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없었다.


"1주일도 기다리지를 못하시는군요. 그렇게 참을성이 없는겁니까?"


바닥에 신음을 흘리며 누워있던 알렉스가 물었다.


어찌저찌 전부 박살내고 올라오기는 했으나, 6층 입구에 쓰러져있던 놈이 깨어나거나 아니면 4층 놈들이 포박을 풀고 올라올 수도 있었다. 최대한 빨리 끝내야 했다.


"아니, 나는 널 믿지를 못하겠어. 느닷없이 찾아와서 내 누나가 살인지라느니, 너만이 그걸 감출 수 있다느니, 증거라고 해봤자 중간에 끊긴 그 비디오 밖에는 없잖아?"


알렉스는 날 잠시 째려보더니 한숨과 함께 대답했다.


"그래서 이런 무식한 방법을 쓰신겁니까? 하아, 어쩔 수 없군요. 원하는걸 물어보시죠."


우선 이녀석의 접근 목적을 알아내자. 그것만 알아도 절반의 성공일것이다.


"우선, 우리 가문에 무슨 목적으로 접근했지? 혹시 돈을 뜯어낼 생각이었나?


어차피 포스기가 있는 한 이 녀석은 거짓말을 못한다. 그렇다면 굳이 떠볼 필요까지는 없다.


"우선, 돈을 뜯어낼 생각은 맞습니다. 당신의 누님이 살인자라고 생각하기 위해 영상을 교묘히 편집해 거짓 살인 누명을 씌웠습니다. 당신과 누님 사이의 관계가 각별하다는것을 알고 당신이라면 누님의 죄를 숨기기 위해 저에게 비용을 지불할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나는 이 말이 사실인지 확인하기 위해 포스기를 쏘았고(비명소리는 생략했다.) 포스기에서 음성이 흘러나왔다.


"[삐빅, 진실]"


의외로, 알렉스는 진실을 내뱉었다. 일단 이걸로 헬렌 뤼브레는 실제로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다는 사실과 이 녀석이 돈을 목적으로 의도적으로 가문에접근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근데 이 사기꾼 새끼가 이럴리가 없단 말이지. 무언가 숨기는게 있을 수 밖에 없다.


"뭐, 좋아. 그럼 우리 가문으로부터 얼마를 떼먹을 생각이었지?"


알렉스는 잠시 고민하더니, 짧게 답했다.


"사, 사백유로."


400유로. 한화로 약 40만원 정도이다. 겨우 이거?


"끄아아아악!"


내가 포스기를 발사하자,  고틍섞인 비명과 섞인 거짓, 이라는 단어가 포스기에서 흘러나왔다. 그럼 그렇지. 이 새끼 성격상 겨우 40만원 가지고는 만족 못한다.


"이 새끼가 어디서 구라를 쳐? 손모가지 날아가고 싶냐?"


내가 험악한 표정으로 포스기를 겨누자, 알렉스는 벌벌 떨며 말했다.


"가문 자산의 삼분의 일! 그정도만 받기로 했어. 진짜야!"


"[삐빗, 진실.]"


이번에는 진실이 떳다. 그렇다면 몇가지 의문이 생기는데, 과연 가문 재산의 삼분의 일만 빼앗겼다면 가문이 멸망 직전까지 갔을까? 그리고 이 '받는다'는건 또 무슨 소리인가.


"받아? 누구한테."


내 질문에 알렉스가 그 답지 않게 눈에 띄게 당황했다.


"내가 받는다고 했었나?"


이 이후에 일어난 일은 다 알것이라 생각한다. 아무튼, 알렉스는 거의 울다시피 하며 말했다.


"가문... 재산을 사기로 뜯어내기로 동업자랑 약속했어. 그놈은 재산의 삼분의 이, 나는 삼분의 일을 가져가기로 했다고. 아까 말한 사백유로도 그 여자가 살인을 저질렀다고 거짓말 한 뒤에 받은 돈이야."


알렉스의 비명과 함께, 포스기는 그 말이 진실임을 확인시켜주었다. 동업자가 있다고?


"동업자라. 그 동업자가 누구지?"


그때, 계단에서 거친 소리가 들려왔다. 벌써 여기까지 온건가?


"모, 몰라! 그놈은 자기소개를 안 했다고!"


"[삐빗, 진실.]"


어? 진실이라고?!


순간, 등 뒤에 있던 유리가 박살나며 총알이 빗발쳐 들어왔다. 나는 책상 뒤로 몸을 숨기며 알렉스를 향해 권총을 뽑아 겨누었다.


"마지막으로 하나 부탁하지. 그 사기꾼에 대한 정보를 전부 불어. 머리에 구멍이 하나 더 나는 꼴 보기 싫다면."


이제 더 이상 포스기는 필요하지 않았다. 


"그, 그놈은 영지 안에 있어. 그리고... 로브! 꽤 비싸보이는 로브를 입고 있었어! 그래서 얼굴은 몰랐는데, 그게 내가 아는거 전부야! 믿어달라고!"


로브. 나는 이 단어를 의뢰자 하인리히에게 들어본 적 있었다. 그렇다면 그 자식이 진짜 사기꾼이다.


"넌 날 오늘 못본거야."


나는 깨어난 보안담당자를 향해 포스기를 발사했고, 그는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동작 그만. 얌전히 이리 와주셔야겠어."


나는 쓰러진 보안담당자의 권총을 치우고 머리를 겨누었다.


"넌 밖으로 나갈 때 까지는 인질이 될꺼야. 니 부하들에게 총 안맞게 조심하라고."


그의 목에 권총을 딱 붙히고, 나는 중앙계단을 통해 천천히 밑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6층, 5층, 4층, 3층, 2층에서 내가 따돌렸던 놈들을 마주쳤으나 내가 인질로 잡고 있는 상대 때문에 어찌 할 방도가 없었다. 


"니 대장 살려줬으면 좋겠지? 그럼 가져!"


나는 보안담당자를 2층 경비에게 밀쳐버린 다음 그대로 창가를 향해 돌진했다. 몸통박치기로 인해 창문이 깨지자 그 밑으로 마인 강의 검은 물결이 일렁였다.


"젠장 모르겠다아!"


강렬한 충격과 함께, 나는 물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몇차례의 발버둥 끝에 나는 겨우 올라와 숨을 쉴 수 있었다.


"헉, 헉... 이런 옘병. 뒤질 뻔 했네."


아까 창문을 향해 돌진하던 과정에서 총알 하나가 머리를 아슬아슬한 간격으로 스쳤다. 사기꾼 잡기고 자시고 뚝배기가 터져나가 그대로 퀘스트 실패가 될 뻔했다.


"젠장... 일단 여기서 벗어난 다음에 상황 파악좀 하자."


그 말이 끝난 후 정확히 10분 후 나는 뭍으로 올라올 수 있었는데, 상륙할 지점을 찾지 못한것이 그 이유였다.


"끄어어어... 나 앞으로는 수영 안 할꺼야."


겨우 뭍으로 올라온 나는 근처 나무 벤치에 쓰러지듯 앉았다. 이제 생각을 좀 정리해보자.


"타테냐. 잠깐 좀 나와봐."


나는 타테냐를 소환했고, 타테냐는 소환 된 직후 내 모습을 보며 경악했다.


"도대체 또 뭔 또라이 짓을 한거에요? 포스기 다 썼다면 다시 주세요."


만약 이걸 주지 않는다면? 타테냐는 다시 나에게 포스기를 쓰지 못할것이다. 물론 내가 타테냐에게 빼앗기지 않는다는 조건 하에서다.


"설마 제가 포스기 없이 고문을 하지 못할거라고 생각하시는건... 아니죠? 참고로 포스기는 굉장히 약한 편에 속해요."


나는 결국 타테냐의 협박에 굴복하여 포스기를 건네줄 수 밖에 없었다. 그러자 타테냐는 내가 건넨 포스기를 받더니  느닷없이 나를 향해 겨누고 쏘았다.


"끄아아악! 이 미친...!"


나는 이유도 없이 나를 향해 포스기를 발사한 천사를 노려보았다.


"정말이지 오랜만이네요. 이 감각."


아무래도 저 천사는 순수하게 내가 고통받는 모습을 즐기는게 아닐까 싶다. 그게 아니라면 내가 아파하는 모습을 보고 저런 황홀한 표정을 지을리가 없다.


"으어어... 어쨌든, 지금 우린 중요한 국면에 서 있어. 사기꾼을 잡을 절호의 기회라고."


알렉스는 영지 내 그 사기꾼, 진짜 사기꾼이 있다 말했다. 그렇다면 범위는 더 줄어든다.


"그런가요? 그럼 그 사람을 어떻게 특정해서 잡을 생각인가요? 그 영지 내 사람이 한둘도 아닐텐데."


확실히 그렇긴 하다. 그럼 그 정보 말고 다른 정보를 참조해야 하는데...


"젠장, 도대체 로브가 뭐길레 계속 언급되는거지? 그 새끼 무슨 암살단원이라도 되는거야 뭐야?"


애초에, 마을만 따져도 후드를 입은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 그렇다고 해서 후드를 입거나 집에 후드가 있는 사람만 골라서 심문할수도 없는 노릇이고. 


"차라리 옷가게에서 후드를 산 사람을 물어볼까?"


잠깐, 옷가게?


"설마...?!"


그때, 머릿속에서 불현듯 생각 하나가 떠올랐고 나는 그 즉시 달리기 시작했다.


"젠장! 그 새끼가 범인이였어. 그 망할 옷가게 주인 놈 말이야!"


알렉스의 제안은 일종의 양동작전이었다. 알렉스는 하인리히의 누이, 헬렌 뤼브레가 살인을 저질렀다고 조작한 뒤 돈을 뜯어내며 시간과 시선을 끌고 그 옷가게 주인은 그동안 가문 돈을 빼돌리고.


"잠깐만요! 어째서 옷가게 주인이 범인이라고 확신하는거죠? 아직 증거가 부족..."


"증거? 너 그 술집 주인 없어진 이야기 한 놈들 기억해? 옷가게 주인이랑 알렉스 뿐이야. 알렉스가 오기 전까지는 하녀들도 몰랐다고!"


그 사람들을 제외한다면 그 누구도 술집 주인 얘기를 하지 않았다. 처음에 '소문' 이라고 했지만 정작 그 두놈들 이외의 사람들은 술집 주인 없다는 얘기는 하지도 않았고 마치 일부러 들으라는듯, 옷가게 주인은 그 이야기를 꺼냈다. 


타이밍도 그야말로 기막히다. 나에게 술집이 며칠째 문을 닫았다는 이야기를 하자 마자 바로 다음날 알렉스가 저택에 찾아와 구라를 쳤다. 마치 짠듯이.


"그리고, 알렉스가 말 한 그 비싸보이는 로브를 다른 일반적인 사람들이 구할수는 없다고. 기껏해야 옷가게 주인만 그런걸 다루겠지."


이건 가문 내 다른 사람에게도 해당되지만. 가문 내 다른 사람이었다면 의뢰인인 하인리히도 알았을것이다. 따라서 사기꾼이 가문 내 사람일 확률은 더더욱 떨어진다.


"젠장, 일단 저택으로 다시 돌아가야해. 그 새끼 벌써 가문 재산 돚거하려고 밑작업을 시작했을꺼야."


나는 미친듯이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시간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