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사이로 희미하게 들려오는 새의 지저귐. 나는 홀린 듯 소리가 나는 쪽으로 다가갔다. 거기엔 새장이 있고 연녹색 새 한 마리가 갇혀 있었다. 새장의 옆과 아랫부분의 창살은 반짝반짝 빛나는 흰색이었는데 돔처럼 휘어진 꼭대기의 창살들의 색깔은 검정색이었다.

 

 나는 좀 더 자세히 보려고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고개를 새장 쪽으로 들이댄 순간, 새는 놀란 듯이 비명을 지르고 새장 속에서 정신없이 날기 시작했다. 그리고 날개를 퍼덕이며 새장에 이리저리 부딪치는 것이었다. 내가 당황하여 뒤로 물러섰지만 새는 진정하지 않고 오히려 더욱 거세게 창살에 부딪쳤다. 깃털이 사방에 날렸다. 

 

 나는 고개를 돌려 피하려고 했다. 그때 뭔가 끈적한 것이 얼굴에 느껴졌다. 닦아보니 시뻘건 피였다. 놀라 새장을 바라보니 새는 온몸이 피범벅이 되어 있었다. 난 새장 창살을 억지로 열어보려 했다. 그 때, 새는 삑- 하고 한 번 울더니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입속에서 검붉은 피를 분수같이 토해냈다. 피가 내 얼굴에 확 뿌려졌다. 그 순간 나는 잠에서 깼다.

 

 잠에서 깨어보니 이미 어둑어둑해져 있었다. 두근거리는 심장을 느끼며 나는 심호흡을 했다. 낮잠은 개꿈이라고 하지만 나는 그렇게만 치부할 수 없었다.

 

 ‘이 전자 피아노에 씌인 혼백을 어떻게든 그곳에서 벗어나게 해서 좋은 곳으로 인도해줄 수 있다면...’

 

 주제 넘는 일이긴 하지만 만약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그 딸의 가족도 나도 모두가 해피엔딩이 되지 않을까 상상했다.

 

 밤이 왔다. 그전에 나는 집안의 모든 물건들을 뒤쳐서 방의 창문과 문틈을 막았다. 소음이 나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방 한구석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웅크려 앉았다. 그리고 전자 피아노를 지켜보았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이윽고 전자 피아노에서 조금씩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먼저 페달 밟는 소리가 났고 피아노의 가장 왼쪽 저음부터 가장 오른쪽 고음까지 미끄러져가면서 음들이 울렸다. 그리고 각종 화음들이 들렸고 트릴과 레가토, 다양한 기법들이 연주됐다. 그러다 잠시 조용해지더니,

 

 “꽝-꽈광”

 

 하면서 연주가 다시 시작됐다. 내가 지난 밤 들었던 바로 그 곡이었다. 우울하고 슬픈 느낌이 들면서도 순간순간 뭔가 북받치는 감정이 실린 그런 곡이었다. 그러면서도 장조의 밝은 선율에선 꿈꾸는 듯한 활기참이 느껴졌다. 우습게도 난 어젯밤과는 전혀 다른 태도로 이 귀신의 연주를 듣고 있었다. 마치 피아노 독주회의 청중이 된 것처럼...

 

 연주는 틀리는 곳 없이 아주 매끄러웠다. 약 20분간 이어진 곡이 끝나자 나는 황홀함에 나도 모르게 박수를 칠 뻔했지만 연주를 한 것이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에 참았다. 이 귀신은 곡을 마치고 짧은 연습곡을 한 두곡 더 연주하더니 더 이상 치지 않았는데, 나는,

 

 ‘이날 밤은 이것으로 끝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한편으로는 안심이 되기도 했지만 아쉽기도 했다. 겁에 질려서 음악을 제대로 듣지 않았을 때는 몰랐는데 집중해서 들어보니 이제 막 피아노를 연습하기 시작한 초보자의 귀에도 매우 뛰어난 기교를 보여주는 굉장히 훌륭한 연주였다. 딸이 어느 대학에라도 합격할 줄 알았다는 어머니의 말이 전혀 거짓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이런 재능있는 피아니스트가 스스로 목숨을 끊다니...’

 

 나는 따돌림을 당했던 딸과 그 가족이 겪었을 슬픔을 떠올리니 다시 한 번 깊은 동정심이 생겨났다.

 

 연주가 끝나고 나는 방금 들은 곡이 무엇이었는지 검색해보았다. 피아노곡에 대한 견문이 넓지 않은 나는 어디서부터 찾아야 할지 좀 막막했다. 그래도 처음 시작부분의 쾅쾅 내리찍는듯한 부분을 갖고 인터넷 커뮤니티들을 돌아다니며 질문한 끝에 결국 곡 이름을 알아낼 수 있었다. 슈베르트의 작품번호 15번 환상곡 다장조 (Op. 15, Fantasy In C Major)로, 흔히 ‘방랑자 환상곡’으로 불리는 곡이었다. 제목을 알고 나니 곡에서 느껴졌던 감정이 이해가 되는 듯했다. 그렇게 그날 밤은 편하게 잠들었다.

 

 다음 날, 나는 컴퓨터를 켜자마자 내가 졸업했던 학교 웹사이트에 들어갔다. 그리고는 단과 대학과 학과 사이트를 샅샅이 훑고 교직원 이름 검색을 해보기도 했다. 나는 뭔가를 찾고자 했지만 그러나 원하는 정보는 쉽게 찾을 수 없었다.

 

 “하, 졸업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기억이 안 나냐? 완전 뇌가 깔끔해졌네. 나도 참 큰일이다.”

 

 나는 스스로를 조롱하며 대학 2학년 때 들었던 수업을 다시 기억해내려 애썼다. 그 수업은 종교와 역학(易學)의 주제들을 다루는 교양과목이었는데 당시 강사가 했던 말이 이제와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던 것이다.

 

 ‘미래엔 세계 주요 고등 종교들은 서로 회통(會通) 또는 통섭(統攝)이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유불선(儒佛仙) 3교는 물론 기독교도요. 그리고 앞으로는 음양 원리로 세상을 설명하는 역(易)은 그 영역이 확장될 거예요. 심령현상에까지 그 원리를 적용할 수 있겠지요. 실제로 제가 아는 어떤 분 중에 사십구재를 지내도 음양 원리에 따라 지내면 더 좋다고 하시는 분이 계시는데, 그 분 말씀으로는 심각하게 빙의된 분도 그렇게 천도할 수 있다고 하시더라구요. 이거는 믿거나 말거나입니다. 학문적으로 증명된 건 아니고 여러분들 졸지 말라고 하는 이야기에요, 하하하...’

 

 그 때 나는 강사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었다. 귀신이야기를 진지하게 받아들일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나뿐만 아니라 그 때 거의 모든 수강생이 다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그 말이 생생한 울림으로 내 머릿속에서 맴돌고 있었다. 내가 분주하게 강사의 연락처를 찾기 시작한 것도 그래서였다. 그리고 마침내 어렵사리 이메일 주소를 찾아내었다. 나는 그에게 곧바로 메일을 보냈다.

 

 ‘안녕하세요? 몇 년 전에 선생님 수업을 수강했던 학생입니다...’

 

 나는 그에게 내가 겪은 일을 자세히 설명하고 예전에 수업에서 언급했던 그 ‘어떤 분’을 좀 찾아뵐 수 있겠는지 물어보았다. 그리고 몇 시간 뒤 나는 이런 답장 메일을 받았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입니다. 메일 잘 받았습니다. 저를 기억하고 이렇게 연락해주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제 수업이 완전히 쓸모없지는 않았던 것 같네요. 일단 메일을 받고 바로 지인 분께 연락을 해봤답니다. 그분께서도 흥미롭게 생각하시더군요. 그래서 제가 도와드리는 게 어떻겠느냐고 여쭤보니 흔쾌히 좋다고 말씀하시네요. 

 

 그리고 이건 제 추측입니다만, 설명해주신 내용만 듣고 보면 그 혼(魂)이 심각한 악의를 가진 것 같지는 않네요. 단지 어떤 한이나 미련이 남아서 그 전자 피아노에 붙어 있는 것 같아요. 밤마다 피아노가 연주된다고 하니 불편하기는 하겠지만 그 밖에 다른 해코지를 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러니까 조금은 안심하여도 될 것 같습니다. 다만, 어떤 식으로든 넋을 천도하는 의식이 필요할 것 같은데 성공할 수 있을지는 지금으로선 말씀드리기 어렵겠네요.

 

 어쨌든 이번 토요일에 그 따님의 어머니께서도 오신다고 하니 그 때 뵙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이 분을 모시고 댁으로 가도록 할 테니 무슨 일이 있으면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그동안 별 일 없으시길 바라겠습니다.’

 

 나는 메일을 받고 매우 놀랐다. 이렇게 진지하고 정성스런 답변을 받을 줄을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것이다. 곧바로 판매자에게 전화를 걸어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을 줄 분을 모시기로 했다고 전했다. 딸의 어머니는,

 

 “어떤 분이신가요? 과연 가능할까요? 그렇게만 되면 더 바랄 건 없겠지만...”

 

 하고 대답하기는 했으나 못내 미심쩍은 눈치였다. 물론 나도 확신하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긴 했다. 하지만 어쩌면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을 것 같아 기뻤다.

 

 만나기로 했던 토요일이 되었다. 딸의 어머니는 매우 일찍 도착했다. 나에게,

 

 “어제도 피아노를 치던가요?”

 

 하고 물었다.

 

 나는 그렇다고 대답하고, 연주하는 음악이 슈베르트의 곡이고 제목이 무엇인지를 알려드렸다. 그러자 어머니는 약간 우울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그렇군요. 그 곡은 딸아이의 입시 지정곡이었죠...”

 

 이윽고 우리가 기다리던 일행이 도착했다. 한 쪽은 나와 메일을 주고받았던 그 강사였고 다른 쪽은 가사와 장삼을 걸친 승려복장을 하고 있었다.

 

 “이 분이 제가 말씀드린 선목스님이십니다.”

 

 “안녕하십니까? 선목이라고 합니다. 자초지종은 대략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짐작 가는 부분이 있기는 한데 직접 상황을 본 뒤에 말씀드리도록 하지요.”

 

 스님은 합장을 한 채 반배하며 모두에게 인사를 했다. 스님의 용모는 꽤 젊어 보였지만 어딘지 모를 도인의 풍모가 느껴졌다.

 

 나는 스님과 다른 일행을 모두 안내하여 내 방으로 들어왔다. 모두 전자 피아노 앞에 반원을 그리고 둘러섰다. 그리고 아직 낮이라 혼백이 피아노를 칠 시간은 아닌데 하고 생각하던 그 순간, 스님은 소매 속에서 번개같이 무언가를 꺼내고는 팔을 쭉 뻗어 휘둘렀다. 

 

 “짤랑”

 

 그것은 금빛으로 빛나는 요령(搖鈴)이었다. 스님은 다시 한 번 손목을 흔들었다.

 

 “짤랑, 짤랑”

 

 요령에서 경쾌하고 맑은 쇳소리가 울려나왔다. 스님은 또다시 요령을 흔들었다.

 

 “짤랑, 짤랑, 짤랑”

 

 그러자 신기하게도 피아노가 울리기 시작했다. 혼백이 연주를 시작한 것이다. 

 

 “댕댕댕-댕댕댕-댕댕댕-댕댕댕-드리리리리링-둥-당-꽝, 댕댕댕-댕댕댕-댕댕댕-댕댕댕-드리리리리링-둥-당-꽝, 댕댕댕-댕댕댕-댕댕댕-댕댕댕...”

 

 이것은 내가 아는 멜로디였다. 바로 슈베르트의 마왕(Der Erlkönig)이었다! 피아노는 스님의 요령소리에 깨어난 것이 불쾌했던 것인지 아니면 여러 사람에 둘러싸인 것에 두려웠던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매우 불안정하고 감정에 휩싸인 음정들을 쏟아냈다. 어쩌면 자신을 천도하기 위해 온 스님 일행에 적대감을 느꼈을지도...

 

 공포에 떨다가 끝내 죽게 되는 아이가 묘사되고 음악이 끝나려는 찰나, 스님은 다시 한 번 요령을 흔들었다.

 

 “짤랑!”

 

 그러자 음악이 툭 끊기고 사방이 조용해 졌다. 모두들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제가 의견을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선목스님이 말했다.

 

 “확실히 혼백이 이 전자 피아노에 씌었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보통 뭔가에 집착하게 되면 이런 일들이 생기지요. 그렇지만 이번에는 조금 특이한 점도 있습니다.”

 

 스님은 피아노의 흰 건반을 하나 눌렀다.

 

 “이 혼백은 이 전자 피아노에 집착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이 전자 피아노에 갇혀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 말에 모두들 놀랐다. 특히 딸의 어머니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내가 질문했다.

 

 “갇혀 있다는 게 무슨 말씀이죠?”

 

 “무언가에 집착하다보면 어느 순간 내가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나지 못하는 때가 올 수 있습니다. 특히 그러한 일이 생기기 쉬운 여건이 갖춰진 상태에서라면요. 이 따님의 경우에, 전자 피아노에 빙의될 조건은 물론 애초에 충분하긴 했지요. 그런데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혼백은 원래 잠시 물건에 의지했다가도 홀연히 떠날 수 있는 것인데 따님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아마도 커다란 크기의 한스런 마음이, 빙의해 들어간 물건의 불균형한 음양 상태와 만나 새로운 결합을 만들어 낸 것 같네요.”

 

 “음양 상태의 불균형?”

 

 강사가 스님의 말에 놀라서 말했다.

 

 “네, 그렇습니다. 음양의 불균형이죠. 자, 보시죠. 피아노는 흰 건반과 검은 건반으로 이루어져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흰 것과 검은 것 중에 어느 쪽이 많나요?”

 

 “흰 건반이 많죠.”

 

 나는 즉각 대답했다.

 

 “그래요. 그래서 음양의 불균형이 생기는 거죠. 여러분은 혹시 태극도(太極圖)를 보신 적이 있습니까? 우리 태극기에도 그려져 있는데, 원래 태극도는 흰색과 검은색으로 그리기도 합니다. 이 두 색은 서로 균형과 조화를 이루죠. 그런데 보시다시피 피아노는 흰 건반이 많아 흰색과 검은색의 균형이 어긋난 상태입니다. 그 어긋남으로 인해 틈이 생기고, 예를 들자면 여기에 발을 넣었다 끼어버린 넋은 이승을 떠나고 싶다고 해도 떠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도를 하자고하면 반드시 일순간이나마 음양의 균형을 맞춰서 틈을 깨트릴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발목에 묶인 줄을 풀고 자유롭게 날아갈 수 있을 겁니다. 아마도 천도재를 지내는 순간에 그러한 의식이 필요할 것 같네요.”

 

 강사는 스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스님의 말이 그럴듯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그만두세요!”

 

 딸의 어머니가 소리쳤다.

 

 “죄송하지만 더 이상 들을 수가 없네요! 음양의 균형이니 태극도니 천도재니 하는 것들은 저하고 저희 딸에게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요. 지금까지 기회가 없어 굳이 말씀드리지 않았는데, 그리고 어렵게 모신 손님들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잠자코 듣고 있었는데요! 저희는 개신교 집안이에요. 저도 그렇고 저희 딸도 모태신앙이었죠.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마음에 구매자님께서 모셨다는 분의 말씀을 듣게 되었지만 천도재를 지내니 마니 하는 것은 아닌 것 같네요. 그러다 뭔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죠? 태극도니 태극기니 하는 것도 다 미신 아닌가요? 저희도 굿을 해봐라 치성을 드려봐라 하는 소리를 안 들어본 줄 아세요? 그냥 제가 처음 말씀 드렸던 대로 전자 피아노를 돌려주세요. 차라리 부모의 숙명이라고 받아들이고 평생 함께 사는 것이 나을 것 같아요. 저희 딸도 그걸 더 원할 거구요.”

 

 강경한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말에 기가 눌린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어쩌면 그게 맞는 말인 것 같기도 했다. 

 

 “허허허”

 

 스님의 웃음을 터뜨렸다.

 

 “왜 웃으시는 거죠?”

 

 어머니가 쏘아붙였다.

 

 “아닙니다. 갑자기 저희 어머니가 생각나서요. 저희 어머니도 제가 머리를 깎고 중이 될 때 반대를 많이 하셨지요. 저희도 기독교집안이거든요. 그래서 그 마음을 충분히 알 것 같습니다. 하지만 생각해보세요. 천도를 해서 딸의 한을 녹이고 이 피아노라는 감옥에서 해방시켜주지 못하면 어머니도 딸도 오래도록 고통을 받을 뿐입니다. 그리고 천도재라는 게 사실 별것도 아닙니다. 따지고 보면 불경의 좋은 말씀을 읽어 망자가 마음을 추스르도록 도와주는 것뿐이에요. 정신과 상담이라고 보시면 되는 겁니다. 그리고 제가 공부해보니 그 불경의 말씀이란 게 예수님의 복음과 별로 다르지 않답니다.”

 

 스님은 차분하게 어머니를 설득했다. 어머니는 스님이 자신도 기독교집안에서 자랐다는 말을 듣고는 감정이 좀 누그러진 것 같아 보였다.

 

 “아, 그리고, 기독교에도 귀신을 상대하는 일이 전혀 없지는 않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거기에선 구마(驅魔)라고 부르고 있죠. 엑소시즘이라고 들어보셨죠? 뭐, 사람에게 빙의된 사건을 주로 다루는 것 같은데, 어쨌든 저는 영가천도와 비슷한 개념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스님의 친절한 설명에 마음이 움직인 것일까. 어머니는 스님에게 되물었다.

 

 “그럼... 그 천도재는 스님이 주관하시나요?”

 

 “그렇습니다. 뭐, 제 스승님처럼 법력이 높은 분을 모시고 하면 좋지만 저라도 좋으시면 따님을 위해 최선을 다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비용은 걱정하지 마시구요.”

 

 “아니, 스님 그래도 전법까지 받으셨는데 그렇게 겸손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강사가 옆에서 참견을 했다.

 

 “돈문제는 얼마든 상관없어요. 그러면 그 천도재를 지내면 저희 딸이 좋은 곳으로 가게 된다는 말씀이죠?”

 

 어머니가 질문했다.

 

 “네, 그렇기는 합니다만 아까 말씀드렸듯이 음양의 균형을 만드는 문제가 남아어요. 그리고 형태상 전자 피아노와 대응되는 어떤 것이...”

 

 “흰 건반이 많은 게 문제라면서요?”

 

 어머니가 스님의 말을 끊고 들어왔다.

 

 “그러면 검은 건반이 많으면 되는 거잖아요? 안 그래요?”

 

 어머니의 신속한 태도변화와 단호하고 논리적인 주장에 우리 모두는 놀랐다.

 

 “네, 그렇긴 합니다만 그런 게 있나요? 피아노는 전부 흰 건반이 많은 것으로 아는데...”

 

 오히려 이번에는 스님이 조금 당황하여 말했다.

 

 “네, 있죠. 파이프 오르간이 그래요.”

 

 어머니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저는 결혼 전에 파이프 오르간 연주자였어요. 그래서 알죠. 전부는 아니지만 검은 건반이 아래, 흰 건반이 위에 배치된 파이프 오르간이 있어요. 주로 오래된 오르간 건반에서 볼 수 있는 건데, 당연히 이런 경우에 검은 건반 수가 많겠죠. 그럼 되는 거죠?”

 

 “아! 그렇겠군요.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요?”

 

 스님은 손뼉을 탁 치고 기뻐하며 대답했다.

 

 “하지만 저희 딸아이의 천도재라고 하면 누가 좋아할까요? 아무도 파이프 오르간을 사용하도록 허락해주지 않을 거예요.”

 

 어머니는 갑자기 어두운 얼굴로 변해 기운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 걱정 마시죠. 제 친구 중에는 천주교 신부들도 꽤 있답니다. 저는 그들을 제 도반으로 여기고 있죠. 아마 잘 부탁하면 분명히 검은 건반 수가 많은 파이프 오르간을 찾아줄 것이고 사용할 수 있게 해 줄 겁니다. 아니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이 선업을 쌓는데 마다할 리 있겠습니까? 제가 잘 압니다.”

 

 거기 모인 일동은 모두 기쁨에 손뼉을 쳤다. 스님은 자신이 적당한 장소와 시일을 알아보겠다고 말했고, 그렇게 우리는 헤어졌다.

 

 주변이 모두 캄캄해진 늦은 밤, 희미한 불빛이 조용히 십자가를 비추는 성당 안에서 몇 사람이 기도를 하고 있다. 어떤 사람은 무릎을 꿇고 있었으며, 어떤 사람은 좌복 위에 발바닥을 맞닿게 앉아 단정히 삼매에 잠겨 있었다. 잠시 후, 신부님이 들어와 성수를 뿌렸다. 사람들은 모두 조용히 일어나 파이프 오르간 앞에 섰다. 그리고 그 옆에는 전자 피아노 한 대가 놓여 있었다.

 

 내 방에서 처음 서로 만나고 나서 몇 주가 지났다. 그리고 우리는 이 성당에 다시 모이게 되었다. 선목스님과 친분이 깊은 신부님께서 이 장소를 쓸 수 있게 애를 써주신 덕택에 오늘 천도재를 지내게 된 것이다.

 

 불교 스님과 개신교 신자가 성당에서 천도재를 지내는 이상한 조합 속에서 나는 야릇한 흥분을 느꼈다.

 

 “딱”

 

 스님은 목탁을 쳤다. 그리고 다시 박자를 맞춰 치면서 독송을 시작했다.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

 

 스님은 반야심경을 다 읽자 요령을 흔들며 금강경을 독송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르간 연주자석을 보고 눈짓을 해서 신호를 주었다. 연주자석에는 딸의 어머니가 앉아 있었다.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 여로역여전 응작여시관 불설시경이 장로수보리 급제비구비구니 우바새우바이 일체세간천인아수라 문불소설 개대환의 신수봉행 마하-반야-바라-밀-”

 

 독송이 끝났다. 그러자 연주자가 오르간을 연주했다.

 

 “둥-동-당-당-동-둥, 둥-동-당-당-동-둥” 

 

 거대한 음의 떨림이 성당 내부를 가득 채웠다. 연주는 차분하고도 경건하게 이어졌다.

 

 “아베- 마리-아”

 

 신부님은 두 손을 모으고 오르간 음에 맞추어 나지막이 읊조렸다. 파이프 오르간으로 연주하는 음악은 슈베르트의 아베 마리아(Ave Maria)였다. 단조롭지만 결코 지루하지 않은 꿈같은 멜로디 속에서, 그 곳에 모인 모두는 스스로 목숨을 버리기까지 딸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생각하고 또 그가 이제는 마음을 풀고 떠날 수 있기를 기도했다.

 

 아베 마리아 연주가 끝나자 신부님은 조용히 일어나서 성호를 긋고는 성수를 전자 피아노에 뿌렸다. 그 때였다.

 

 이번엔 전자 피아노에서 소리가 들리며 연주가 시작되었다. 부드럽고도 조용한 연주. 듣고 있으니 따뜻한 봄 햇살이 내리쬐는 언덕이 떠오르는 연주였다지만 약간의 슬픔도 담겨 있었다. 사실 그 상황이 매우 초현실적으로 느껴져서 연주가 어땠는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것은 회한이 서린 것은 분명히 아니었다. 온화한 감정을 일으키는 곡이었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그 곡은 쇼팽 연습곡 작품번호 10번의 제3곡(Etude Op.10 No.3)이었다. 이 곡을 연주되는 동안 딸의 어머니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 눈에선 눈물이 조용히 흘러내리고 있었다.

 

 스님이 내 어깨를 조용히 짚더니 다른 손으로 공중을 가리켰다. 고개를 들어보니 스테인드글라스가 빛나고 있었다. 이미 자정이 가까운 밤이었다. 밖에서 빛이 들어올 리는 없었다. 그러나 빛은 창문을 통해 들어와 제단 앞을 가득 비추고 있었다. 그 빛은 십자가 모서리에서 부서져서 한층 밝은 빛살을 내뿜고 있었다. 신부님은 조용히 ‘아멘’ 하고 불렀다. 그 순간 빛이 더없이 강해지면서 온 교회를 가득 메웠다. 우리는 눈부신 빛에 한동안 눈이 멀어버렸다.

 

 빛이 사라졌을 때 이미 연주는 끝나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더 이상 전자 피아노에 딸이 얽매여 있지 않음을 확신했다. 모든 이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번져 있었다. 딸의 어머니도 얼굴에 범벅된 눈물을 닦고 있었다.

 

 이렇게 나는 전자 피아노를 다시 내 방으로 가져오게 되었다. 며칠 뒤 난 다시 피아노 연습을 시작했다. 가끔 연습이 지겨워질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럴 때면 잠시 쉬면서 내가 이 피아노를 얻고 겪은 일들을 다시 기억한다. 그리고 성당에서 마지막으로 들었던 곡을 떠올린다. 그 멜로디를 희미하게 흥얼거리면, 나도 언젠가 이 곡을 칠 수 있겠지 하는 희망을 갖게 되는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