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꺼진 도시의 거리는 한산했고, 스산한 바람이 불었다. 나는 몸을 일으켜 차에서 내렸다. 바닥을 매우는 마른 낙엽이 밟히며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만들었다.


"끄어어어... 도착이네."


이곳은 독일 프랑크푸르트. 헤센 주 최대도시이자 라인-마인 지역의 중심 도시이다. 독일의 경제 중심지이기도 한 이 도시는 뤼브레 가문의 영지에서 대략 4시간 정도 떨어져있었다.


이곳은 또한 '원더라 컴퍼니'의 본사가 위치해 있는 곳 이기도 하다.


"이야, 여기에도 진짜 있었네? 평행세계라고 해서 뭐 엄청나게 바뀌거나 하지는 않나보네."


나는 이전에 몇번 들락거렸던, 원더라 컴퍼니의 7층 높이의 건물을 보며 감탄했다. 영주니 귀족이니 요상한 봉건제가 아직까지도 이어지는걸 제외하면 도시나 세상의 모습이 격변하지는 않았다.


"저게 원더라 컴퍼니의 본사? 생각보다 아담하네요?"


어느새 나와있던 타테냐가 건물을 보고 짧은 감상평을 남겼다. 이제 감탄은 충분히 했으니 행동에 옮겨야 한다.


"좋아. 지금부터 나는 저기 들어가서 알렉스 그 자식을 잡을거야. 그놈은 항상 회사에 마지막까지 남아있었으니 그 놈을 제외하면 전부 퇴근해서 보안요원 몇명만 남아 건물을 지키고 있을거야."


이 침입의 목적은 두가지다. 하나는 알렉스가 의뢰인이 처음에 말 한 그 사기꾼인가를 확인하는 것 이고, 하나는 살인사건에 대한 진실을 알아내는 것 이다.


만약 알렉스가 사기와 관련이 없다면 그 놈은 그냥 헬렌이 누군가를 살해한 - 혹은 그렇게 조작한 - 걸 이용해 무언가를 얻어먹으려는 놈이고 만약 이 놈이 뤼브레 가문에 사기를 칠 계획이 있다면 그대로 박살내고 잡으면 퀘스트 클리어다.


"뭐, 그럼 어떻게 들어갈 생각이에요? 분명히 문 앞에서 제지당할게 뻔 한데."


내가 기억하기로는 알렉스의 사무실은 7층에 있었다. 그리고 타테냐의 말따마다 보안요원들은 수상한 자 인 나를 들여보내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맨손인데, 뭐 어떻게 들어갈 생각이에요?"


나는 타테냐의 말을 듣고, 잠시 할 말을 떠올렸다.


"맨손이라니. 나의 두뇌라는 장비가 하나 더 있다고. 그것도 엄청나게 끝내주는 장비."


확실히 무리수였던것인지 타테냐의 표정은 썩어들어가기 시작했고 만약 포스기가 있었다면 쏠 기세였다. 물론 없기에 그러지는 못했지만.


"뭐, 그럼 행운을 빌어요."


타테냐는 그렇게 말하며 사라졌고 나는 건물 옆 잔디밭을 향해 걸어갔다. 그곳에는 무슨 용도인지 모를 붉은 파이프가 벽을 가로지르고 있었고 조금 열린, 방범창이 없는 창문 하나가 달려있었다.


나는 심호흡을 하며 도약 준비를 했다. 이런건 몇번 해 본적이 있었으나 자신은 없었다.


"하나, 두울, 셋..!"


나는 그대로 달리며 파이프를 향해 손을 뻗었다. 파이프 위에 능숙하게 올라탄 나는 창문을 열고 그 안으로 들어갔다. 몸이 상당히 날렵한것이 마음에 든다.


"좋아... 그럼 시작 해 볼까?"


나는 발소리가 나지 않게 착지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파티션과 의자, 책상을 보니 사무실이었다.


복도와 사무실은 불투명한 유리로 막혀있고 유리문이 설치되어있었다. 다만 불투명한 부분은 오직 아랫부분만 해당되었기에 숙이고 다녀야 했다.


"밖에 누구 없나?"


나는 유리문의 잠금을 해제하고 고개를 살짝 내밀었다. 텅 빈 복도와 불이 켜진 형광등 몇개만 보일 뿐이었다.


나는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사무실 밖 복도로 걸어나왔다. 숨소리조차 들키지 않게 조심스럽게 이동해야 한다. 


불 켜진 전등을 따라, 몸을 숙이며 앞으로 향했다. 나는 기억을 더듬으며 계속 걸어갔다.


"저기 있다. 엘리베이터."


그렇게 슬슬 다리가 아파오고 바닥 패턴을 외우는 경지에 도달할 즈음, 나는 엘리베이터 근처에 도달했다.


그리고 그 옆에선 허리에 삼단봉을 차고 대화를 나누는 보안업체 직원 두명이 보였다. 만약 이대로 지나간다면 둘 중 하나는 반드시 날 보게 되니 귀찮은 상황이었다.


"시선을 끌 방법이..."


어떻게 저기를 지나갈까 궁리하던 내 눈 앞에 옥내 소화전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경보 버튼을 덮고 있는 플라스틱 덮개가 깨져있는걸 보아 하니 누군가 실수, 혹은 고의로 버튼을 누른 모양이다.


소화전은 복도 왼쪽 빈 공간에 설치되어 있었고 이 공간에서 휴계실 겸 엘리베이터가 있는 공간으로 가기 위해서는 복도를 통해 가거나 소화전 옆 용도불명의 방을 지나야 한다.


지금 상황에서는 어디로 가든 들킨다. 하지만 여기서 어그로를 끌어놓고 방으로 간다면? 보안요원들이 굳이 방을 통해 갈 이유가 없기에 나는 보안요원들이 복도에서 소화전으로 가는 동안 방을 통해 무사히 휴계실로 갈 수 있다.


"작전 계획 완료. 이제 실행이다."


내가 소화전의 버튼을 꾹 누르자 마자 귀를 찢을듯한 경고음이 2층 전체에 울려퍼졌다. 나는 문을 열고 즉시 방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보안요원 두명은 경고음이 울리자 마자 바로 소화전을 체크하러 갔을 것이고 지금 휴계실에는 아무도 없을것이다.


나는 방 문을 열고 엘리베이터 옆 비상계단 안으로 들어가 문을 잠구었다. 경고음 때문에 발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됐어."


몇초 후 경고음이 꺼지며 귀가 조금 편안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제 바로 7층까지 올라가면 된다.


"...라고 생각했는데, 대체 왜 이게 여기 있는거야?"


나는 5층으로 가는 비상계단을 가로막고 있는 철창을 보며 혼잣말했다. 대체 이게 왜 여기에 있는거야? 침입 방지?


"남의 돈은 잘만 뺏어 쓰더만, 내껀 뺏기기 싫다 뭐 이거야?"


하는 수 없이 철창 앞에서 고개를 돌려 4층 문을 살짝 열어젖혔다. 닫혀있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만약 닫혀있었다면 나는 미치거나 그냥 때려치고 집에 갔을것이다.


주변에 아무도 없는걸 확인하고는 천천히 4층에 진입했다. 아까와는 조금 다른 오피스의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중앙 계단이 이쪽이었지?"


철창 때문에 비상계단으로 한번에 7층 까지 도달하려던 나의 계획이 무산되었기에 이제는 계단을 이용해 한칸 한칸씩 올라가는것 밖에는 방법이 없다.


마치 잠입액션 게임을 하는 느낌이다. 4층을 돌아다니며 조명과 문을 체크하는 보안요원의 손전등 불빛이 보였다.


"이젠 순찰까지 하네? 돌아버리겠네 진짜로."


나는 황급히 파티션 뒤로 몸을 숨겼다. 빛이 몇번 사무실을 훑더니 발소리가 멀어져갔다.


순찰하던 요원이 사라진걸 확인 한 나는 다시 힘겹게 발걸음을 옮겼다. 건물이 쓸데없이 넓다보니 마음속에서 짜증이 솟구쳐오른다.


"젠장... 또 검문소냐?"


그때, 나는 다시 복도를 가로막고 서 있는 보안요원 두명을 발견하곤 몸을 숨겼다. 한 놈은 고글, 한 놈은 헬멧을 쓰고 있었다.


"기껏해야 사기꾼 모듬사리 회사가 왜 쓸데없이 보안이 철저해?"


절망적인 마음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우회로도 없고 어그로를 끌만한 요소라고는 벽에 세워져있는 접의식 의자밖에는 없다. 다시말해 정면돌파 밖에는 답이 없다는 소리다.


"젠장... 방법이 없나?"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려보던 와중 나는 내 손에 쥐어진 포스기를 발견했다. 잠깐만.


"타테냐, 잠깐 나와봐."


최대한 목소리를 낮추고 타테냐를 부르자 한껏 짜증이 난 표정의 타테냐가 나타났다.


"용건만 말해요. 나 지금 뭐 잃어버려서 짜증나니까."


나는 한숨과 함께 내 손에 들린 포스기를 타테냐에게 들어보였고 타테냐는 놀란 표정과 함께 굳어버렸다. 타테냐의 벙찐 표정이 뭐랄까, 참 일품이 아닐 수 없다.


"칠칠지 못하게 흘리고 다니기는. 어쨌든 질문 몇개만 하자."


지금 내가 타테냐에게 확인하고 싶은것은 이 포스기의 적용 범위이다. 이게 나에게만 적용이 된다면 모를까, 다른 사람에게도 적용이 될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우선, 이건 사람 전체에게 효과가 있는거야? 다른 사람도 이걸 맞으면 겁나게 아프냐는 소리야."


이건 잘만 쓰면 효과가 좋은 무기임에 틀림이 없다. 테이저건 과는 다르게 위에 무엇을 입든 맞으면 무조건적으로 아프고 타테냐가 나에게 포스기를 쓸 때를 떠올린다면 정확한 조준도 필요가 없어보였다.


"네. 영혼이 있는 모든 생물은 이 포스기에 저항할 수 없고 인간이라면 말의 거짓과 진실을 구별할 수 있게 만들죠. 혹시 저 사람들에게 그걸 쓸 생각인가요?"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타테냐는 말을 이었다.


"일단, 몇번 맞아봐서 알겠지만 고통을 주는 순간은 단지 몇초 뿐이고 한번 쏘고 나서 2~3초간은 쓰지 못해요. 저들은 한명이 아닌데 어떻게 대응 할 생각인가요?"


연사가 불가능하다는건 빠른 시간 내 저 둘을 손쉽게 제압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이거 곤란한데?


"그럼 한놈을 눕혀놓은 다음 다른 놈을 처리하면 되겠네."


나는 아까부터 내 눈에 들어온 접의식 의자를 한손에 들고 다른 손에는 포스기를 들었다. 이제부터는 머리가 아닌 피지컬로 승부해야 한다.


"끄어어어억!"


헬멧은 포스기에서 나오는 빛을 맞고 쓰러졌고, 아직 헬멧에게 정신이 팔려있던 고글은 내가 휘두른 접의식 의자를 쳐맞고서 바닥에 엎어졌다. 효과는 굉장했다...!


"어허, 어딜 움직여?"


그 다음 나는 일어서려고 하는 헬멧을 향해 다시 포스기를 발사했다. 번쩍거리는 빛과 함께 헬멧이 다시금 비명을 내질렀다.


"자, 니 동료 목숨 안 아까워? 무기 버리고 당장 꿇어."


나는 쓰러진 고글의 허리춤에 꽂혀있던 권총을 뽑아 그의 목에 겨누었다. 그러자 헬멧은 그가 들고 있던 장비를 내려놓고 손을 들었으며 나는 근처 책상 위에 놓여있던 테이프를 들어 헬멧과 고글을 묶었다.


"오케이. 이제 바로 7층으로 간다."


만약을 대비하며, 나는 권총을 주머니에 꽂아넣었다. 이걸 쓸 일은 최대한 피하고 싶다.


"설마 계단에 있지는 않겠지?"


그렇게 계단을 오르며, 나는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에 걱정했다. 좁은 계단에서 한명 이상의 보안요원들을 만난다면 운이 좋아야 쫒겨나거나 주거침입으로 신고당하는것이고 재수없으면 보안요원에게 사살당할수도 있었다. 들고있는게 별로 없다보니 빠른 대응이 힘들다.


"쓸데없는 걱정이었어. 차라리 다른 걸 걱정했어야 했나봐."


다행히 계단을 오르며 그 어떤 보안요원도 만나지 않았으나, 나는 7층 유리문 앞 도어락에서 알렉스 레빈이라는 이름의 개새끼를 떠올렸다. 일단 만난다면 대화 전 다리에 9mm 총알 하나 정도를 친절하게 선물해주는게 좋겠다.


"사기꾼만 모여있는 회사 주제에 짜증이 날 정도로 철통보안이네 진짜... 이건 뭐야? 최고 보안등급 카드 필요?"


나는 키패드 옆에 쓰인 작은 글씨를 읽었다. 4층에 잡아놓은 놈들이 그 최고 보안등급의 카드를 들고있을리는 없다. 그렇다면 이 건물 내에 보안 담당자가 있어야 한다는 건데...


"그냥 박살내고 들어갈까?"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으나 나는 즉시 그 생각을 부정했다. 그럼 아랫층에 있는 놈들이 올라와서 나를 무슨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제압하려 들것이고 잠입은 실패하게 된다.


그렇다면 이 최고 보안등급의 카드를 든 놈을 찾아가 뺏든 받든 해야한다. 문제는 그 놈이 여기 있을지부터 의문이라는 사실이다. 그냥 노크라도 해볼까?


"아니야. 그럼 비밀번호라도 한번 눌러보자."


나는 도어락을 열었다. 푸른색으로 빛나는 키패드가 보인다.


"혹시 틀리면 경보라도 울리려나?"


잠시 생각해본 나는 고개를 돌렸다. 이 짓은 너무 위험했다.


"그럼 어쩌겠어? 함 뒤져봐야지."


그렇다면 이제 방법은 층을 샅샅이 뒤져 보안카드를 찾아내는것 밖에는 없었다. 나는 6층으로 내려가며 부디 그것을 빨리 찾아낼 수 있기를 빌었다.


"어어? 거기 누구야! 침입자ㄷ..."


한참 계단을 내려가고 있던 내 앞에 느닷없이 사람의 형상이 나타났다. 그가 총을 뽑기도 전에, 나는 포스기를 발사했고 그는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으억, 억, 악!"


문제는, 그가 쓰러진 곳이 계단이었다는 점이다. 그는 형용할 수 없는 비명을 지르며 굴러내려갔고 6층 문 앞에서 기절 해버린채로 멈췄다.


"죽진 않았겠지?"


나는 그렇게 말하며 계단에 떨어져있는 카드 케이스를 들어올렸다. 전등 아래에서 보니 그 카드는 원래부터 검은색이었고 Level V 라고 쓰여있었다.


 "V는 로마 숫자로 5 라는 뜻이었지? 이놈이 이 건물 전체의 보안을 담당하는 보안담당자였군. 이거 뭔가 너무 허무해서 할 말이 없네."


다시 7층으로 올라온 나는 카드를 도어락의 카드 리더기에 갔다댔고, 리더기는 경쾌한 소리를 내며 잠금을 해제했다. 마침내 목표에 도착했다.


문이 스르륵 열리며 7층 사무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곳에있던 남자는 창 밖을 보고 있었는지 뒤를 돌며 말했다.


"아, 시간 맞춰 오셨군요. 그래서 이번 경비 보수 협상은 어떻게 할..."


남자, 알렉스 레빈은 내 얼굴을 보더니 그대로 굳어버렸다. 보수 협상 하니 이전에 보안업체 상대로 알렉스와 함께 계약서에 약간 장난을 쳐 사기를 친 기억이 떠올랐다.


"당신이... 어떻게?"


알렉스의 표정에는 희미하지만 당황함이 드러나있었다. 나도 제대로 보기 힘든걸 보면 확실히 당황한 표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사기꾼 답다.


"미안하지만, 일주일은 기다리기 너무 길어서. 바로 대답하러 왔어."


나는 그렇게 말 하며 포스기를 들어올렸다. 알렉스는 나와 그 포스기를 번갈아 보더니 희미하게 웃었다.


"이런, 뤼브레 가문의 차기 영주께서 마트 알바나 하고 계실줄은 몰랐네요. 그걸로 도대체 무엇을 하실 생각..."


그가 말을 끝마치지 못한 이유는 굳이 말 할 필요가 없었다. 나는 고통에 바닥을 구르고 있는 알렉스를 향해 포스기를 겨누었다.


"우리 게임 하나 할래? 룰은 아주 간단해. 만약 너가 거짓을 말 한다면? 이 포스기는 그 말이 거짓임을 알리고 너는 더럽게 아플거야. 만약 너가 진실을 말 한다면? 이 포스기는 그 말이 진실임을 알리고 너는 더럽게 아플거야."


나는 알렉스를 향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알렉스의 눈에는 분노가 서려있었지만 나는 별로 개의치 않았다.


"오늘 한번 끝장을 보자고. 지금부터, 게임을 시작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