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늘하...진 않았다. 피라미드 내부는 따뜻했고 무엇보다 여긴 아프리카다. 싸늘은 커녕 덥기만 한 곳이다.


"여기, 니가 원했던 그 마검이다."


가슴에 비수가 날아와 꽂히지도 않았다. 그랬다면 난 이미 죽었겄지.


"이게 마검이라고? 내가 기억하던것과는 좀 다른데?"


내가 건넨 '마검'을 본 마왕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마검을 이용해서 미소녀 여고생이 되었기 때문에 어찌보면 나보다 더 마검을 잘 알고있을지 모른다.


"너도 알고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마검은 사용자의 취향에 따라 모양을 변경할 수 있거든? 지금까지 수 없이 많은 주인을 만난 마검이 너가 알고 있는 모양과 다른건 당연한 소리야." 


마왕은 내 설명을 듣고 마검을 건네받아 몇번 휘둘렀다.


"됐지? 이제 난 그 천사를 돌려받고싶은데."


나는 타테냐를 다시 떠올렸다. 일단 마왕은 안전하게 모셔두었다 이야기는 했지만 마왕의 말은 믿기가 힘들다. 이대로 더 시간을 지체하다간 진짜로 위험해진다.


"잠깐. 사람이 왜 이리 급하실까? 아직 이게 마검이라고 단정짓기에는 일러."


마왕은 날 비웃기라도 하듯 천천히 시간을 끌며 다시 마검을 살폈다.


"내가 아는 마검은 좀 말이 많았거든? 이녀석은 조금 조용하네?"


그러고 보니, 이전에 타테냐가 준 마검의 특징 중에는 자아가 있어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써있었다.


"그... 뭐냐. 천계에서 그거 가지고 싸움이 있었어. 그 싸움 때문에 리셋이 됐나 보지. 거 의심 쓸데없이 많은걸 보면 그동안 중고나라에서 사기만 당하셨나봐? 


문제는 내가 이것에 대해선 아는게 별로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전에 배드로가 한 이야기랑 잡소리를 섞어 답변했다. 이러면 주의가 산만해져 내가 대충 둘러댄 해명 보다는 뒤에 잡소리에 더 집중하게 된다. 


"중고...나라? 그런 나라가 있었나?"


제대로 먹혔다.


"아, 맞다. 몽골에는 중고나라 같은게 없지?"


이제 '그건 그렇다 치고' 라는 문장으로 말이 시작되면 이번 턴은 안정적이게 넘긴거다.


"리셋이 됐다고? 그럼 이 마검 다시 작동시켜봐."


이전 질문을 넘기긴 했으니 위험한 상황은 피했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나도 그거 무기고에서 일일이 노가다 뛰어서 찾은거라고."


나는 손에 넣은 주머니 속에서 열쇠를 만지작거렸다. 최악의 상황이라면 마왕에게 선빵치고 타테냐라도 주워서 탈출해야 한다. 나도 그 망할 천사를 굳이 데려가야 하나 싶지만 두고 간다면 천계에서 내가 위험해진다.


"그래? 그럼 그 천사는 못 줘. 이 마검 켜는 법을 찾아온다면 줄수도 있어."


그때, 마왕은 나를 향해 검을 겨누었다. 그녀의 입은 어느새 희미한 미소를 띄고있었다.


"아니면... 진짜 마검을 찾아오던가."


설마 알아챈걸까. 나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행동했다.


"내가 지금 그게 진짜 마검이라고 몇번째 말 하는거야. 난 마검을 가져왔고, 그걸 키는건 네 몫이라고."


마왕은 내 항변을 들을 가치도 없다는 듯 칼끝을 내 목에 갔다 대었다. 어차피 난 한번 죽어서 죽는건 안무섭다.


"너 지금 니가 세다고 착각하는 모양인데. 이번만 넘어가 주는거다. 만약 이게 진짜 마검이 아니라면... 기대 해."


마왕은 그렇게 말하며 한번 나를 째려보았다. 사실 사기를 치면서 이런 상황은 너무나 많이 겪어보았기에 그리 무섭지도 않다. 난 이미 한번 죽어봤다고.


"그래 그래. 충분히 기대할께."


마왕은 내 대답을 듣자 웃으며 아까부터 옆구리에 차고있던 검을 꺼냈다. 저건 왜 꺼낸걸까.


"너, 마검이 한개가 아니라는거 들어본 적 있어?"


잠깐만. 마검이 한개가 아니라고?


마왕이 검집에서 꺼낸 검을 쥐자 검에서 은은한 붉은 빛과 함께 악마의 목소리와 비슷한 목소리가 났다.


"이번엔 무슨 일이지?"


검이 말을 한다. 베드로는 왜 마검이 하나가 아니라는 얘기를 해주지 않은걸까. 나는 어느새 열쇠를 부스라질정도로 꽉 쥐고 있었다.


"네가 마검이라면 적어도 너의 형제 정도는 구분할 수 있겠지. 저게 내가 찾고있는 마검 맞아?"


이제 더 이상 방법이 없다. 사기는 실패였고, 나는 열쇠를 주머니에서 꺼냈다. 어느새 마왕이 들고있던 마검은 점차 빛을 발하며 떠올랐다.


"하나... 둘... 세-"


"저건 틀림없이 소멸했다가 다시 나타난 마검이 맞다."


?????


"잠깐, 뭐?"


저거 그냥 무기고에서 주워온거라고. 저게 마검이었어?


"이야. 너 진짜 가져온거야? 대단하네~"


ㅅㅂ 조졌다 어떻게 마왕에게 마검을 넘길수가 있어?


"자, 마검을 얻었으니 이제 이 쓸모없는 천사는 가져 가."


마왕이 손짓하자 악마 두마리가 타테냐를 들고 와 바닥에 짐짝 던지듯 던져버렸다. 


"젠장... 타테냐. 너 괜찮냐?"


나는 일단 타테냐의 상태를 살폈다. 기절한것인지 아니면 자는것인지 모를 타테냐는 일단 겉보기에는 상처 같은것도 없이 멀쩡했다.


나는 타테냐를 옆에 눕혀두었다. 아무튼 이대로 가면 빼도박도 못하고 미션 실패다.


소원 하나를 들어주는 엄청난 능력의 마검으로 고작 미소녀 여고생이 된 저 미친놈이 마검으로 무슨 미친짓을 저지를지 모른다는건 덤이고.


"잠깐. 저 마왕 지금 다른 마검으로 소원 쓴거 맞지?"


다시한번 열심히 머리를 굴리던 나는 문뜩 떠오른 생각을 입에 담았다. 마검이 들어줄 수 있는 소원은 한가지고 마왕이 지금 들고있는건 그냥 좋은 칼일것이다.


그럼 마왕은 이제 저 마검을 이용해 무언가 알아보는 짓을 못할것이다. 그렇다면 나에게는 기회가 생긴다.


"마검을 두개씩이나 갖게 된거, 축하한다."


무슨 기회? 사기 칠 기회.


"그래 고마워~ 이제 너 볼일 없으니까 그 천사랑 함께 가봐."


마왕은 지금 마검 두개를 갖고있지만 둘 다 소원을 빌지 못한다. 그냥 잘 드는 칼 두개를 소지하고 있는것 뿐이다.


"근데 너 지금도 키는 법 모르잖아."


이런 상황에서는 운이 안 좋은것이겠지만 어쨌든 나는 운 좋게 마검을 찾아내 저 마왕에게 바쳤다. 그럼 저 마왕은 내가 작동법을 알고 있지만 말 안해주는거라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래. 모르긴 한데 너도 모르잖아."


지금 내가 하려는건 시간 끌기다. 시간을 끌다 보면 허점은 생기기 마련, 그때를 노려서 마검만 들고 튀는거다. 


"내가 왜 몰라? 내가 직접 찾아냈는데."


그리고 그걸 위해서 필요한게 사기치는거다.


"니가? 너 아까 작동방법 모른다며? 그리고 왜 굳이 지금 그걸 알려주려고 하는거야?"


나는 다시한번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내가 정말 모르고 그런 소리를 한거 같아? 그 물건 어디에서 만들어진건지는 알지?"


순간, 나는 내가 말실수한걸 깨닫고 급히 입을 닫았다. 그게 어디서 만들어진걸로 알고 그딴 소리를 한거지?


"천계의 대장장이지. 그러니까 네가 천계에서 파견나와서 그 작동법을 안다는 소리야?"


오늘따라 기묘하게 운이 좋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래서 천사도 데리고 온거 아냐. 아무튼 나는 너에게 딜을 제안하고 싶어."


조금만 더. 허점을 더 드러낼 때 까지.


"딜? 갑자기?"


나는 주변을 빠르게 살폈다. 마왕 옆 커다란 악마 두마리, 옆쪽 벽에 한마리 씩 그리고 입구에 한마리.


"그래, 딜. 지금 와 생각이 든건데 솔직히 말해서 난 너 지금 못 믿겠거든? 그래서 천계로 안전하게 돌아가고 싶어. 난 마검을 다시 활성화시키는 방법을 너에게 알려주고, 넌 나에게 안전한 퇴각로를 주는 딜. 어때?"


머리는 빠르게 돌아갔다. 공격 방법과 루트, 탈출로까지 전부 만들어 낸 나는 열쇠를 쥐었다.


"너 천계에서 파견 나왔다며? 나에게 그렇게 쉽게 마검을 넘겨줘도 되는거야?"


마왕이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그거 가지든가. 솔직히, 나는 임무보다 이 천사랑 내 목숨이 더 중요하거든? 마검 같은건 천계의 높으신분들에게나 중요하지 난 니가 그 마검으로 뭘 하든 신경 안쓸꺼야. 그냥 마왕 만나서 마검 뺏겼다고 쓰면 그만이야."


준비 완료다.


"그러니까."


나는 팔을 뻗어, 열쇠를 마왕에게 던졌다.


"그 마검 내놓으실까!"


던져진 열쇠는 포물선을 그리며 마왕 앞까지 왔고, 빛을 터뜨리며 마왕을 공격했다.


내가 던진 열쇠 때문에 마왕은 손에서 마검을 놓쳤고. 나는 그 틈을 놓지지 않고 마검을 향해 손을 뻗었다.


"너 이샠..."


마검의 자루를 붙잡은 그때, 마검에서 빛이 번쩍이더니 피라미드가 굉음을 내며 흔들리기 시작했다.


"잡았...?"


흔들리던 피라미드는 점차 먼지를 뿜어내더니 천장에서 돌덩이가 떨어져 꽂히기 시작했다.


"너. 무슨 짓을 한거야!"


마왕은 고성을 지르며 검을 뽑아들었고, 나는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속도로 움직였다.


"가까이 오지마!"


던진 열쇠를 회수한 나는 열쇠와 마검을 쥐고 마왕을 향해 겨누었다. 검에서 새어나오는 붉은 기운이 마치 화염과도 같이 일렁였다.


이건 대부분의 현대인들에게 해당되는 사안이겠지만 나는 검술이 그리 뛰어난 편은 아니었다. 그래도 내가 쥐고있는게 악마의 발톱도 막는 열쇠와 마검이었기에 이런 배짱 좋은 짓이 가능했다.


"그거 하나 뺏었다고 뭐가 될거라고 생각하니 얘야?"


마왕의 말 대로, 마검 하나 뺏었다고 해서 끝이 아니었다. 출구는 악마들이 지키고 있었고, 타테냐는 아직 깨어나지 않았다. 쪽수가 달리고 짐짝까지 달린 내가 더 불리했다.


"뭐가 될것같냐고? 그래. 뭐가 될것 같아."


작은것부터 큰것까지, 먼지와 함께 돌이 떨어져내렸다. 떨어지는 바위에 악마 한마리가 깔려 즉사했다. 


그 모습을 잠자코 바라보던 나는 소리없이 웃었다. 이제 나에게 믿을건 한가지밖에 없었다.


"보면 몰라? 이거 켜졌다고 병신아!"


어째서 마검에는 편리한 ON/OFF 스위치가 없는걸까, 검자루를 쥔 나는 생각했다. 


"그래? 그럼 이건 이제 내꺼겠네?"


쾅. 폭음에 가까운 소리가 피라미드를 울렸다. 나는 나도 모르는 새에 공격을 막아냈고 그 충격파가 피라미드 내부를 빙빙 돌며 바닥을 꺼트리기 시작했다.


"사기꾼 새끼 주제에 쓸데없이 빠른데? 이거 재밌겠어."


찰나의 순간이었다. 마왕은 몇걸음 물러나 후퇴했고 나는 검을 고쳐잡았다. 이상하게 몸이 가벼웠고 몸은 저절로 움직여 공격을 막아내고 반격했다.


"여긴... 어디지?"


그리고 공격을 막아낸 직후, 머릿속에서 낮선 목소리가 울렸다. 여기 있는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면 이 목소리의 주인은 명확했다.


"야. 너 마검 맞지?"


나는 마검에게만 들릴 정도로 속삭였다. 목소리는 내 질문을 듣더니 짧게 답했다.


"내가 마검이었나? 잘 모르겠네."


진짜 열받게 만든다. 나는 다시 한번 또박 또박 힘주어 말했다.


"니가 마검이냐고. 시간 끌지 말고 대답해."


이번에는 내 목소리가 들렸던것인지 마왕의 비꼬는듯한 말이 들렸다.


"이제 검이랑 대화하는거야? 더 이상 사기는 안통해."


마왕은 내가 깨어나지도 않은 마검과 대화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또다른 마검을 들고 나를 향해 돌진해왔다.


"그런 것 같아. 그럼 네가 내 새로운 주인이니까 소원 하나를 들어주어야 하나?"


두 마검이 맹렬히 부딪히며 사방으로 쉴새없이 불꽃이 튀었다. 그리고 그런 혼란 속에서 마검의 대답이 들려왔다.


"그래. 그러니까 나 소원 하나만 들어주라."


베드로는 만약 내가 마검을 사용한다면 오성전자인가 뭔가 하는 지옥으로 보낸다고 했었다. 사실 이쯤 되면 더 이상 무서운것도 없었다. 모든 공격을 막아낸 나는 검을 휘두르며 외쳤다.


"아주 끝내주는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