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xo년, 1월 3일

기록: 젠장

1월 1일이 지나가면서도 우리는 일했다. 이제 스물여섯이구나 하고 감탄할 틈조차 없이 업무가 주어졌다. 이 땅에서 남자로 태어난 것은 잘못인가 싶다.

둘 씩 조를 나눠서 훈련을 시키고 시험을 감독했는데도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훈련기간 동안 지원자의 절반은 말없이 결석하여 찾느라고 시간을 많이 허비했고, 무엇보다 시험의 결과는 끔찍했다. 시험 성적의 평균은 100점 만점에 40점이었고, 표준 편차는 말도 안 되게 작았다. 그런데 점수가 정말 좋은 아이들은 몇 명 있었다. 그 아이들은 곧 소집되어 기초 훈련을 받게 될 것이다. 제발, 정신이 멀쩡한 아이들이었으면 한다.

 

 

20xo년, 1월 5일

기록: 연설문

시험의 최종 합격자 명단을 가지고 상관을 찾아갔다. 명단을 전하면서 그의 책상에 분단 사태동안 행정부의 연설문을 보았다. 이 기록에 쓰면 적합하겠다 싶어서 그 종이를 달라고 하자, 다행히도 허락했다. 그 종이를 여기에 붙여 놓도록 하겠다.

 

“친애하는 주민 여러분, 정전협상이 맺어지고 어느덧 5년이 흘렀습니다. 도처에 총성이 퍼지고, 폭음이 난무하였습니다. 그에 받은 저희의 아픔은, 아마 그 어떠한 단어로도 대체될 수 없을 것입니다. 저 경계가 생겨나며 우리 민족은 갈라졌고, 우리에게 소중한 이들은 저 너머로 떠나 버렸습니다. 한때 저희가 하나 되어 살아가던 대지는 결국 욕망의 칼날에 찔려 여러 개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참으로 비극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이 건의 해결을 위하여 회담 내내, 저희는 손에 땀을 맺어가며 목소리를 내었지만, 그들의 귀는 자신들이 막아버린 지 오래였습니다. 이러한 약탈의 태풍 속에서, 저희는 그러나 태풍의 눈을 찾았습니다. 저희는 그들과 달리 질서가 있고, ‘사람’이 있습니다. 저희는 그들과 다릅니다. 그리고 저희는 이를 내보일 것입니다. 사막의 먼지바람이 아닌, 오아시스가 보일 때 까지, 모두 힘을 내시길, 저희 행정부는 여러분을 응원합니다.”

 

초등학생 때 이 위선덩어리를 보고 감탄하며 환호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도대체 얼마나 멍청했어야 이런 걸 좋다고 박수를 친다는 말인가? 찢겨진 흔적이 있는 걸로 보아 아마 이게 다가 아닌가보다. 그것을 찾는 대로 이곳에 붙이도록 하겠다.

 

 

20xo년, 1월 10일

제목: 설

오늘은 시험 최고득점자 열 명이 모여 앞으로 그들이 어떠한 훈련을 거칠 것인지 발표하였다. 뒤에서 지켜보며 발견한 점이 여러 개 있었는데, 일단 그들 모두 고등학생이라는 점과, 넷 중 하나는 부모님에 대한 설명이 엉성하거나 없는 점이 가장 돋보였다. 그 넷 중 하나인, 왼쪽에서 세 번째 아이는 방위대에 동생이 일찍이 징집됐다고, 지원서에 자그마하게 적혀있었다. 그 아이의 이름은 한설이라고 적혀있었다. 성이 한, 이름이 설. 그 아이는 나중에 해산된 뒤 사병들끼리 칭찬거리가 되었다. 성적 좋고, 입담도 좋고, 외모도 좋고, 하면서 말이다. 틀린 말은 아니긴 한데.. 아, 기록이 아니라 사설이 된 것만 같다.

오늘 밤 나는 경계 지대로 돌아가라는 명령을 받았다.

 

 

20xo년, 1월 11일

기록: 연

그 아이의 동생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성도 특이하고, 똑같이 외자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바로 옆 초소에서 그를 찾았을 때, 설이와 너무 비슷하게 생겨서 바로 그가 동생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근무가 끝나고 쉬던 중, 그를 다시 만나 얘기를 조금 나눴다. 나는 자기소개를 하였고, 그 역시 작은 목소리로 자기소개를 했다. 이름은 연이라고 했다. 그는 자신의 누나가 지원을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합격했다는 것은 미처 몰랐다고 한다.

...다시 읽어보니 이 노트는 기록보다 일기장이 되어버린 것 같다. 다시 적어보겠다. 중요한 사건만 다루도록 하겠다.

 

 

20xo년, 1월 20일

기록: 회담

이번 회담으로 각 구역에 이름을 붙이게 되었다. 아니, 이름보다는 번호를 매겼다. 지금껏 몇 년간 회담을 계속하며 협상을 진행하다가, 하나 된 구역 표기법을 만들기로 결정한 것이다. 우리 구역은 312-C였다. 3은 위도의 십의 자리, 12는 경도의 백, 십의 자리라고 한다. C는 아직 정확한 설명이 없는데, 아마 그 경위도에서 타 구역과의 상대적인 위험도, 기술력 같은 것을 나타내는 듯하다. 바로 옆 구역, 그 초소형 무기가 개발됐다는 그 구역은 312-A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직까진 최소한 겉으로 경계를 지키려는 노력이 점점 늘어나는 걸로 보아 다음 전쟁을 위해 매긴 것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잘 모르겠다. 머리 쓰는 건 정말 적성에 안맞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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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에 쓰던 게 있어서, 조금 가다듬고 올려봅니다!!

항상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