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화장실에서 머리를 부여잡고, '그 남자'가 한 말을 떠올렸다.


- "부어라마셔라 주점의 점장은 죽었습니다. 그리고 그를 살인한 사람은, 당신의 누님이신 헬렌 뤼브레님이십니다. 그리고 저만이 그 사실을 은폐시킬 수 있습니다."


갑자기 다짜고짜 찾아와서는, 내게 어제 나와 함께 놀았던 나의... 아니, 의뢰자인 하인리히의 누나인 헬렌이 살인범이란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그 사실 자체에 크게 충격받거나 그러진 않았다.


그것이 단순히 실감이 안 나서 그럴 수도 있고, 저게 100%  진실일지는 모르니까 말이다.


문제는, 내게 그 말을 한 '그 남자'가,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이라는 거다.


바로 내가 죽기 전에 참여했었던 사기업체의.


"타차원이라며... 쟤가 왜 저기에 있냐?"


알렉스 레빈.


그는 전생에 나와 함께 일했던 사기업체인 원더라컴퍼니의 사장이었다. 나와는 많이는 아니고 1년 반 정도 같이 일했던 걸로 기억한다.


특이한 점으로는 출신지 불명, 나이도 불명, 심지어 이름도 가명이라는 설 등 남자라는 것만 빼고 거의 모든 정보를 나를 포함한 동업자들에게도 알리지 않았다는 것으로 유명했다. 업계 특성상 서로의 정보를 묻지 않고 비밀로 하는 것이 불문율이긴 하지만, 암암리에 서로 간의 정보를 어느 정도 알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저 남자는 정말 이상하리만치 아무런 정보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성격도 나름 부드러웠고 나와 동업자들에게 꽤나 잘해주어서 아무도 그것을 굳이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않지.


나와 함께 한탕 잡고 난 뒤에 해외에서 일을 해볼 거라더니 여기서 이러고 있었나 보다.


...근데 쟤가 왜 여깄지? 분명 퀘스트에는 '타차원'이라고 적혀 있었는데.


"어, 뭐야. 아는 사람이었어? 여긴 '타차원'이라고는 표기되어 있지만 말ㅇ야, 원래 세계와 사람들이 어느 정도 비슷한 평행세계정도로 보면 돼. 애초에 마법이 있어서 빗자루타고 날아다니는 차원이나, 아니면 반대로 거의 너희 세계 문명 초기 수준의 원시인들이 살고 있는 차원이라면, 난이도가 이 정도겠냐? 별 열 개는 받아도 모자라지."


'타차원'이라길래 어디 이세계 비슷한 거쯤 되는 줄 알았는데, 그냥 평행세계였다.

내가 꿈꾸던 다른 세계는 이딴 게 아니었는데.


그러다 갑자기 문득 생각이 들었다.


"근데 저기에 내가 아는 사람이 있으면 내가 있을 수도 있는거 아닌가?"


"정확하진 않은데, 있긴 할걸? 근데 도플갱어처럼 얼굴을 봐도 죽거나 하지는 않으니 신경은 안 써도 될 걸? 끽해야 내 행세를 하고 다니는 사람이 있다고 신고나 하지 않을까 싶네~"


허허, 그것참 다행이네.


"근데 우리 슬슬 이제 나가봐야 하는거 아니야? 벌써 30분이나 흘렀는데?"

"...뭐? 벌써?"


꽃됐다. 이미 간 거 아니야?


"야야야야 빨리 나가자, 빨리!"


이런저런 생각들을 정리한 뒤, 나는 알렉스가 있는 접객실로 뛰쳐나갔다.


***


"아, 돌아오셨군요."


화장실을 갔다 온 나를 보고 그 남자, 아니 알렉스가 손목시계에서 시선을 뗐다.


"그래서 어떻게, 마음을 정하셨습니까? 저로서는 현 가주님보단 차기 가주님께 제안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해서 하인리히님을 먼저 뵌 건데."


"아무리 생각해도 믿기지 않아서 말이죠.그게."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믿어야 합니다. 지금 돌아가는 상황이 명백해요."


"아니, 증거라도 보여달라고요. 저희 누나가 갑자기 밑도 끝도 없이 말하시면 어떻게 제가 그 말을..."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알렉스가 테이블에 모니터를 내려놓았다.


"차기 가주님께서는 그동안 설명해드렸는데도 믿지 못하시는 것을 보니, 제가 거짓을 고하는 것처럼 보이시나 봅니다?"


아니 그야 니가 사기꾼이니까 그렇겠죠?


"여기 확실한 증거가 있으니, 보고 말씀하시죠."


테이블 위 모니터에서 영상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전형적인 동네 술집의 모습이 모니터에 비쳤다.

야심한 한밤중, 누군가가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다.

아마도 저게, 그 부어...뭐시기 주점의 주점장이겠지.


조금 시간이 지난 뒤에, 누군가가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손에 칼을 들고 있었고, 붉은 장발의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다.

키나 체형을 보아 여성같기는 한데... 화질도 구리고, 뒷모습밖에 보이지 않아서 잘은 모르겠다.


그리고 서서히 걸어간다. 아주 서서히...

점장과 세 발자국 정도의 거리가 남았을 때, 점장이 그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서 뒤로 넘어졌다.


그리고 그가 달려가서, 오른손에 쥔 단도를 세게 집고,

그대로 팔을 위로 올려서, 점장에게...

점장에게....단도를...


영상종료.


"?"


타테냐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


알렉스는 그 후 자신있게 말했다.


"여기 나와 있는 점장을 죽인 살인자가, 바로 차기 가주님의 누님이십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경찰에  아직 발설하지 않았으니 안심해도 좋습니다. 아직은 말이죠. 아직은."


라고 하기에는 하녀들이 너무 대놓고 수군거리고 있던뎁쇼.


그러곤, 알렉스가 한 글자 한 글자 힘을 주어 발음하였다. 그것은 내게 으름장을 놓는 것도 같았고, 자신의 말이 옳다고 강조하는 것도 같았다.


"차기 가주의 자리를 포기하시고, 그 자리를 동생이신 카밀로 뤼브레님께 양도하십시오."


"...허어..."


"갑자기 이렇게 말씀드리니 혼란스러우시겠죠, 이해합니다. 그러니 일주일 후에 다시 찾아뵙죠. 그때는 어느 정도 생각을 정리해놓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알렉스는 자리에서 떠나갔다.


***


"흐음... 이걸 어쩌냐."


이렇게 되면 일이 좀 복잡해지는데. 내가 생각했던 건


1. 귀족집에서 의뢰인의 몸에 들어가서 한 달 정도 맛있는 거 먹고 편한 집에서 떵떵거리며 산다.


2. 누군가 나에게 주식이든 보증이든 땅 구매 권유든 수상한 사람이 나에게 말을 걸면,


3. 몰래 쫓아가서 뒷통수를 치든 전문 심부름꾼을 고용하든 사기꾼을 (물리적으로) 잡는다.


4. 귀족 생활을 더 누리고 3개월째 되는 날에 잡아놓은 사기꾼을 보여주며 퀘스트 클리어! 와 해피엔딩!


...이었는데.


누가 알았겠나, 퀘스트 둘째 날만에 갑자기 가주가  아파서 차기 가주라는 사실을 알아채고 여기서 뭘 하면 될까 생각하던 중에 의뢰인의 누나랑 갑자기 시내로 놀러가고  내가 전생에서 알던 사기꾼이 갑자기 쳐들어와서 너와 함께 놀던 네 누가가 살인범이라고 말을 걸...면?


2. 몰래 쫓아가서 뒤통수를 친다?

오... 정말 병신같은 생각인데?


당장 하자.


-삐빅


"끄으아앙아아아아ㅏㄱ!!!! 아악!!!!"


타테냐가 내 위에서 나를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쳐다봤다.


"상식적으로 그게 되겠냐? 의뢰인을 폭행납치범으로 만들고 싶은거냐? 설령 되더라도, 걔 죽이고 경찰에 증거가 넘어가면 어쩌려고 그래? 저게 사실인지 아닌지도 모르잖아?"


젠장. 아파 죽겠는 와중에 너무 맞는 말만 해서 더 짜증 난다.


"그래서 어떡할 거야? 진심으로 그딴 걸 계획이라고 세운 건 아니지?"


"아오... 당연히 아니지. 일단, 쟤가 내가 알고 있는 알렉스랑 어느 정도 동일 할 거 아냐?"


"잠시만, 아냐?? 아아아아냐???"

그러고 포스기를 내 쪽으로 겨눈다.


"...아녜요!! 아니에요!!! 그그그그러면, 여기에 제 전생에 있던. '원더라 컴퍼니'도 있을 수 있는 거 아닙니까요..."


"그럴 가능성이 높긴 하지. 왜? 거길 경찰에라도 넘겨보게?"


"아뇨. 제가 왜 거기를 대놓고 신고하러 갑니까..."


"뭐야, 그러면 어떡할건데?"


"그야... 당연히"




"밤에 쳐들어가야죠."


이렇게 된 이상, 원더라로 간다.


라고 생각한 내 손에는, 아까 칠칠치 못한 하급 천사가 바닥에 떨어뜨린 포스기가 어느새 손에 놓여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