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방패의 전설 모음집(계속 업데이트) - 창작문학 채널 (arca.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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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화, 트롤


아인과 레드암스는 트롤을 노려보며 천천히 무기를 고쳐 쥐었다. 트롤은 가만히 있어도 무릎까지 내려오는 긴 팔을 조금씩 움직이며 언제라도 두 사람을 벌레 잡듯 짓이겨버릴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그나마 아인 일행에게 다행인 점이라면 트롤이 보통 무기로 쓰는 큼지막한 나무 같은 것은 이 황무지에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다시 말해 트롤은 맨손이지만 아인과 레드암스는 무기가 있으며, 상처를 치유해 줄 사제와 원거리에서 공격을 날릴 마법사까지 있었다. 

그리고, 잔의 얼음 화살을 시작으로 원거리에서 공격이 날아들자 아인과 레드암스도 돌격했다. 트롤의 긴 팔을 이용한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뛰어 넘어 피한 둘은 놈의 발목을 칼로 베어버렸다. 양쪽 아킬레스건이 베인 트롤은 그 자리에 꼬꾸라졌고,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잔이 오크 머리통 만한 놈의 양쪽 눈에 얼음 창을 박았다. 시야까지 완전히 차단되자 아인과 레드암스는 속전속결로 놈의 머리통에 칼을 박아 넣으려 들었다. 그 순간, 트롤의 8미터에 달하는 팔이 아인과 레드암스가 있는 곳을 휩쓸었다.

 둘 모두 거기에 휩쓸려 뒤로 몇 미터나 날아가 버렸다. 다행히 아인은 아슬아슬하게 방패로 막아 큰 부상은 입지 않았지만, 레드암스는 잠깐동안 일어나지도 못했다. 게다가 트롤은 특유의 엄청난 재생능력으로 순식간에 상처를 회복하고 다시 우뚝 서 있었다. 잔이 말했다.


“책에서 보기만 했지, 저런 엄청난 재생능력이라니!”


마리도 거들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죽일 수 있지?”


간신히 몸을 추스린 레드암스가 말했다.


(“트롤을 죽이는 방법은… 오로지 목을 베어버리는 것뿐일세.”)


아인이 되물었다.


“네?”


(“목을 베는… 그렇군.”) “목을. 베는. 것뿐이다.”


“젠장, 하나같이 귀찮은 방법뿐이군요.”


또다시 트롤과의 대치가 이어졌다. 북서쪽에서 울려 퍼지는 전투의 소리가 생생하게 들러오자 트롤은 그들을 도발했다.


(“부족장, 들리지 않나? 너의 백성들이 몬스터에게 비참하게 찢겨나가는 소리가.”)


(“닥쳐라!”)


“너희도 어렴풋이 느끼고 있지 않나? 곧 용께서, ‘인비디아’ 님께서 오실 것이다. 그때까지 날 쓰러뜨릴 수 있을까?”


조금씩 아인 일행의 얼굴에 조급함이 드러나고 있었다. 확실히 트롤 하나만으로도 벅찬데 용까지 가세하면 도저히 이길 가능성이 없었다. 잔이 조용히 속삭였다.


“아인, 아까 전의 그 ‘빛’은 어떻게 다시 할 수 없어?”


“나도 어떻게 했는지 몰라. 도저히 방법이 없어. 저 녀석, 팔이 너무 길어서 사각지대가 전혀 없다고.”


“그렇다면 한가지뿐이겠네.”


마리는 그렇게 말하더니 트롤의 앞으로 움직였다. 잔과 아인은 그녀를 말리려 하다가, 무언가 번뜩 떠올랐는지 레드암스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레드암스는 다행히 그들의 말을 알아들은 듯 마을 안으로 사라졌다.


“후후, 부족장이라는 놈이 적을 앞아 두고 도망치다니, 놈 답지 않군.”


“굳이 말하자면 승리를 위한 역돌격이라고 해두지.”


“하! 상관없다! 먼저 망할 사제 년부터 죽여주마!” 


트롤이 잔을 향해 거대한 손을 내려치는 순간, 그녀의 지팡이에서 천 개의 태양이 동시에 뜬 것만 같은 빛이 일었다. 아인도 잔도, 보호막을 썼음에도 순간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찬란한 빛. 그것이 걷히자 보이는 것은 두 눈을 부여잡은 트롤이었다.


“이럴 수가! 도대체 저 빛은 뭐냐! 내… 내 눈이 멀었어!”


마리가 소리쳤다.


“지금이야!”


곧이어 아인이 달려들었다. 바람처럼 빠르게 양 발목을 베어 쓰러뜨리자 잔이 아주 약간의 틈도 주지 않고 얼음 마법으로 트롤의 양 손을 바닥에 고정시켰다. 완벽하게 엎어져 고정이 된 트롤은 그저 손쉬운 사냥감에 불과했다. 아인은 빠르게 놈의 목덜미까지 움직였다. 그 순간.


“훠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또다시 트롤이 천지가 뒤흔들리는 듯한 괴성을 내질렀다. 잔도 마리도, 아인까지 귀청을 찢는 듯한 소음에 그저 귀를 틀어막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셋 다 괴성 하나에 무력화되자 트롤은 다시 상처를 재생했다.


“후후후, 역시 아무것도 못 하는 군. 곧 그분께서 오신다. 그렇기 때문에 너희들을 여기서 내가 죽여주마.”


놈이 셋을 끝장내기 위한 괴성을 지르려던 순간, 한 발의 총성이 대지를 갈랐다.


“아인, 피하게!!”


그와 동시에 트롤의 입 안에서 폭음이 일고, 불꽃과 함께 연기가 피어올랐다. 트롤은 자신이 무엇에 당했는지도 모를 정도로 당황한 얼굴로 입과 코에서 연기를 뿜었다.


“늦지 않아서 다행이군, 아인!”


바로 레드암스와 마누엘이 도착해 있었다. 아인은 그 두사람을 보고는 안도했다.


“멋진 공격이었습니다!”


“그렇지? 여기 있는 동안 시험삼아 만들어본 폭발탄일세!”


“아인. 놈의 목을 베라!”


“네?”


“놈의 목을 베라고 했네!”


아인은 그제야 방금 전의 괴성으로 고막을 다쳤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탓에 아인은 놈의 목을 벨 틈을 놓쳤고, 타이밍 좋게 하늘빛 비늘을 가진 용, ‘인비디아’가 도착했다. 트롤은 미친듯이 웃었다.


“하등한 놈들!! 이제 네놈들은 끝이다!”


마침내, 뼛속까지 얼어버릴 듯한 한기와 함께 대지에 착지한 ‘인비디아’는 바닥에 쓰러진 게비알을 바라보았다.


“’인비디아’ 님, 여기 이놈들입니다! 저 인간 남자가 그 ‘푸른 방패의 소년’입니다.”


“잘 했다, 게비알. 내 충실한 종복이여.”


“가… 감사합니다. 그럼 이제 저를 좀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그래, 그렇고 말고.”


말을 끝마친 ‘인비디아’의 입에서 푸른 기운이 모여 구를 이루었다. 마리가 소리쳤다.


“피해!”


모두가 허둥지둥 ‘인비디아’에게서 떨어졌다. 그런데, ‘인비디아’는 아인 일행이 아니라 게비알을 향해 공격을 가했다. 게비알은 몹시 당황했다.


“무, 무슨?!”


“지금까지 수고했다. 이제 쉬어라.”


“이 자식, 날 속인…!”


그가 말을 채 잇기도 전에, ‘인비디아’는 그를 얼음 조각상으로 만들어 버렸다.


“자, 그럼… 이제 네놈들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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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높으신 분이라고 다 용은 아니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