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뱉은 한숨이 새하얀 입김이 되어 낮게 깔린 회색 구름사이로 흩어져 사라졌다. 한송이 눈꽃이 원을 그리며 낙하하다 펼친 손에 닿아 사르르 녹아내렸다.


"날씨가 꽤 쌀쌀하네..."


눈이 녹고 남은 물방울을 털어내고 정면의 풍경을 응시한다. 수 없는 시간 동안 지겹게 보아왔을 장면인데도 질리지가 않았다. 기다림의 시간 동안 변한것은 별로 없지만, 왜인지 매번 볼 때 마다 다르게 보였다.


한발 한발, 조심히 발을 내딛는다. 새하얀 눈이 소복이 쌓인 얼어붙은 강 위에 한줄기 발자국이 남았다. 바람이 불어와 목에 두른 새빨간 목도리가 흩날렸다.


발로 눈을 치우자 반투명한 얼음 사이로 물고기 하나가 헤엄을 치는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나는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이 산책의 목적지는 딱히 없었으나 언제나, 목적지는 정해져 있었다. 


"..."


어느새 내 발걸음은 입구가 나무 판자로 막혀있는 동굴 앞에서 그대로 멈췄다. 어디에서 출발하던, 어디에 들르던 목적지를 정해두지 않았다면 종착역은 매번 이곳이다.


언젠가부터 생긴 습관이었다. 더 이상 기다릴 이유조차 사라진 지금도 내 몸은 아직 잊지 않은 모양이다. 문득 머릿속에 추억 하나가 스친다.


'기다릴 수 있어?'


기다릴 수 있다고, 언제까지고 기다리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난 이제는 빛바랜 광산의 오래된 조명처럼, 점차 꺼져가는 약속이었다.


'기다릴 수 있어. 정말이야.'


나는 다시금 발걸음을 돌려 아무도 없는 마을로 향했다. 어느새 회색빛 하늘에서 새하얀 눈송이가 내려오기 시작했다. 내리는 눈을 보고 무언가 머릿속에 떠올랐으나 이내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날씨가 꽤 쌀쌀하다.



"어후 씨... 추워! 여긴 왜 이렇게 추운거야?"


나는 바들바들 떨며 손에 쥔 핫팩을 다시 한번 흔들어 뺨에 갖다대었다. 핫팩 특유의 천 냄새와 함께 온기가 얼어붙은 뺨을 조금식 녹이기 시작했으나 살을 찢을듯 불어오는 강풍에는 역부족이었다.


"캐나다가 왜 이렇게 춥냐는 질문은 왜 러시아인이 보드카를 좋아할까? 같은 질문 만큼이나 의미가 없어요."


어차피 추위도 안 타는데 패딩에다 귀마개까지 쓴 타테냐가 내 혼잣말에 답했다.


"그래, 그래. 처음은 독일이었고, 그 다음은 탄자니아, 이제는 캐나다. 이제는 또 어딜 보낼 셈이야? 북한?"


유럽, 아프리카, 북아메리카, 지금 나는 퀘스트를 하면서 세계일주 중이다. 살면서도 못해본걸 죽어서 다 하고 있다. 설마 나중에 진짜 북한으로 보내는건 아니겠지?


"야. 근데 퀘스트 하면서 든 생각이 있거든?"


나는 그렇게 말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직 내가 처음으로 도착한 협곡이다.


"나 죽은거 아니였어? 사기꾼 잡는 퀘스트는 그 하인리히의 육체를 임시적으로 빌려 썼으니까 이해는 가는데 전에 마검 찾으러 갔을때랑 지금은 왜 이러는거야?"


내가 죽은 상태라면 더 이상 육체가 존재하지 않고 영혼만 남아있는 상태라는 소리다. 그렇다면 내가 이런 추위, 고통, 기본적인 생리현상으로부터 자유롭대는 소리인데...


"영혼만 보낼 수는 없으니까 임시로 육체를 만들어서 보내요. 그러니까 살아는 있는건데, 퀘스트 중이니까 죽은걸로 취급하죠. 그래서 가끔 저승사자들이나 천사들이 혼동해서 퀘스트에 난입해 실패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건가...


"어쨌든, 퀘스트 내용 들었죠?"


나는 타테냐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고럼. 그 유물 찾아오는거 맞지?"


평소 처럼 퀘스트를 끝내고 방에 돌아온 나는 저번 마검 찾으러 갔을 때와 비슷하게 모든 퀘스트가 하나 빼고는 전부 없어져버린것을 발견했다.


별 세개짜리 퀘스트였다. 퀘스트 의뢰자는... 정말 뜻밖에도 미카엘이었다. 난 아직도 그 천사가 존나 무표정으로 놀라는 그 모습을 잊을 수 없다. 내가 그 미친듯이 이질적인 그 표정이 놀라는 표정이라는걸 깨닫기까지는 좀 시간이 걸렸다.


 쨌든, 나는 미카엘이 의뢰한 퀘스트를 수행하기 위해 캐나다로 왔다. 그 퀘스트의 내용은 캐나다 노스웨스트 준주에 위치한 울프레이크 라는 지역에서 유물 세개를 회수하는것.


원래는 다른 천사가 해야 할 일이었으나 그 천사가 퀘스트 시작도 하기 전에 다른 임무를 핑계로 추노해버려서 내가 대신 매꾸라고 이 퀘스트를 의뢰한것이다.


원래는 자신이 할 생각이었지만 가뜩이나 해야 하는 임무가 많았던 미카엘이 날 떠올리고 내게 퀘스트를 의뢰한것이다.


"그래... 1억원이야. 퀘스트 10개는 넘게 해야 벌 수 있는 돈이라고! 내가 이거 진짜 얼어 죽는 한이 있어도 클리어한다."


어느새 나는 협곡을 벗어나 풀이 듬성듬성 나있는 황량한 벌판에 도착했다. 벌판 뒤에는 중간 중간 끊어진 도로와 함께 기찻길이 놓여있었고 가지가 눈에 덮혀있는 울창한 침엽수림과 구름에 가려진 높다란 산이 배경으로 깔려있었다.


"이야, 경치 좋네. 근데 유물은 어디있어?"


생각 해 보니 미카엘에게서 유물이 구체적으로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생겼는지 같은 정보를 듣지 못했다. 슬슬 해도 져가고 있는데 빨리 목적지를 정해야 한다.


"그런식으로 대충 대충 하니까 매번 퀘스트 하는 동안 죽어라~ 고생만 하죠. 설명 똑바로 안들어요?"


타테냐는 그렇게 말하며 품속에서 포스기를 꺼내 냅다 갈겼다. 굉장히 오랜만이지만 그립지는 않았다. 만약 내가 저 포스기가 그리워진다면 그때는 나를 죽여주길 바란다. 내가 인간이 아니거나, 아니면 내가 새로운 무언가에 눈을 뜬거니까.


"야! 여기 영하 20도라고! 이 상황에서 지금 포스기를...!"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다시한번 온 몸을 타고 전해지는 짜릿한 감각에 나는 강제로 눈 덮인 바닥과 뜨거운 딥 키스를 나누어야만 했다.


"정신 차리라고 쓴 거에요. 이제 빨리 가요."


열심히 바닥에서 구르던 나는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저 망할 천사에 대한 살의가 다시 피어올랐다. 하지만 함부로 건드릴 수 없어서 더 짜증난다.


"그래서, 어디로 가지?"


워낙 보고 들은게 부족하니 감에 의지해 미션을 수행할 수 밖에 없다. 심지어 가방에 지도 하나 없다. 진짜 센스라고는 하나도 없어.


"그럼 저기 선로를 따라서 가는거 어때요? 계속 따라가다 보면 뭐라도 나올지도?"


그래.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나가면 뭐라도 나오겠지. 일단 나와 타테냐는 선로를 따라 걷기로 결정했다. 선로가 있다는건 적어도 역이 있다는 소리니까.


"야. 이거 이거 열차가 다니는 선로 맞아?


가까이 다가가 살핀 선로는 내 생각보다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았다. 열차는 고사하고 레일바이크 하나 달릴 수 있는지 부터 의문일 지경이다.


"그러게요. 아마 열차가 오래전에 끊긴 모양이에요. 저기 도로도 아스팔트 막 갈라져있어요."


아무튼 나는 그렇게 선로를 따라 계속 걸었다. 아까 협곡에서와는 달리 바람이 불지는 않아 생각보다 더 춥다. 어차피 바람 부나 안부나 영하 20도인거는 마찬가지다.


주변 경치를 묘사하고 싶지만 어차피 죄다 눈이랑 산 이라서 딱히 묘사할만한게 없... 긴 한데 사실 하나 더 있다. 나무들.


"야 저거 뭐야? 왠 건물들이 늘어서 있어?"


그렇게 계속 걷다 보니 왼쪽에 무언가 보인다. 정확히는 여러색의 낡은 창고 같은 건물들이다. 그 옆에는 풀 한포기 나있지 않은 너른 공터 같은 장소가 있었다.


"글쎄요... 한번 가 볼까요?"


나는 잠시 고민하다 몸도 좀 녹이면서 쉬기로 결정하고 건물로 향했다. 적어도 눈밭에서 노숙하는것 보다는 낫겠지.


"아무래도... 여긴 비행장 같네요."


타테냐가 계류장 한쪽에 놓여 방치된 녹슨 비행기를 보며 말했다. 아까 보았던 공터가 바로 활주로인것 같다.


"실례합니다..."


나는 허술하게 잠긴 문을 쉽게 열고 건물 안으로 들어왔다. 여전히 추웠지만 벽이라도 있어서 덜 추운 느낌이 들었다. 이제 뭐라도 좀 먹으면서 쉬자.


"스팸, 밥... 이건 뭐야. 쏘세지 야채볶음?"


가방에는 햄, 참치 통조림 몇개와 햇반 다섯개, 이상한 간식들과 기타 잡템, 군대에서 먹을것 같은 전투식이 있었다. 군대는 안가봐서 잘 모른다.


"이거 뭐야? 총?"


그리고 가방 안에는 권총 한자루가 있었다. 정확히는 44구경을 사용하는 리볼버다. 이거 가지고 곰도 잡는다는 얘기가 있는데 이건 왜 준걸까. 뭐 선택할 수 있을때 편안하게 가라는 소리인가?


"군대 안 갔다고요? 그쪽 꼬라지 보면 왜 군대 안갔는지 딱 보이네요. 정공 맞죠?"


라이터로 고체연료에 불을 붙여 물을 데우던 나에게 느닷없이 타테냐가 시비를 걸었다. 진짜 저거 죽일까?


"야 나 정공으로 군대 안간거 아니거든?"


적어도 내 정신은 멀쩡하다. 내게는 다른 이유가 있다고.


"그럼 사기나 꼼수로 안간거 맞죠?"


정답. 독일로 튄 다음 시민권 획득한 뒤 몰래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래서 내 국적은 독일이다.


"말 못하는거 보니 맞는것 같네요. 혹시 태어날때 부터 의사한테 성별 여자라고 사기친거는 아니죠? 사람이 어떻게 합법적인 활동이 하나~도 없을 수 가 있어?"


나는 옆에서 궁시렁대는 타테냐를 무시하고 데워진 즉석밥을 퍼먹기 시작했다. 일단 따뜻한게 들어가니 좀 살 만 하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


열심히 밥을 먹던 와중, 타테냐가 내게 물었다. 나는 밥을 먹고 있었기에 최대한 짧고 명확하게 답했다.


"몰라!"


지금 유물 찾는건 고사하고 생존을 위한 투쟁을 먼저 해야 할 판이다. 이대로 가다간 유물은 보지도 못하고 그대로 얼어죽거나 음식이 떨어져 굶어 죽을 것이다.


"자랑하는거 아니죠?"


나는 다시한번 타테냐를 무시한 뒤 자리를 털고 일어나 주변을 살폈다. 이미 밤도 됐고 하니 이제 자야 하는데 문제는 이대로 자다간 다음날 냉동 오징어가 된 채로 발견되기에는 딱 좋다는 것이다. 무슨 수를 쓰던 이곳의 온도를 높여야 한다.


"불이라도 피워야 하나?"


땔감을 찾기 위해 주변을 열심히 둘러보던 나는 옆 방으로 가는 문을 발견하고는 천천히 열어젖혔다. 방 안은 여전히 어두컴컴 했기에 주머니에서 지포 라이터 하나를 꺼내 켰다.


라이터로 비춘 방 내부는 여전히 어두웠지만 석유 램프 하나를 찾아내기에는 충분했다. 램프에 불을 붙이자, 방이 그나마 육안으로 무얼 볼 수 있을 정도로 밝아졌다.


"뭐야. 지도?"


방 한쪽 벽에는 커다란 지도가 걸려있었고 그 아래에는 책상 하나가 놓여있었다. 방은 램프 불빛 하나로 커버가 가능할 정도로 작았지만 있을건 다 있었다. 예를 들어 이불까지 있는 침대나 난로 같은거.


"지도는 꽤나 쓸만하게 사용할 수 있을것 같네요."


타테냐가 방 안을 둘러보며 말했다. 생활감이 느껴지는걸 보면 아무래도 이 방은 비행장을 관리하던 사람이 썼던 방 같다. 


"지도도 중요하긴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건 침대랑 난로가 있다는 소리야. 적어도 얼어 죽을 일은 없잖아."


난로 안에는 아직 하룻밤 정도를 버틸 수 있는 장작이 남아있었다. 나는 라이터로 장작에 불을 붙인 뒤 뚜껑?을 닫았다. 방 안이 그나마 훈훈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유물 찾는건 내일 생각하고, 이제 좀 자자."


나는 그렇게 말하며 침대 속으로 들어갔다. 엄청 푹신한 침대는 아니었지만 그럭저럭 편안했기에 얼마 지나지 않아 그대로 곯아 떨어졌다.



"자빠져있지좀 말고 빨랑 쳐 일어나요 좀!"


일단 나는 저렇게 입이 험하고 쓸데없이 시끄럽기만 한 알림시계를 산 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지금 30분째 일어나라 주장하고 있는 이 목소리는 틀림없이 타테냐일것이다.


"알았어, 알았다고!"


나는 박살날듯 삐걱대는 몸을 간신히 움직여 침대에서 일어났다. 전날 밤 다행히 얼어죽지는 않았으나 아침이 되었어도 여전히 추웠다.


"다음날 시체로 발견될 줄 알았는데, 의외로 멀쩡하네요?"


아침부터 저 천사를 시체로 만들어주고 싶은 마음에 나는 기지게와 함께 두발로 간신히 섰다. 난로를 바라보니 희미하게 남은 불티가 보였다.


"의외로 멀쩡? 넌 내가 죽었으면 좋겠지?"


아침부터 말싸움이라니. 정말이지 완벽하다.


"어제보다 더 추운것 같거든? 어떻게 생각해?"


격납고 문을 열자 마자 들어오는 냉기에 나는 급히 문을 닫고 내가 왜 이 퀘스트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떠올렸다.


"야. 이거 바깥으로 나가도 되는거냐?"


대체 왜 미카엘은 굳이 나를 12월의 캐나다 북부로 보낸걸까. 봄에 보내도 되잖아. 어차피 사람은 커녕 쥐새끼 한마리 안 살것 같은 동네인데 유물을 누가 훔쳐간다고.


"그만 꾸물대고 움직여요. 이러면 퀘스트 빨리 끝내기 어려워진다고요. 1억 안받을거에요?"


타테냐의 꾸중을 들은 나는 한숨과 함께 다시 격납고 문을 열었다. 시원하기 그지없는 상쾌한 아침공기는 개뿔 추워 디질것 같다. 어제보다 더 추운것 같다고.


"그래... 1억. 1억을 생각하자. 넌 하뚜이따!"


내가 선택한 퀘스트다. 악으로 깡으로 버텨라. 머릿속으로 몇번이고 세뇌했으나 뇌 까지 밀려온 찬공기에 세뇌는 그리 큰 효과를 내지 못했다.


 "야. 여기 봐봐. 선로가 두개로 나뉘어 있어."


그렇게 50분 가량을 떨면서 걷던 나는 선로가 두개로 나뉘는 구간을 발견했다. 어디로 가야 하는거지?


"저기, 선로가 하나 더 있어요. 아무래도 이 모든 선로는 삼각형 모양으로 이어져 있는것 같네요."


너무 커 중요한 지점만 잘라놓은 지도에도 이 삼각선이 보인다. 만약 쭉 간다면 다른 지점으로 넘어가게 되고 오른쪽으로 간다면 마을로 가게 된다.


"굳이 옆쪽으로 갈 이유는 없으니까 일단 선로를 따라서 마을로 한번 가보자. 거기에 누군가 살지도 몰라."


나는 호기롭게 외쳤으나 확신은 없었다. 어제도 말했듯 이곳은 관리조차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곳이다. 마을에 누군가 혹은 주민들이 살 가능성은 희박했다.


"그럼 마을로 한번 가보죠."


나는 지도를 가방에 쑤셔넣고서 초코바 하나를 입에 물었다. 그리고 나는 순간 내가 나무토막을 초코바랑 혼동해 입에 넣은게 아닐까 의심이 들었다. 하지만 이내 손에 들린 초코바 비닐봉투를 보고 의심을 거두었다.


"지금 얼음 씹어먹고 계신건가요? 어디서 으드득 으드득 거리는 소리가 들리네요."


오른쪽 선로를 초코바를 씹어먹으며 가던 나는 얼음을 먹고있느냐는 타테냐의 질문에 하마터면 그렇다고 대답할 뻔 했다. 겨우 초코바를 다 먹은 나는 우측의 침엽수림을 보았다.


"옆에 이 나무들은 무슨 나무지?"


선로가 조금 더 깊은 곳으로 향하면서 숲 바로 옆에서 걷게 되었다. 아마 열차가 운행했다면 우측 창문에서 숲의 경치를 관람할 수 있었을 것이다.


"세쿼이아, 아니면 가문비나무겠죠."


가문비나무는 몰라도 세쿼이아는 어디서 들어본 적 있다. 가로수길 중에 메타세쿼이아 길도 있었지 아마? 물론 그건 머타세쿼이아고 여기 있는 세쿼이아는 그것들보다 배는 더 큰 느낌이다.


"앗, 저기 무언가 있는것 같은데요?"


한참을 더 걷고, 걷고, 다리가 슬슬 아파올 때 즈음 타테냐가 무언가를 발견하곤 소리쳤다. 선로 옆에 목제 집 한채가 놓여있었고 그 옆에 뾰족뾰족한 지붕이 보였다.


"저거 역 아니야? 마을에 도착한것 같은데?"


기쁜 마음에 나도 모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아직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고 유물은 찾지도 못했지만 이 고난의 행군을 마침내 끝낼 수 있다는 기쁨에 겨워 별로 상관 없었다.


"일단 역은 깔끔하게 잘 지었네."


역 내부에는 벤치, 쓰레기통, 매점 등이 있었지만 매점은 텅 비어있는데다 자물쇠로 잠겨있어 여는게 불가능했다. 일단 역에서 나가 본격적으로 마을 수색을 시작해보자.


"이 마을 이름이 뭐라고 했죠?"


나와 함께 마을로 들어서던 타테냐가 느닷없이 마을 이름을 물었다.


"글쎄, 아마 노턴이었을걸?"


일단 지도에는 그렇게 쓰여있다. 그리고 우리가 하룻밤 신세를 졌던 그 비행장의 방에도 '노턴 비행장' 이라는 이름이 등장한걸 보아 이 마을의 이름은 노턴이 맞는것 같다.


"야... 이거 마을 썰렁한것 보소?"


예상은 했지만 마을은 텅 비어있었다. 도로는 한적했으며, 사슴 한마리가 도로를 가로지르며 지나갔다. 대충 건물은 8채, 혹은 그 이상 있는것같고 몇개 빼고는 전부 목재 집이다. 여기서 뭐 나무 아니면 뭘 더 쓰겠냐만은.


"저 집이 제일 큰것 같은데, 한번 가볼까?"


마을을 가로지르는 도로를 따라 걷던 나는 건물 하나를 발견하곤 발걸음을 멈췄다. 다른 집에 비해 더욱 크고 2층이었으며 제일 좋아보였다.


가까이 가보니 집 앞 마당이 전부 빗자루로 쓸려있었다. 이로써 이 마을에 사람이 산다는 사실은 입증되었다. 그럼 한번 들어가서 얘기를 좀 나누자.


"일단 조심해요. 저 집 주인이 사람을 그리 반기지 않을 수 도 있어요. 죽으면 그대로 퀘스트 끝인거 아시죠?"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서려던 나는 타테냐가 경고에 잠시 머뭇거렸다. 확실히 이런 곳에서는 누구 하나 죽여도 죽었다는 사실 조차 알려지기 힘들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겠네."


나는 품속에서 아까 받은 권총을 꺼냈다. 이거라면 적어도 호신용으로 쓸 수 있을 것이다. 


철컥, 문고리를 돌리고 집 안으로 들어섰다. 일단 제일 먼저 보이는건 윗층으로 가는 계단. 그 외에는 타오르는 벽난로와 무언가 올려져있는 유리장이 보였다. 그리고...


"잠깐. 거기 멈춰봐."


나를 향해 총을 겨누고 있는 한 여성의 모습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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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울프레이크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