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숯덩이 사이에서, 오씨(吳氏)는 작열하는 큰 덩어리를 집어들었다. 열기로 인해 새하얗게 백열하는 그 금속덩어리는 조명 없이도 사내의 얼굴을 환하게 비추었다. 그는 집게로 이리저리 돌려본 다음, 모루로 올려 가차없이 필요한 부분을 망치로 두들긴다.

 

 담금질이 시작되었다.

 

 고요한 공방에는 쇠를 때리는 소리만이 울려퍼지고, 사내는 표정 없이 백열하는 덩어리의 메진 부분을 잡아간다. 그 모양은 마치 뭉툭한 손잡이를 가진 망치를 닮았다. 쇳덩어리에 어느 정도 망치질이 가해진 뒤, 그대로 물 속으로 던져진다. 엄청난 증기와 함께 물이 끓어오른다.

 두이칠백오십(斗佴七白五十). 희대의 명장 닉혼(匿魂) 최고의 작품 중 하나라 불리는 사진기(死眞機)다. 동시에, 사내가 벼리고 있는 저 금속덩어리의 이름이다. 최고의 금속이지만, 다루기가 힘든 镁(마그네슘 미)의 함량이 높은 것으로도 유명하며, 15만번을 휘둘러도 깨지지 않는 경도가 특징이다.

 다시 사내는 사진기를 불 위로 가져왔다. 숯가루가 확 피어오른다. 뜨거운 열기를 머금은 숯가루가, 빛을 품고 비산한다. 그런데, 그 중간에 비치는 사내의 얼굴은 심하게 일그러져 있다. 마치 이 숯더미보다 먼저 주변을 모두 태워버릴 마냥, 그의 얼굴에는 증오의 열기가 가득하다.

 마지막 담금질이 끝났다. 검은 색의 금속 몸체가 물을 묻은 채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 오씨는 물기를 가볍게 털어내고, 린주(亃周) 부분을 들어 그의 손에 맞는지를 확인한다. 사진기는 모든 부분하나 하나가 중요한 무구(武具), 어떤 부분 하나 소홀히 할 수 없었다.

 

 "호오, 두이칠백오십이오. 형님과 같은 사진사에게는 과분한 사진기요."

 

 느닷없는 목소리에도, 오씨는 놀란 기색도 없이 뒤를 돌아보았다. 그 곳에는 한 사내가 서 있었다. 공방의 입구에서, 초승달의 새파란 달빛을 받으며.

 

 "김가놈..."

 

 좀 전의 오씨의 얼굴표정에서도 충분히 용광로를 녹일만큼의 증오가 서려있었지만, 지금 오씨의 눈에서는 숯과 같은 불티가 튀어오르고 있다. 분노로 사진기를 쥔 손이 심하게 떨린다. 오씨는 씹어 뱉듯이 말을 이어갔다.

 

 "그래, 나같은 거렁뱅이한테는 분수에 맞지 않는 물건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오씨는 손에 쥔 두이칠백을 높이 치켜들며 김가라는 사내에게로 쇄도해 들어갔다. 그가 노리는 것은 김가의 머리통이었다.

 

 "너같은 놈을 죽이기 위해서는 더할 나위 없이 안성맞춤인 물건이다!!!"

 

 오씨의 증오서린 노호성에도, 김가는 싸늘한 냉소만을 지으며 오씨를 쳐다볼 뿐이었다.

 거리가 좁혀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몇 발자국을 남기고 오씨는 높게 도약했다. 그의 정수리를 향해서 두이칠백의 검은 동체가 내려쳐지는 그 순간,

 김가는 전광석화(電光石火)의 동작으로 허리춤에서 무언가를 꺼내 머리위로 치켜 들었다.

 까앙! 금속과 금속이 맞부딪히는 소리가 밤하늘에 울려 퍼졌다. 불꽃이 튈 정도로 강한 충격에, 오씨는 내리친 힘 그대로 뒤로 날아갔고, 김가 역시 뒤로 수 발자국 밀려나갔다.

 

 "네놈이 어떻게 그걸..."

 

 오씨는 이빨을 갈며 김가의 오른손을 쳐다보았다. 김가의 손에 들린 것은, 오씨가 휘두른 것과 마찬가지로 사진기였다. 하지만, 그 모양새는 현재까지 저잣거리에서 익히 보아왔던 그것들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더 크고, 달빛 아래서도 전혀 빛나지 않는 저 광택의 동체는...

 

 "알아보는 겁니까, 형님? 하긴, 형님도 이쪽 업계에 발을 담근 분이니 잠깐 보는 것만으로도 바로 아실 수 있을거요."

 

 김씨는 그렇게 말하고서는 오른손에 든 사진기를 높게 치켜들었다.

 

 "그래, 이것이 두이팔백십(斗佴八百十)이오."

 

 사진기 명장 닉혼이 두이칠백보다 먼저 낸 명기(名器). 镁의 함량을 극한으로 끌어올려 최고의 경도를 자랑하는 것이 장점이며, 조금 더 선명한 모양새로 유명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오씨가 잡고 있는 두이칠백오십보다 높은 가격대로, 일반인들이 잘 볼수 없는 물건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오씨에게는 김가가 무엇을 들고 있는지, 저것이 자신의 사진기보다 나은지 못한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증오로, 죽인다. 단지 그것 하나뿐.

 오씨는 다시 김가에게 뛰어 들어가며 두이칠백오십을 휘둘렀다. 한 대 한 대에 모두 죽이겠다는 의지를 실어, 사진기의 끝에 닿는 순간을 노리고 있다. 하지만 김가는 비웃으며 그 모든 공격을 피할 뿐이었다.

 

 "하하! 느리기 짝이 없소. 그 정도의 움직임이기에 형님은 그저 사진가가 아닌, 사진사일 수밖에 없는거요!"

 

 그 말을 듣자, 오씨의 격정이 더욱 심해졌다. 오씨는 김가에게 노호성을 내지르며 두이칠백오십을 찔러 들어갔다.

 

 "더 이상 나를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했을텐데!!"

 

 공중에서 검은 사진기의 동체가 몇 번 더 어울리며, 밤하늘에 불꽃을 틔워 내었다. 일진일퇴의 공방이 계속되며, 목숨을 건 검격이 서로의 코끝을 스쳤다. 마지막 합이 부딪히고, 오씨와 김가는 약 다섯 발 정도의 거리를 두고 대치하고 있다.

 오씨는 사실 김가가 두이팔백십을 꺼낸 순간부터 자신에게 장기전은 승산이 없음을 알고 있었다. 앞서 말한대로 두이팔백십은 镁의 함량이 높고 20만번까지도 휘두를 수 있는 경도를 자랑한다. 오씨가 갖고 있는 두이칠백오십보다 강도에 있어서는 훨씬 우월한 것이다. 게다가 사진기를 다루는 실력 역시, 오씨보다 김가가 우월하였다. 빠르게 끝내지 않으면, 자신이 당한다. 오씨는 분노하는 도중에도 식은땀을 흘렸다.

 

 '결국 쓸 수 밖에 없는가...'

 

 오씨는 린주부분을 잡았던 모양새를 고쳐, 동체 부분을 손에 쥐었다. 그리고서는 린주를 김가에게 겨누었다. 사진기의 극의, 린주로 영혼을 뺏어간다는 사타(邪打)질의 자세였다. 그 모습을 보자, 여유가 넘치던 김가의 얼굴에도 웃음기가 가셨다. 김가 역시, 사타질의 자세를 잡고서는 나지막히 읊조렸다.

 

 "우리 형님이 결국 동생의 목숨을 뺏으려 작정을 했구려..."

 

 그들이 움직인 것은 동시였으며, 순식간이었다.

 동체 위에 있는 단추를 누르자, 지금까지 닫힌 부분이라 생각되었던 린주 밑부분에서 무언가 열리며 순식간에 그 앞에 있던 일직선의 공간에 서있는 것들에게 빨려 들어갔다. 겉보기에는 아무것도 변한 것은 없어 보인다. 하지만, 다르다. 김가 뒤에서 푸르게 서 있던 소나무가, 삽시간에 고목나무가 된 것이 영혼을 빨아들이는 사진기의 위력을 보여주고 있다.

 한 발 한 발의 위력은 사진가인 그들이 더욱 잘 알고 있다. 그야말로 일격필살. 서로간의 사타질을 피해서, 주변의 숲을 초토화시키는 그들의 싸움은 마치 지옥도를 연상시켰다. 모든 산천초목이 영혼을 빼앗겨 말라죽고, 오로지 그들 둘만이 황무지가 된 평야에 서 있었다.

 빠르게 속전속결로 끝내기 위해서 사타질을 선택했지만, 나이차이로 인한 체력의 방전은 어쩔 수 없었다. 땀을 비오듯 흘리며 사진기를 쥐고 있는 오씨의 사타질이 느려진 것을 순간적으로 파악한 김가는, 번개같이 오씨의 빈틈을 노려서 사타질을 날렸다.

 

 "크악!"

 

 사진가의 감으로 사타질을 피하기는 하였으나, 미처 피하지 못한 오씨의 오른팔에서 영혼이 뽑혀 나갔다. 순식간에 정기를 빼앗긴 오씨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말라붙은 나뭇가지마냥 변해버린 팔로는 더 이상 사진기를 쥘 수 없었고, 두이칠백오십은 땅바닥에 나뒹굴었다.

 모든 단추는 오른쪽에 존재한다. 사타질을 할 수 없게 된 지금, 이미 승패는 결정난 것이나 다름 없었다. 김가의 입에는 처음과 같이 여유있는 미소가 돌아왔다. 최후의 승자로서의 확인을 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가 갖고 있는 두이칠백오십을 회수하기 위해 김가는 등을 보이고 바닥에  무릎 꿇은 오씨에게 다가왔다. 

 

 "그러니까 말했잖소, 형님. 송충이는 솔잎이나 드시라고. 형님에게 이런 사진기는 과분하단 말이오."

 

 오씨가 노린 것은 바로 이 틈이었다. 오른팔이 날아가버린 이 상황을 이용해, 살을 주고 뼈를 취하는 전략을 세운 것이다. 김가가 절대 피할 수 없는 거리까지 다가오자, 오씨는 두이칠백오십의 린주를 김가에게 향하게 조정하고서는 잽싸게 카메라의 뒤로 몸을 날렸다. 몸을 날린 그의 손에는 리리주(利刕朱)가 들려 있었다.

 승부는 거기에서 결착이 났다. 리리주로 연결된 사타질에 린주는 불을 뿜었고, 김가는 유언 한마디 남길 새도 없이 영혼을 빼앗겨 버리고 말았다. 삽시간에 미라같이 말라버린 몸이 대지에 스러졌고, 땅바닥에 부딛히자마자 가루가 되어 날아가 버렸다.
 오씨는 잠시 바람에 날아가는 김가의 유해를 쳐다보다, 힘겹게 왼손으로 주머니에서 담배와 성냥을 찾았다. 한 손으로 어떻게든 불을 붙인 오씨는, 흘러가는 바람에 성냥을 던져버렸다. 그가 던진 성냥불로 인해 고목의 숲에 불이 붙었고, 말라버린 나무에 붙은 불은 삽시간에 커져 갔다.   한밤중에 대낮보다 밝은, 굉음과 함께하는 지옥불의 향연이 펼쳐졌다.

 오씨의 등 뒤에서 이런 아비규환이 일어나는 와중에도, 그는 자리에 앉아 자신의 담배를 태울 뿐이었다. 더 이상 태울 연초가 남아있지 않음을 확인한 후, 오씨는 자신의 두이칠백오십을 손에 쥐었다. 넘실대는 불은 아무도 없는 공방을 덮쳤고, 거기에 뭐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굉장한 폭발이 일어났다. 그 폭발을 배경으로, 오씨는 다시 사진가의 길을 걷기 위해 등을 돌려 그 장소를 떠났다. 

 

 

 

PS. 이 글을 실제로 사진일을 하는 저의 지인 오모씨와 김모군에게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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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예전에 디씨 카메라갤러리에도 올린 적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