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아버지가 해주시던 말이 있다.
뭐라더라... 운명에 숙일 줄도 알아야 한다던가?
아니면 때론 저항할 줄도 알아야 한다던가?
사실 잘 기억 안 난다. 벌써 몇 년이나 시간이 지났는데 당연한 걸 지도 모르겠다.

그래, 아버지는 죽었다.
몇 년 되었다.

아버지만이 아니다.
어머니도 죽었다.
삼촌도 죽었고 숙모도 죽었다.
고모도 죽었고 이모도 죽었다.
형도 죽었고 동생도 죽었다.


다만 정확히 말하자면
죽은 게 아니라 살해 당한 것이다.

모두 한 놈에게  살해 당한 것이다.


딱 나만 빼고.

나는 그 지옥 같은 광경 속에서,

가족들이 괴물에게 먹혀나가는 광경 속에서

두 눈 똑바로 뜨고 그걸 지켜보고 있어야 했다.
우리가 마왕이라고 부르는 괴물에게 먹히는 광경을.


내가 살아남은 건 가족들 중에서 내가 제일 겁쟁이였기 때문이다.

나는 구석에 숨어서 훌쩍 거리며 지켜만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괴로웠다.

나 하나의 목숨이 아까워서 숨어서 빌빌댔던 거지만 괴로웠다.

밤에 자기 전에 안부 인사를 나눌 상대가 없다는 게 괴로웠다.

밥 먹으면서 맛있는 음식 가지고 다툴 상대가 없는 게 괴로웠다.

무심코 부른 이름에 돌아오지 않는 대답이 괴로웠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아쉽게도 나는 파이어펀치가 아니었기에

주인공이 될 용기는 없었다.

내게 용기는 밤하늘을 올려다 보면서 눈물이나 몇 방울 쥐어 짜는 용기가 다였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달이 유독 어지럽던 어느 날이었다.


꿈 속에서 가족들이 나왔다.


평소에도 자주 나왔지만 뭔가 달랐다.

가족들은 아무 말도 하고 있지 않았지만

무언가 전하려고 했다.

못 알아듣는 나를 답답해하고 있었다.


원통하다고요? 아닌가?

잘 지내냐고요? 아닌가?
네? 로또 번호요? ... 아닌가?


포기했다. 그랬었다.

바디랭귀지라는 것에는 한도가 있다.

못 알아들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허나 잠에서 깨서

바람이나 쐬려 나온 내 앞에는

달빛에 번쩍이는 검이 있었고

그 예사롭지 않음은 어느 모로 보아 성검이라 이름 붙이기에 손색이 없었다.


어린 애가 보아도 알 수 있는 것이었다.
이 검은 괴물을 베기 위한 것.
복수를 위한 것.
방금 전 꿈은 이것을 위한 꿈.
그럼에도 나란 한심한 녀석은 그 순간에도 고민했다.


마을 어딘가에 숨겨져 있다던 게 이것을 말하는 거였던가?
내가 이 검을 든다면 이길 수 있을 것인가?

그 괴물의 어마무시한 크기 앞에 겁 먹지 않고 잘 휘두를 수 있을 것인가?


그때 본 것이다.

그때 보인 것이다.

검에 비친 내 모습이.


수염이 나 있었다.

머리는 희끗희끗했다.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칼에 비쳐진 나는 아버지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생각났다.
괴물이 나타났을 때 제일 먼저 앞에 섰던 아버지.

그래서 다른 이들을 도망치게 하고자 했던, 그 시간을 벌고자 했던 아버지.

지금은 내가 아버지의 얼굴이라.

얼굴... 뿐이라.

얼굴... 뿐...



그렇게 나는 성검을 뽑았다.

욱하는 마음과 겁에 질린 마음 전부

가래에 섞어 뱉어낸 다음에.



오는 길에는 괴물이 보였다.

내 공포가 잘못 본 허깨비인지, 아니면 진짜였던 건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그 괴물에게 엿이나 먹으라 하며 도망쳤다.
도망치는 길에 뭐라고 자신감에 차서 나불거렸던 것도 같은데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여하간 더는 그 녀석이 두렵진 않았던 것이다.

그게 중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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