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나는 떠올렸다.

녀석들에게 멸망 당한다는 공포를.


*


"그래서."


별로 조용하지는 않은 공간.

그곳에서 마주보고 있는 교사와 학생.

한명은 나, 다른 한명은 나의 담임.


"진로는 그... 마법소녀라고?"

"네."

"하... 창문아."

"예?"


선생이 나를 빤히 쳐다보며 말을 골랐다.

영 고깝게 여기는 듯한 듯한 얼굴.

잔소리 폭풍이 시작될 세라, 나는 선수를 쳐서 담임의 포문을 막았다.


"아무리 세상이..."

"선생님!"

"응?"

"세상은 변했어요. 이제 선생님이 알던 세상이 아니라고요."

"어, 뭐. 그렇긴 하지만..."

"창 밖에 저걸 보세요 선생님. 우리의 상식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잖아요."


창 밖에서 석양을 이끌고 지평선 아래로 떨어지는 것,

그것은 태양. 이전까지와 똑같은 존재.

아무런 새로움도 없는 존재.


그러나 태양의 옆에는 미칠 듯한 존재감을 뿜고 있는 무언가가 있었다.

흡사 거인을 방불케 하는, 이제는 한국 어디에서나 보이는 거대함.

그리고 처음 보는 이라면 누구도 빠짐없이 눈을 뗄 수 없게 하는 기묘함.

지구의 멸망과 함께 나타난 한국 최초의 '멸망' 중 하나였다.


너무나 똑닮은 외모 때문에 거인에게는 별명이 하나 붙었는데

그 별명이란...


"저기? 세균맨? 세균맨이 왜? 우리 마을에서 탈출이라도 한다던?"


세균맨이다.


왠지 마구 호빵을 뜯어먹어야 할 듯한 생김새의 이 거인은 그러나,

딱히 해를 끼치는 짓은 하지 않고 단순히 몸 만을 흔들고 있었다.


"선생님, 세균맨이 탭댄스 춤을 추고 있는 세상입니다. 이제 우리가 아는 세상은 끝났어요."

"저거 탭댄스 아니고 쟤네한텐 군무라던데."

"어쨌든요. 세상은 변했어요. 이제 마법소녀도 하나의 직업으로 당당히 인정받는 시대라고요."

"창문아..."


담임이 나의 상큼발랄한 마법봉을 보며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의 변론은 씨알도 먹히지 않은 것 같았다.


"아무리 그래도 네가 여기다 적은 건 좀 아니지 않냐?"

"혹시 제가 남자라서 그러세요...? 꿈에는 성별이 없는 거잖아요!"

"아니, 동기 때문에 그러는 거야."


담임이 나에게 진로희망 조사서를 돌려주었다.

이번에도 퇴짜인 듯 했다.


"아무리 그래도

[후타나리 TS 마법소녀가 되어서 여기저기 박고 박히는 삶을 살겠습니다.]

... 는 좀 심하지 않니?"



*



"이럴 거면 진로조사서는 왜 적으라고 한 거야 귀찮게."


실컷 궁시렁거렸다.

흉담은 사람 없을 때 까야 제 맛이라며.


"우리 담탱이 그런 거에 좀 빡빡하긴 하지."


친구 '김쩌리' 가 거들었다.

어차피 이번화에서만 나오는 단역이기 때문에 이름은 기억하지 않아도 된다.


"그래도 진로희망이 이제는 중요해졌잖아."

"'멸망' 이후로 그렇게 되기야 했지만..."

"어쩔 수 없지 뭐. 진로희망에서 가면라이더 같은 거 적는 애들은 바로바로 고용해 나가야 하니까."


가면라이더나 마법소녀가 장래희망인 게

더 이상 한낱 어린 아이의 꿈이 아닌 시대.


'멸망' 에서 살아남은 소수의 인류에겐,그런 시대가 도래했다.


"그렇지 멸망 때문에..."


'멸망'.

지금의 인류와 이전의 인류를 나누는 근본적인 구분점.


멸망의 시작은 어느 날 갑자기 뿌려진 예고장이었다.

[이제 세상은 우리 재앙이 접수한다뀽

괴도 허접♡]


다소 허접한 내용의 이 예고장은 전파를 타고 세계각국에 전달되었는데,

예고장이 한날한시에 세계를 뒤덮고 정확히 24시간 후

본격적인 '멸망' 이 시작되었다.


멸망은 마을마다, 국가마다 다른 형식이었다.

어느 마을에는 좀비가 출몰하고

또 어떤 마을에서는 방사능이 터지고

또 다른 어느 곳에선 왕자가 식물과 교미를 하게 되는 그런 방식이었다.


"하... 멸망 싫다."

"야, 그래도 우리 마을은 좀 나은 편이야. 어디는 사회시스템이고 뭐고 다 무너졌대."

"우리도 많이 무너졌는데."

"그래도 우린 학교는 남아있잖아."

"더 싫어. 왜 담탱은 멸망 후에도 날 괴롭히는 거야?"

"그냥 너한테 분풀이 한 걸 수도 있지"


분풀이라. 말을 듣고 보니 그런 것도 같다.

어쩐지 요즘 성격이 한층 더 까탈스러워 졌더라니만.


"그런가. 괜히 나한테 노처녀 히스테릭 부린 건가."

"담탱? 걔 처녀 아닐 걸. 요즘 기르는 애 있다고 했잖아."

"그랬나?"

"치매냐? 수업 때마다 남친 얘기를 하는데."


수업 때마다 자는데 기억이 안 나는 게 정상이지.

괜히 멋쩍어져서 말을 돌렸다.


"왜 그, [인식개변] 때문일 수도 있지. 우리 마을은..."

"우리 마을은 [인식개변] 이 멸망의 방식이었으니까?"

"뭐 당했는지 기억도 못할 거라고 했잖아."


마을마다 다른 '멸망'.

독자적인 연구결과, 우리 마을은 인식개변이었다고 한다.

우리가 다 아는 상식 하나가 완전히 바뀐다고.

문제는 어떤 상식이 바뀐 것인지 아무도 모른다.


"아무리 그래도 그게 너한테만 일어나겠냐? 받았으면 우리 마을 사람들 다 당했을 텐데?"

"그런가?"

"너 수업시간에 조냐? 바로 방금 배우고 온 건데 벌써 까먹어."


쓸데없이 감은 좋아가지고.


"그래서, 상대는 누구라던?"

"응?"

"담임이 기른다는 애인. 담탱이면 혹시 강... 악!"

"야! 앞에!"

'쿵'


대화에 정신이 팔렸던 걸까.

나는 내 앞으로 미친 듯이 다가오던 전봇대를 눈치채지 못했다.

아니, 내가 전봇대에게 머리를 갖다박은 거겠지.

갑자기 전봇대가 달려들 리가 있나.

머리가 아팠다.


"괜찮냐 김창문?"

"쓰흡 머리야..."


잠깐 나를 걱정하는 기미를 보이더니

친구는 대뜸 깔깔거리기 시작했다.


"아앜! 너 머리에 혹 났는데?"

"아프다... 쪼개지 마라..."

"하하하 야 이런 혹이 현실에서 있는 거 였구나!"

"아씨 아직도 머리가 도네."

"머리에는 이상 없는 거 아냐? 말하는 거 보니까 괜찮은 거 같은데?"

"... 뭐 물어봐봐."

"음... 오육에?"


기껏 물어본다는 게 구구단.

내 친구지만 너무 진부한 센스였다.


"삼십."

"칠구?"

"육십삼."

"오일은?"

"기름."

"농담따먹기 하는 거 보니 말짱하네."


엉덩이를 털며 일어났다.

머리는 아직도 얼얼했다.


"됐어. 하던 얘기나 마저 하자. 담탱이 뭐 어쨌다고?"

"담임? ...아 담임 남친 있다고."

"하, 그런 애도 연애를 하는데..."

"듣기로는 강아지라던데."

"그래 강아지든 뭐든 간에 남친이 있을 수가 있..."


뭐?

토끼 눈이 되어 친구를 바라본다.

강아지? 퍼피? 멍멍?


"아니 무슨 '지' 라고? 강아지?"

"강아지. 강아지 몰라?"

"그게 뭔... 혹시 성이 강이고 이름이 아지야?"

"강아지 말이야 강아지. 수캉아지로 얼마 전에 샀다더라."

"개랑 사귄다고?!"

"뭐가 문제야?"


사람이 개랑? 사귄다고?

이게 뭔...


"뭔 갑자기 호들갑이야. 요즘엔 개도 인기 많이 올랐다고. 예전에는 말이나 염소가 더 주류였지만."

"아니, 야, 그... 잠깐만, 방금 혹시 노처녀는 아닐 거란 건..."

"남친이랑 했겠지 그야! 요새가 무슨 먼 옛적 혼전순결 중시되던 시대도 아니고!"

"개랑? 사람이?!"

"뭘 그래 한두번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럼 개랑 인간이 정사를 치뤘다는 거야?

머리가 어지럽다. 뭐지? 뭐가 일어나고 있는 거지?


"왜 그래 아까부터. 어디 아프냐?"

"아프긴 뭐가 아파 완전 정상이구만."

"정상이란 놈이 강아지랑 하는 걸 듣고 그렇게 놀라냐."

"그럼 개랑 인간이 서로 사귀고 처녀 떼고 하는 게 정상이냐?"

"야 너 진짜 어디 아파 보이는데? 빨리 들어가야 될 거 같다 야."


뭐야. 도대체 뭐냐고.

농담인가? 농담이겠지? 농담이 아닐 리가 없지.



*


그러나 작게 품던 희망은

집 안에 들어서기도 전에 산산히 부숴졌다.


'쪽 쪼옥'


길거리에 두 연인이 술에 취한 듯한 모습으로 키스를 하고 있었다.

여자 쪽은 인간. 남성 쪽은 원숭이.

원숭이는 연신 우끼끼 거리면서도 여성과 입을 맞추고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원숭이는 들고 있던 바나나를 들어 던졌다.


"악아악!"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나는 달렸다. 하염없이 달렸다.


또 다른 연인.

키스.

이번에는 양과 남자 성인.


또 다른 연인.

손깍지.

이번에는 고양이와 소녀.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한두명이 아니었다.


마침 크리스마스를 맞아 거리에 넘치던 연인들은

누구 하나 빠짐없이 인간과 동물의 조합이었다.

사람들은 아무 꺼리낌없이 동물들과 침을 섞고 껴안고 하고 있었다.


"이상해. 뭔가 이상하다고! 콘나노 젯타이 오카시이요!"


나는 도망쳤다.

하염없이 도망쳤다.

사람들이 안 보이는 곳으로 도망치고 또 도망쳤다.


무얼까.

다들 왜 저러는 걸까.

이게 멸망인가? 인식개변이었다는 그건가?

그럼 우리 마을에 일어난 인식개변이란 건 수간이란 말인가?

그럼 왜 나만 깨어난 건가?

왜 나만 정상이 된 것인가?

어제까진 나도 그런 것들을 당연하다 여겼을 터다.

왜 나만 깨어난 것인가?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샌가 뒷산이었다.

헛구역질이 났다.


"이상하다고... 난다요 코레..."


눈물이 다 나왔다.

상상해버렸기 때문이다.

친구들이 길고양이를 붙잡고 연애를 하고

짝사랑하던 애가 강아지랑 정사를 치르는 걸.

말과 함께하며 교성을 내지르는 꼴이나
말의 뒤에서 교성을 내지르게 하는 꼴을.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구역질이든. 구토든.


그 순간이었다.


'위이잉'


어디선가 기계음 비슷한 게 들려왔다.

눈 앞에 있는 것은 한 척의 비행선. 영화에서 나올 법한 소형 비행선이었다.

비행기도 전투기도 아닌, 비행 '선'

SF영화에서 으레 나오는, 그런 비행선.


문득 생각났다.

떠나버릴까?

도망쳐 버릴까?

이 끔찍한 마을에서 도망쳐 버릴까?


처음 보는 물건이었고, 나는 비행기는 커녕 자동차도 몰아본 적 없지만

이미 조종간에 엉덩이를 붙이고 있었다.


더 보고 싶지 않았다.

더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우리 마을을. 그 흉물을.


'우우웅'


먼지로 뒤덮여 있던 비행선에 시동이 걸렸다.

비행선에는 다 지워져가는 글씨로 HAL이라는 글이 써져 있었다.

이 비행선의 이름일까.


"빨리... 빨리...!"


낡은 기색을 숨기지도 못하고 비행선의 엔진은 연신 헛돌기만 했다.

나는 누가 쫓아오는 것도 아닌데 조급해졌다.

괜스레 죄 없는 비행선을 몇번 씩 걷어찼다.

안 되는 건가? 작동하지 않는 것인가? 너무 낡아서?


'부우웅'


서너번 쯤 발길질을 했을까.

비행선이 다 부숴져 가는 소리를 내며 떠올랐다.

내 조종 따위가 먹혔을 리는 없으니 자동조종이라도 달려있는 모양이었다.


드디어 탈출의 순간. 마음이 편해졌다.

그러나 그 순간 떠올렸다.

집에 놓아두고 온 뽀삐를.

집에 밥을 줄 인간은 나 밖에 없었다.

내가 없으면 뽀삐는 굶어 죽는다.


그리고 같은 순간 떠올렸다.

뽀삐는 내게 가족이 아니었다.

연인이었다.

어젯밤에는 함께 사랑도 나눴다.


"욱우욱!"


나는 구역질을 하며 그저 비행선을 몰았다.

뽀삐고 담탱이고 마법소녀고 다 잊고
그저 몰았다.

목적지도 정하지 않고.



그렇게 나는 떠올렸다.

녀석들에게 멸망 당한다는 공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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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천자. 분량 조절 실패해서 뒷부분이 급전개임...

이전 릴레이 패러디가 있긴 한데
그냥 무시해도 되는 수준임.
2화 작가가 재량껏 커트해주겠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