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를 들자, 끝없이 넓게 펼쳐진, 세렝게티 초원의 풍경이 시아에 들어왔다. 나는 베드로가 준 가방에서 꺼낸 나침반과 세렝게티 국립공원 지도를 꺼내 보았다.


"현재 위치조차 모르는데, 그렇게 지도와 나침반을 뚫어져라 본다고 뭐 답이 나와요? 그냥 길 잃었다는거 솔직하게 인정하는게 어때요?"


내가 지도와 나침반을 번갈아 보는동안 한쪽에서 비꼬는듯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맘같아서는 저 망할 천사를 한대 정도 쥐어박고 싶지만 싸우면 내가 지기에 그냥 입닫고 계속 지도를 보며 길을 찾기로 했다.


"아니 베드로 이 인간은 고작 준다는게 종이 지도랑 나침반이야? 차라리 구글 지도라도 쓰게 휴대폰이라도 주든가."


로마시대때 태어나서 그런건지 사람이 참 구식이다. 설마 보존식품이라는것들도 막 부켈룸 같은건 아니겠지?


근데 이거보다 더 짜증나는건, 나에게 퀘스트를 시킨 동기다. 퀘스트의 내용은 '찌라시 하나 확인하는데 그게 낚시라면 지 쪽팔리니까 나 대신 니가 확인해라.' 이 소리인데...


"뭐? 그분께 보내는 신앙심이 떨어져?"


지랄하고 자빠졌네 진짜. 차라리 공식적으로 천사들로 조사단을 만들어서 파견한다면 모를까 그게 구라라면 찌라시에 낚여 조사단까지 보낸것이 지 체면을 깎아먹다보니 마구 부려먹어도 되고 무엇보다 자신이 보낸걸 숨길 수 있는 죄수인 날 이용한거 아니야?


뭔가 기분이 나쁘다. 엄청 나쁘다. 말투가 존나 띠꺼운건 둘째 치더라도 저번 퀘스트는 사기꾼 피해 구제다 보니 적어도 누군가를 도와주는 느낌이라도 들었지 이번 퀘스트는 마치 대대장 이삿날에 끌려와 이사 하는거 억지로 돕는 느낌이다. 


만약 이게 안전하다면 모를까 지금 내가 악마를 상대할 수 있는 수단이라고 해봤자 쇠냄새가 나는 낡은 열쇠 뿐이다. 거기다 운이 좋아야 악마랑 만나는걸 겨우 피하는 거고 운 나쁘면 구드룬인가 구닥다린가 하는 마왕이랑 1대1 미팅이 성사될 수 있는 아주 행복하기 그지없는 상황이다.


"아오 개 빡치네 진짜! 지가 확인하러 가는게 그리 힘들어?!"


여기서 더 짜증날것도 없겠지만, 또 기묘하게 열받는 부분은 내가 벌어야 하는 돈을 절반으로 줄여줘서 미션을 끝가지 수행해야 한다는 점이다. 화는 나는데 현실적인 문제로 이 화가나는 퀘스트를 나는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나는 홧김에 바닥에 놓여있던 돌맹이를 걷어찼다.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 돌멩이는 흙먼지를 만들어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베드로 님도 다 계획이 있으니까 그런 결정을 내린거겠죠. 알겠으니까 화 그만 내고, 마검이나 찾아요. 여기서 더 꾸물대면... 알죠? 어떻게 되는지."


타테냐가 한숨을 쉬면서 포스기를 꺼내들자,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그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타테냐는 마음에 들었는지 잠시 킥킥대며 나에게 종이 한장을 건넷다.


"이게 뭐야. 마검의 능력과 규칙?"


+마검의 능력과 규칙 (검 의지에 따라 무시하기도)+


검 투명화 가능

검의 무게, 크기, 길이 조절 가능

소원 한 개를 들어줌

무슨 수를 쓰더라도 파괴되지 않음

자아가 있는 에고 소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일주일만 소유 가능

계약서를 잃어버리면 계약 해지

능력을 추가하는 소원은 불가능

민트 초코를 싫어한다

피를 마시고 싶은 충동이 가끔 든다

인간적이다


"말 그대로 마검이 지닌 능력과 그것을 소유할 시 제약받는 규칙을 써놓은거에요. 이게 도움이 될지도 몰라요."


그렇게 한동안 이 능력과 규칙에 관한 글을 계속 읽다 보니, 좀 특이한 규칙이 있다는걸 확인할 수 있었다. 민트초코 싫어한다는건 도대체 왜 여기에 써있는걸까.


"그럼 검의 무게, 길이, 크기를 맘대로 정할 수 있다는건 이 마검은 정해진 겉모습이 없다는건가? 적어도 마지막에 사라졌을때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느냐 같은거라도 있어야 찾기라도 하지."


혹시 소유자가 없을때는 일종의 디폴트 폼으로 돌아가나? 그런 얘기는 글에도 쓰여있지 않고 들어본적도 없다.


"젠장... 정보가 부족해. 이럴꺼면 그때 더 물어볼걸 그랬나?"


이번에도 정보 부족이다. 나는 그때 정보를 더 얻어내지 않고 멍때렸던걸 후회했으나, 지금 와서는 너무 늦었다. 결국 하는수 없이 나는 마검을 찾을때 까지 계속 걷기로 했다.


"차라도 있었다면 좋았을것 같은데. 다리가 너무 아퍼."


그렇게 3시간 가까이 나는 주구장창 걷기만 했다. 다리의 감각 따윈 진작에 사라져버린지 오래였다.


뭐 사실 차가 있었어도 국제운전면허증이 없기에 못탄다. 어차피 내가 죽은 시점에서 운전면허니 뭐니를 따지는건 의미가 없지만.


"히치하이킹도 좋은 방법이죠. 물론 안전은 보장 못해요."


확실히 근처 돌아다니는 차 한대 잡아서 히치하이킹 하면 마검을 찾는게 확실히 쉬워지겠지만 타테냐의 말따마다 안전을 보장받지 못한다. 저게 관광객 차인지 어떻게 알아?


무엇보다, 나는 이곳에 허가받고 들어오지 못한 몸이다. 공원 관리인이라도 만나면 마검이고 자시고 그대로 쫒겨난다. 


"그냥 대충 마검 못찾았어요~ 그거 사람들이 잘못본거임. 이러면 안되겠지?"


나는 학교다닐때 선생님들이 자주 언급하던 '뒷통수에 달린 눈'이 없었지만 왜인지 모르게 나는 뒤에서 드리워진 검은 오오라를 볼 수 있었다.


"아, 안돼겠지이~"


타테냐는 잠시 나를 째려보더니 포스기를 거두었다. 아마 내 인생 가장 무서웠던 순간 Top 10에는 충분히 들것이다.


"뭔가 아쉬워하는 눈치네요. 혹시 이거 좋아해요?"


아닌데? 완전 아닌데?


"아니 잠깐만 이번에는 대체 왜애애액!"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정말로 부조리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지금 상황에선 타테냐가 갑이기에.


나는 포스기에 지져지며 주황빛으로 물들어가는 하늘을 보았다. 차라리 저기 지나가는 가젤이 되고 싶다.


"확실히 아프리카라 그런지 밤에도 따듯하네."


잠시 텐트 밖에 나와서 바람을 쐬던 나는 문뜩 떠오른 생각을 입에 담았다. 지금 오후 8시 정도 되는데 해가 진 후에도 온도가 20도가 넘는다.


바깥 구경을 충분히 한 나는 다시 텐트 안으로 기어들어가 불을 켰다. 들킬수도 있기에 텐트 바깥에선 불을 내거나 빛을 만들어선 안된다.


"보자... 가방에 먹을것이..."


아까 보존식품이라고 한것들의 대부분은 따뜻한 물을 부어먹는 아웃도어 푸드, 캠핑음식이다. 그 외에는 육포, 유통기한이 2028년 까지인 캔 종류들이 대부분이었다.


"이거 뭔가 마검 찾으러 온게 아니라 캠핑하러 온 느낌인데."


확실히, 여기에 캠프파이어와 기타만 있다면 딱 캠핑이다. 물론 캠핑은 도중에 곰을 만날 수 있지만 이건 도중에 악마들을 만날 수 있다. 따라서 이게 더 유니크하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이 마검을 어떻게 찾지? 여기 나열된 특징만으로는 찾기가 어려워."


나는 따뜻하게 데워진 곡물 씨리얼을 퍼먹으며 혼잣말했다. 마검에 관한 이야기는 그냥 뜬소문일수도 있겠지만 아직 확정지을순 없다.


"일단 내일부터 마검 수색 시작이다. 오늘은 좀 쉬자고."


나는 씨리얼을 다 먹고서 가방에서 꺼낸 통조림을 따 내용물을 보았다. 고기와 밥, 알록달록한 채소가 안에 들어있었다.


"뭔가 맛없어보이네요."


어느새 튀어나온 타테냐가 통조림을 보며 한마디 거들었다.




"여기인가. 마검이 나타났다는 장소가."


달빛이 내리쬐던 초원이 순간 일렁이더니, 붉은 차원문 하나가 열리며 아름다운 외모의 여성이 차원문에서 나왔다.


"사바나? 이거, 마검이 동물의 왕국이라도 찍으러 오셨나?"


그녀가 차원문에서 걸어나오자, 먼저 파견된 휘하 악마들이 그녀를 향해 깍듯이 경례했다.


"그래, 그래. 지금 잘 찾고 있지?"


그녀는 어르는듯한 말투로 무릎을 꿇고 있는 대장 격 악마에게 말했으나, 악마는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고 답했다.


"죄송합니다. 지금 최대한 찾아보고는 있지만 흔적조차도 찾아보기 힘듭니다.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합니다."


잠시 악마의 말을 경청하던 여성은 웃으며 말했다.


"뭐, 그쯤은 나도 예상하고 있었어. 그래서 내가 너희들을 위해 조력자를 데려온거 아니야?"


조력자. 아마 나를 말하는것이겠지.


"뭐, 이 몸이 여기까지 행차하셨으니 한마디 해야겠지?"


그녀의 이름은 구드룬. 마계 최초의 인간 황제이자 여고생(제일 중요한 부분). 나는 그녀를 알고있다.


"너희들도 알겠지만, 마검의 힘은 소원을 들어준다는것에서 나와. 하지만 마검은 소원을 들어준다는 사실 없이도 강력하고, 또 아름다운 존재이지."


구드룬. 선대 마계의 왕을 죽이고 마계의 지배자가 된 몽골의 예언가.


"이 몸 또한 마검의 작품이야. 물론 1주일 밖에 사용할 수 없다는 단점도 있지만 그것이야 말로 마검을 진정코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요소이지."


그리고 그녀도, 나를 알고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 네 소개를 못 들었네?"


당연한 얘기다. 서로 눈치는 채지 못했지만 한번씩 만났으니.


"너도 자기 소개 한번 해보는게 어때? 다들 너가 누구인지 정도는 알아야하니까."


그녀는 고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자기소개를 요구했고, 나는 그녀에게 답했다.


"내 이름은 발리우스다. 또 다른 마검이기도 하지. 이제 네 소원을 말해보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