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행성은 이상할 정도로 평화로웠다.

마치 폭풍전야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물론 조금 특이하긴 하지만. 물에서 물고기 대신 붕어빵들이 뛰노는 행성을 평범하다고 할 수는 있을까.

호빵에 귤, 붕어빵까지. 이쯤되면 겨울 음식 행성이 아닌가 싶다.

물론 내 작명센스가 옛적에 밥 말아먹은 건 아니까 그렇게까지 구리다는 표정은 짓지 말고.


[겨울 같네요. 실제로 본 건 처음이지만, 당신이 보여줬던 사진과는 닮아있습니다.]


장미의 말대로였다. 잎이 있을 자리에 하얀 눈이 쌓인 나무들은 겨울의 풍경이다. 겨울을 배경으로 한 멜로 드라마에서도 자주 나오는 장면이니, 겨울의 모습이라 하기에 적합하다.


[이런 건 로맨스 드라마에서 자주 나온다고 했었죠?]


"맞아. 근데 그 얘기는 하지 말자. 옆구리 시려워."


[왜 옆구리가 시렵죠?]


"거기선 남주하고 여주라는 것들이 둘이서 붙어다니는 데 혼자 있으면 얼마냐 춥게 느껴지겠냐?"


남들은 추워 죽겠는 데 둘이서만 붙어다니고, 보기만 해도 옆구리가 시려워진다니까. 정말이지, 끔찍하기는. 짜증나던 염장질을 떠올려보고서는 입을 삐죽이며 투덜거렸다. 모쏠은 언제나 커플 앞에서 죽어나간다지만, 겨울에는 옆구리가 시려워 얼어죽는다.

나를 빤히 바라보던 장미가 입을 열었다.


[지금은 저희도 둘이서 붙어다니지 않나요?]


".....응?"


[당신도 남자, 저도 여자. 설명한 거랑 다를 건 없어 보이는 데요.]


그저 빤히 바라보기만 하던 장미의 얼굴이 새빨개진다. 장미의 머리카락 색 만큼이나. 붉디 붉은 장미처럼.


[아... 아, 아닙니다. 잘못 말했네요.]


그래, 잘못 말한 거겠지. 아무리 생각해도 연애는 내 인생에 존재 할 수가 없다.

로또 맞을 확률의 운이 생긴다면 모를까 도무지 그럴 리가 없다.


그런데 이렇게 우주 여행을 하고 있다는 것또한 로또 맞을 확률의 운이 생긴 게 아닐까.

장미의 얼굴을 바라보니 문득 그런 기억이 떠오른다. 좀비들에게 둘러쌓였을 때, 장미가 했던 말이, 최후의 순간이라 생각했을 때 다가오던 장미가.


'[들어 줘요. 이제 마음을 정리했어요. 저와… 함께 있어 줘서 고마워요. 저를… 구원해 주셔서 고마워요. 저에게, 함께하자고 해줘서, 고마워요… 전 당신을…]'


그 뒤로 이어져야 했던 말은 무엇이었을까.

로또 맞을 만한 운은 생긴 지가 오래다. 그러니 용기를 내어 한번만 물어보자.


"장미."


[네.]


"혹시 나 좋아해?"


가라앉았던 얼굴이 다시 빨갛게 물든다. 차가운 바람에 넘실거리는 머리카락 만큼이나 붉게.

입을 다물었던 장미가 입을 열었을 때였다.


[.......마,]


-사용자님! 전방 3시 방향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물체들이 출현했습니다! 생체 반응은 하지 않습니다만 기계 장치는 보이지 않습니다! 약 300m 쯤 떨어진 곳에서 빠른 속도로 접근 중입니다!-


빌어먹을, 이게 머피의 법칙인가. 평화롭다는 생각이 떠나기도 전에 이런 일이 일어난다.


"할, 물체는 어떻게 생긴 형태지?"


-대체로 둥글게..... 이런 젠장할! 썩은 녹색의 호빵 모양에 군데군데 파먹힌 자국이 있습니다! 키는 약 100m 쯤 되고 가로폭도 약 40m 쯤 됩니다! 혈흔으로 추정되는 붉은 액체가 묻어있는 것으로 보아 좀비와 유사합니다! 개체는 다섯으로 보입니다! 그 중 한 개체가 선두로 달려오는 중입니다!-


"오케이. 100m쯤 되면 알려줘. 그리고 장미, 보조 사격 좀 해줘. 저번에 들었던 소총보다는 화력이 강할 테니까 반동도 조심하고."


[네, 알겠습니다.]


-옵니다!-


할의 외침과 함께 커다란 썩은 호빵이 보였다. 더블배럴 샷건을 조준하고서, 방아쇠를 당겼다.


탕!


큰 몸집 탓인지, 좀비는 가운데에 큰 구멍이 난 채로 비틀거렸다. 마치 두번째 행성에서 보았던, 그 커다랗던 좀비들처럼. 한숨을 쉬며 방아쇠를 한 번 더 잡았을 때였다.


탕, 타탕!


옆에서 날아든 총알이 비틀거리는 좀비를 향해 쏟아졌다. 장미가 쏜 총알이다.


"잘했어!"


-사용자님, 전방에서 적들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남은 네 마리에 이어, 열 마리의 개체가 더 몰려옵니다!-


총 열 네 마리라는 거지. 총알은 충분하다.

힘차게 달려오는 썩은 호빵들을 향해 외쳤다.


"쏴!"


탕! 타탕!


타앙, 타타탕!


군데 군데에 구멍이 난 좀비들이 맥없이 쓰러진다. 좀비든 뭐든간에 결국 강한 화력에는 쓰러지고 만다.

단 하나 문제가 있다면.


-사용자님, 적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다섯 개체가 추가로 몰려왔습니다!-


놈들이 너무 많다는 것.

어디서 왔는 지 모를 놈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장미, 열 마리 정도만 더 해치우고 더 늘어나면 우주선으로 가자."


[...알겠습니다.]


장미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달려오던 좀비들을 저격했다. 달려오는 좀비들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고 또 당겼다.

퍼져오는 썩은 내가 끔찍하다.

곧이어 한 마리가 쓰러졌다.


탕!


또 한 마리가 쓰러지고.


탕!

타앙! 타타탕!


셋, 그리고 넷.


탕! 탕!

타타탕! 탕! 타앙!


총알이 비산하며 좀비들의 몸을 꿰뚫는다.

좀비들은 계속 쓰러지지만, 서 있는 좀비들 또한 적지 않은 수다.


다섯, 여섯. 일곱.


탕!

타탕! 탕!


여덟. 아홉.


탕!

타앙!


마지막 한마리.


"달려!"


장미의 손을 붙잡으며, 우주선을 향해 달렸다.

쫓아오는 좀비들을 향해 총을 갈겨 주고선 연락 버튼을 눌렀다.


"교수님!"


"....."


"교수님!"


제기랄, 연락은 닿지 않았다.

쏜 총에 터져나가는 좀비들을 무시하고, 우주선의 문을 열었다.


"장미, 우주선을 조작해. 난 출발하기 전까지 좀비들을 해치울게."


[알겠습니다.]


전송받았던, 내 몸집만한 총을 들어올렸다.


"BIG FUCKING GUN 이다! 이것도 한 번 받아 보시던가!"


초록빛 광선이 하얀 거리를 초록 색으로 물들인다. 끝없이 몰려오던 좀비들이 재도 남기지 못한 채 사라져 버렸다.

그럼에도 끈질기게 몰려오는 좀비들을 향해 광선을 겨눴다.


[곧 출발해요!]


장미의 외침이 들리기 무섭게, 우주선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남은 좀비들과는 꽤 떨어져있다.

총을 내려놓고 장미가 있는 선실로 향했다.


-카운트 다운-


-3-


-2-


-1-


-출발합니다!-


우주선이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대기권에 진입한 모습을 보고 모든 힘이 풀린 나는 주저 앉았다.


[괜찮아요?]


"어. 너는?"


[저도요. 무사해서 다행이네요.]


편안한 상태가 되어서 인지, 장난스러운 말이 나온다.


"있잖아, 장미."


[네.]


"아까전에 내가 물었던 거 있잖아. 난 대답을 못 들었는 데, 이제 말해줄래?"


씨익 장난스레 웃으며 말을 꺼냈다. 장미의 얼굴이 발그레 해지더니 입을 연다.


[...맞...요.]


"뭐라고 했어? 난 안들리는 데?"


[맞다고요!]


장미가 붉어진 얼굴로 소리친다. 그 모습이 어째선지 귀여워 보여, 피식 웃었다.

내 모험의 장르에는 어쩌면 로맨스가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4화 끝


장미가 히로인 이라고 하길래 이참에 확 밀어줘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