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뭐야 ㅅㅂ? 꺼져!"

나는 눈 앞에 있는 남자에게 죽빵을 한대 선사하고 아까 보았던 갈림길로 달리기 시작했다. 여기가 피라미드가 아니라 정신병동이었나?

"촹문대는 또 어디 지잡대야?"

이름은 왜 또 김낑꽝인걸까. 

"야레야레, 요즘 젊은이들의 성격이란..."

뒷쪽에서 일본어인지 한국어인지 모를 궁시렁거림이 들려왔지만 시국이 시국인지라 그냥 무시하기로 결정했다. 내가 방금 뭘 본거지?

 "아 그냥 신경 꺼!"

무시하고, 그냥 앞만보고 달리자. 제주도에서는 감귤포장파나 딸기맛 미역파 같은 깡패도 있는데 촹문대학교 김낑꽝도 당연히 있겠지.

"아니 길이 안보여!"

지금 내 앞길을 비출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베드로가 준 가방에 들어있는 손전등 뿐. 그마저도 지금 달리느라 꺼내지도 못한다.

"으어어어어!"

순간, 눈 앞에 뻥 뚫린 바닥이 나타났다. 나는 가까스로 그걸 확인하고는 긴급 정지할 수 있었다.

"미친... 나 지금 ㅈ 될뻔했어!"

순간, 소름이 돋았지만 지금 여기서 여유부릴 시간 따위는 없다.

"아니 옘병 여기는 왜 이렇게 넓은거야? 내가 ㅆㅂ 두번 다시 이런 퀘스트 하나 봐라!!!"

나는 빛 한줄기 들어오지 않는 피라미드의 복도를 내달리며 절규하듯 외쳤다. 앞으로는 돈은 좀 적게 받아도 쫌 쉽고 빨리 끝나는거 위주로 좀 하자.

기괴한 웃음소리와 함께 쿵쿵거리는 소리가 지척까지 들려왔다. 저새끼에게 잡히느니 차라리 죽는게 나을것이다.

근데 나 이미 죽었는데.

"아니 미친..."

갑툭튀한 악마, 납치된 조력자와 쓸데없이 넓은 피라미드, 이보다 더 ㅈ 같을 수 있을까?

있다. 그게 바로 지금이다.

"아니 씨... 이걸 어떻게 통과해!"

내앞에는 엄청나게 넓은, 바닥이 없는 구간이 있었고 중간중간 줄 두개에 매달린 나무판때기가 놓여있었다.

이쯤되면 슬슬 무섭기보다는 짜증이난다. 여기가 피라미드야? 아니면 유격훈련장이야?

"어디 한번 계속, 계속 도망쳐 봐. 언젠간 모든게 끝나게 될거다."

악마에게 걸리면 죽을 확률이 100%. 계속 간다면 적어도 살 확률이 1%라도 생긴다. 둘중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면, 선택의 여지는 없다.

"아 몰라!"

나는 힘껏 점프해 첫번째 판에 도달했다. 굉장히 오래된 피라미드일 터인데 밧줄과 나무판이 단단하다.

"어후. 높네."

끝도 보이지 않는 허공에 다리가 저절로 후들렸다. 하지만 더 도망칠곳도 없으니 앞으로 가야만 한다.

"이젠 대각선이냐... 아주 지랄들을 해요."

다음 판은 내가 서있는 위치에서 대각선 즈음에 설치되어 있었다. 앞에도 판이 몇개 있었던것 같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없어진 모양이다.

"도망칠 수 있을것 같나?"

뒤에서 들려오는 악마의 쇳소리 섞인 목소리에 정신이 확 든다. 달려오는 악마를 뒤로한채 나는 심호흡과 함께 판을 향해 뛰어들었다.

"이런 씨!"

허공을 가르는 악마의 발톱, 판에 닿지 않은 발, 판을 향해 뻗은 팔까지. 모든 일이 마치 슬로우모션처럼 일어났다.

"살았... 살았어! 살았다고."

다행히 낡아빠진 줄과 위태로운 나무판자는 내 몸무게를 버티는데 성공했다. 뒤를 돌아보니, 그곳에는 다 낡아빠진 줄 하나만 덩그러니 고리에 매달려있을 뿐이었다.

"헿. 꼴 좋다."

나는 힘겹게 나무 판자 위로 올라서는데 성공했다. 퀘스트를 하면서 이정도로 아찔했던 경험은 처음이다. 앞으로도 이런 일은 없겠지?

"다음은..."

나는 길을 찾기 위해 앞을 보았으나 판자와 줄이 보이질 않았다. 너무 어두워서 그런건가?

"뭐야. 왜 앞에 아무것도 없어?"

자세히 보니 내 바로 앞에는 판자가 없었다. 나는 이미 없어진 판자 그 다음 위치에 몇개가 놓여있는걸 볼 수 있었다.

"이건 또 어떻게 가?"

점프는 거리가 안될것이다. 대충 봐도 3미터가 넘는데 제자리 멀리뛰기를 해봤자 손가락도 닿지 못하고 그대로 추락사 엔딩이다.

"이걸 어떻ㄱ"

나는 잠시 저 거리를 어떻게 지나가야 할지를 몰라 고민하다가 순간 균형을 놓쳐 떨어질 뻔 했다.

"으어어어! 나 방금 죽을뻔했... 잠깐만. 이거 혹시?"

휘청거리며 흔들리는 줄을 꽉 붙잡고 가슴을 쓸어내리던 순간, 나는 이 판자와 줄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네. 이거 그네 아니야?"

시험삼아 몸을 몇번 흔들자, 판과 밧줄이 앞뒤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걸 이용하면 될지도 모른다.

"좋아. 일단 최대한 멀리. 멀리 뛰어야 해."

가끔 그네로 360° 회전을 성공하는 옆반 친구나 동네 형을 본 적이 있었다. 어쨌든 그 과정을 다시 떠올리며 나는 최대한 높이 그네를 띄웠다.

"하나... 둘... 셋...!"

그네가 아주 높이 떠오르자 나는 힘껏 다음 나무판을 향해 뛰었다. 

"망했...!"

문제는, 다음 밧줄의 내구도는 영 별로였는지 오른쪽 밧줄이 끊어지며 나는 위태롭게 매달린 꼴이 되었다. 진짜 미치겠네 이거.

"아니 이거 누가 만들었어!!!"

애초에 세렝게티에 피라미드가 있는거 자체가 코미디다. 진짜 파라오가 술 쳐먹고 지은건가?

힘겹게 매달리고 있던 나는 조금씩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쪽 줄은 내구도가 아직 상당한지 내 무게를 아주 잘 버텨주고 있었다.

"젠장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여기서 이렇게 꼴사납게 죽을 순 없다. 

"좋아. 간다앗!"

나는 줄에 매달린채로 몸을 흔들어 최대한 근접하게 다음 판자에 다가가 뛰었다. 결과는 가볍게 안착 성공이다.

"좋아. 다음!"

다음 판자는 판자를 매달고 있는 줄이 하나밖에는 없었다. 그래서 더 불안정해보였다.

"왜 이리 귀찮은것만 나와?"

그나마 다행인건 이 판자가 마지막이라는 점이다. 마침내 다시 땅을 밟을 수 있다는 소리다.

"여기서 죽기는 싫다고."

이게 언제까지 버텨줄지는 모른다. 악마는 죽었지만 타테냐도 지금 위험할 수 있다.

"잠깐, 그냥 가버리면 되는거 아니야? 그럼 이 븅신같은 퀘스트 안할 수 있잖아."

그런 혼잣말과 함께 나는 도약 준비를 했다. 미끄러지면 그대로 끝이니 정확히 잡아야한다.

"간다...아?"

나는 앞 판자를 향해 뛰었으나 도약 과정에서 미끄러져 제대로 뛰지 못했다. 이러면 안되는데?

"아니 왜 그걸 미끄러져!"

추락하는 새는 그 꼴이 볼만하다고 했다던가? 나는 천천히, 날개를 잃은 새 마냥 어둠 속으로 파묻히며 추락해갔다. 

"아직 안 끝났다 인간!"

그때, 저 밑바닥에서부터 긁히는 소리가 들려오며 아까 떨어졌던 악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게 아직도 살아있다고?

"크허억...?!"

밑바닥에서 기어올라온 악마는 그대로 날 치고올라왔다. 바닥에 내팽겨쳐지는 착지가 좀 과격하긴 했어도 어쨌든 살긴 살았다.

"어디있어... 어디있냐고!"

흐릿한 시아에 반대편에서 날 찾는 악마의 모습이 보였다. 아마 추락하고있는 날 못보고 올라오다 우연히 부딪힌 모양이다.

"튀자." 

나는 힘겹게 몸을 일으켜 앞에 있는 통로로 향했다. 저게 나를 찾지 못하기를 바랄 뿐이다.

"어이가 없네 진짜. 이 지랄을 했는데 아직까지 달릴 힘이 남아있어?"

통로를 죽 달려나가던 나는 뜬금없이 든 생각에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고 보니 아직 웃을 힘도 남아있다.

"타테냐가 왕의 방에 잡혀있었지? 거기까진 또 어떻게 가야 하는거야."

이 피라미드에는 지도 같은것도 없다. 애초에 피라미드가 원래 이렇게 넓고 복잡했나? 무덤이잖아. 이렇게까지 크고 비효율적으로 설계될리 없잖아.

"뭔가 수상해. 이 피라미드."

혹시 마검하고 관련이 있나? 그럴지도 모른다.

"여긴가? 죄다 방이 비슷해."

악마를 따돌리고 나서 나는 다시 한번 피라미드 수색을 재개했다. 마검을 찾든 타테냐를 찾든 아무튼 뭐라도 찾아야 한다. 여기까지 와서 빈손으로 돌아가는건 더 열받는다.

"이 방인가?"

그때, 내 눈 앞에 상당히 수상해보이는 방이 들어왔다. 문 주위에 무슨 그림 같은게 있어서 아까 지나쳤던 방들과는 다른 느낌이다.

"좋아. 들어가보자."

나는 천천히 방 안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하지만 방 내부는 텅 비어있을 뿐 아무것도 보이질 않았다.

"뭐야? 이 방은 그럼 왜 이렇게 알록달록 한..."

나는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이유는 내 옆구리를 파고드는, 악마의 발톱 같은것 때문이다.

"여기있네~ 너 잘도 숨어서 돌아다녔겠다?"

악마가 손톱을 빼자 어마어마한 고통이 밀려들어왔다. 나는 방 내부로 쓰러지듯 들어와 바닥에 엎어졌다. 악마는 손톱을 핥으며 천천히 내게 다가왔다.

"짜증나는 놈. 차라리 널 그때 그 천사 놈이랑 같이 죽였어야 했는데."

등이 벽에 닿았다. 이번에야말로 정말 도망칠 방법이 없다. 바이브레이션까지 있는 악마의 목소리가 마치 먼 곳에서 들려오는것 같았다.

"어쨌든. 덕분에 재미는 있었다. 그 보답으로 빠르게 보내주지."

악마는 킥킥거리며 팔을 휘둘렀고 나는 저항조차 하지 못한채로 악마가 나를 죽이려고 하는걸 지켜만 볼 수 밖에 없었다.

"크어어억? 이게 무슨...!"

악마의 발톱은, 허공에서 무언가에 의해 튕겨져나갔다. 그리고 악마의 손이 점차 사라져가기 시작했다.

"어?"

옆구리를 붙잡아 겨우 지혈을 하며 눈을 감고있던 나는 잠시 무슨 상황인지 파악조차 하지 못했고 당황한 악마의 목소리가 들리자 겨우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있었다.

"뭐야... 이 열쇠."

낡고, 녹슬어서 쇠 냄새가 나던 열쇠는 서서히 빛을 내며 공중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끄아아아..."

악마는 단말마를 남기며 소멸했고 열쇠의 빛은 어느새 방 전체를 뒤덮고 있었다. 상처도 잊은채로 나는 천천히, 열쇠를 향해 손을 뻗었다.



힘겹게 눈을 떴다. 팔은 무엇인가에 의해 묶여있었고 고개를 드는것조차도 힘들었다.

"일어나렴. 작은 천사야."

여성의 목소리다. 확실한건 눈 앞에 있는 사람이 사기훈은 아니라는 것이다.

"당신은... 누구..."

고개를 들자, 염소를 닮은 악마의 두 뿔이 보였다. 

"나? 마왕이야."

마왕. 임무 수행중 조우할 수 있는 최악의 상대. 어째서 여기에 온걸까? 

"마왕? 당신이... 어째서..."

거칠게 제압당하고 묶인지라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마왕은 그 말을 듣더니 미소를 흘리며 말했다.

"글쎄? 그건 너가 알 바 아니고. 너 나랑 같이 가야 할곳이 있어. 기대하라고?"

마왕이 손짓 몇번을 하더니 포박이 풀리며 바닥에 쓰러졌다. 몇번 힘겹게 몸을 일으키려 시도하는 도중 마왕이 직접 팔을 끌어 몸을 일으켜주었다.

"이거... 놔..."

휘청거리며 겨우 중심을 유지하던 나는 마왕의 팔을 뿌리치려 했으나 뿌리치기는 커녕 마왕의 팔 없이는 걷기도 힘들었다.

"안되지~ 너가 마검을 찾는 핵심 키라고."

그러자 마왕의 입에서 나온 소리는 귀를 의심케했다.

"내가... 마검을... 찾는... 핵심... 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