쾅, 거칠게 문을 걷어차며 천사 하나가 침실로 뛰어들어왔다. 그의 얼굴에는 급한 기색이 가득했고, 경악과 놀람이 섞인 표정이 드러나있었다.


"미안, 베드로. 좀 시끄러웠지? 워낙 긴급한 사안이라."


급히 나오느라 난장판인 머리와 서두른 티가 나는 옷, 그 누구도 3대 천사이자 자칭 '천국의 알리미' 인 가브리엘이라 알지 못할 정도였다.


"일단 진정하고, 무슨 일인지 말해봐."


나는 책을 덮으며 가브리엘을 진정시켰다. 숨을 몇번 고르던 가브리엘은 천천히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천사 한명이 마왕에게 납치됐어. 지금 형이 찾으러 갔는데 자세한 상황은 아직 파악중이야."


나는 마왕에게 납치된 천사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누가 그들을 찾으러 갔는지도.


"그런가? 뭐, 알겠어. 나중에 정보가 들어오면 얘기해 줘."


가브리엘이 '형' 이라고 부르는 존재는 단 하나이다. 미카엘. 사실 그가 죄수와 하급천사를 구하러 갈리는 없다. 아마 내가 그들에게 준걸 회수하러 간것일지도.


"잠깐, 너 너무 태연한거 아니야? 지금 비상사태라고."


가브리엘은 별로 놀라지도 않은 날 보며 의아해했다. 확실히 천사가 납치되었는데 별 문제 아니라는듯 넘기는 내 모습이 좀 이상해보일수는 있다. 하지만 다 이유가 있다.


"그 정도는 이미 예상하고 있었어. 그래서 내가 그 죄수에게 그걸 넘겨준거고."


가브리엘은 내 말을 듣고 잠시 벙쪄있다 곧이어 충격으로 물든 표정을 지었다.


"잠깐... 너 설마 그걸?"


'시몬 바르요나, 너에게 그것을 알려주신 분은 사람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 너는 복이 있다. 잘 들어라.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죽음의 힘도 감히 그것을 누르지 못할 것이다. 또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도 매여 있을 것이며, 땅에서 풀면 하늘에도 풀려 있을 것이다.'


그분께서 내게 천국의 열쇠를 주셨을 때 내게 하신 말씀이다. 베드로의 이름은 그때부터 나의 이름이 되었고, 2000년이 지난 지금도 이 문구는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뭐? 이건 사기꾼에게 통장 비밀번호를 쥐어주는 꼴이라고! 그리고 그 놈은 진짜 사기꾼이고!"


가브리엘은 내 결정을 듣고는 황당해했다. 사실 이건 당연한 반응이다. 열쇠가 그 누구도 아닌 죄수의 손에 들어갔으니 놀랄 수 밖에.


"이건 너무 위험하고, 무모해. 이 천상계의 미래에게도 지금 퀘스트를 수행하는 천사와 죄수에게도. 전부 차라리 너가 나서는 편이ㅡ"


나는 손을 들어 가브리엘의 말을 저지했다. 내가 직접 나서는것도 방법이지만 그럼 지금까지 만들어오고 실행해왔던 계획이 틀어지게 된다. 


"내가 그들에게 마검 회수를 맡긴데에는 다 이유가 있어. 그리고 이제는 기다릴 시간이야."


천사는 하지 못하지만, 천국의 문지기는 하지 못하지만, 죄수라면 할 수 있는 단 한가지. 나는 사기훈이 이 일에 제격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믿는다.


"사기훈은, 무슨 수라도 써서 마검을 얻어올거야. 그러니 기다려 보자고."



굉음과 함께, 내 앞을 가로막은 돌문이 소음과 함께 박살났다. 잔해 속에서 피어오른 먼지가 하늘로 올라가며 사라졌다.


"역시, 닫힌 문을 열 때에는 열쇠를 써야지."


나는 내 손에서 은은하게 빛나는 열쇠를 꽉 쥐었다. 나를 쫒아오던 악마에게 입은 부상과 마주친 악마 두마리를 내리상대 하느라 체력적으로 한계가 슬슬 보이긴 했지만 여기서 멈출순 없었다.


'천사를 되찾고 싶다면 마검을 들고 와라.' 내가 상대한 악마들이 죽으면서 남긴 말이다. 아마 마왕이 말하라 시킨거겠지.


"이거 폐가 안좋아지는 기분이 드는데."


나는 먼지가 피어오르는 잔해를 지나 좁은 복도를 끝없이 내달렸다. 빨리 마검이든 타테냐든 뭐든 찾아야만 한다.


"생각 해 보니까 내가 왜 지금 그 사디스트 천사를 구하려고 하는거지?"


타테냐를 찾으며 달리면서도, 나는 내 행동의 이유를 알지 못했다. 같이 있는 동안 미운 정이라도 든 모양이다.


"더 이상 가지 못한다."

"멈춰라."


코너를 돌자, 악마 두마리가 갑작스럽게 튀어나와 앞길을 막아섰다. 시간 없는데 귀찮게 하네.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쳐 먹고 뒈져 ㅅㅂ!"


내가 열쇠를 붙잡고 악마를 향해 던지자, 날아간 열쇠가 섬광탄마냥 빛을 터트리며 악마 한마리가 소멸되었다. 


"공격을 막을 수 있는 수단을 버리다니, 병신같은 놈!"


그때 다른 악마가 내 손에 열쇠가 없다는걸 파악하고 발톱을 휘둘렀다. 


"떠들 시간에 공격이나 해, 븅신아"


하지만 악마가 날 병신같다고 까는 사이에 내 손에는 이미 열쇠가 들려있었다. 열쇠를 꽉 쥐고 허공을 향해 휘두르자, 악마의 발톱은 아무것도 없는데도 막혀서 튕겨져나갔다.


"아 꺼지라고!"


당황한 악마는 재차 공격하려 했으나, 이번에도 내가 더 빨랐다. 다시 한번 열쇠에서 빛이 폭발적으로 터져나오며 악마의 목이 깔끔하게 날라가버렸다.


날아간 머리는 가루가 되어 사라져버렸고 머리를 잃은 몸뚱아리는 목 부근부터 천천히 소멸되었다. 악마 두마리를 보내는데 30초도 걸리지 않았다.


"이야, 이 열쇠 꽤 쓸만한데?"


지금까지 알아낸 열쇠의 기능들은 손전등, 다용도 칼과 악마의 발톱도 막는 방패, 수류탄, 다이나마이트, 기타 등등이다.


"베드로 그 인간, 거짓말은 안 했네."


그때 베드로가 이 열쇠는 다양한 기능에 뛰어난 대 악마 전투력을 가지고 있다 말 했나? 아무튼 그 말은 사실이었다.


"네비게이션 기능은 없나?"


기왕이면 마검이나 타테냐, 하다못해 피라미드에서 나갈 수 있는 출구라도 알려줬으면 좋을텐데. 


"하긴, 그건 무리려ㄴ... 뭐야?"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열쇠에서 다시금 빛이 나오더니 바닥에 빛으로 이어진 길이 나타났다. 


"[마검] 위치로 안내합니다?"


네비게이션 기능 추가다. 이거 끝나고 집에 가져가면 안되려나? 안되겠지.


"됐고, 빨리 가자."


나는 발걸음을 급히 재촉했다. 마검을 찾고, 타테냐는... 나중에 찾자. 뭐 천사니까 괜찮겠지.


"아니, 이 벽 너머에 마검이 있다는 소리야?"


나는 멀쩡히 길을 안내해주던 열쇠의 빛이 느닷없이 벽 한쪽에서 끊긴걸 보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지금 이걸 최단 루트랍시고 안내한거야?


"설마..."


이건 천계에서 만든 물건이다. 그래서 열쇠가 나에게 잘못된 루트를 알려줄리는 없다. 그렇다면 가능성은 단 하나. 마검이 있는 방은 입구가 없다는 소리다.


"이 벽, 뚫어야겠어."


나는 다시 열쇠를 꽉 쥐고 벽을 향해 힘차게 찍었다. 그러자 또다시 빛이 터져나오며 벽이 박살났다.


"됐어..!"


이제 이 방에 있는 마검을 찾으면, 마검을 찾는다는 1차적인 목표는 클리어다. 그 다음 타테냐를 찾으러 가면 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먼지가 걷히길 기다렸고, 먼지가 사그라들자 방의 모습이 드러났다.


"나랑 장난하자는거지? 지금."


온갓 무기들로 가득 찬 방의 모습이 드러나자 나는 내면에서부터 끓어오르는 빡침을 느낄 수 있었다. 나더러 여기서 마검을 찾으라고?


"돌아버리시겠네 진짜!"


일단 '마검' 이다 보니 검의 모습을 하고 있을지 모르나 이건 마검이다. 형상과 모습을 제멋대로 바꿀 수 있다. 이 방에 쌓여있는 수많은 무기들 중 하나라는 소리다.


"뭐야. 목적지 인근 안내 종료?"


가뜩이나 열받는 와중에 열쇠가 내 분노에 기름을 붓고 부채질을 했다. 이런건 쓸데없이 디테일하게 구현해놓았다.


"아니 뭐가 마검인지 정도는 알려주고 안내 종료하라고!"


무기고에 쌓인게 무기다 보니 도저히 찾아볼 엄두 조차 나지 않았다. 애초에 마검이랑 일반 무기랑 구별하는 방법이 있기는 한가?


"미친... 방법이 없나?"


내 유일한 장점인 잔머리를 굴려보지만 정보도 없고 정보를 구할 방법도 없는 지금 상황에선 뻘짓 그 자체였다. 


"망했어. 이 퀘스트 망했다고."


베드로의 말에 따르면, 이 만능 열쇠를 사용하더라도 마왕은 못 이긴다. 따라서 이것만 가지고 싸운다는 선택지는 아웃.


그렇다면 마왕과 싸움이든 협상이든 하려면 마검이 필요하다. 근데 마검은 지금 상황에선 못찾고 노가다를 해서 찾는다고 한다고 해도 그때까지 마왕이랑 악마들이 타테냐를 살려 둘 가능성은 없다.


열쇠를 이용해서 출구를 찾아 나온다면? 퀘스트는 그대로 실패, 최악의 경우는 타테냐가 악마에게 잡히도록 내버려두었다는 죄를 물어 지옥에 쳐넣을수도 있다.


"아니 무슨 수를 쓰든 방법이 없잖아! 나더러 뭘 어쩌라고!"


순간 욱 하는 마음에 열쇠를 집어던졌다. 벽에 부딪힌 열쇠는 땡 하는 소리를 내더니 바닥을 굴렀다.


오만가지 생각들이 머리를 스쳤다. 내가 왜 여기에 와 있는지, 무엇 때문에 이런 짓을 하게 되었는지, 타테냐가 악마들에게 무슨 짓을 당할지, 등등.


"미친...ㅋㅋㅋ"


무슨 짓을 하든 최후가 ㅈ 같을것이라 생각하니, 실소가 터져나왔다. 그렇게 한 5분은 혼자서 낄낄대고 있다 보니 머릿속이 텅 비어버렸다. 덕분에 혼란 그 자체였던 머릿속이 조금 정리되었다.


"진짜 방법이 없나?"


어차피 망했다는걸 알고 있지만, 괜히 미련이 남았다. 또 다시 '마검을 찾고, 타테냐를 구할 방법'을 찾던 나는 아까 자신에게 수천번이나 했던 질문을 다시 해보았다.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내가 왜 이러고 있지?"


머리가 한번 리셋된터라 생각은 아까보다 더 빨라졌다. 내가 왜 이러고 있지?


"내가. 왜. 이러고. 있냐고."


내가 왜 이러고 있을까.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해야 하는걸까.


내가 누구인가? 살아 생전 전과 14범에 천국 재판장에서는 타테냐에게 갱생불가 쓰레기 판정을 받은 사기훈이다. 


"그래... 난 사기훈이라고. 이런짓은 나랑 안맞아."


생각 해 보니, 타테냐와 함께 다니던 동안의 나는 나 답지 않게 너무 정직했다. 타테냐의 포스기 세례에 너무 쫄아있었다. 그래서 가장 간단한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마검을 찾고 그 마검으로 타테냐를 구한다는 정직하고 왕도적인 방법은 나랑 안맞는다. 강도가 어디 취직해서 돈 버는거 봤어? 그럴 시간에 은행을 털지.


"마검이 없다면... 만들면 그만이지."


나는 그렇게 말하며 회심의 미소를 날렸다. 이제 나만의 은행을 털 시간이다.



"도르마무! 아이 컴 투 바겐!"


나는 사기꾼이다.


"어머, 드디어 왔네~ 마검은?"


정직과는 거리가 멀다는 소리이다.


"일단, 타테냐가 괜찮은지는 알고 싶은데."


통수치고, 등쳐먹고, 얍삽한 족속들. 그것이 사기꾼이다.


"뭐, 상태는 멀쩡해~ 조금만 늦었다면 악마들에게 장난감으로 던저주려고 했지만."


나는, 지금 인류 역사상 그 누구도 해보지 않은, 사기의 새로운 첫 발걸음을 내딛으려 한다.


"어쨌든 마검, 가져온거 맞지?"


이것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기가 될것이다.


"당연하지. 난 약속 하나는 철저히 지키는 사람이야."


나는, 오늘 인류 최초로 마왕을 상대로 사기를 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