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졸았나보다. 눈을 떠보니 승강장 의자에서 앉아있으면서 잠시 눈을 붙인것 같았다.

 

나는 매일 출퇴근하면서 국철을 타고 다닌다. 지방과 서울을 오가며 다니는데 늘 서울가는 막차를 타고 퇴근을 해왔다. 내가 있는 직장은 조그만한 중소기업인데 전 직원 수 80명의 대기업에 제품 납품하며 사는 그런 공장이다. 집이 서울이었지만 대학졸업후 터져버린 IMF으로 서울 내에서 직장을 찾기 어려진 덕분에 겨우겨우 찾은 직장이라 힘들어도 일할수있었다. 한쪽은 집 몇채 있고 한쪽에는 논밭이 펼쳐진 풍경이 보이는 한적한 승강장을 저벅저벅 걷다가 시계를 쳐다보았다. 11시 11분, 막차가 오려면 50분 정도 남았다.

 

이곳으로 출퇴근을 하면서 생긴 버릇이 있는데 매일 하행선 승강장에 있는 가락국수 집에서 가락국수를 먹고 반대편 승강장으로 가서 서울 가는 전철을 타는 것이었다. 그것도 1년간 주말빼고 매일매일. 내가 거기에 가자 가락국수 한그릇이 김을 모락모락 피어나오며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말 없이 사장님께 머리로 꾸벅 인사한다. 한 1년 넘게 매일 이 시각에 여기에 온다. 좀 빨리 도착하면 승강장에서 눈 좀 붙이다 먹으러 가고 늦게 오면 어묵 몇꼬치로 해결하곤 했다. 그렇게 거의 비슷한 시각에 오니 사장님의 배려라고 생각하고 늘 감사하다고 인사드린다. 여기 사장님은 중년의 머리숱 살짝 없는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자분이셨다. 한 우리 아버지랑 나이대가 비슷한것 같았는데 들어보니 회사 은퇴후 어머니께서 하시던 가락국수를 도맡아서 하시고 계신다고 들었다. 나는 그렇게 붙임성 없는 성격이라 대화는 별로 안해보았지만 다른 분들과 대화하는 거 들어보고 알게 된거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양방향 두명이나 투신했다네. 쯧쯧쯧.."

 

"아, 진짜요?"

 

이 역에는 잊을법하면 사람들이 투신 자살을 한다. 하이텔 같은데에서는 무슨 자살 명소라나 뭐라나.

 

"오늘 해 뜰때 상행선 승강장에서, 이후 하행선에도 다른 사람이 투신했나봐.. 듣자하니 두사람다 젊은 청년이라고 하더라고 참..."

 

난 아무말 없이 국자로 국물을 한 모금마시고 문득 한가지 생각이 번쩍 떠올라 고개를 들며 말했다.

 

"설마 오늘도.. 오려나요..?"

 

"그래도 내 손님인건 변함없다. 그렇지 않나?"

 

나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잠시뒤 주변 기온이 떨어지더니 쎄 한 느낌이 든다. 그리곤 갈색 외투를 입은 한 청년이 걸어온다. 나이는 나보다 한두살 아래로 보였다. 얼굴 피부색은 생기가 돌지 않은 것처럼 푸르스름 하였다. 마치 죽은 시체같이.

 

"사장님, 국수 한 그릇이요."

 

사장님은 기다렸다는 듯이 면이 담긴 그릇에 국물을 붓고 바로 국수를 내 놓았다. 속으로 '드디어 여기서 사장님의 마법이 들어가나?' 라고 생각했다. 그 이유는 이상하게 귀신같은 느낌이 드는 사람들이 올때마다 무언가에 홀린듯이 사장님에게 이것저것 다 털어놓았다. 연인이랑 헤었다는거나 부모님이랑 싸웠거나 회사가 부도가 났다는거나 몹쓸 짓을 당하였다는등 슬픈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이번 이 사람 같은 경우는 친구랑 가게 차렸다가 친구가 돈 떼먹고 튀고 가족과도 사이가 멀어졌다는 것이다. 나는 가락국수집 옆 의자에서 담배 한 개비 물며 선로를 쳐다보았다. '아.. 저사람은 저 차가운 선로에 몸을 던져겠지..'라고 생각을 하였다. 그리고 30분동안 말하고 그는 얼굴이 편안해지었다. 사장님은 묵묵히 계속 듣다가 국수는 무상이라고 하시며 조심히 가라고 하시었다. 청년은 감사하다고 인사하며 이내 사라졌다. 그동안 나는 귀신이 없다고 믿었지만 최근에는 여러번 이 모습을 보고 귀신이 있다고 믿게 되었다. 다시 가게 앞으로 가서 어묵을 먹으며 갑자기 나도 그처럼 말을 하고 싶었다. 부모가 반대하는데도 집을 나와서 상경을 하였지만 마땅한 일자리 못찾고 근교에 있는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는 등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말이다. 짧게라도 말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사장님을 쳐다보니 신문만 쳐다보고 계시었다. 안들으셔도 상관은 없었다. 자리를 뜰려고 지폐 몇장 놓고 일어났다. 그리곤 사장님께서 날 아쉬운 눈으로 쳐다보시더니 김밥 한줄을 오른손에 쥐어주시며 말을 꺼내셨다.

 

"1년 넘게 보면서 정들었는데 오늘 가는 사람이 자네라니 아쉽구먼. 마지막 길에 이거라도 먹으며 편히 가게나."

 

나는 그냥 누구라도 내가 힘들다는 이야기를 들어주었으면 했나보다. 가기전에 여기에 들려서 사장님께 하소연하던 분들의 심정이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사장님께 미리 가서 이야기를 할껄하는 생각이 들었다. 눈물이 날꺼 같았지만 사장님께 미소지으며 꾸벅 인사하고 가게를 뒤로하고 조용히 승강장을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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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써보는 소설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