬 것인가? 나는 꿈 속에서 더 자유롭다. 바싹 갈라진 입이 수분을 갈구한다.

 

이제는 내 몸에 익숙함마저 느껴진다. 움직이는 법이 뭐였더라? 나는 눈을 깜박이는 법 밖에 모르는 사람처럼 눈을 깜박였고, 숨쉬는 법 밖에 모르는 사람처럼 숨을 쉬었다. 그녀와의 첫 만남을 생각한다. 처음 만났을 때의 그녀는 햇살처럼 눈부셨고, 보는 것만으로도 심장을 뛰게 했다. 자조섞인 웃음을 내뱉는다. 지금의 그녀가 들어와 불을 켜면 태양처럼 눈부시고, 지금이라도 풀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은 말라버린 혈관에 다시 피가 통하는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심장을 뛰게 한다.

 

7년 만에, 그녀의 가치에 대해 다시 깨달았다.

 

서광이 내리쬐는 듯하다. 윤경이는 이걸 노렸던 거다. 내가 모든 것을 깨닫고 처음 그 모습으로 다시금 자신에게 돌아올 때를!

 

때마침 또각, 또각. 하이힐 소리가 들린다. 문을 열고 들어온 윤경이의 손엔 하얀색 봉지가 들려 있었다.

 

치킨이다, 치킨! 내가 제일 좋아하는 브랜드의 치킨이다. 윤경이는 항상 두 세 조각을 먹고 배부르다고 자리를 떴다. 그런 윤경이가 자기 혼자 먹으려고 치킨을 사왔을 리 없다. 쩍쩍 갈라진 입에 콜라가 들어가는 상상을 한다. 부드러운 닭고기를 찢어 입 안으로 넣는 상상을 한다. 아무렴, 그럼 그렇지. 윤경이가 나를 배신할 리가 없지.

 

그녀는 꾸역꾸역 치킨 한 마리를 목구멍 안으로 밀어넣더니, 1.5L 짜리 콜라 한 병을 다 마신다.

 

- 6일차.

 

토요일 아침. 그녀는 침대에 앉아 가만히 나를 바라본다. 그녀를 바라보며 마지막 숨을 내뱉는다.

 

나는 이제, 인간에서 한낱 미물의 한 끼 식사가 되기 위한 위대한 여정의 앞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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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글을 쓰는 것은 처음입니다.

 

이전에 썼던 단편 소설을 살짝 수정하여 올려봅니다. 감사합니다.

 

제목 설명

 

1. (事故) : 뜻밖에 일어난 불행한 사건

 

2. (四苦) : 인생의 네 가지 고통 - 생로병사

 

3. (死告) : 죽음을 고하다

 

4. (思考) : 생각하고 궁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