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신을 믿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은 신을 찾고 싶었다. 내 20여년 인생에 드디어 꽃이 피었다 싶었는데, 그 꽃이 장미꽃이었다. 나에게 호감을 가진 여자가 겁나게 예쁘고, 또 몸매도 좋았는데 이런 씨발 남자라니, 그것도 걸어다니는 식물 주제에 인간 남자를 사랑하는 남자라니. 그럼 씨발 그 가슴은 뭐였지? 설마… 아니다, 상상하기도 싫다. 이 망할 어린 왕자… 아니 어른 왕자는 뭐가 쳐 웃긴지 계속 실실 웃다가 말을 걸었다.


“어떤가, 인간? 이제 내 딸… 아니, 내 아들과 함께하고 싶은 생각이 남았나?”


원래였다면 단칼에 ‘아니요’라고 답했을 것이다. 하지만 뭔가 다른 무언가 내 마음에 남아 그 말이 입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어린… 어른 왕자가 말했다.


“깔끔하게 내 아들을 포기한다면 자네가 평생 일해도 못 얻을 정도의 황금을 주지.”


‘젠장, 그냥 말하란 말이야. “아니요”라고 말하면 돼. 그러면 돌아가서 저 여자처럼 생긴 남자보다 더 예쁜 여자 수십 명을 끼고 놀 수 있다고. 망할 교수한테서 최저시급만 받고 노예처럼 일할 필요도 없어. 그런데 왜 말이 안 나오냐고…!’


-고민하시는 동안 집중하시라고 노래 한 곡 틀어드리죠.-


HAL의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는… 신해철의 ‘힘겨워하는 연인들을 위하여’. 나는 고민도 잊고 불같이 화를 냈다.


“사람 놀리냐!!”(‘힘겨워하는 연인들을 위하여’는 동성커플을 위로하는 노래다-작가)


-네, 놀리는 겁니다.-


어른왕자는 이제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서, 포기할건가?”


“아니요.”


그 말에 어른왕자와 HAL은 물론 장미와 나까지 놀라고 말았다. 어른왕자는 흥미롭다는 듯 물었다.


“호오, 왜지? 그런 취향으로는 안보이는 데.”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장미가 남자라는 것을 알아도 도저히 포기할 용기가 없더군요. 남자라도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장미도, 당신도 이상성욕자인데, 저도 똑 같은 놈이 되어도 별 다를 건 없겠죠!”


잠깐의 침묵이 돌았다. 그리고, 어린왕자는 말 그대로 박장대소를 하더니 박수까지 치며 마구 웃었다.


“좋아… 아주 좋아! 합격이다! 넌 충분해! 충분히 이 ‘어른왕자’의 사위가 될 자격이 있어! 내 우주선으로 와라, 선물을 주마.”


나는 가만히 꺼진 화면을 바라보다 HAL을 돌아보았다.


-벌써 문이 열렸어요. 그냥 가시는 게 좋을 것 같네요.-


나는 장미와 함께 어른왕자의 우주선으로 움직였다. 화려하기 그지없는 우주선 내부는 마치 아마존에 온 것 같이 온통 식물로 뒤덮여 있었다. 천천히 어린왕자를 따라 우주선 어딘가로 움직이던 우리는 어느 기계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너, 지구에서 왔다고?”


“…네.”


마침내 어린… 어른왕자가 본래의 모습으로 나와 마주했다. 동화처럼 금발에 붉고 긴 스카프를 두른 남자는 175cm인 나보다 훨씬 커서 최소한 2미터는 넘어 보였고, 분명 나이가 꽤 있을 거지만 수염조차 자라지 않은 얼굴이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지구에 왔을 때가 벌써 80년 정도 전이군… 그때 사막 위에서 불시착한 비행사와 만나 친해졌었어. 이름이… 그래, ‘생텍쥐페리’,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였지. 자유로운 친구였는데… 그 친구는 어떻게, 살아 있나?”


“…생텍쥐페리라면… 1944년 즈음에 지중해에 추락해 죽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어른왕자는 깊게 탄식했다.


“인간은 너무 빨리 떠나버리고 마는 군… 내가 식물에 집착하기 시작했을 때도 그 전후였지… 식물은 인간 같은 동물들보다 몇 백배는 오래 사니까 말이야. 지금 여기 보이는 게 자네에게 줄 선물일세.”


그건 기계 의자였다. 마치 치과 의자처럼 생긴 기계의자.


“이건 뭔가요?”


“Turns Sexual Machine. 성별을 바꿔주는 물건일세.”


여지껏 말이 없던 장미가 말했다.


[성별을 바꿔…?]


“그래, 네가 만났다는 그 돌팔이보다 훨씬 확실하게 말이지. 다만… 이건 영구히 성별을 바꾸는 거라서 말이야. 몸에 기계 장기를 이식하는 물건이거든. 그러니 성별을 바꾸면 아이를 낳는 것도 불가능하지. 뭐, 이대로라도 아이를 낳는 게 불가능이지만.”


“그래서, 이걸 주겠다는 건가요?”


“아니, 자네와 장미에게 선택권을 주는 거야. 성별을 바꿔서 이성애적인 사랑을 하라고.”


[전 우주에서 가장 악명높은 이상성욕자가 갑자기 이성애적인 사랑을 논한다고?!]


“뭐… 이제껏 다들 네가 여자인줄 알았는데 갑자기 남자가 되면 말이야~ 설정이 다 꼬여버려서 혼란이 많아지거든.”


“누가 다들 여자인 줄 알았다고요?”


“그건 몰라도 돼. 알면 다쳐. 아무튼, 장미, 어떻게 할 거냐?”


장미는 나와 다르게 오랫동안 고민하지 않았다.


[좋아요. 제 사랑을 위해서라면 그까짓 거시기쯤!]


“낭만적이군. 가서 의자에 앉아라.”


잠시 후, 장미는 완벽하게 여자가 되었다. 여지껏 남자의 몸이었기에 더욱 변화가 실감되어 보였다. 큼지막한 손과 발은 작게 쪼그라들고, 골반이 옆으로 커져 있었다.


“안타깝게도 성대를 달아주는 건 안되더군. 이제 가라, 너희와 난 서로 본 적 없는 거다.”


장미의 손을 잡고 우주선을 떠나던 그때, 장미는 증오스러운 어른왕자 쪽을 슬쩍 바라보더니 고개를 까딱 숙였다. 그것은 오로지 어른왕자만이 본 것이었다.


“…잘가라, 딸아.”


우주선은 그렇게 어른왕자의 우주선에서 떨어져 나와 다시 우주 어딘가에 있을 행성을 찾아 떠돌아 다니기 시작했다.


-완벽하게 여자의 몸이 됐네요.-


[뭔가 느낌이 이상해… 진짜 여자가 됐다는 게 실감이 안 나.]


그녀를 바라보던 나는 나 자신도 모르게 장난기가 발동했다.


“침대 위에선 실감이 나지 않을까?”


물론 돌아온 건 그녀의 주먹이었지만.


[그렇지만 가슴은 TS할 때보다 더 작아졌는데. 한 A쯤?]


“오히려 좋아.”


[변태.]


-그런 취향이십니까…?-


“입 닥쳐, 자비스.”


두 사람… 아니, 한 명의 인간과 하나의 장미가 뜨거운 밤을 보내는 동안, 우주선은 또다시 수십억 개의 은하 속 수십억 개의 행성 중 하나로 나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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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미래를 감당하지 못해서 장미를 완벽히 여자로 만들어버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