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 하나 자라지 않는 삭막한 황야에 한 남자가 걷고 있었다. 백발이 성성한 노구의 남자는 불어오는 맹렬한 모래폭풍에도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세월의 흐름으로 인해 상당히 쇠한 노인이었지만 그의 거대한 덩치와 몸 곳곳에 나있는 흉터들은 그가 어떤 삶을 살아 왔는지 그다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아직도 멀었나..."


 한참을 쉬지 않고 걷고 있던 노인은 그렇게 말하고는 자신의 주머니에서 작은 기계를 꺼내 들여다 보았다. 오래되고 낡아 군데군데에 흠집이 난 그 기계의 액정에는 작은 초록색 점이 반짝이고 있었고 액정 하단에는 "98KM"라고 써져 있었다.


 '... 그때 그 똘마니 자식들한테 습격 당하지만 않았더라면 이렇게 까지 고생하지 않았을 것을..."


 그렇게 생각하고는 노인은 그 습격 때 부상을 입은 오른쪽 어깨를 만지작거렸다. 그 흉터를 어루만지며 노인은 나날이 몸은 노쇠해져가고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이들에 의해 상처만 늘어간다는 그 사실에 끔찍한 무력감을 느꼈다. 곧이어 그 무력감은 쌓여온 피로에 커다란 무게를 더해 노인을 주저앉게 만들었다.

 주저앉은 노인은 자신이 겨우 그런 무력감과 피로에 무너져 쓰러졌다는 사실에 부끄러움을 느끼며 어깨에서 배의 오래된 흉터로 손을 옮겼다. 그 흉터에 손을 대는 순간 노인의 머릿속에서 그날의 끔찍한 모습이 생생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날 그 상처를 입으며 느낀 격통과 슬픔, 분노가 마치 다시 그때 그 자리에 서있는 것처럼 그의 온 몸을 타고 올라왔다. 그 기억을 떠올리고 나서야 노인은 쇠락한 껍데기를 꺼지지 않고 타오르고 있던 분노로 겨우 일으키기 시작했다. 


 "부우우우우웅..."


 노인이 몸을 전부 일으킨 그 때, 노인의 뒷편에서 오토바이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노인은 그 썩을 놈들의 패거리가 복수를 위해서 여기까지 쫓아왔다고 생각하고 허리춤에서 권총을 뽑아 들었다. 노인은 저 멀리에서 모래바람을 일으키며 달려오는 오토바이를 향해 권총을 조준했다.

 하지만 무언가 이상했다. 오토바이 부대가 아닌 오토바이 단 한대 만이 이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그 패거리가 복수를 하기 위해 여기로 접근하고 있었다면 2~30명 정도는 떼로 몰려왔을 것이 분명한 사실이었다. 노인은 권총을 내리고는 오토바이에 타고 있는 사람을 유심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노인의 파란 눈에 들어온 오토바이 운전수의 정체는 매우 의외의 것이었다.


 "꼬맹이...?"


 기껏 해봐야 13~14살 정도 밖에 되어 보이지 않는 꼬마가 할리 데이비슨을 타고 자신을 향해 달려온다는 사실은 깨달은 노인은 폭탄조끼라도 입힌 것이 아닌가 싶었지만 그 아이는 웃통을 깐 채로 몸에 그 어떤 무장도 하고 있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그 꼬마가 위협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노인은 가지고 있던 권총을 다가오는 오토바이 근처의 땅을 노리고 두 발 사격하였다.

 그럼에도 오토바이에 타고 있던 소년은 멈추지 않고 달렸다. 노인은 그 모습을 보고는 잠시 망설이다가 소년을 향해 총을 다시 한 발 발포하였다. 날아간 총탄은 노인의 내공을 증명이라도 하듯 소년의 왼쪽 팔을 정확히 명중했다. 소년은 그 격통을 버티지 못하고 얼마 못 가 오토바이로부터 굴러 떨어져 버렸다. 

 노인은 천천히 오토바이를 향해 걸어갔다. 


 "후에고 보낸 개자식이냐!"


 노인이 오토바이 바로 앞에 도착했을 즈음에 바닥에 쓰러져있던 히스패닉 소년은 스페인어로 그렇게 소리치고는 한참 동안 심한욕과 비명을 섞어 내지르더니 곧 홀스터에서 리볼버를 꺼내려고 들었다. 그 모습을 보고는 노인은 권총으로 땅바닥에 위협사격을 한 번 하고는 유창한 스페인어로 말하기 시작했다.'


 "움직이지 말고 손을 머리 위로 올려라."


 소년은 그 말을 듣고는 홀스터에서 조용히 손을 떼고는 양손을 머리 위로 들었다.


 "도대체 무슨 착각을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나는 후에고랑은 척을 진 사람이면 진 사람이지 결단코 그 썩을 놈의 개는 아니다."


 그 말을 듣고는 소년은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말했다.


 "그럼 도대체 나를 왜 쏜거지?"


 "이게 필요했을 뿐이다."


 그렇게 말하고는 노인은 턱 끝으로 할리 데이비슨을 가리켰다.


 "후에고가 고용한 청부업자가 아니라 그냥 좀도둑이란 말이냐?"


 "이 늙은 몸으로 이 황야를 건너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


 그렇게 말하고는 노인은 소년을 한손으로 조준한 채로 넘어진 할리 데이비슨을 세우고는 말했다.


 "키를 넘겨라."


 "... 싫다면?"


 "내가 딱히 널 쏘지 않을 의리 같은 건 없을텐데. 배짱도 좋군."


 "죽어도 그 오토바이는 주기 싫어. 이 노친네야. 가져갈거면 내 머리에 바람구멍이라도 내고 가져가던가."


 노인은 그렇게 말하는 소년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 안에는 강렬한 의지가 느껴져 그저 허세로만 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 챌 수 있었다. 


 "... 후에고 패거리한테 쫓기고 있었나?"


 "내 사정은 좀도둑이 알아서 뭐하려고."


 "나는 단순히 좀도둑이 아니다. 너랑 같이 후에고에게 큰 원한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지."


 "하! 내가 후에고한테 원한을 가진 놈이 이 동네에 한 두놈도 아니고 다 늙어빠진 좀도둑 노친네하고 같은 취급 받고 싶지 않거든?"


 "후에고가 고용한 청부업자 걱정을 하는 걸 보면 그놈한테 사기라도 쳤거나 아니면 도망친 조직원이겠지."


 "노친네 귀가 먹은거야? 난 당신 노망을 끝까지 들어줄 생각이..."


 소년이 그렇게 말하던 도중에 노인은 방아쇠를 당겼다. 뜨거운 납탄은 순식간에 소년의 오른쪽 허벅지를 스쳐지나갔다. 갑작스러운 격통에 소년은 그 자리에서 무너져 바닥을 뒹굴기 시작했다.


 "애송이. 내가 정말 중요한 인생의 교훈을 알려주마. 인생이라는 거친 황야를 건널 때, 네 얼굴에 옹졸하게 뚫린 그 아구창에서 새어나오는 객기를 주체하지 못해서 경험 많은 사람을 무시하면 네놈이 죽었다는 사실은 네놈 시체를 뱃속에 넣은 대머리 독수리 밖에 모르게 될 거다."


 "끄으으으아...아아악! 끄흐흐으윽..."


 "딱 한번만 물을거니까 빠르게 대답해라. 내 제안을 들을거냐?"


 "들을게! 들을거니까 그만 쏘라고!"


 "좋아."


 그렇게 말하고는 노인은 소년에게 다가가 그의 몸의 뒤져 권총과 키를 빼앗고는 품에서 깨끗한 천을 꺼내 총을 맞은 다리와 팔에 감아주고는 간단한 응급처치를 하고는 소년을 들쳐 매고 할리 데이비슨으로 옮겼다. 자신 또한 할리 데이비슨에 탄 후 노인은 그대로 시동을 걸고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한참을 나아간 후에야 노인은 입을 뗐다.


 "나이가 몇이지?"


 "... 열 다섯."


 "어리군. 그 정도 나이면 후에고씩이나 되는 놈을 등 쳐먹으려다가 쫓길 리는 없을테지. 그렇다면 조직원이였던거냐?"


 "조직원은 무슨. 노예였지."


 그 말을 들은 노인은 미간을 찌푸렸다. 후에고 녀석이 어린 아이들까지 동원해서 본인 배에 기름을 채우는 데에 쓰고 있다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이런 꼬맹이까지 쓰고 있었을 줄은 몰랐던 노인은 자신의 뒤에 앉아있는 소년을 흘깃하고 쳐다보았다. 본인의 나이보다 조금 더 어려보이는 왜소한 체구에 마른 몸을 보아하니 제대로 된 사람 취급조차 못 받은 듯했다.


 "... 고생이 많았겠군"


 "자꾸 내 과거는 그만 들추고 총까지 쏴가면서 나한테 들려주려고 했던 제안이나 말해줄래?"


 "... 그렇군. 나도 젊은 시절에 후에고와의 악연이 있었다. 긴... 긴 악연이지."


 그렇게 말하고는 노인은 눈을 질끈 감고는 증오스러운 그 남자의 얼굴을 떠올렸다. 결혼식장에 쳐들어와서는 거기에 있던 모든 이들을 쏴 죽이던 그 남자와 패거리들의 얼굴이 머리 속을 떠다니고 그 장소의 비명과 끔찍한 피비린내가 다시 노인의 귀와 코에서 느껴지는 듯했다.  그 아수라장의 기억을 한동안 떠올리다 노인은 숨을 고르고는 말을 이어갔다.


 "나는 그 놈을 죽이기 위해서 찾아가고 있다."


 그 말을 들은 소년은 어이가 없다는 듯 크게 웃기 시작했다. 한동안 멈추지 않고 웃던 소년은 말했다.


 "역시 당신은 그냥 노망난 노친네가 맞았어! 후에고를 죽이겠다고? 이 황야에서 가장 큰 갱을 통솔하는 그 남자를?"


 그렇게 말하고 소년 그 후에도 한참동안 끄윽끄윽 거리며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간부들 빼고는 그 위치도 아는 게 힘들다는 그 인간을 어떻게 찾으려고?"


 "이 기계다."


 그렇게 말하고는 노인은 작은 기계를 꺼내 보여주었다.


 "그게 뭐하는 물건인데?"


 "구형 위치 추적기다. 예전에 그 녀석한테 추적 칩을 심어 놓았지. 그걸 쫓고 있는거다."


 "추적 칩...? 예전에 심어 놓았다고?"


 그렇게 말하고는 소년은 한참동안 노인의 얼굴은 노려보았다. 이윽고 소년은 소리쳤다.


 "당신 혹시 그 '와일드 제임스'야? 전설의 갱 두목인 와일드 제임스?"


 "... ..."


 "오. 신이시여. 진짜로? 그 '와일드 제임스'가 내 앞에서 할리 데이비슨을 몰고 있다고?"


 "... 너 같은 애송이가 내 이름을 알고 있을 줄은 몰랐는데."


 "애송이라고 모를 이름이 아니잖습니까! 한때는 이 황야의 지배자의 자리까지 올라갔던 전설적인 남자를 어떻게 모르겠냐고요!"


 "방금까지 노망난 노친네라고 한 인간이 그런 사람이라고 하니 놀랍나?"


 "이때까지의 무례는 전부 사과할겠습니다. 당신은 완전 나의 우상이라고요. 어릴적에 당신 이야기를 들으면서 후에고한테 한방 먹이는 상상을 얼마나 했는 줄 아십니까?"


 소년은 들뜬 마음을 주체 하지 못하고 다친 팔까지 휘둘러가면서 떠들기 시작했다.


 "젠장! 진작 말하지 그랬어요? 와일드 제임스라는 걸 알았다면 제발 돕게 해달라고 빌었을거라고요. 제안은 무조건 오케이입니다."


 "그럼 나대신 후에고의 총알을 맞아줄 수 있겠나?"


 "그... 그건..!"


 "대답할 필요는 없다. 애초에 그런걸 시킬 생각은 눈곱 만큼도 없으니까."


 노인이 그 말을 하고는 침묵이 흘렀다. 노인은 자신이 이 애송이에게 자기 얘기를 더 떠벌려봐야 좋을 게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입을 더 이상 떼지 않았다. 소년 또한 그가 와일드 제임스라는걸 알았기 때문에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그 침묵 속에서 노인은 후에고 있을 마을에서 이 할리 데이비슨을 넘겨주고 자신은 할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하고는 노인은 기계를 들여다 보았다. 3km. 이제 거의 다 왔다. 이 끝도 없는 황야를 가로질러 이제야 끝에 다다른다. 그렇게 생각하던 찰나 할리 데이비슨의 앞바퀴가 터져버리고는 노인과 소년은 그대로 바닥에 내팽겨쳐졌다. 바닥에서 한참을 뒹군 두 남자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저 멀리에서 날리는 흙먼지였다. 7대의 오토바이가 일으키는 커다란 흙먼지에는 후에고의 상징인 커다란 해골이 그려진 두건을 쓴 남자들이 타고 있었다.


 "망할! 후에고 놈들이 쫓아온건가?"


 소년이 그렇게 외치고 있는 동안 노인은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아직 그들은 우리들의 뒤에서 쫓아오고 있었다. 그렇다면 오토바이의 앞바퀴를 터트린 건 누구인가? 그런 의문에 노인은 주변을 유심히 살피기 시작했다. 그렇게 살펴보자 저 멀리 바위에서 무언가 반사되어 반짝거리는 것이 보였다.


 "엎드려!"


 그렇게 외친 노인은 소년을 감싸기 위해서 몸을 날렸다. 황야에는 총성이 울려퍼지고 몸의 날린 노인의 옆구리에서는 피가 흘렀다.


 "제임스!"


 소년은 그대로 쓰러져 버린 노인을 보고 소리쳤다. 다가오는 소년에게 노인은 말했다.


 "멍청한 놈! 고개 숙여!"


 다시 한 발. 소년의 발치에 총알이 날아와 박혔다.


 "제길! 괜찮은거야?"


 "내 걱정은 딱히 할 필요없다."


 그렇게 말하고는 노인은 리볼버를 꺼내 소년에 건내주면서 말했다.


 "이 리볼버로 저기 저 바위에서 쏘고 있는 놈을 처리해라. 안 그러면 둘 다 죽을테니까."


 "그럼 저기 오는 후에고 놈들은 어쩌고?"


 "그런 쓸 데 없는 걱정은 하지 말고 빨리 잡으러 가기나 해!"

 

 노인의 호통에 소년은 그대로 리볼버를 건내받고는 욕설을 마구 내뱉으며 저격수 쪽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노인은 그걸 확인하고는 상처를 부여잡고 한 팔로 기어서 오토바이에서 떨어지면서 떨어트린 권총을 주웠다. 그는 숨을 고르고는 달려오는 무리의 제일 선두를 달리던 남자의 머리를 날려버렸다. 제일 앞의 남자가 굴러떨어지자 거기에 휘말려 두명이 오토바이에서 떨어졌다. 나머지 남자들은 그럼에도 굴하지 않고 노인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다. 

 노인은 신중히 남은 잔탄의 수를 생각했다. 여덟 발. 일곱 발. 여섯 발. 다섯 발. 그렇게 노인이 세는 잔탄의 수가 줄어들 수록 상대의 수도 줄어갔다. 네 발, 그리고 세 발째를 쏘았을 때 달려오던 넷은 이미 시체가 되어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남은 둘은 멀리서 자신들이 가진 수류탄을 던지려고 들었다. 노인은 그러한 노력이 가소롭다는 듯 각각의 수류탄을 들고 있는 손을 쏘아서 바로 자신의 앞에서 수류탄을 터지게 만들었다.

 순식간에 모든 갱을 죽여버린 제임스는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리볼버를 노인에게 겨누고 있는 소년이 서 있었다.


 "... ... ... 애송이..."


 노인은 자신의 안일함을 후회했다. 후에고. 그 개자식이 어떤 자식인가? 15년전 은퇴해서 다들 죽었다고 생각하는 자신의 이름을 입에서 꺼낼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다. 이 애송이가 후에고가 보낸 암살자였다고. 노인은 지그시 눈을 감고 가족들을 떠올렸다. 아내. 아들. 딸. 손주. 결국 이 인생이라는 황야를 건너지 못하고 죽어가는 자신을 가족들은 저 세상에서 반겨줄 것인가. 노인은 그런 걱정을 하며 죽음을 받아들일 준비를 했다.


 "탕!"


 황야에 울려퍼지는 리볼버의 총성이 지나가고 노인의 등 뒤에서 사람이 쓰러지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에 노인은 천천히 눈을 뜨고 소년을 바라보았다.


 "적이 죽었는지는 제대로 확인해야죠. 안 그렇습니까?"


 "... ..."


 "그것보다 빨리 상처를 치료해야죠. 아까 그 천 남아 있습니까?"


 노인은 말 없이 품에서 남은 천을 꺼내주었다. 천을 건네 받은 소년은 응급처치를 하기 시작했다. 


 "... 애송이. 부탁이 하나 있네."


 "그만 말하십시오. 상처가 벌어집니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은 다 죽어가는 노친네가 하는 마지막 넋두리니까 아무 말도 하지 말고 들어주지 않겠나?"


 "... 네."


 "... 좋아."


 노인은 한숨을 길게 내쉬고는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나는 이 황량한 동네에서 태어나 불량배 아버지 밑에서 자랐네. 그건 곧 불량배가 될 운명이었다는 뜻이지. 넘치는 혈기와 객기로 사람들에게 행패를 부리고 무리를 이루고 힘을 과시하고 그걸로 밥을 벌어먹는 때가 오고 자연스레 누군가에게는 상처를 입히고 누군가와는 형제가 되었지."


 "..."


 "그런 삶의 방식으로 황야를 건너던 나에게는 억천금을 주어도 바꾸지 않을 친구가 있었네. 그게 누구였는지 아나?"


 "..."


 "후에고였네."


 소년은 묵묵히 붕대를 감다가 놀란 얼굴로 노인을 쳐다보았다.


 "후에고와 내가 처음 만난 건 15살 때였네. 둘 다 무서운 게 없는 나이였고 이놈이고 저놈이고 다 때려눕히고는 우리가 왕인 것처럼 굴며 살았네. 승승장구한 우리는 이 황야의 지배자의 자리에 까지 올랐고 부족한 것 없는 삶을 살 수 있게 되었지."


 "..."


 "이윽고 나는 가족을 가지게 되었네. 평생 사랑할만한 여자를 만나 결혼했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사내아이 하나와 딸아이 하나를 얻었지. 그 일은 나의 인생을 돌아보게 해주었네. 폭력과 피로 점철된 내가 이때까지 걸어온 길을 나는 바로잡고 싶어했네. 그래서 나는 우리가 하는 어두운 사업들을 철수하고 올바른 일들을 하고자 했네."


 "..."


 "하지만 후에고는 그런 나의 결정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네. 그는 영원히 이 황야의 왕이 되고 싶어했지. 우리 둘의 의견 차이는 전혀 좁혀지지 않았고 나는 그의 측근들과 그를 이 황야에서 쫓아냈네. 차마 그때 후에고를 죽이지 못했던 일이 내 인생에서 가장 크게 후회하는 일이 될지는 그때는 전혀 알지 못했지만 말일세."


 "..."


 "그런 작업 후에도 꾸준히 그의 측근이나 추종자들이 조직 내에서 나왔네. 그런 이들은 어쩔 수 없이 죽여야만 했고 그러한 행동은 항상 나 자신이 위선자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네. 물론 내가 위선자가 아니었다는 말은 아니네. 결국 손에 피를 묻혀오던 그 과거가 결코 자신 손을 떠나지 않는다는 걸 애써 부정해 보려고 한 멍청한 애송이의 자기 합리화였다는 건 의심할 여지도 없겠지."


 "..."


 "결국 그런 자기합리화는 결국 과거의 업보에 의해 가장 끔직한 결말을 맞았네. 자신의 딸의 결혼식이라는 인생의 가장 행복한 날에 모든 가족이 죽고 아끼던 측근들도 끔직한 죽음을 목격해야만 하는 결말을 본 것일세."


 그렇게 말하고는 노인은 배에 난 오래된 흉터 자리를 어루만졌다. 쓸쓸한 눈으로 노인은 그때의 기억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아내는 눈에 총을 맞고 즉사해버렸고. 아들놈은 2살배기 손자를 감싸다가 죽어버렸네. 측근들은 기관총 세례에 피를 뿜으며 쓰러졌고 딸은 벌집이 되어서 끔찍한 몰골로 쓰러져서 하얀 드레스가 온통 빨갛게 물들었네. 그리고 손자는..."


 노인은 해가 저물어가는 하늘을 바라보며 기억을 더듬었다. 이제는 기억조차 어렴풋한 손자의 얼굴을 떠올렸다.


 "제 아비하고는 하나도 안 닮고 히스패닉 며느리를 닮은 손주놈... 딱 컸으면 자네만 했겠구만. 그 애는 내가 겨우 빠져나오고 나서 살아남은 측근들이 찾아보았지만 시체조차 찾지 못했네."


 "..."


 "그렇게 나의 업보에 죽어나간 가족들의 시체를 뒤로 하고 나는 황야를 건너기 시작했네. 언제 다 건널지도 모르는 이 드넓은 황야를.."


 그 말을 하고는 노인은 눈을 질끈 감았다. 마음 안에 응어리진 마음이 조금은 빠져나가 몸이 가져나간 듯 했다. 이윽고 노인은 이렇게 생각했다. 


 '오늘에야말로 이 황야를 건널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고는 노인은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벌떡 일어서 기계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걸어나가기 시작했다.


 "잠깐만 기다십시오! 그런 상처로는 후에고가 있는 곳까지는..."


 "이때까지 뭘 들은건가? 이 지긋지긋한 황야를 건너려면 지금밖에 없단 말이네. 여기서 멈춰 설 수는 없네."


 그러고는 노인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걸어나가는 노인의 뒤로 얼마 안 있어 소년이 갱들이 타고 온 오토바이를 타고 다가왔다.


 "타십시오. 그렇게 걸어가다가는 도착하기도 전에 지쳐 쓰러질 겁니다."


 노인은 말없이 오토바이에 올라탔다. 소년은 굉장히 빠른 속도로 오토바이를 몰기 시작했다.


 "... 그렇게 길게 말씀하셨으니 저도 제 과거를 좀 얘기해야겠습니다."


 "..."


 "저는 양친이 누군지 모릅니다. 기억이 있기 전부터 후에고한테 거둬져서 그 밑에서 아주 힘든 나날을 보냈죠. 소매치기 같은 잡일을 명령 받아서 하면서 실컷 맞으면서 자랐죠. 후에고는 저를 엄청 미워했습니다."


 "..."


 "그러다가 어제 겨우 후에고한테서 달아난 겁니다. 인생 최고의 순간이었죠."


 "... ...."


 "후에고한테 데려다 드리고 저는 이 지긋지긋한 동네를 떠날겁니다. 떠나서 여길 나가면 바다라는 곳을 가보려고 합니다."


 "바다라..."


 "가보셨습니까?"


 "... 딱 한번 가봤지만 아주 멋진 곳이었지. 거기서 지내면 분명히 행복할 걸세."


 "좋네요... 정말로."


 그 대화를 끝으로 그들은 마을에 도착할 때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노인은 자신이 느끼는 한 가지 가능성에, 소년은 자신의 상황에 대한 고민으로 머리가 가득 차 도저히 대화를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오토바이는 마을에 접어들고 기계의 단위는 m로 바뀌어 점이 거의 자신의 위치에 일치했을 때 노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작은 선술집이었다. 


 "황야의 끝..."


 선술집의 이름을 나지막히 소리내어 읽은 노인은 소년에게 여기에서 내려달라고 애기했다. 노인은 문을 열고 선술집 안으로 들어갔다. 저녁 시간임에도 그 선술집에는 남자 한명만이 자리에 앉아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고집스럽게 생긴 히스패닉 노인은 사람이 들어오는 발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후에고."


 "제임스."


 후에고는 시가를 꺼내서 한 모금 빨고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거의 13년만인가?"


 "그래. 오래도 지났군."


 "가족들은 잘 있고?"


 그 말에 제임스의 얼굴은 심각한 분노로 일그러졌다. 순식간에 권총을 뽑아 든 후에고의 오른 어깨에 총알을 박아 넣었다.


 "끄으으읏..."


 "잘도 그런 말을 그 아가리로 지껄이는군."


 "끄하하하하하... 쿨럭! 쿨럭! 역시 무르구만. 왜 바로 머리를 쏘지 않았지?"


 "네놈한테 묻고 싶은 말이 있어서다."


 "오..? 그 질문이 뭐지."


 "네놈이 나를 죽이려고 보낸 꼬맹이. 그 아이는... 내 손자냐?"


 그 말을 들은 후에고는 그대로 박장대소를 하기 시작했다. 


 "크하하하하하하... 쿨럭! 쿨럭! 크하하하하하... 손자냐고? 아니아니... 그거보다 조금 더 재미있는 관계지."


 "그래?"


 "그래... 더 재미있는..."


 그 순간, 순식간에 후에고는 리볼버를 꺼내들었다. 제임스는 재빠르게 방아쇠를 당겨서 후에고의 머리를 맞췄지만 이미 후에고의 총탄은 제임스의 배 정중앙을 관통했다. 제임스는 그대로 비틀거리며 선술집의 벽에 기댔다.

 노인의 드디어 황야를 건너 황야의 끝에 눕게 되었다. 노인은 자신의 마지막을 직감하며 눈을 감으려 했다. 하지만 그 마지막 순간을 방해하는 문소리가 들려왔다. 문으로 들어온 것은 소년이었다. 소년은 리볼버를 꺼내 노인을 겨누고는 말했다.


 "... 후에고는 어릴 때부터 제 아버지의 이름이 위키드 조라고 하더군요."


 "위키드... 조..."


 노인의 머릿속에서 그 이름을 듣고 떠오른 사람은 후에고의 측근이었던 남자였다. 분명 결혼식 사건 1년전 쯤에 숙청당했었다. 노인 본인이 직접 죽인 사람이었으니 기억이 틀렸을 가능성은 없었다.


 "후에고는 당신이 제 아버지를 죽이고는 뻔뻔히 지배자로써 살았다고 얘기해줬습니다."


 "... 그래서 복수를 하려는 것이냐?"


 "... 하지만 후에고는 저를 매우 미워했습니다. 자신의 측근의 아들을 대하는 태도가 아니였죠."

 

  "... ..."


 "그래서 당신한테서 진실을 알아내고 싶었습니다."


 "거기서 들은 사실은 나한테 네 또래의 생이별한 손자가 나한테 있다는 사실..."


 "... 도저히 어느쪽이 사실인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어떻게 하면 좋을지도 모르겠고요."


 "나처럼 모자란 놈한테 자네한테 가르쳐 줄 말은 없네."


 "... ..."


 "하지만 부탁이라면 있네."


 "... 뭡니까."


 "바다로 가게. 이 피와 악의로 물든 황야에서 벗어나로 바다로 가서 이곳에서 겪었던 모든 것을 버리고 새 삶을 살게. 그리고 그 새로운 삶을 살면서 무언가 악한 일을 하고자 할 때는 이 노인네를 떠올리게. 평생을 폭력과 후회. 복수로 가득찬 삶을 산 이 멍청한 노인네를 말일세."


 "... 알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는 걸어나가려는 소년을 노인은 불러세웠다.


 "잠깐만. 하나 더 부탁이 있네. 날 죽여주게."


 "네...?"


 "자네가 조의 아들인지 내 손자인지는 나도 모르겠네. 아마 앞으로 아무도 알지 못하겠지. 그러나 어느 쪽이라도 좋네. 자네는 그 어느쪽이던 내가 살아온 이 끔찍한 인생의 피해자네. 그러니까 자네 인생에 있을 마지막 복수를 하게."


 "하지만..."


 "정말 이제 살아남을 가능성이 없는 늙은이의 마지막 부탁이네. 제발. 제발 들어주게."


 소년은 자신의 오른손에 있는 리볼버를 잠시동안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윽고 소년은 결심한 듯 리볼버를 노인에게 들이대고 말했다. 


 "안녕히 가십시오."


 노인은 매우 환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고맙네."


 선술집에는 커다란 총성이 울렸다. 소년을 곧장 선술집을 나왔다. 이미 어두워진 하늘에서는 북극성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소년은 오토바이를 타고 그 별을 따라 황야를 벗어나기 위해 바다를 향해 달렸다. 언젠가 소년은 이 황야를 벗어나 후회많은 노인과는 다른 삶을 살 것이라는 것은 명확했다. 황야의 끝에 누워 기다리는 노인이 그 길을 가리켜 줄 것이 분명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