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왔습니다. 달에서."

 

 만일 눈 앞에 있는 사람이 아폴로 11호의 마지막 생존자도 아닌데 이런 말을 지껄인다면 당신은 어떻게 받아들이겠는가? 
 그것도 21세기의 대한민국에서? 
 십중팔구는 아마 신종 '도를 믿으십니까' 계열로 생각할 것이다. 
 나 역시 방금 전 까지는 그러했다. 
 
 그 말을 '두 번째' 한 소녀가 하늘 위에 '떠' 있는 것을 보기 전 까지는. 


 
 한강을 배경으로 바람에 나부끼는 하얀 머리카락과 회색 원피스는 마치 방금 빌딩 숲 사이로 넘어간 보름달 대신 밤하늘에 떠 있는 듯 했다. 붉은 눈의 소녀는 무심한 듯 나를 쳐다보고 있었고, 나는 일어날 생각도 하지 못하고 강둑 위에 주저앉아 멍하니 그녀를 응시하고 있었다.

 


 이야기는 하루 전으로 돌아간다 ㅡ 

 

 


 노량진의 밤은 언제나 조금 혼란스럽다. 

 고시생, 재수생들의 살짝 한숨 섞인 걸음 소리, 상대적으로 저렴한 이 곳의 물가를 이용하기 위해 온 젊은 남녀들의 경쾌한 발놀림, 그리고 역전에서부터 이들을 잡아끄는 노점상의 주문받는 외침, 이미 취한 놈들의 고성방가까지 모든 것이 이질적으로 맞물려 돌아가고 있다. 그중에서 나로 따질 것 같으면, 첫 번째 부류에 속한다. 깊은 한숨과 함께 둥지로 돌아가는 고학생의 부류. 
 
 삼거리를 돌아 나가며 핸드폰으로 은행 어플을 켰다. 돈이 없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그냥 버릇처럼 확인하게 되고, 확인하고서 또 남은 기간동안 어떤 지출 계획을 세웠는 지를 되짚어 본다. 공부할 시간을 내기 위해서 짧은 알바를 구하다 보니 저축할 돈 따위는 꿈에도 꾸지 못하고, 칼 같이 생활비만 남기게 되면서 부터 생긴 버릇이다. 역시나, 월급날은 아직도 한참 남았건만, 통장 잔고는 절벽 끝에 대롱대롱 매달린 마냥 6자리를 간신히 유지하고 있었다. 집에 쌀이 남아 있었는 지를 생각해 본다. 아무리 생각해도 일단 오늘 저녁도 점심으로 갖고 왔다가 먹지 못한, 집에서 보내준 옥수수 삶은 거나 먹어야겠구나. 
 
 다시 또 나오는 깊은 한숨. 
 
 어차피 들어가서 공부할 시간도 촉박한데, 괜히 앉아서 먹는 시간을 따로 내면 정신이 퍼져버릴 것 같았다. 가는 길에 먹어 치워야지 하면서 가방에서 옥수수를 꺼내며 골목을 돌던 그 때,
 
 전봇대 가로등 아래 쭈그리고 앉아있는 사람의 형상이 보였다. 
 
 뭐지? 아직 주정뱅이들이 나오기에는 이른 시간인데. 
 
 어차피 집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앉아있는 지라, 계속해서 쳐다보며 발걸음을 옮겼다. 
 
 볼수록 행색이 가관이다. 
 
 쭈그려 앉아 무릎을 세우고 그 안에 머리를 파묻은 저 형상은 일단은 여자로 추정된다. 일단은. 확신이 아니라 왜 추정인고 하니, 머리 길이가 너무 길어서 머리 앞으로 커튼처럼 바닥에 끌려, 몸매나 옷태가 전혀 보이지 않아 성별이 구분이 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장 시선을 잡아 끄는 사실은, 그 치렁치렁한 머리가 완전한 백발이라는 것이었다. 
 
 백발? 백발이라... 왜 굉장히 익숙한 느낌이 드는 거지? 일단 지인들 중에서 머리색깔이 이렇게까지 하얀 사람도 없고,  주변에 덕질 하는 놈들은 많지만, 코스플레이어는 없는데.
 
 머릿속에 있는 위화감이 무엇인지 골똘히 생각하며 그 옆을 지나려는 찰나, 
 인기척을 느낀 그 하얀색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나이는 고등학생 쯤일까? 생각보다 아름다운 얼굴에 혹 할 겨를도 없이, 내 눈은 한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고개를 든 그곳에는 부들부들 떨리는 머리카락만큼이나 새하얀 뺨 위로, 빨간색 두 눈이 있었다.
 
 알비노 - 멜라닌 합성 결핍으로 인해서 눈, 피부, 털에 색소 부족을 나타내는 현상.
 대번에 한 단어가 떠오른다. 이게 동물의 왕국같은 곳에서만 보던 바로 그 증상이구나. 라고 생각하며 나도 모르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소녀는 멍하니 내 얼굴을 쳐다보다 내 오른손에 들고 있던 옥수수로 시선을 옮겨갔다. 그리고서는 가만히, 여전히 떨리는 손으로 그 옥수수를 가리켰다.


 
 "배고프니?"


 
 그래, 지금까지 모진 고생을 했구나. 잠깐 눈물 찔끔. 소녀가 뭐라고 대답할 겨를도 없이, 내 머릿속에는 이미 온갖 고초를 겪은 소녀의 신파극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돌연변이로 태어나 이상한 종교를 가진 친부모에게서 버려지고, 저주받은 아이로 어느 곳에서도 받아 들여지지 않은 채 지금까지 이렇게 구걸을 하며 목숨을 연명하고 있는...
  ...관두자. 요새 책을 너무 많이 읽었나 보다. 소녀는 허락 따위를 구하기 보다는 내 손에서 옥수수를 낚아채 최대한 효율적으로 자신의 허기를 달래고 있었다 - 주위 신경 안 쓰고 최대한 게걸스럽게 먹고 있었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 먹는 방식은 일반적인 사람들의 방식과는 많이 달랐다. 그녀는 옥수수를 아이스크림 먹듯이, 속대까지 씹어먹고 있었던 것이다.


 
 "야! 그건 먹는게 아니..."


 
 말리려던 나의 손이 멈칫 할 정도로, 이 먹는 품새는 완벽했다. 요새 옥수수를 먹는 트렌드가 저런 방식인가 싶을 정도로 속대를 잘 씹어먹고 있다. 오히려 속대와 알을 한꺼번에 씹어먹는 방식 때문에, 알이 사방팔방으로 튀어나가고 있었다. 이게 이빨질 단 몇 번만에 먹겠다는 대찬 각오 없이는 참으로 힘든 일이지만.
 
 소녀의 식사는 대번에 끝이 났다. 나는 조금 벙찐 눈으로 하얀 소녀의 식사를 끝까지 관람하게 되었다. 먹는 걸 적선했기에 무언가 대가를 내놔라 같은 것은 아니다. 처음 보는 호쾌한 식사법과 너무나도 대한민국과는 이질적인 외모가 그녀에게서는 대체 어떤 말이 나올까 하는 기대감을 부풀려 놓아서 그런 걸지도.
 비닐봉지는 씹어도 맛이 안 난다는 사실을 재차 확인한 소녀는, 잠시 입가에 묻은 옥수수 삶은 물을 손등으로 슥 훔쳐내고서는, 일어났다. 쭈그려 있을 때는 몰랐는데, 생각보다 키가 컸다. 나와 비슷할 정도면 - 170? 일어나서 엉덩이를 툭툭 털어낸 소녀는 갑자기 자신의 오른쪽 턱 아래부터 귀 뒤까지를 두 세 바퀴정도 계속 검지손가락으로 짚어 나갔다. 그리고서는 나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감사합니다."


 "......잠깐. 미안한데, 다시 한 번만 말해줄래?"


 "감사합니다. 라고 나는 말했습니다."


 "...뭐?"


 
 방금 전 속대까지 씹어먹을 때의 그 괴이함, 그리고 입고 있는 회색 원피스를 제외한 피부 색깔마저도 하얀 색으로 이루어져 있기에 생기는 세상과의 이질감. 그 모든 것을 한 번에 박살낼 만한 충격이 이 '감사합니다' 한 번에 나에게 몰려왔다. 분명히, 그녀의 입은 다른 단어를 발음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서 1초 후, 마치 듣기평가 때와 같은 감정 없는 '감사합니다' 가 내 귀 주변을 맴돌고 있는 것이다! 
 
 의심은 확신이 되고, 확신은 공포가 되고, 공포는 탈력이 된다.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려 옆에 있는 벽을 짚고 섰다. 소녀는 걱정어린 말투로 나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당신은 괜찮습니까?"

 

그리고 이 목소리! 이 목소리도 분명히 낯이 익어! 아까 처음 흰 머리를 봤을 때와 같은 그 느낌이... 설마, 아까 학원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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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곧 달 사람은 땅에 올 것이다. 아버지는 나를 찾아 올 것입니다.'

 

 '알게 뭐야!'

 

 '필요합니다. 먹을 것. 지구에는 먹을 것이 풍부하다고 들었습니다. 네가 조금만 주면 은혜가 널 돌려줄거야.'

 

 '근데 아까부터 뭐라고 하는거야?'

 

 '제가 달에서 왔다고 믿을 수 없습니까?'

 

 '김형, 그 달 사람인지 뭔지 한번 와 보라고 해봐. 나이도 어려보이는게 약부터 파네 그래.'

 

 '나는이 또는 그 사람에게 갈 필요가 있지 만이 없습니다. 무슨 재고?'

 

 '뭔 개소리야? 꺼져! 장사도 안되는데 재수없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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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원에서 수업을 듣던 도중에 밖이 소란스러워서, 잠깐 밖을 내다 보았을 때 언뜻 보였던 하얀 물체가 이 녀석인가 라는 생각이 대번에 머릿속을 스쳤다. 완전히 동네 바보 내쫓듯이 길거리 상인들이 하얀 면사포를 뒤집어 쓴 듯한 여자를 쥐잡듯 내모는 그 모습은, 여러가지 정황에 맞물려 참으로 괴이했다. 동일 인물이 아니라면 이런 말투, 이런 목소리, 이런 외관이 일치하는 사람을 또 어디서 찾겠는가. 
 누가 봐도 동일인물이기는 하다. 아무리 그래도 처음 보는 사람을 막 정신병자 취급하고 그러면 안된다. 사람은 이성적으로 살아야 하는 거다. 암 그렇고 말고. 
 
 일단 침착하자. 일단 교양을 갖춘 현대인답게 지성적인 대화를 통해서...


 
 "나는 사람들의 작은 이해를 가지고 지구상에서 몇 사람이 있다는 것을 생각했지만, 내가 잘못했다 생각합니다. 도와주셔서 감사해요."
  
 
 ...지성을 운운할 계제가 아니다.


 
 "저기, 미안한데. 일단 번역기 돌리는 듯한 그 말투는 어떻게 안되는 거야? 한국말을 하는건지 러시아말을 하는 건지 도저히 알아들을 수가 없는데 말야."


 
"나는 실제로 번역기를 사용합니다. 나는 여기가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언어입니다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지구에 가장 번역자에 의해 사용을 이식. 그래서 약간 다를 수 있습니다."


 
 약간이 아니야.


 
 "그러니까... 여기, 대한민국 말이 어려워서, 지금 번역기가 돌아가는 말이 틀릴 수 있다?"


 
 고개를 끄덕이는 소녀. 


 
 "잠깐만."

 

 그렇게 말을 잠시 끊은 소녀는 자신의 턱 아래쪽을 다시 몇 번 매만졌다. 


 
 "!&^$%#@#$!!@#$!%#^$@"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을 때, 놀랍게도, 기계같던 목소리가 사라지고, 생각보다 가늘고 얇은,  그리고 예쁜 목소리가 내 귀로 들어왔다. 비록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그녀는 다시 턱 밑을 몇 번 매만지고서는, 다시금 시간차를 두고 말했다.


 
 "당신은 알아?"


 
 머리가 아파온다. 정리를 좀 해 보자. 최소한 한국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다. 번역기로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지금 이 앞에 있는 소녀는,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내가 알고 있는 한에서는 지구에서 발표되지 않은 기술로 번역을 하고 있다. 입 안에 있는 동시통역기라니, 생각도 해 본적 없어.  그리고, 만일 아까 학원 밖에 있던 정신 나간 여자와 동일인물이라면, 이 아이도 분명히 달에서 왔다고 이야기를 할 것이다.
 
  아, 뭐 그런데 어쩌란 말이냐. 지금 이렇게 정리해봤자 달라지는 것은 하나도 없는데.  이미 내 머릿속은 포화상태였다. 일말의 시간이 지나고, 고심 끝에 내린 결론은 지극히 단순했다. 내가 아까 보았던 하얀 물체가 이 소녀인 것을 확인해 보는 것. 나는 그녀에게 지금까지 들었던 정보들 중에 가장 핵심적인 것을 물어 보았다.


 
 "그러니까.... 너는 달에서 온거야?"


 
 소녀의 얼굴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그리고는 그 특유의 시간차 듣기평가 목소리로, 가장 듣고 싶지 않았던 문장이 흘러나왔다.


 
 "네, 저는 왔습니다. 달에서."

 


 ...어머니. 그간 안녕하셨는지요. 아들은 오늘 안녕하지 못합니다. 아무래도 미친년에게 걸린 것 같아요.  

 

 

  "우리 아버지가 절 데리러 오실 겁니다."

 

 장소를 조금 옮겼다. 무어라고 계속해서 떠들어대는 이 아가씨의 주장(혹은 개소리)을 계속해서 들어줄 생각은 전혀 없지만, 일단 관심을 가진 것에 대한 책임은 져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오밤중에, 주택가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미친 말을 해대는 걸 계속 생방송 할 필요는 없잖아. 

 약 10분동안의 행진으로 나와, 이 소녀는 많은 것을 얻었다. 나는 이 하얀 소녀의 이름이 리돌 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 소녀는 내 이름이 성민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 둘 모두 공통으로, 대로에 지나다니는 모든 이들의 시선을 획득하였다. 입을 다물고 있어도, 새하얀 리돌의 모습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심지어는 신입생 환영회에서 벌주마시고 뛰쳐 나온게 아니냐고 수근대는 이야기까지 들었다. 뭐, 밀가루를 뒤집어 썼다고 해도 믿어줄 정도긴 하다. 어쨌든 지금 우리는 마치 어둠 속에서 밀회를 하듯, 오늘따라 사람들이 드문 공원에 빛이 비치지 않는 벤치에 앉아 있다. 

 

 "우리 아버지가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나는 매일 같은 실험을 해 본 적이 없지만 나는 어제 좀 더 추진했습니다."

 

 "아버님까지 그러셨다니 내가 참 할 말이 없네."

 

 누군가 그랬는데. 부모님가지고 개그 소재로 쓰면 진짜 갈데까지 간거라고. 잠시 이 따님의 아버님이 어떤 분인지는 몰라도 굉장한 동정심이 생겼다. 고생이 많으셨겠습니다, 그려.

 

 "어렸을 때, 나는 항상 이야기를 듣고 지구에 오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결코 그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어요. 이런 식으로 오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계속해서 머리가 지끈거린다. 진짜 달에서 온 소녀라고 믿어 달라는거야 지금?

 

 "너 같은 딸이 이러고 돌아다니는 걸 생각하면 그냥 문 밖에 나가는 것도 금지시킬 것 같은데."

 

 "아버지는 지구의 사람들이 아직 깨진 것이 아니지만, 딱히 가면 안 된다고 말한 적 없습니다."

 

 "깨진다고?"

 

 리돌은 한쪽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보는 내 얼굴을 잠시 바라보더니, 다시 버튼을 누르듯이 턱 밑을 몇 번 매만지며 허공을 바라보았다. 마치 알맞은 단어를 밤하늘에서 눈으로 가져오듯이.

 

 "깨진다. 발전하다, 개발하다."

 

 "아, 발전이 덜 됐다고?"

 

 이제는 미개인 취급이구만. 한숨을 쉬는 내 모습이 보이는지 안 보이는지, 리돌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발전이 덜 되었다... 입니까? 번역가에 추가합니다. 어쨌든 달 사람들에게도 지구는 멀리 있기 위함입니다. 우주를 탐험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모든 우주선에 보냈지만, 교과서에서는 모두 실패가 주어졌습니다."

 

 "뭐, 실패했겠지. 그러니까 너도 여기 온거고 말야. 어쩜 이렇게나 불쌍할까 몰라. 집에 어떻게 가니 아가야?"

 

 그러고서는 그녀를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인 마냥 쳐다보았다. 성냥팔이 소녀는 저리가라 할 정도로. 리돌은 다시 턱 밑을 매만져 번역을 조정하고서는, 잠깐 아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서는 어깃장을 놓은 내 얼굴을 째려 보았다. 그리고 나 역시 뻔히 그 빨간 눈을 쳐다 보았다. 왜. 뭐. 지금 들어주는 것 자체만 해도 고마워해야지 어디서 신경질이야, 신경질은.  잠깐 도끼눈을 뜨고 날 노려보던 하얀 소녀는 한숨을 쉬고서는 다시 정면을 응시하며 말했다.

 

 "아버님은 달에서 알 수 있는 과학자였습니다. 그리고 놀이기구 같은 것들을 잘 만들었습니다." 

 

 "놀이기구... 라면, 롤러코스터 같은거 말하는거야?"

 

 "롤러코스터?"

 

 리돌은 잠깐 머뭇거리더니, 약간 미소를 띄우면서 말을 이어갔다.

 

 "비슷합니다."

 

 그냥... 아버님이 어디 롯데월드 외국인 기술자로 일하시는데 거기 플라네타륨 같은데서 직원복지로 계속 놀다가 결국 자기가 우주인이라 믿어버린, 뭐 그런 애 아냐 이거? 나는 일단 나중에 관할 경찰서로 넘길 곳을 잠실 혹은 용인으로 압축해 놓았다.

 

 "비슷하지만 다릅니다. 아버지가 만들던 것은, 추진체였습니다. 위로 갔다가, 아래로 떨어지는."

 

 "자이로드롭 정비공이신가보네."

 

 "네, 매일 다른 행성의 궤도를 계산하더라도 달에서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지속적으로 추진력을 발휘했다.."

 

 "에... 리돌 양? 저기, 이야기가 이어지는 것 같은 것은 나만의 착각이지요? 네?"

 

 "제 번역가는 학습 기술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점점 더 일반적으로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실수가 아닙니다."

 

 무슨 기술 타령이여. RPG하냐.

 

 "어쨌든 지금 서울에는 아는 사람이 없는거지?"

 

 "네."

 

 리돌은 하얀 얼굴 안의 하얀 눈 안의 빨간 눈동자를 깜빡이며 나를 무심히 쳐다 보았다. 사실 이미 결론은 났다. 이 아이를 경찰서에 넘기고, 나는 집에 간다. 그리고 공부를 한다. 그리고 자기 전에 집에 남은 맥주를 마시며 이 일에 대해서 한번 생각하고, 잊어버린다. 이것이 나의 오늘 일과인 것이다. 다른 일정이 끼어들 틈 따위, 추호도 없다. 나 살기도 바쁜 마당에 남 생각이 다 무엇이랴. 옥수수도 주고, 관심도 이만큼 줬으면 할 만큼 한거 아니겠어?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자칭 달에서 온 소녀에게 말했다.

 

 "자, 그럼 가자."

 

 "어디를?"

 

 "아버님이 달에 계시든, 아니면 롯데월드에 계시든, 어쨌든 이 공원에서 잘 게 아니라면 일단 찾아야 될 거 아냐. 도움을 줄 만한 곳으로 가는 거야."

 

 "안 됩니다."

 

 "??"

 

 "원시 지구 기술. 아버지는 그에게 아무것도 알 수 없는 땅에 여러번 시도했습니다. 도와줄 수 있는 사람, 없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지구의 기술이 원시적이어서, 아버님하고 연락이 안 된다는 말인가?

 

 "...다시 한 번만 말해줄래?"

 

 리돌은 발음을 똑바로 하려는 듯 입을 최대한 크게 벌려 외치듯이 말했다. 하지만 들려오는 것은 일정한 성량의 듣기평가 아나운서의 낭랑한 목소리였다.

 

 "지구, 기술, 미개."

 

 "아, 그러셔?"

 

 계속 혈압이 올라가는 것은 지금 더워서 그런 건 아니지?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아가씨 말을 듣고 있으면, 왜인지 모르게 화가 치밀고 있었는데, 지금 그 이유를 깨달은 것 같다. 이 중2병에 걸린 아가씨는, 아버지하고 떨어진 자신의 딱한 사연이야 어찌 되었던 간에, 자신만의 환상 속에서 오만 세상을 다 깔보고 있는 것이었다. 진심으로, 더 들어줄 이유가 없어졌다. 왜 아까 노점상 아저씨들이 그렇게도 이 아이를 박대했는지 알 것 같다. 나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말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그럼, 그 잘난 기술로 한번 찾아보시면 되겠네요. 미-개한 지구인은 갑니다."

 

 리돌은 딱히 나를 붙잡지 않았다. 
 이것이 그녀와 나의 첫 번째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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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여나 보신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글은 예전에 웹소설사이트쪽에 올렸던 작품입니다.

작년 스토리야 공모전에 올렸다가 질펀하게 까인 후,

설상가상으로 직장 근무 조건도 바뀌어 제대로 글 쓸 시간도 나지 않게 되어, 한동안 방치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일단 써 둔 줄거리는 완결을 짓고 싶어서, 다시 타자를 두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원래 '초승달을 보는 소녀' 가 1부고, '달의 뒷면'이 2부인데

다른곳에는 1부만 올린 상황입니다. 지금 2부를 쓰고 있는 중이고요.

어차피 창소챈에는 처음 올리는 거라 실험적으로 1,2부를 동시 진행합니다.

추후 다른 사이트에 어떻게 올릴지는 생각을 좀 해봐야 될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