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관광온 게 아닐 텐데요."


자꾸만 주변을 기웃거리는 나를 보고 타테냐가 툴툴거렸다.


"어차피 기한도 명시 안 되어있고, 혹시나 여기 숨어 있을 지도 모르는 거잖아?"

"그야 그렇지만..."

"타테냐, 여기가 어디야."


설의적 질문. 타테냐가 아무 대답이 없기에 나는 홀로 자문자답 하였다.


"인류의 수수께끼, 사막의 꽃, 탐험가의 로망!"


타테냐가 또 시작됐다는 듯한 얼굴을 했다. 그러나 나는 개의치않고 계속 떠들었다.


"피라미드잖아!"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은 피라미드. 그 내부이다.


어젯밤, 나는 세렝게티에서의 춥디추운 밤을 무사히 보냈다. 그리고는 새벽같이 일어나 미션 달성을 위해 돌아다니던 중에 내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요 피라미드다.


바로 전날, 한낮의 아프리카 도보는 효율이 안 좋단 걸 깨달은 나였다. 그렇기에, 마침 잘됐다 하며 넙죽 들어간 것이다. 왠지 마검이 여기 있지 않을까 하는 감도 왔고.

애초에 이상하잖아. 이집트가 아닌데 왜 피라미드가 여기 있냐고. 그것도 국립공원에. 만든 파라오가 술이라도 먹은 게 아닌 이상 말이 안 된다. 

심지어 이 크기인데 경비도 무엇도 없었다. 이건 어느 모로 보아도 범상치 않은 징조라고 여겼다.


... 물론 단순히 한번쯤 들어 오고 싶었다는 이유도 있었다. 로망 있잖아. 피라미드.


"피라미드잖아. 탄자니아에 피라미드가 있잖아. 여기서 나올 게 틀림없다고. 믿어 봐."

"여기에 있는 게 이상하긴 하지만... 피라미드랑 마검이랑 뭔 상관이라는 거에요."

"원래 그런 특별한 물건은 이런 특별한 장소에서 나오는 거라고. 유ㅎ왕, 미ㅇ라..."


내 감의 정체. 빈약한 근거긴 하지만 이런 거라도 믿어야지, 달리 어쩌겠어. 다른 어떤 단서도 없는데.


"ㅈ만지는 길에서 주웠잖아요."

"그야 그렇지만."

"그럼 얌전히 내려가서 밖에서 찾죠."


넌 아닐 지 몰라도 난 덥다고...


아프리카는 강하다. 예열된 지면의 입김에 발은 쪄졌고, 하늘 위 태양은 위에서부터 나를 구워댔다. 그런 상황에서 움직여서 많이 갈 리가 없다. 단 하루의 경험으로, 낮에 이동하는 것은 무리수라고 판단했다.

렇게 우리는 이 수상한 금자탑 안에 들어왔다.


"... 와, 저거봐! 저기가 왕의 방인가 봐!"

"말 돌리지 마요. 지지기 전에."


그때 '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는 너무 크지도 너무 작지도 않았는데, 아무래도 왕의 방 쪽에서 들린 것 같았다.


나와 타테냐는 서로 멀뚱멀뚱 쳐다보다 방 입구에 달라붙었다. 방 안에서는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발소리 외에도 여러가지 소리가 들렸다. 까드득거리는, 발톱으로 벽을 긁는 듯한 소리, 무언가를 뒤적거리는 소리, 가끔씩은 날개를 퍼덕이는 듯한 소리도 들렸다.


”뭐야... 미라라도 있는 건가?”


비현실적인 일이지만 내 뒤에는 천사가 날고 있다.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는 이미 무너졌다고 봐야한다.


"타테냐, 그 포스기 빌려줄 수 없어?"

"뭘 생각하는 지 알 것 같은데, 아마 쓸 수 없을 거에요. 미라는 영혼이 움직이는 게 아니니까."


영혼이 없으면 포스기가 인식을 못한다고 했던가.


한참을 고민한 후, 안을 확인 못하는 건 아쉽지만, 사는 게 먼저라고 판단했다. 나는 천천히 뒤를 돌아서 그 자리를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어디까지나 '천천히' 다. 방 안에 있는 녀석이 눈치채면 곤란하니까.


"어디로 가게?"

"다시 찾아봐야지. 닥돌할 수는 없잖아. 난 연약한 일반인인데."

"그건 그래. 붙으면 위험할 텐데."

"그래, 그러니까 왔던 길을 되짚어 나가자고. 마검이야 찾다보면 나오겠지."

"왔던 길 기억해?"

"당연하지. 이 정도는..."

"잘됐다. 그럼 열심히 달려 봐."

"?"

"?"


달리라고? 뭐지? 뭔가 위화감이 느껴지는데? 뒤를 돌아 타테냐를 바라본 나는 그대로 얼어버렸다.


"안녕 인간?"


검붉은 몸에 달려 있는 우람한 날개. 세련된 뿔은 두개가 나란히 머리 위에 나 있었는데, 염소뿔처럼 그닥 길지 않은 뿔이었다. 손발에는 발톱이 붙어있었는데, 이또한 길지 않았음에도 어딘가 위협적으로 보였다. 목소리는 어째선지 바이브레이션이 쇳소리와 함께 섞여나왔다.


타테냐는 어디론가 사라졌고, 내 눈 앞에 있는 것은 그림책에서 볼 법한 한 마리 악마였다.


"왕의 방에서 마검을 찾는데 안 보이더라고. 배도 고프고. 마침 너가 지나가 준 거야."

"설, 설마 그 말은..."


악마가 입을 다시며 말했다. 그의 입 속은 불구덩이 같이 붉었다.


"아, 천사는 걱정 마. 방 안에 묶어뒀어. 약하던데?"


말을 전부 듣지도 않고, 좁다란 피라미드 속 길을 따라 나는 정신없이 달렸다. 악마는 여유로운 포즈로 따라왔다.


"좋아, 좋아. 이런 게 재밌지. 빨리 달려보라고. 하하핫."


뒤에서는 뚜벅두벅 걷는 소리가 났다.



(쉬어가기용 참고도. 구조는 대략 이렇다고 보면 될 듯. 조금 차이 있을 수?도)



하나 확실한 것은, 절대 저 악마가 코스프레는 아니란 것이다.


괴기스러운 얼굴도 얼굴이었거니와, 한번씩 벽을 칠 때마다 친 부분이 가루가 되어 떨어지는 것을 보면 확실했다.


나는 머리를 굴렸다. 분명히 베드로 말이, 구드룬이 마왕이 되어서 마검을 쫓고 있다고 하였다. "마왕" 이 되어...


'저게 한 말과 상황을 조합해보면 저 녀석은 구드룬의 꼬붕인 악마인가? 구드룬한테 명령받고 마검을 찾는 중인 건가?

그렇다면 피라미드 안에는 왜 들어왔지? 나와 똑같이 생각한 건가? 그럼 방금 전에 부스럭 거리던 소리는 마검을 찾는 소리였던 건가?'


'쿵'


뒤에서 큰 소리가 나서 돌아보니 악마가 또 벽을 치고 있었다.


'흔들... 쩌저적.'


대화랑이라 불리는, 좁고 높고 긴 통로가 한번 크게 흔들렸다. 지진이 난 것 같이. 금자탑을 따라 나도 한 순간 중심을 잃었다가 금새 일어섰다. 대화랑은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통로의 천장은 도미노처럼 떨어졌다. 악마에게서 내 쪽으로, 천장이 무너져 왔다. 부숴지며 낸 폭음은 덤이었다.


'쿵! 쿠쿵!'

"우왓!"


바로 뒤쪽으로 내 몸만한 돌덩이가 떨어져 내렸다. 몇천 년의 세월도 너끈히 견뎌낼 듯 크고 단단한 암석. 그것이 떨어져 바닥에 닿는 여파에, 몸이 다시 한번 중심을 잃었다. 내 정수리로부터 불과 세 뼘 길이도 안 될 위치였다.


'이러다간 곧 깔린다.'


등골이 오싹해졌다. 젖먹던 힘까지 써가며 달렸다.


그러나


대화랑의 끝이 보였다. 

그것은 기쁨의 메시지가 아니다. 비극의 서막을 의미했다. 여기서부터는 통로가 훨씬 좁아진다. 높이도 거의 내려앉아서, 엉거주춤한 자세로 움직여야 하는 수준이다. 즉, 대화랑에서처럼 달릴 수가 없다.


황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악마가 아직 쫓아오는 것인지 아닌지를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만약 아직도 쫓아오고 있다면... 가망이 없는 것이다. 이제부터는 속력이 훨씬 줄테니까.


"뭐야? 어디 간 거야?"


악마는 보이지 않았다. 어디론가 사라진 것이다!


'뭐지? 무너진 천장 잔해에 가려진 건가? 아니면 다시 왕의 방으로 돌아간 건가? 왕의 방으로 갔다면 계속 달리는 게 맞는 건가? 일단 달려서 나가는 게 급선무가 맞긴 한가? 근데 그럼 타테냐는? 버리고 가는 게 낫나?'


이런 저런 생각을 하던 와중에 저 멀리에서 빛이 보였다. 출구의 옆에는 갈림길이 있었다. 도굴꾼들이 파놓은 것일 까.


"좋아, 출구다!"


밖은 벌써 어둑어둑해졌는지, 차가운 달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어떻게든 나가면 뾰족한 수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고문은 희망고문이라고 했던가.


'우르릉.'


산사태가 일어나는 듯한 소리와 함께, 천장이 무너져 내렸다. 입구는 봉쇄되었다. 거짓말처럼 내가 나가려는 직전에.


희망은 사라졌다. 나는 무너져 내린 천장을, 출구를 가로막고 있는 빗장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너무나도 견고하고, 촘촘하고, 많았다. 절대로 열릴 일은 없다는 듯,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절망에 몸이 무너지려 하고 있었다. 단순히 입구가 봉쇄되었다는 것만이 아닌, 저 악마와 나 사이에 피지컬 차이를 다시 한번 실감했기 때문이다.


문이 무너지기 직전, 1초도 안되는 잠깐 사이에 보였던 것이다. 그 악마의 웃음이. 녀석은... 녀석은...


녀석은 내가 유적 안을 달리는 동안 밖으로 나갔던 것이다! 그리고는 한바퀴를 빙 돌아서 내가 나갈 출구에 미리 가 대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보다 훨씬 빠른 속력. 저 악마와 나의 사이에는 말도 안되는 신체능력의 차이가 존재했다.


녀석은 나를 농락하는 중이고, 만약 질리면 언제든 죽일 수 있는 힘이 있다. 그렇게 받아들이면 맞을 것이다.


머리가 굳어가는 것을 느꼈다. 괴물을 상대로 하는 리얼 술래잡기라니... 이런 상황에서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하물며 나는 빈 손이다. 어느 도박만화에서도 이런 상황에 총은 주지 않았던가.


"어떻게 해야하는 거지? 타테냐가 있는 곳까지 다시 가야하나? 하지만 거리도 멀고 추월당할 게 뻔한데..."


비오는 날의 중처럼 중얼거렸다. 그러자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레야레... 누가 이렇게 시끄러운 거지?"


다른 사람의 목소리. 나와는 다른 누군가의 목소리. 본능적으로 물었다.


"누... 구?"


그는 출구 바로 옆에 난 길에서, 도굴꾼들이 파놓은 바로 그 길에서 내려왔다.


"야레야레. 요즘 젊은이들은 목청도 좋다니까. 저 멀리에 있어도 다 들리더군. 키미의 기차 화통 삶아 먹은 듯한 엑스터시한 목소리, 소시테 키미의 [엠생력]이!"


나이를 가늠하기 힘든 얼굴. 젊은 외관과는 달리 중후한 패션센스. 그는 자신이 쓴 갈색의 중절모를 벗으며 기묘한 자세를 잡았다.





"와타시의 이름은 킴낑꽝! 촹문대학 대학원생이자, 언젠가 교내 사천왕이 될 오토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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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감귤포장도 슬슬 뇌절인 건 인정하는데

킹치만... 재밌는 걸...


2.급히 써서 오타 엄청나더라고요. 대충 보이는 건 수정했는데 더 보이면 말씀해주삼.

3.이 세렝게티는 무료로 이집트 관광시켜 줍니다. 왜 돈주고 이집트 가니? 그들은 순간의 만남으로 빠른 피라미드를 원합니다. 
...수정했습니다. 아니 어떻게 세렝게티가 이집트ㅋㅋㅋㅋ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