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바람이 휘날리는 평원 위를 한 남자가 걷고 있었다. 거적때기에 가까운 옷에 카우보이 모자를 쓴 남자는 양 권총집에 작동은 되는지 의심이 가는 낡은 콜트 싱글 액션 아미를 쑤셔 넣고 터덜터덜 정처없이 평원 위를 움직였다. 보안관이나 핑커톤 전미 탐정사무소 소속이라고 하기엔 행색이 너무나 너저분 했고, 이 미국 서부 평원에 악명을 떨치는 무법자라고 하기엔 그 흔한 말 한 필 타고 있지 않았다. 몇 시간, 며칠이나 이 드넓은 평원을 걸었을 까, 남자는 마침내 사람이 여러 번 지난 길 위를 걷다 자그마한 마을을 발견했다. 마을엔 꼭 술집이 있다. 남자가 술집 문을 열고 들어오자 자연히 술집 안의 모든 시선에 남자에게 쏠렸다. 거지보다도 못한 추레한 행색에 성격 나쁜 자들은 코웃음을 쳤고, 긴 시간 여기서 일해온 술집 주인 마저도 카운터 아래 놓인 더블 배럴 샷건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남자는 카운터 앞에 다가와 몸을 기대더니, 주머니에서 낡디 낡아 누렇게 뜬 종이를 주인에게 보였다.


“본 적 있소?”


흐린 흑백 사진 안에는 웬 멕시코인이 있었다. 진한 눈썹에 작은 코를 가진, 판초를 쓴 빼빼마른 남자, 현상수배 범이었다. 술집 주인은 무관심하게 답했다.


“술이든 뭐든 시키시죠. 그럼 뭐라도 답해 드리리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술집 주인도, 술집 안의 사람들도 거지보다 못한 꼴의 남자가 뭐라도 살 수 있으리라곤 생각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과거 보안관 출신이던 술집 주인을 자극해, 그자의 머리통이 날아가는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기대는 동전소리와 함께 부서졌다.


“1달러. 이거면 되오?”


술집 주인조차 일순간 당황하더니 잽싸게 맥주를 꺼내 잔에 따랐다. 남자가 말없이 맥주를 마시자 주인은 다시 그 현상수배서를 바라보다 그 밑에 적힌 그자의 이름을 읽었다.


“구… 구스타보… 자비르…?”


“하비에르.”


맥주를 비운 남자가 술집 주인의 말을 정정했다. 곧이어 남자는 모자를 벗고 술집 주인을 바라보았다. 몇 달을 방랑했음에도 뒤로 넘긴 머리카락은 약간 긴 수준이었지만 반대로 코와 턱에 난 수염은 덥수룩했으며 추레한 행색과 정 반대로 곰 같은 덩치와 부드러운 눈매를 가진 남자는 그 낡은 현상수배서를 다시 가져와 가방에 넣었다. 술집 주인이 말했다.


“하비에르. 그래, 기억이 대충 나는구만. 5년쯤 전이었나? 이 마을에서도 유명했지. 뭐, 그 ‘와일드 키드’를 모르는 사람은 이 서부에 한 명도 없지만 말이야.”


술집 주인은 혼자 킬킬거리며 웃더니 다시 잔에 맥주를 따랐다.


“받아. 옛날 생각을 떠올리게 만든 너한테 내가 주는 거다. 잘 들으라고.”


그 말에 술집의 다른 이들도 두 사람 가까이로 몰려들었다. 술집 주인은 턱을 만지며 말을 이어갔다.


“그 악명높은 ‘와일드 키드’ 갱단은 서부에 모르는 사람이 없지. 하비에르라는 놈은 그 갱단 소속이었어. 그래, 소속 ‘이었지’. 이 미국 전역에서 무려 1000달러나 되는 현상금이 걸려 있었으니까. 주요 갱단원의 기본 현상금이 1000달러인 무서운 놈들이었지. 그 놈 들을 이끌던 리더가 내 기억이 맞다면 와일드 부치였을 거야. 나는 5년 전까지 보안관이었는데, 7년 전 어느 날 그 놈 들이 이 마을에 들이닥친 적이 있었어. 선두에 그 와일드 부치가 있었고, 그 하비에르란 놈은 중간 즈음에 있었지. 갑자기 마을 은행에 들이닥쳐선 총질을 해대며 은행을 털고, 쫓아오는 보안관들을 죄다 쏴 죽여버린 다음 저 멀리 사라졌어. 심심하면 신문에 나와 악명을 떨치던 와일드 키드 놈들이 사라진 게 딱 5년 전이야. 제 꼬리에 자기가 걸려 넘어진 거지. 핑커톤에 주방위군, 정부의 심기까지 건드린 와일드 키드는 그 셋의 연합 공격에 박살이 났어. 와일드 부치는 벌집이 되어 죽었고, 대부분의 갱단원들이 죽거나 붙잡혔지. 내가 알기론 딱 5명이 도망쳤다고 들었는데, 그 중 한놈이 바로 하비에르야.”


남자는 받은 맥주를 단숨에 들이킨 다음 물었다.


“그래서. 최근에 그놈을 봤소?”


“그럼, 봤고 말고. 일주일쯤 전이었나? 마을 상점이 털린 적이 있었지. 상점 주인 녀석도 총에 맞아 죽었었는데, 나는 봤어. 그 강도가 상점을 포위한 보안관 다섯을 단숨에 쏴 죽이는 모습을. 물론 놈의 얼굴도 봤지. 그건 분명 구스타보 하비에르였어. 놈은 그렇게 다섯을 쏴 죽인 다음 마을 동쪽의 산으로 도망쳤지.”


“그렇군. 고맙소. 그런데… 혹시 그 도망쳤다는 와일드 키드의 다른 갱단원에 대해 아는 것 있소?”


술집 주인은 황당하다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당신, 혹시 미국에 없었나? 그 이야기는 그 당시 온 미국의 화젯거리였는데.”


이번엔 술집 주인이 목이 말랐는지 그가 맥주를 마셨다.


“구스타보 하비에르 말고도 빌 윌리엄, 존 밀튼, 제이크 에들러, 마이카 리차즈. 이렇게 넷이 도망쳤어. 혹시 그 넷의 행방도 묻고 싶은 거라면, 난 하비에르 말곤 모르네. 넷은 완전히 사라졌으니까.”


남자는 묘하게 아련해 보이는 눈빛으로 허공을 응시하다 물었다.


“내가 기억하기론… ‘아서 클라크’라는 이가 있었던 것 같은데…”


“그래, 있었지. 5000달러나 되는 현상금이 걸린 수배자. 그 녀석은 5년 전 죽었어. 얼굴이 완전 박살 나기는 했지만 체포된 갱단원이 놈이라고 증언했지. 그런데 구스타보 하비에르에 대해선 왜 묻는 거요? 혹시 현상금 사냥꾼?”


“아니오. 고맙소.”


남자는 모자를 쓰더니 다시 술집 밖으로 나가 동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몇 날 며칠을 다시 걷던 남자는 마침내 그 산에 도착했다. 남자는 드높은 산을 올려다보았다. 확실하지는 않았지만 산 중턱 즈음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남자는 이번엔 산을 올랐다. 몇 번 씩이나 넘어지고, 몇번이나 미끄러졌지만 남자는 멈추지 않았다. 마침내, 그곳까지 오른 남자의 눈 앞에 자그마한 모닥불과 캠프가 있었다. 그리고, 그 앞 동굴 입구에 말 한 마리가 매여 있었다. 남자는 천천히 모닥불 앞에 앉아 불을 쬐며 기다렸다. 몇 시간이 흘렀을 까, 동굴 안쪽에서 인기척이 들리자 남자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동굴 안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둘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구스타보 하비에르. 현상수배지처럼 판초 모자를 쓰고 있었지만 그때와 달리 수척하게 말라 있었다. 하비에르가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넌 뭐야? 현상금 사냥꾼이냐?! 아니면 핑커톤? 썩 꺼져! 대갈통에 구멍 나기 싫으면!”


마침내 남자가 입을 열었다.


“오랜만이군, 하비에르.”


그 목소리에 하비에르의 얼굴이 공포로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이 목소리… 말도 안 돼…! 분명… 분명! 그날 죽었는데!”


남자가 모자를 벗어 얼굴을 보이자 하비에르의 어두운 피부가 창백해지기 시작했다.


“아서! 어, 어떻게! 부… 분명 내 총에 맞아서…!”


그 남자, 아서 클라크가 묘한 미소를 지었다.


“죽었지. 세상은 다들 그렇게 말하더군. ‘아서 클라크가 총탄에 얼굴이 박살이 나 죽은 시체로 발견되었다.’라고. 하지만 조금 다르거든. 불쌍한 키이란, 그냥 갱단에 있었다는 이유로 목이 매달리고 말았으니…”


“뭐… 뭐가 어떻게 된 거야?!”


“그날 죽은 아서 클라크는… 존이야. 존 밀튼. 나 대신 총에 맞아 죽었고, 핑커톤은 들어온 지 얼마되지 않아 구분을 잘 못하던 키이란을 데려와 신원 파악을 해서 내가 죽었다고 이야기 한 거지.”


하비에르는 아직도 벌벌 떨고 있었다. 아서는 웃옷을 조금 들어 배에 난 흉터를 보였다.


“물론 네 총에 맞은 건 나지. 아무튼 하비에르… 한 마디만 묻지. 그놈, 마이카는 어디 있어?”


하비에르가 대답하지 않자 아서는 언성을 높였다.


“대답해!”


“모… 몰라. 북부로 도망친 것 외에는 나도 아는 게 없어!”


“그렇군… 그렇다면 하비에르. 그날, 왜 나와 존에게 총을 쐈지?”


하비에르는 변명조차 하지 못했다.


“정신이 나간 부치와 마이카의 혀놀림에 넘어가서, 나와 존에게 총을 겨눈 사람이 누구였지?”


하비에르는 여전히 대답하지 못했다.


“그게 너였어! 하비에르! 난 너를 동료 이상으로 대했다고! 그런데 날 쏘다니!”


결국 하비에르의 표정도 분노로 일그러졌다.


“그래서 뭐가 어쨌다고! 넌 그때도 항상 그랬어! 멋대로 엇나가고! 쓸데없이 분열만 일으켰지! 너도! 존 그녀석도! 죽어 마땅했다고!”


“이젠 방법이 없는 것 같군…”


그 말과 동시에 시계가 정오를 알리고, 둘 모두 권총집의 리볼버로 손을 움직였다. 단 한 순간, 한 번의 총성이 울려 퍼지더니 피가 바닥의 흙 위로 뿌려졌다. 곧이어 하비에르의 몸뚱이가 바닥에 쓰러지고, 아서는 다시 리볼버를 넣었다.


“내가 이겼군. 하비에르.”


가슴팍에 총을 맞고 죽어가는 하비에르는 힘 없이 웃었다.


“쐈군… 확실히…”


하비에르의 고개가 푹 숙여지자 아서는 가만히 그를 바라보더니 캠프를 뒤졌다. 끝내 구석에서 마이카 리차즈에게서 온 편지를 발견한 아서는 그것을 거칠게 주머니에 쑤셔 넣더니 다시 죽은 하비에르를 바라보았다. 몇 시간 후, 자그마한 흙더미를 등지고 아서는 하비에르의 말을 타고 북쪽으로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