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어느 여행자가 쓴 글이라는 설정이며 개인 입장과는 무관하고, @사림 씨의 되돌아보며 시리즈에서 영향을 받아 썼습니다.

 

이진석이라는 위인을 다룬 1전시실을 나와, 2전시실로 들어갔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이진철이라는 인물과 이진서라는 인물의 사진이 대문짝만하게 반겨주고 있었다.

이진철은 이진석의 동생이었다고 한다. 

이진철은 이진석과는 다르게, 젊은 시절의 초상화는 거의 없었으며,

중년 시절의 모습만이 그림이나 사진으로 존재했을 뿐이었다.

왜 그런가 하니, 그는 청년 시절에는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상업에 종사하다가,

중년의 나이가 되어서야 민주주의 운동에 뛰어들었다고 쓰여져 있었다.

그는 만주 공화국 건국 준비 위원회가 결성되자 고향으로 내려갔지만, 

전쟁으로 인해 우리 나라의 전신이었던 대조선제국으로 향했다고 한다.

난민 위원장을 맡았으나, 한반도 무정부 사태로 슬라브로 그 역시 망명하였으나,

형 이진석의 자살과 추축국들의 협박으로 인해 큰 충격을 받고 노화가 빠르게 찾아왔다고 한다.

결국 그는 자택에서 90세에 숨졌다고 전해진다.

전시관에는 그가 민주화 운동에 사용했던 현수막, 그가 애지중지하던 괘종시계 등의 여러 유품들이 남아있었다.

그의 아들이었던 이진서 역시 이 전시실에서 소개되었다.

이진서는 큰아버지 이진석을 닮아 문학에 관심이 많았으며,

만주 전쟁이 일어나자 대조선제국으로 향한다.

대조선제국에서 그는 딸 이진혜를 낳았다고 써 있었다.

이진혜? 

꽤나 들어본 이름이었다.

이진혁의 어머니라고 들었는데, 그 사람도 만주 이씨였던 걸까.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본래대로라면 그 시대상 만주 이씨의 성씨는 여기서 끊겼을 터인데,

이진혁 대통령은 어째서 이씨였던 걸까.

그래도 둘러볼 데가 많았기에 일단 의문은 잠시 뒤로 미뤄 둔 채, 계속 전시관을 관람하기로 했다.

이진서는 한반도 무정부 사태로 슬라브로 아버지랑 같이 망명하였다가 바타비아로 향하지만,

바타비아 역시 폭동으로 무정부 상태가 되어 고려연방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만주자치주지사가 된 이진서는 고려연방의 정치에 뛰어들어,

평화당을 창당하였고, 지금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다.

그러나, 입헌공화당 조병옥 일파의 장기집권을 위한 부정선거가 이루어지자,

그는 격렬히 항의하며, 부정선거를 타도하기 위한 항쟁에 앞섰지만,

조병옥에 의해 여적죄라는 누명을 뒤집어 쓴 채 63세의 나이로 교수형에 처해진다.

그가 죽은 지 3년이 되어서야 나온 대법원 판결에서 그는 무죄를 선고받는다.

역사 교과서에서도 이 내용은 나와 있었다.

참으로 파란만장한 생을 이 사람들은 살아왔구나.

그들의 역사는 곧 대한연방과도 직결되어 있었다.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평화당과, 현 대통령 이진애 역시 만주 이씨 가문이니.

그의 책 반전론은 노벨문학상을 탄 책이며, 나 역시 집에 소장하고 있는 책이기도 한다.

그 책 역시 초판본들이 전시되어 있었으며, 몇 권은 직접 읽어 볼 수 있게 해 놓았다.

'결국 모든 근거를 따져보아도 전쟁을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되는 재앙이다. 많은 제국주의 국가들의 원수들은 개인적인 분노나 영토 확장의 야욕으로 전쟁을 선포하였다.'

이 말이 지금의 난세에도 와닿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