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HAL의 안내를 받으며 우주선으로 향했다. 돌아온 우주선은 엄마 품처럼 편안하였다.

 

“HAL! 빨리 출발해! 이딴 행성에서 단 1초도 있고싶지 않아!”

-바로 출발할까용?

“그래! 빨리!”

 

우주선이 날아올랐고 드디어 이 끔찍한 행성에서 나갈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였다. 어느 정도 활공을 이어간 이후에야 나의 놀란 마음이 조금 진정되는 것 같았다. 동화에서 본 것과 딴판인 어린왕자를 보고 내 어린시절의 동심이 산산조각 나는 것 같았다.

 

“어린왕자 놈이 진짜 변태인건 알겠는데 그럼 지금 행성을 터뜨리는 이유가 단순히 식물이 없어서라고?”

[네. 맞아요. 제가 아까도 말했듯이 취향을 사람을 만들어요. 절대 빈말이 아니죠. 특히 어린왕자 같은 놈은 더더욱.]

 

나는 장미가 아까부터 언급하던 취향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의 의미를 쉽게 이해하기 어려웠다. 아무리 취향에 따라 사람이 바뀐다한들, 그게 행성 하나를 초토확시키는 군대를 데리고 다닐 정도로 중요한 것인가라는 생각을 떨쳐내기가 어려웠다. 그렇기에 이 이야기를 진지하게 하는 장미가 조금은 이상하게 느껴졌다.

 

“뭐, 어쨌든 이제 어린왕자가 없으니까, 다시 다른 곳으로 가야되겠네.”

-맞아용. 설마 어린왕자가 또 나타나는 그런 일이 일어나겠어요?

[잠깐, 그거 플레그…]

 

HAL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우주선이 무서운 기세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무언가 우리의 우주선을 잡아당기는 것처럼 우리 우주선이 다른 곳으로 끌려가고 있던 것이다. 우리를 끌어당기는 것은 또 다른 우주선…아까 본 어린왕자의 우주선이었다!

 

-비상. 비상. 우주선의 강한 진동 감지. 현재 기체를 정지하고 본 기체로 복귀합니다.

 

HAL이 애교섞인 목소리를 멈춤과 동시에 로봇의 몸을 버리고 우주선으로 다시 변하였다. 공포를에 질린 나는 소리를 질렀다. 육두문자가 섞인 고함은 우주선 전체를 멤돌며 공포감을 더욱 자아내고 있었다.

 

[괜찮아요! 진정하세요!]

 

장미는 흥분한 나를 다독이며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말을 듣고 나 역시 장미처럼 차분해지려고 애썼지만 좀처럼 잘되지 않았다. 고함소리가 점점 커질 때쯤, 우리의 우주선은 어느덧 어린왕자의 우주선 앞에 있었다.

 

-진동이 멈춰서 안정된 상태입니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습니다. 허나 저 앞에 있는 우주선은 상당히 위험해 보이는군요.

 

HAL의 말이 끝나고나서 어린왕자의 우주선에서 누군가 우주복을 입고 나왔다. 두꺼운 우주복에서 누군지 알 수 없었지만 나는 얼핏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어린왕자다.

 

-교신을 요청하는데 연결할까요?

“연결해.”

 

HAL이 교신 컴퓨터의 전원을 켜자 어린왕자의 목소리가 나왔다.

 

“두려워하지 마라. 우리는 거래를 하러 온 것이다.”

 

거래를 하러왔다는 어린왕자의 말은 크게 믿고 싶지 않았다. 진심으로 우리를 죽이러 온 것이라고 더 굳게 믿고 싶을 뿐이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단 한 명. 너희 우주선에 타고 있는 장미 하나를 데려가려는 것뿐이다.”

“뭐?”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그 식물 페티시 어린왕자가 노리는 것이 이 우주선에서 유일한 식물인 장미였다니. 장미를 데려가서 무슨 짓을 할 것인지는 분명했다.

 

“장미를 데려가서 이런저런 몹쓸 짓을 할 생각이구나!”

[어린 왕자…당신이 결국…]

 

우리의 말을 듣던 어린왕자는 잠시의 침묵을 유지했다. 그리고는 어린왕자의 정색하는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무슨 미친 소리지? 내가 아무리 이상성욕자 변태라고 한들 내 자식을 범할 정도로 쓰레기는 아니다.”

 

순간 다시 멍해졌다. 장미가 어린왕자의 자식이라고? 내 머릿속에서 이게 무슨 소리인가하는 5만가지 생각이 스쳐갔다.

 

[아니, 뭘 그렇게 놀라요. 제가 처음 봤을 때 저는 어린 왕자가 뿌린 하얀 씨로 제가 태어났다고 했잖아요.]

“하얀 씨가 진짜 그거였어…?”

 

어쩌다 보니 장인어른을 눈앞에 둔 나는 갑자기 무서워졌다. 그리곤 어린왕자가 말을 이어나갔다.

 

“그 장미를 우리에게 넘긴다면 확실히 대접해주겠다. 그러니 장미를 넘겨라.”

“장미를 왜 넘기라는거지…요?”

“그 아이에게 좋은 짝을 찾아주기 위함이다.”

“좋은 짝이라면…”

“나는 못난 아비였지. 자식을 남기고 그렇게 떠나는 변태 아버지를 좋아하는 자식이 있을 리가 없지. 나에게 자식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을 때는 혼란스러웠다. 그래서 장미의 딸을 찾아다녔지만 찾을 수 없었지. 그래서 그 아이를 나중에 찾게 된다면 서프라이즈 선물로 좋은 짝을 주기 위해서 식물을 찾아다녔던 것이다.

그렇게 몇 년을 떠돌아다니며 참한 식물을 찾아다니던 중에 식물 탐지 레이더에 한 장미가 잡히고 확신했어! 저 아이가 나의 자식이라고!”

“아니, 잠깐만 장미는 장미의 엄마가 있던 그 행성에 쭉 혼자 있다가 최근에 나랑 같이 그 행성에서 나온건데, 장미를 못찾았다고?”

 

어린왕자는 다시 말이 없어졌다. 아무래도 큰 충격을 받은 것인지 이번에는 침묵의 시간이 꽤나 길었다.

 

“아…아니…그 아이가 그 행성에 쭉 있었다고? 난 당연히 스스로 생각을 할 수 있을 때쯤에 ‘이딴 콩가루 집안! 가출하겠어!’ 하면서 그 행성을 나올 줄 알고 그 행성은 안 찾아본 것이었는데!”

 

난 어린왕자가 분명 지능에 어느정도 문제가 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그게 아니라면 저 사고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

 

“뭐, 어쨌든 이제 찾았으면 된 것 아닌가? 나는 이제부터 그 아이에게 좋은 짝을 찾아주어야하니 나에게 넘겨라.”

“미안하지만, 이제 그럴 필요는 없어…요.”

“무슨 소리지?”

“장미는 내 여자니까...요!”

 

어린왕자가 다시 침묵하였다. 하긴 평생 한 번 보는 딸에게 연인이 생겼다는 소식은 아버지로써는 가히 충격적인 소식일 것…

 

“그건 또 무슨 미친소리지? 내가 아는 장미는 남자아이다.”

 

순간 다시 머리가 멍해졌다. 나는 장미를 바라보았다. 장미 역시 멍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리곤 나와 눈이 마주치자 바로 나에게 텔레파시를 보내왔다.

 

[아…아무래도 제가 사람을 잘못보았나 봐요! 저 사람은 어린왕자가 아니에요! 생각해보면 자기를 어린왕자라고 칭한 적이 없잖아요!]

“그러고보니 내 소개가 늦었군. 내 이름은 어린왕자다.”

 

나는 장미를 더 큰 충격을 받은 얼굴로 쳐다보았다.

 

[아니, 저 사람이 어린왕자라 하더라도 잘못알고 있는거에요! 저는 어린왕자가 떠나기 전에 태어났고, 저희 엄마도 어린왕자를 기다리다가 죽었어요! 제가 어린왕자를 만난 적이 없는데, 어떻게 어린왕자가 제 성별을 알겠어요!]

“역시 바오밥인사이드는 편리해. 그 행성에 사는 바오밥나무들이 바오밥인사이드에 장미에 대한 글을 올리지 않았다면 나는 내가 아들이 있었다는 걸 몰랐을거야.”

[젠장! 망할 바오밥나무 새끼들!]

 

나는 울상이 되어 어린왕자에게 소리를 질렀다.

 

“그럴 리가 없어! 내가 봤어! 얘 안달려있었다고!”

[그만!]

 

장미는 나에게 텔레파시로 소리를 질렀다. 나는 고통에 빠진 얼굴로 그녀인지 그인지 모를 장미를 쳐다보았다.

[이제 도망칠 곳도 없으니 말할게요. 사실 저는 어린왕자의 유전으로 이상성욕자가 되었어요. 아버지가 인간이면서 식물에게 욕정을 느꼈던 것처럼 저도 식물이면서 인간 남자에게 욕정을 느꼈어요. 그리고 그 행성에 쭉 혼자 있던 것도 아니었어요. 어느 날 하나의 우주선이 떨어졌고 거기서 사람이 나왔어요.]

 

장미의 얘기는 슬픈 과거사처럼 들렸지만 실상 그 내용은 아버지 닮아서 이상셩욕자였다는 얘기였다. 내가 단언컨데 내 인생에서 가장 죽고 싶었던 순간이 있었다면 지금이다.

 

[저는 그 사람에게 대접해주었습니다. 그리고는 그 사람의 이름을 알게 되었죠. 그 분의 이름은 TS마스터. 저는 그 사람을 대접해준 대가로 그 분께 능력을 전수받았습니다. 바로 성별을 바꾸는 능력…그렇습니다. 저는 TS능력자입니다. 제가 아까부터 말했죠? 취향이 사람을 만든다고요.]

 

내 앞에서 나오는 이 말을 개소리로 받아들여야하는지 말아야하는지 내적갈등을 겪었다.

 

[당신과 관계를 할 때는 저 자신을 TS시켰습니다. 하지만 저의 TS는 사부님과는 다르게 10분 이상 유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평소에는 남자인 채로 다니죠.]

“잠깐 그럼 네가 지금까지 흘렸던 수액은…”

[…그거에요.]

-풉…큭…

 

HAL이 웃음을 참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처럼 나도 차라리 실성하고 웃고싶어졌다.

 

[그래도 겉모습은 남자아이로는 절대 보이지 않게 저를 가꾸었어요! 따라서 당신은 호모가 아니에요!]

-푸하하!

 

…내 인생은 왜 이런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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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고쳤다. 최대한 빠르게 쓴다고 쓴건데 이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