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장님.. 부장님!"

 내가 부장님께 달려가자, 부장님은 깜짝 놀라며,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셨다.

 나는 대답도 하지 못한 채 내 컴퓨터를 가리켰다. 부장님은 의아한 표정으로 컴퓨터로 다가가 메일을 보시더니, 이내 우리처럼 놀란 표정을 지으셨다.

 마우스를 잡은 부장님의 손이 달달 떨리더니 이내 고개를 돌리며 우리에게 말하셨다.

 "오늘 퇴근은 물 건너 갔습니다."

 

 화의실의 공기는 매우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회의실 의자에 앉아계시는 지부장님은 심각한 표정을 지으시며 고민에 빠져 계셨다.

 좀처럼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시던 부장님도 침만 삼키며 긴장하고 계셨고, 다른 부서 부장님들도 마찬가지이셨다.

 지부장님이 무거운 분위기를 깨고 마침내 입을 여셨다.

 "이번 사태에 대해 브리핑 하도록 하게."

 그러자 '소원 정보 2부'의 부장님께서 앞에 있는 스크린을 켜시며 말씀하셨다.

 "어제 오후 9시 경, 서울시에 거주하고 있는 6세의 한 어린아이가 잠에 들기 직전 소원을 빌었습니다."

 이내 스크린에 한 고급 아파트의 사진이 나왔다.

 "이 건물이 바로 그 아이가 원했던 선물이였습니다."

 회의실에 있던 사람들을 웅성거리고 있었다. 큰 충격을 받은 모양이였다.

 지부장님께서 2부 부장님을 바라보며 물으셨다.

 "정보부에선 보통 이런 소원이 나오면 다른 소원으로 대체하거나, 혹은 선물 지급 명단에서 제외하지 않았소? 왜 이게 '선물 주문부'까지 왔냐는거요?"

 그러자 2부 부장님은 안경을 치켜올리며 말씀하셨다.

 "이 선물이 그 아이의 순수성을 대변하기 때문입니다. 그 아이의 가족은 가난한 편에 속합니다. 따라서 저 아이는 어린 나이에도 철이 들었고, 부모님을 누구보다도 사랑했기 때문에 어디선가 고급 아파트가 있으면 돈을 잘 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테고, 그로 인해 이러한 소문을 빌었으리라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소원 정보부'와 '소원 접수부'에서도 미처 거르지 못한 것입니다."

 "다른 소원은 없는거요? 보통 이런 경우엔 다른 소원을 들어주지 않소?"

 "없습니다. 매우 강력히 이 아파트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사안이 매우 난감한거고요."

 단호히 말씀하시는 부장님의 말처럼, 너무나도 난감한 일이였다. 아이들의 소원을 들어준다는 회사의 목표에 따라 그 아파트를 사줘야하지만, 아파트를 산다면 예산을 초과하여, 다른 아이들을 위한 선물을 살 수 없다.

 지부장님을 비롯해, 모든 부장님들이 심각한 고민에 빠져 계셨다. 옆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문제를 해결하려 했으나, 뾰족한 방법이 없는 것 처럼 보였다.

 나와 이주혜 사원도 이 메일을 봤다는 이유 하나로 끌려와 부장님들 사이에 앉아있었고,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었다.

 그때, 내 옆에 앉아있던 이주혜 사원이 갑자기 손을 들었다.

 말소리가 멎었고, 지부장님을 포함한 모든 눈길이 이주혜 사원에게 갔다.

 "만일, 아파트가 아닌 다른 선물을 원한다면.. 그 다른 선물을 아이에게 줄 수 있는거죠?"

 2부 부장님이 고개를 끄덕이자, 이주혜 사원은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그럼, 간단합니다. 그 아이가 다른 선물을 원하게 만드는거죠."

 회의실에 앉아있던 한 부장님이 그녀를 보며 말했다.

 "그걸 어떻게 할 생각인가? 우리가 마술사도 아니고, 아이의 마음을 어떻게 마음대로 바꿔?"

 "현재 시각이 오후 7시 46분인데.. 이런 저녁시간대에는 보통 뉴스를 많이 보는 편이죠? 그 아이의 가족이 현재 어디에 있나요?"

 그러자 2부 부장님은 자료를 뒤적이더니 말하셨다.

 "오후 6시 58분에 집에 들어간걸 정보원이 파악했으니.. 아직 집에 있을거야."

 "그럼, 아마 저녁시간대라면 가족끼리 모여서 저녁을 먹으며 TV를 볼 확률이 높은데, 최근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한 기업인의 갑질 파문으로 뉴스 시청률이 꾸준히 높았습니다. 따라서.. 지금 가족들이 TV 뉴스를 보고 있을 확률이 높다는거죠."

 "그게 무슨 상관이야?"

 또 다른 부장님께서 질문하자, 그녀는 자신있게 답했다.

 "뉴스를 이용하는 겁니다. 뉴스 내용을 변경하는 거죠. 아이들은 TV에 나오는 말을 그대로 믿는 경향이 강한 편입니다. 그러니, 이 아이를 겨냥한 뉴스를 내보내는 겁니다. 예를 들어 '전기 매트, 부모님이 좋아하는 선물로 1위..' 같이 가격이 저렴하면서도 아이의 부모님이 좋아할만한 것으로 한다면, 그 아이의 소원을 바꿀 수 있습니다. 보통 뉴스는 8시에 시작하니, 아직 시간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자 지부장님은 대단한 발견을 한 듯이 놀란 표정으로 일어나 말하셨다.

 "당장 대한민국의 모든 방송국에 연락해서, 헤드라인을 모두 변경하도록 지시해!"

 

 "야! 잠깐, 우리 뉴스 헤드라인 바뀌었다."

 갑자기 날라온 뚱딴지 같은 소리에, 나는 그만 어안이 벙벙할 수 밖에 없었다.

 PD는 아랑곳하지 않고 나에게 말했다.

 "윗선에서 지시한건데, 우리 뉴스 헤드라인, A모 기업 사장 갑질 사건이 아니라 '신경 안정에는 난초 기르기가 제일'이다."

 갑자기 이게 무슨 소리인가? 어제까지만 해도 20여분간 갑질 사건만 보도하지 않았던가? 당장 내일은 이번 갑질 사건에 대한 토론회도 열려고 했는데, 갑자기 난초 기르기라니..

 뭐라 따지고 싶었지만, PD는 바쁘다는 듯 나가버렸고, 뉴스는 이제 곧 시작이였다.

 

 "요즘 신경 안정에는 난초를 기르는 것이 효과가 있다는 영국 연구진의 조사 결과가 나와 큰 화제를 모으고 있습니다.."

 무슨 소리지..? 난초 기르기라니? 분명 오늘 아침 뉴스까지만해도 A모 기업 사장 갑질 사건에 대해 심층분석을 하던 채널이였는데, 갑자기 난초 기르기 이야기라니..?

 나는 당황하여 다른 뉴스 채널로 돌렸으나, 모두 똑같았다.

 "..이번 조사 결과로 30대 부모님이 좋아하는 선물은 아기자기한 인테리어 장식품인 것으로 밝혀져.."

 "..최근 8세 이하의 어린아이와 함께 다니는 부산 여행 패키지가 큰 인기를 끌며.. 30대 부모들의 만족도가.."

 "..B모 기업에서 30대 부부를 겨냥한 상품을 내놓아 인기가 매우 뜨겁습니다.."

 갑자기 이상한 내용을 내놓는 뉴스에 당황했지만, 소파에 앉아 있는 아들은 매우 집중하며 뉴스 화면에 몰입하고 있었다.

 

 시계의 시침이 10을 가리키려하고 있었다. 9시가 넘었지만 아직도 그 아이의 추가적인 소원은 없었다.

 모두가 초조하게 추가 소원을 기다렸으며, 지부장님은 손까지 덜덜 떨고 계셨다.

 그때, 전화기의 벨소리가 회의실의 적막을 깨트렸다.

 2부 부장님이 전화를 받으며 몇마디 이야기를 나누더니, 전화기를 내려놓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이가.. 소원을 패키지 여행 티켓으로 변경했습니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회의실 안은 환호성으로 가득했다. 서로 얼싸안으며 기쁨을 나눴고, 지부장님은 기쁨을 주체하지 못해 울먹이며 말씀하셨다.

 "최부장..! 이 사원에게 보너스 지급하게! 승진도 이제 눈앞이야!"

 부장님을 알겠다는 듯 고개를 숙였고, 이주혜는 기쁨의 웃음을 지었다.

 역시.. 상위 20%는 상위 20%였다..

 

 차가운 밤공기를 맞으며 나와 이 사원은 함께 걸어갔다. 같은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기 때문이였다.

 나는 이 사원을 바라보며 대단하다는 듯 물었다.

 "정말 대단하세요.. 누구도 하지 못한 생각을 하시고.. 잘못하면 정말 큰일날 수 있을 일이였는데.."

 그러자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뭘요, 그냥 운이 좋게 생각이 난거죠."

 나는 언제나 그녀가 부러웠다. 약간 시샘하기도 했다. 상위 20%에 들어 무료로 위장직업을 얻었고.. 상사들에게 인정도 받았으며, 나처럼 멍청한 실수도 하지 않는.. 약간 로봇같이 완벽한 사람이였다.

 나는 밀려오는 씁쓸한 마음에 그녀에게 차마 고개를 돌리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인채로 걸어갔다.

 그녀가 나를 보고 있는 느낌이 들었지만, 느낌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며 차가운 인도 위를 걸어갔다.

 

 또 다시 소설을 쓰게 되었습니다. 제 부족한 작품을 읽어주셔서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