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시작이 어렵다. 텅 빈 공간을 깜빡이는 커서를 가만히 보다 보면, 생각이 너무도 많아서 뭐부터 시작 할 지 가슴이

먹먹하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던데, 공감한다. 나의 이야기를 써 달라 아우성치는 상상 속의 선원들이 뭍에서 손 들고 팔짝팔짝 뛰고 있는데, 어떻게 아무나 뽑아 갈 수 있겠는가. 이 중에 잭 스페로우가 있을 수도 있고, 루피가 있을 수도 있는데. 


  이 바닷길은 매우 험한 길이다. 먼저 좆망한 인생을 어디 만만한 놈한테 풀 수 없을까 생각하며 삐딱하게 솓아 굳어버린 5700개의 암초가 바닥에 떡 하니 깔려있다.   몸통만한 절구채를 들고서, 어디 빻을 한남 없나 두리번 두리번 거리며 해괴한 목소리로 고함을 지르는 과체중 숏컷 세이렌도 있다.  댓글과 추천만 받아먹다 보니, 쓴소리 섭취 부족으로  입으로 피를 줄줄 싸대는 끔찍한 예술병도 있으며, 선장의 진행 방식이 맘에 들지 않은 선원들이  선상 반란을 일으켜 반란의 주모자 메리 수한테 선장의 자리를 빼앗기고 갈 길을

잃는 경우도 있다.


 그러니까, 잘 골라야 한다. 어떤 놈이 일을 잘 할까 어떤 놈이 충성스럽게 자기 할 일만 할까.  어떤 놈이, 잘 팔릴까.


 좋아 이놈으로 정했다! 외치며 글을 써나가기 시작한 나. 문제는 딱, 이야기를 정하기 시작한 그 순간부터 손에 잡힐듯이 선명하던 나의  기억들은 저 먼 곳 어딘가로 사라진다는 점에 있다. 뭐지? 왜 갑자기 기억이 나지 않는거지?  


 이야기의 묘사를 채우고, 대화문을 섞어가면서 한 장면을 만든다고 쳐도, 이제 스토리의 개괄적인 틀에 맞게 이 장면을 어느 순서로 배치해야 할 지 고민 하고 이제 거기에 내가 생각한 주제에 대한 함축적인 의미를 어디 잡부, 조연 주조연의 이름을 빌어 말 해야 하는데. 다 쓰고 나서도 할 일이 산더미같이 쌓여 있는데도 쓰는 그 시작부터 좆이 되어버렸다. 


 나부터 뽑아 달라던 개새끼들은 다 어디 갔는지 들던 손을 내리고 다들 멀뚱 멀뚱 나만 바라보고 있다. 씨발 뭐? 나보고 어쩌라고!


  배는 대체 언제 출발 할 것인지 아직도 내 하얀 화면 위의 커서는 닻을 내리고 꿈쩍하지 않는다.  가만히 서 있는게 아무런 

이득을 줄 꺼 같지 않아 이 무료한 긴장감을 풀기위해 평소와 같이 나는 알트 텝을 눌러 게임을 키려 했다가, 다시 돌아왔다.  

후, 위험했어. 오늘도 하루를 통째로 날릴 뻔 했잖아? 


 평소처럼 게임을 켰다면 아마도 '한 시간만 더 하자' 라는 말을 더, 더 하다가 한 5시 6시 쯤 끄겠지. 몸은 심적으로 피곤해,  잠깐 자고

일어나서 할 까? 해서 침대에 누우먼 외려 정신은 말똥말똥해지는 기적. 


 볼 꺼 없나 하며 휴대폰 정 중앙에 있는 빨강색 버튼을 누르면 구독 해 놓은 이놈 저놈 요놈이 올린 영상을 보게 될텐데 

그러면 해는 진즉에 떨어지고 나는 출출한 배를 부여잡으며 부엌으로 나가겠지. 


 밥 먹었으니까 졸리잖아? 아, 졸린 상태론 글 절때 못쓰지! 바로 커피를 사기 위해 근처 카페로 사서 테이크 아웃 해서 들고 들어올

꺼다. 커피를 마셔서 잠은 안오는데, 뭔가 피곤하다. 잠깐 누워서 쉬어볼까?  


 하고 드러 누우면 이제 딱 야짤 몇개가 눈에 들어오겠지. 할 일도 없고 몸도 편안해졌겠다 천천히 욕망이 사각 팬티의 틈 사이를 비집

고 올라온다. 좌 우를 쓰윽 훑어 보고 흰색 이어폰을 양쪽 귀에 쑤셔 박고 즐거운 해피타임을 보낼꺼다. 

 

 뇌척수의 반사기능으로 인해 피로가 몰려 올 것이고, 화장실에 오줌을 싸고 난 뒤에 이제 누워서 코 잠을 잤겠지. 오늘 쓸 일은 내일의 내가 하겠지, 생각하며.


 이 씨발, 벌써 몇달째야 오늘은 그럴 수 없다! 


 다짐하며 다시 하얀색 화면으로 돌아 온 나. 정신이 혼미해 지지만 무어라도 써야 할 꺼 같은 생각에 아무 말이나 써 본다. 

한 두번, 대충 현재 느끼는 감각과 쓰고자 하는 이야기를 교차시켜가며 써 본다. 오? 뭐야? 생각보다 잘 써지잖아?


 드디어, 불이 붙었다. 생목이라 드겁게 안붙는데, 여하튼 제질은 나무인지라 불이 붙으면 활활 잘 타오를 것이다. 그래! 단숨에 끝

까지 가는거다! 좋아!   


 신이나게 움직이는 양손가락. 작은 일에서 부터 시작한 사건은 점점 커져만 가고, 인물들의 관계는 미묘하고 또 세심한 터치로 점점 

바뀌어 나간다. 끝끝내 돌이 킬 수 없는 일을 벌려버리고 마는 주인공. 괴물을 처치하기 위해 스스로 괴물이 되어버리다 보니,  아무도

남게 되지 않은 주인공. 마지막 순간, 연인까지 떠나보내고 난 주인공이 흘리는 슬픔의 눈물.   


 감정이 북받쳐 올라, 쓰는 나로 하여금 가슴을 부여잡게 만드는 이 절절한 이야기!  아 그래, 이거였다! 이거야! 하하! 드디어 이 단칸

방에서도 명작이 탄생하는건가? 나는 천재야.


 후...... 


 깊게 심호흡한다. 신이 나는 타자질로 어느세 분량만 1만자 가량 채워버린 나. 뿌듯하다. 이정도로 썻으면 오늘은 좀 자도 되겠다.  

내일도 오늘처럼, 글을 쓰면 금방 출판까지 가겠다. 잘되면 뭐라고 할까? 취직 못 하고 허접데기 글이나 싸 댄다고 튄 그 썅년한테 

자랑이라도 해야되나? 


 마음 속으론 성공한 다음 일을 신이나게 계획중이던 나는 퇴고를 생각하며 스크롤을 올려 첫 문장부터 꼼꼼히 읽어 보기로 한다. 


 일단 오타다. 일었다가 아니라 잃었다지. 낳앗다가 아니라 나았다야.  괜찮아 오타는 수정하면 되니까.   


 흠.....개연성이 너무 없는거 아닐까? 주인공이 틀어지는 이유가 조금 납득하기 힘든 것 같다. 히로인은 뭔데 주인공을 이렇게 좋아하는거지? 특별한 개기도 설명이 안되는데 왜 이렇게 많은 여성들이 주인공을 좋아하는거야? 


하나씩 하나씩 수정하며 내려간다. 


 이 문장은 너무 좀 별로인거 같다. 기술명은  너무 길어. 모르는 사람 입장서 보면 너무 생략된게 많지 않나? 감정선이 엉망인데? 방금 죽일 기세로 달려들던 싸가지 하나 없는 년이 대체 왜 주인공 대신 희생하는거야. 시점을 너무 많이 바꾸니까 글이 정신이 없네.


 탁탁탁탁, 한번씩 쳐 내려가던 백 스페이드는 어느세 한번 눌러놓고 쭉, 지워 내려가기 시작했다. 쓸모 없는 문장을 잔뜩 줄이고

내용의 허술한 부분, 부정확한 표현, 생략이 너무 많이 된 부분, 쓸 데 없이 추상적인 묘사를 다 지우고 다시 화면을 바라보았다.


나는 오늘.


이 씨팔! 


 네 글자만 살아남은 참담한 나의 향해. 완전히 침몰해버린 배에서 살아 남은건 나 하나 뿐.  분노를 주체 할 수 없어 주먹으로 모니터를 쾅! 내려치려 했다 참는다. 저번에도 이지랄 하다 모니터 작살나서 이틀을 이천까지 내려가서 상하차 하지 않았던가? 


아......몰라.


무턱대고 컴퓨터를 끈 나는 침대에 누웠다. 핸드폰을 들고 유튜브를 보려다가 짜증이 나 침대 구석 어디에 핸드폰을 던져버리고 

배게맡에 머리를 파 뭍는다.


 왜 이런 것일까. 왜 이것밖에 안되는 것일까. 나는 사실 재능이 없었던게 아닐까? 이미 너무 많은 길을 걸어 왔는데, 이게 맞는건가?

수고 했다고 상 몇개 던져준 그 개년들이 문제였다. 독창적이고 독특한 글을 쓴다 치켜세운 그 엄지가 문제였다. 그것만 아니었으면 그 때만 아니었다면 어짜피 안될 놈이라는거 알아서 진즉에 나가서 일이라도 했을텐데.  


 참 병신같다. 부모한테 다른 일 한다고 구라치면서, 물류창고에 나가 번 돈으로 사글세를 내고 있는 내가 너무 한심스럽다. 씨발 이런

길인줄 알았으면 오지도 말껄. 쳐다 보지도 말 껄. 


 한참을 머리를 박고 이리 저리 몸을 비틀다 보니까, 어느정도 기분이 풀리게 된다. 다시 켜서 마져 쓸까? 고민이 되었지만 신물이 나

서 함부로 본체를 못 키겠다. 씨발것. 그래. 내일 쓰자. 내일은 뭐 좀 나오겠지. 내일. 내일. 


 누워서 잠을 자야겠는데 잠이 오지 않는다. 뒤척이며 열심히 인터넷 커뮤니티를 뒤적거린다. 


재미난 글에 피씩하고 흥미로운 글에  눈을 반짝이다가 발견한, 야짤 하나가 사각 팬티 사이에 잠들던 욕망을 일깨웠다.  


이러지 말자, 이러지 않기로 했잖아.  


 마음 속으론 수천번은 더 하는 생각이지만, 양심은 본성을 이기지 못해. 


 팬티에 난 틈을 벌리며 정자세로 자리에 누웠다. 한숨을 푹 쉬면서도 왼손으론 열심히 영상을 찾고 있는 나였다.  사운드를 조절하기

위해, 왼쪽 위의 키를 눌러야 하는데 실수로 오른쪽에 있는 홀드 키를 눌러 화면이 꺼진다. 


 꺼진 화면에 비친 남자는, 흐리멍텅한 눈으로 화면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깎지않아 목 아래까지 내려간 너덜한 턱수염과 한남콘에서 본 듯한 흔해 빠진 얼굴의 남자.  남자와 눈이 마주치자, 무언가 가슴속에서 터져나오는 감정이 있는거 같은데 본성은, 

이길 수 없는 것이다.


  불켜진 화면에서 나는 적합한 영상을 골라냈고 곧이어 숨을 헐떡 거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