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방패의 전설 모음집(계속 업데이트) - 창작문학 채널 (arca.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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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화, 영원한 불의 땅


일리고어가 산산조각 나 죽음을 맞이한 후, 셋은 역참으로 돌아가 하루 종일 죽은 듯이 잠을 잤다. 다음 날, 셋은 드워프들의 영토인 ‘영원한 불의 땅’에 발을 들였다. 땅과 대기에서 엄습하는 열기에 1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땀이 비 오듯이 쏟아지자 잔은 마법으로 각자에게 얼음을 둘러주었다. 아까보단 한결 나아졌지만 정말 상상 이상으로 뜨거운 지역이었다. 마리가 지친 목소리로 물었다.


“잔, 언제까지 가야 해?”


“앞으로 2시간 정도 남았어.”


그 말을 들은 마리가 투덜거렸다.


“2시간? 화염의 산까지 가기 전에 저승으로 가버리겠네.”


가는 길에 무어라도 있었으면 조금이나마 나았겠지만 셋이 걷는 길 주변에는 잿빛의 대지와 본래는 맑은 물이 흘렀을 용암 강투성이에 심지어 머리 위로도 붉은 빛 하늘과 잿빛 구름뿐이었다. 그 어떠한 생명체조차 보이지 않는 이 대지를 걷던 그 순간, 펑 하는 소리가 정적을 깨뜨렸다. 아인이 말했다.


“뭐지?”


잔이 용암 호수 한쪽을 가리켰다. 아인과 마리도 따라 그녀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용암 아래에서 나타난 그것은 화염으로 이루어진 무언가 였다. 겉 보기에는 그저 불에 나무토막이나 시체가 타고 있는 듯한 형상이었지만 자세히 보니 눈과 입은 물론이고 팔까지 달려 있었다. 아인이 소리쳤다.


“저게 도대체 뭐야!”


잔이 말했다.


“나도 몰라!”


곧이어 마리가 외쳤다.


“이리로 온다!”


불꽃으로 이루어진 무언가는 셋을 향해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그 모습은 한 살배기 아이가 보아도 적대적인 행동임을 알 수가 있었다.


“必滅者… 全員 殺…”


그것의 입 같은 것에서 소리가 흘러나오자 아인은 몹시 당황했다.


“방금 저놈, 말한 거야?”


분명 그것은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무어라 말하고 있었다. 어느새 그것이 셋의 앞까지 다가오자 그것은 불로 이루어진 팔을 들어 가장 앞에 있던 아인을 공격했다. 아인은 빠르게 방패로 공격을 막았다. 뒤이어 잔이 얼음 화살을 날렸지만 어떠한 피해도 주지 못했다. 아니, 화살이 그것을 통과해 버렸다. 아인은 방패를 튕겨서 팔을 쳐냄과 동시에 칼을 휘둘렀다. 그러나 칼 역시도 그것에 피해를 주지 못하고 허공만을 배어버렸다. 반대로 그것의 열기 때문에 아인이 오른팔에 가벼운 화상을 입고 말았다.


“우리의 공격은 통하지 않지만 저것은 우릴 공격할 수 있다니! 대체 어떻게 해야 하지?”


그 순간 그것이 이번에는 마리를 공격했다. 마리는 빛의 힘을 손에 집중시켜 그 힘으로 그것을 막으려 들었지만 그것의 열기 때문에 점점 밀리고 있었다. 아인과 잔은 필사적으로 공격을 퍼부었으나 그 어떠한 공격도 피해를 주지 못하였다. 결국 마리는 힘에 부처 쓰러지고 말았다. 그리고, 이제 그것은 팔을 들어 마리를 끝장내려 하고 있었다.

아인은 다급한 마음에 칼을 그것의 팔이 있는 자리에 휘둘렀다. 그런데 그 순간, 칼에 닿은 그것의 팔이 그대로 잘려버렸다. 그것은 고통인지 분노인지 모를 괴성을 지르더니 목표를 아인으로 바꾸어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제야 아인은 그것의 약점을 알아차렸다.


“잔! 이 놈이 내 방패를 공격하는 순간에 놈의 팔에 마법을 날려!”


그것의 팔이 방패에 닿는 순간, 잔의 손에서 나아간 얼음 화살이 그대로 그것의 팔을 잘라버렸다. 그러자 그것은 몸을 기괴한 자세로 꼬더니 한 순간에 허공으로 흩어져 버렸다. 그것이 사라진 자리를 셋은 멍하니 지켜보다가 다시 말에 올라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잠시 뒤, 드디어 그들은 드워프들의 수도, 화염의 산 입구에 도착했다. 아인이 보았던 그 어떠한 산보다도 더 높게 솟아오른 산은 꼭대기에 깎아지르는 듯한 절벽이 자리잡고 있어 화염의 산이 되기 전 ‘훈트우’였을 때의 모습을 짐작하게 만들었다. 셋은 길을 따라 산을 조금 더 올라 화염의 산 중간에 자리잡은 바위의 문 앞에 섰다. 무장한 드위프 경비병들이 서있는 모습을 보자 아인은 드디어 편하게 쉴 수 있다는 것에 안도했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우리는 카이저 프리드리히 드래곤베인 4세님의 명령을 받아 요나탄 슈미트 3세 폐하께 가는 길입니다. 여기 드래곤베인 왕가의 인장이 찍힌 편지가 있습니다.”


아인이 편지의 인장을 보여주자 경비병들은 즉시 경례를 하고는 산의 내부로 안내했다. 내부로 들어서는 순간 셋은 그 모습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산 내부에 고인 마그마를 중심으로 새워진 도시는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건물들은 트리움피한과는 달리 화강암과 현무암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마그마의 호수 주변에는 그 열기를 이용한 대장간들이 즐비했다. 


“듣던 것 보다 더 엄청나잖아!”


“상상 이상인걸.”


“대단해.”


셋은 왕궁으로 향하는 동안에도 도시의 모습을 보며 감탄을 그치지 않았다. 오래지 않아 도착한 왕궁의 자태도 세 사람이 감탄하기에 충분했는데, 현무암과 화강암으로 주로 이루어진 다른 건물들과는 달리 왕궁은 대리석으로 지어졌으며 특히 기둥과 천장의 사이에 조각된 드워프 제국의 1대 황제 요제프 슈미트의 얼굴은 장엄하기 그지없었다. 곧이어 왕궁의 문이 열리자 아인은 혼자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왕궁의 내부 역시 겉에서 보던 것만큼 화려 했다. 그 웅장함은 트리움피한의 황궁과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다. 마침내, 아인은 드워프 제국 황제 요나탄 슈미트 3세를 만나게 되었다. 아인은 무릎을 꿇고 그에게 경례를 했다.


“일어나거라.”


중후한 목소리가 들리자 아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바라보았다. 갈색의 머리카락은 왕관의 뒤로 길게 땋여 있었고 수염 역시 풍성하게 자라 그의 무릎까지 내려왔다. 키는 아인의 가슴팍에나 겨우 닿는 정도였지만 그 모습에서 오는 압박감은 마치 거인과도 같았다.


“트리움피한에서 카이저 님의 편지를 가져왔습니다. 폐하.”


아인이 공손하게 카이저의 편지를 건네자 요나탄 황제는 그 편지를 받고는 펼쳐서 읽기 시작했다. 잠시 후, 편지를 모두 읽은 황제는 다시 편지를 접었다.


“정말 요즘 들어 믿기 힘든 소식뿐이 없군. 황실 대도서관의 학자들은 불의 정령군주가 다시 돌아온다고 하질 않나, 국경에서는 오크들이 대규모 침공을 준비한다 지를 않나, 이제는 용이라니! 내가 요제프 선조님이라도 된 것 같군!”


황제는 아인을 슬쩍 바라보더니 다시 말을 이어 가기 시작했다.


“카이저 이놈은 20살이 넘어가도록 필체가 같은 것을 보니 아직도 글을 못 배웠군. 하여간 요즘 젊은 것들은 말이야! 쯧쯧…”


그렇게 한참을 떠들어 갈 때쯤 아인이 이 상황을 끝내기 위해 입을 열었다.


“황제 폐하, 그 황실 대도서관이라는 곳을 가보고 싶사옵니다.”


황제는 드디어 투덜거림을 멈추고 아인을 바라보았다.


“황실 도서관이라… 좋지, 한번 가보게.”


황제가 손짓을 하자 붉은 머리의 드워프가 구석에서 화살처럼 달려 나왔다. 


“부르셨습니까, 폐하.”


“그래, 마누엘 경. 자네가 아인 군을 데리고 도서관으로 가게.”


“그리 하겠습니다.”


마누엘이라는 남자는 아인을 데리고 왕궁 밖으로 나와서는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잔과 마리까지 데리고 도서관으로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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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한자 쓰는 정령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