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열고 들어온 이는 나의 여동생이었다. 아아니, 내 동생이 아니고, 이 몸의 동생. 하인리히 뤼브레의 동생말이다.


"괜찮아?"

"뭐가?"

"방금 보니까 기운이 없어보여서."

"그야 뒤에서..."


누가 자꾸 전기로 지지니까... 라고 답하려던 순간, 무시무시한 눈빛이 날 지켜보는 걸 깨달았다.


"... 오늘 몸이 좀 안 좋아서."

"그래? 여리 있는 거 같진 않은데?"


동생이 이마에 잠깐 손을 대보았다. 다른 형제들과의 관계는 차치하고, 얘하곤 사이가 좋나보다.


"집안에만 있어서 현기증 난 걸 수도 있겠다. 산책이나 나갈래?"

"산책?"

"마을이나 한바퀴 돌자고. 가주될 때 영주도 될 텐데. 영주될 사람이 자기 영지민도 못 알아봐서 되겠어?"

"아 아니 나는 괜찮..."

"가자. 일어나, 하인리히."


혹시나 밖에서 사기를 당하지 않을까 사양했으나 쥐뿔 소용이 없었다. 여동생은 막무가내였다.


"당기지... 마!"

"사양하지 말고 일어나. 사실 가고 싶은 거 다 알아."

"아니 진짜 괜찮다니까!"

"가자고! 누나가 쇼핑하러 가겠다는데 짐 하나 못 들어주는 게 남동생이냐!"

"???"


"누나"...? 누나였단 말야 저 사람? 무슨 나잇살을 거꾸로 먹기라도 한 거야? 내가 당황한 사이에 '누나' 는 날 일으켜 세우고 그대로 저택밖까지 끌고 갔다.


끌려나오는 동안, 나는 생각을 고쳐 먹었다. 나온 김에 차라리 인근을 돌면서 사기를 칠 만한 사람을 봐두고 조심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제일 먼저 들른 곳은 인근의 옷가게. 가게의 이름은 <돈많어요옷>. 주로 귀족들을 대상으로 하는 옷을 취급하는 곳이라했다. ... 가게 이름 한번 기똥차게 짓네...


"어서옵쇼."


푸근한 아저씨 인상의 점장이 나왔다. 나이는 40대 정도 되어보였다. 점장이 누나를 보고 아는 체했다.


"아 뤼브레님! 오랜만에 오시네요."

"요즘 바빴거든요. 짬난 김에 옷이나 보러왔는데 추천하는 거 있나요?"

"안 그래도 신상이 있습니다. 한번 입어보시죠."


누나가 옷을 입는 동안 하릴없이 멍하니 앉아있던 내게 점장이 다가와 물었다.


"저... 손님도 혹시 뤼브레 가문 사람이십니까?"

"예 맞습니다만..."


몸 주인의 행실 때문에 차마 이름까진 말 못하고 긍정만 했다.


"그렇군요. 뭐 하나 여쭤보고 싶은 것이 있어서 말입니다. 혹시 손님은 그 소문 들으셨습니까?"

"무슨 소문 말씀이신지요?"


점장이 비밀스러운 무언가를 할 때마냥 주위를 휙휙 둘러보곤 말했다.


"저희 옆집에 술파는 주점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가요?"


점장의 표정에 잠시 물음표가 띄워졌다. 맞다, 뤼브레는 이 지역 영주 가문이랬지.


"아아 맞다 그랬죠. 기억 나네요. 예."


점장이 잠시 고개를 갸웃하고는 말을 이었다.


"요 며칠전부터 저 주점이 문을 안 열더랍니다."

"단순히 몸이 아픈 거 아닐까요?"

"그건 아닐 겁니다. 몸이 아프면 대타를 고용해서라도 영업하던 친구였어요."

"아니면 집안사정이나."

"혼자사는 사람이 집안사정이랄 게 있을리가 있나요. 더군다나 안내문 한장 없었고."

"야반도주일 수도 있죠."

"가게가 손이 모자랄 정도로 잘 나갔는데 그럴리가 있나요."

"음..."


별로 안 궁금한데. 그냥 아파서 하루 쉰 거 아니야?


"어허, 손님 딱보니 지루하시단 눈치신데, 얘기가 이게 끝이 아닙니다."


네, 지루해요. 나는 사기 안 당하는 게 더 중요하지, 남의 집 술이 잘나가네 안나가네가 중요하진 않걸랑요.


"그 녀석 사라지기 전에 조금 이상한 점이 있었거든요."

"무슨 이상한 점이요?"

"누구가 어쩌고 저쩌고. 술을 엄청 먹고 막 욕하고 그랬어요. 평소에는 욕 한마디 안하던 친구였는데."

"누굴요?"

"술을 곤드레만드레로 먹여서 발음이 개가 되었기 때문에 그건 모르겠네요."

"일 못해먹겠다! 탈주! 뭐 이런 거 아니었을까요?"


뒤에서 누가 웃는 소리가 들렸다. 웃지 말라고 면박주면 또 포스기로 지지겠지?


"그런 걸지도 모르겠네요 단순히. 그날 밤 중에 가게 뒷문으로 나가는 걸 봤다는 사람도 있으니까."

"그럼 끝난 거 아니에요?"

"그래도 가게사랑이 엄청나던 친군데 영 수상쩍기도 하고 하네요."

"흠..."

"하튼 손님은 반응 보니 뭐 알고 계신 게 없으신 거 같네요."

"지금 처음 듣는 건데요."

"높으신 분들은 뭐라도 알고 있지 않을까 했는데 그렇군요..."


점장의 얼굴에 실망한 기색이 역력하다. 그래도 어색한 기류가 오래 가지는 않았다.


"사장님 이거로 해주세요."

"아, 정하셨군요. 사이즈는 이전이랑 똑같이 해서... 댁으로 보내면 되는지요?"

"네, 집으로요."

"알겠습니다. 만들어내고 도착하면 한달정도 걸릴 겁니다."

"수고하세요."


나가는 길에 방금 전에 말한 예의 주점을 가볍게 훑어보았다. <부어라마셔라>.
... 이 지역 가게들 전통인가?


"자, 옷도 샀겠다."

"집 가나요?"

"놀자고."


사전조사라고 포장은 하지만 그래도 불안한 건 불안한 거다. 안전한 장소가 더 좋다. 그러나 누님은 막무가내셨다.


"마침 요주변에서 연극이 있다던데 보고 가자."


미리 고백하는 데, 연극은 별로였다. 연기의 문제가 아니고 스토리가 진부해서 별로였다. 고전적인 스토리, 막장끼 첨가, 소품도 왜인지 열악하게 보였고. 누님은 아닌 거 같았지만.


"크으 재밌었다."

"저게 재밌었다고?"

"재밌었잖아. 그 반전하며."

"좀 뻔하던데."

"뻔했다고?"

"어. 진부하던데."

"그래?"


누나가 놀란 얼굴을 했다. 아무래도 굉장히 재밌었나보다.


"좀 아쉽지만 뭐 상관없어. 풀린 거 같으니까"

"뭐가 풀려?"

"너 기분."

"?"

"아까 밥 먹을 때부터 상태 안 좋아 보이던데? 지금도 안 좋아보이긴 하지만 훨씬 낫잖아."


나름 배려해준 것 같았다. 내용물이 바뀌어서 분위기가 달라진 거 뿐인데. 마음씨 좋은 누나다. 나한테도 이런 누나 있었으면 나쁜 짓 안하고 살았을 텐데.


"삐삑, 거짓말."

"앍ㅇㅎ오뉴ㅔㄷ줄"

"뭐야? 너 왜 그래?"


포스기가 거짓말을 감지하고 멋대로 작동한 듯하다. 뒤에서 타테냐가 사과하는 소리가 들린다. 입밖으로 내진 않았던 거 같은데...


"아, 아무것도 아냐. 사레가 들린 거 뿐이야."

"그래? 그런 거면 다행이고..."


아직도 따갑다. 안 다행인데.


"이제 괜찮아진 거 같으니까 슬슬 돌아갈까? 시간 늦었는데."

"... 어."


그리고 누나를 따라 집으로 돌아간 것이 어제.


*



어제 분명히 그렇게 잘 돌아와 놓고 오늘 아침 다시 기분이 안 좋아진 것은 왜일까. 아니, 누구 때문인 걸까.


하녀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대화에 열중해서인지, 내가 옆을 지나는 것도 의식하지 못했다.


"그러면 그분이 그런 일을 했다는 거야?"

"말도 안돼! 차라리 하인리히님이라면 모를까."

"진짜라니깐. 내가 들었다고. 분명히 아침에 온 그 남자가 그렇게 말했다고!"


"그 남자". 오늘 아침에 갑자기 들이닥쳐선 기이한 이야기나 해댄 남자다. 지금은 접객실에 있을 거다.


"아, 돌아오셨군요."


화장실을 갔다온 나를 보고 "그 남자"가 손목시계에서 시선을 뗐다.


"그래서 어떻게, 마음을 정하셨습니까? 저로서는 현 가주님보단 차기 가주님께 제안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해서 하인리히님을 먼저 뵌건데."

"아무리 생각해도 믿기지가 않아서 말이죠 그게."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믿어야 합니다. 지금 돌아가는 상황이 명백해요."


남자가 한 글자 한 글자 힘을 주어 발음하였다. 그것은 내게 으름장을 놓는 것도 같았고, 자신의 말이 맞다고 강조하는 것도 같았다.






"부어라마셔라 주점의 점장은 죽었습니다.

죽인 사람은 누님이신 헬렌 뤼브레님이십니다.

그리고 저만이 그 사실을 은폐시킬 수 있습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왜 이게 4천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