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스스로 자신들이 일구어놓은 모든것을 멍청한 사유로 날려버리려는 시도를 한것이 적어도 세번 이상 있었다는 사실은 그리 놀라운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런 순간이 세상을 아무것도 바꾸지 않는다는 사실 또한 그리 놀랍지 않다. 인류는 지금까지 무수히 많은 위기를 겪어왔음에도 고집스럽게 멸망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확실한 변화가 일어났다. 정치적 위기로 인해 촉발된 대전쟁, 나라들은 점차 줄어가기 시작했고 전쟁 기간이 7년을 넘기기 시작하자 문명과 세상은 쇠퇴하기 시작했다. 살아남은 자들은 슬슬 분노하기 시작했다.


군인들과 남은 자들은 더 이상 목적도 없는 전쟁 수행을 거부했다. 그렇게 전쟁을 일으킨 정치가들은 본인들이 만들어낸 전쟁의 마지막 전사자가 되었다.


이제 남은건 껍데기만 남아있는 세 나라들과 폐허 뿐. 살아남은 자들은 한때 인류 최강국이었던 나라의 수도로 향했다.


그곳에서, 그들은 희망을 발견했다. 기적적으로 의회도서관이 전쟁의 포화에서 벗어나 있었던 것이다. 


의회도서관이 지닌 막대한 지식은 이 세상을 전쟁 이전의 모습을 추억할 수 있을 만큼 장대하고 거대했다. 사람들은 세상이 이전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을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모든 지식이 신세계의 재건을 위해 사용될수는 없었다. 세상을 복구하면서, 사람들은 지금 당장 유용한 지식들과 그렇지 않은 지식을 나누기 시작했다.


그 기준은 처음에는 단순한 구분이었다. 세상을 다시 재건하는데 당장 필요하고 실용적인 공학, 의학등의 이과적 지식과 지금 당장은 필요가 없지만 사회가 발전한 뒤 세상을 다스리는데 필요한 법학, 행정학 등의 문과적 지식을 나누는 구분선에 불과했다.


하지만 언제부터였을까, 기준선에선 '지금' 이라는 단어가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단순히 구분을 위해 탄생한 기준은 점차 절대적인것이 되어갔다.


공학, 의학, 건축학과 같은 학문은 무언가를 만들어낸다. 생활에 필요한 기계를 만들거나 죽음에 기로에 놓인 자를 소생시켜 생명을 만들어내거나 편안한 집과 방공호를 만든다.


사람들은 사람이 살아가는 필수적인 요소를 만들어내는 과학에, 기술에, 열광했다. 동시에 논리적이고, 이성적인것은 상황을 냉철하게 판단해 옳은 선택으로 이끄는 선한 행위었고 판단력을 저해시키는 감성적인것은 악이 되었다.


무언가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그 학문의 가치는 없었다. 쓸모가 없는것이다. 그 쓸모없음의 최정상에 오른 두 학문이 바로 문학과 정치학이었다.


이 '쓸모없음'의 대표주자인 두 학문은 기피를 넘어선 혐오의 대상이 되었다. 정치학은 인류를 멸망 속으로 밀어넣으려고한 대전쟁을 만들어내고 사람들의 분란을 조장해 이익을 취하는 쓰레기같은 학문이었고 문학은 쓸데없이 감성적이고, 논리적이지 못하고, 무엇보다 쓸모없는 글을 만들어내는 학문만도 못한 학문이었다.


이 두 학문에 대한 취급은 증오에 가까웠다. 정치학은 또다른 대전쟁을 방지하기 위하여 정치학을 공부했거나 이전에 정치인 혹은 그 비슷한 일을 한 대상은 전부 사살되었고 문학은 쓰는것도, 보는것도 허락되지 않았다.


반발은 없었냐고? 글쎄, 그런건 961m/s의 속도로 날아가는 5.56mm탄환을 초당 15발씩 난사해대는 정밀기계공학의 산물이 만들어내는 소음에 묻혀버린지 오래다.


그들이 만들어낸 작품들은 이들에게 대항하지 못했다. 종이들을 겹쳐서 방탄복을 만든다면 모를까, 총알 한발 막아주지 못했다. 기술의 우수성은 이로 인해 다시 입증되었다.


이제 문학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 그런것이 존재했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잿더미로 변한다. 그것을 쓰거나 읽은 자들 또한 '불쏘시개만도 못한 글 나부랭이로 기술과 과학의 발전을 저해시켰다'는 이유로 모든 기술과 문명에서 추방당한다.


이제 기술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라는 질문은 시도 조차 하기 힘들어졌다. 비판도 풍자도 하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 글을 쓴다는건 힘든 일이다. 걸리는 날에는 곱게 넘어가지 못한다.


하지만 나는 이 글이 발각되는 그 날까지 쓸것이다. 이 글과 내가 쓸 다음 글, 심지어는 나마저 잿더미가 되어버리는 그 날까지 계속 글을 쓸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