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외할아버지가 해준 이야기이다.

일단 뒤로 가지 말고 들어봐라.


외할아버지는 예전에 도사 같은 일을 하시고는 그만두었다고 알고 있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듣게 된 이상한 이야기를 듣게 되어서 한번 말해보려 한다.


'단군신화'를 알 것 이라고 생각한다.

단군 할아버지가 내려와 인간세계를 다스리는 이야기

학교에서는 우리나라의 시조로써 그리고 고대의 시대상을 보여주는 이야기 그 이상은 아니었다.


아마, 외할아버지랑 최근 학교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우연히 단군 신화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던 것 같다.


"얘야 그런데 호랑이는 어떻게 됐는지는 궁금하지 않니?"


"네, 궁금하지 않은데요."


"이놈이!"

라고 하시며 부채를 집어 던지려고 하였다.

그 당시 여름도 아니었는데 부채는 왜 있는지는 모르지만,


"이놈아, 여기 앉아봐라."

외할아버지의 언령이 떨어지자 『속박』에 걸려서 3시간 동안 들을 이야기를 상상하니 정신이 아득해졌지만,


적어도 심심하지 않은 이야기이기를 바라며 외할아버지 곁에 앉았고 

내가 옆에서 앉아 이야기를 듣을 준비(혹은 시늉)를 하자 외할아버지가 말을 이었다.


일단 그 내용을 말하기 전에,

외할아버지가 말한 내용은 환 머시기 같은 책에서 나올 것 같은 이야기였다.


당연히 요즘 시대에 먹히지도 않을 이야기를 하는 거 보니 할아버지는 할아버지이려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내가 아는 한, 이 이야기를 들은 사람은 나밖에 없을 것 같아 적어보기로 했다.


호랑이와 곰이 쑥과 마늘을 들고 동굴로 간 것까지는 다른 것이 없었으니 생략하고,


어느 날 호랑이는 동굴 밖에서 어슬렁거리는 이상한 것을 보게 되었다고 한다.

처음에 호랑이는 환웅이 그저 잘하고 있나 살피고 있는지 감시 겸 확인차 돌아다닌다고 생각하였다.


이변을 눈치챈 것은 그날 밤 남아있던 쑥과 마늘이 절반 정도 사라졌을 때였다.

호랑이가 곰에게 따져 물었다.


"곰, 이놈아 아무리 배가 고프다고 한들 밤 동안 절반을 먹어버리면 어쩌자는 거냐?"


"호랑이, 믿어주시게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네."


그러자 동굴 바깥에서 괴이한 것이 소리를 질렀다.


"이 아둔한 곰과 호랑아, 그자의 말을 믿느냐? 그자가 하늘에서 떨어졌는지 땅에서 솟아났는지는 모르지만 어디서 왔는지 알지도 못하는 자가 하는 소리를 믿느냐?"


"너가 우리의 쑥과 마늘을 가져간 자인가?"


"그러하다, 너희는 산천의 주인이요, 산 짐승의 왕이로다. 그러는 자가 어찌 인간의 신하가 되고자 하는가?"


곰이 물었다.

"그렇게 말하는 당신은 누구인가? 누구이기에 이러한 조언을 하는가?"


"나는 이름이 없으나, 인간이 말하기를 강추(綱錐)라고 부르더구나."


"강추여, 그대는 어찌 환웅을 모욕하는가? 그자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도 보지 못하였느냐?"


"나는 본 적이 없다. 그러나 산의 왕이라는 자와 산의 어미라는 자들이 동굴에 박혀 있는 꼴이 퍽 우스워서 하는 말이다."


"다물어라! 나는 산의 왕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하늘과 땅을 보며 천하의 모든 것을 알고자 하는 것이다. 산중의 왕이 되느니 차라리 천하의 신하가 되는 것이 낫다. 한 번만 더 헛된 소리를 지껄이면 그대로 너를 찟어 죽일 것이다!"


"그리하면 맹세를 깨는 것이 아니더냐? 하기사 나 같은 것이 어찌 큰 뜻을 알 것이오?"

이렇게 말하고 강추는 웃으며 떠나갔다고 한다.


"호랑이, 어찌한단 말인가? 90일이나 남았는데 이렇게 먹을 것이 없으니 우리가 살 수 있겠는가?"


"모른다. 허나, 밖에 나갈 수도 없는 노릇이니 참는 수밖에."


그렇게 시간이 흘러 쑥과 마늘을 아껴먹으며 연명하였지만, 이내 18일이 되는 날 모든 쑥과 마늘이 사라지게 되었다.


"호랑이, 어찌한단 말인가? 2주가 겨우 지났는데, 어찌 100일을 버티겠는가?"


"곰, 이상한 소리 말게. 인간이 되는 것이 쉬운 것이었으면 애초에 시작도 하지 않았을 거야."


"그대는 배고픔을 견딜 수 있다는 말인가?"

그 말에는 호랑이도 대꾸하지 못하였다.


그때 다시 강추가 나타나 말하였다.


"하하하, 보아하니 먹을 것이 떨어졌나 보구나."


"네가 가져간 탓이 아니더냐?"


"그러하다, 그러나 돌려주기엔 힘든 것이 되었구나."


"어째서냐?"


"그대의 말을 들으니, 나도 천하의 신하가 되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나도 이 쑥과 마늘을 먹고 있다네."


"멍청한 놈, 그러려면 동굴에 있어야 함을 모르느냐?"


"아, 그러한가? 나는 그러한 것은 듣지 못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돌려주지 않겠는가?"


"아니다, 지금이라도 똑같이 하면 되지 않겠는가? 나도 인간이 되고자 하니, 동료로서 이 정도는 양보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리고 다시 강추는 비웃으며 돌아갔다.


20일이 되는 날, 호랑이와 곰은 어느새 본래의 풍채는 줄어들어 볼품없어졌었다.


"곰아, 돌을 씹는다고 해서 배고픔이 사라질 것 같으냐?"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도저히 버틸 수가 없지 않은가?"


허나 호랑이도 몰래 곰처럼 돌을 잘근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또다시 강추가 나타났다.


"호랑이야 곰아 잘 버티고 있느냐?"


"또 네놈이군."


"배가 고파서 돌을 씹는 꼴을 보라지, 낄낄낄!"


"잔말 말고 돌아가거라."


"멍청한 호랑아, 곰아 너희는 모략에 빠진 것이다."


"더 말할 것이냐?"


"환웅은 너희를 거치적거리게 느껴서 너희를 제거하려고 한 것이다. 어찌 그것을 모르는가? 이제 산천은 환웅의 것이 되고 짐승들은 핍박받겠구나! 그래도 인간이 되고자 하니 말릴 수는 없지만, 확실히 하늘에서 그대들의 정성을 높이 사 천하의 신하가 아닌 천상의 주민이 되겠구나!"


"호랑이 어디 가시오?"

호랑이는 일어서더니 동굴의 입구로 향했다.


"오, 드디어 나오는가? 잘 생각했소. 어찌 이방인의 말을 믿을 수 있다는 말이오?"


호랑이가 눈을 찌푸려 밖을 보니 강추(綱錐)라는 말답게 털이 빳빳이 서있는 회색 늑대가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호랑이 나가는 것이오?"


곰이 호랑이를 따라 나오려 하자, 호랑이가 말했다


"그대는 가만히 있으시오."


"아직도 그자의 말은 믿으시오? 뭐 상관없소. 호랑이면 능히 산중의 왕이 되실 터이니."


"내 하나 질문을 하지."


"말하시오."


"어찌 산중의 왕에 집착하는 것이오?"


"흥, 인간이라는 것은 잠시 강할 수는 있지만, 곧 멸을 당할 것이오."


"이유는?"


"세상이 그렇지 않소. 쥐가 태어나면 하늘을 잡아먹을 매가 태어나는 법이오. 그 이유로 나를 보시오."


"뭐지?"


"나는 처음에 작고 왜소한 늑대였으나, 인간들을 점차 해하다 보니 이렇게 된 것이오. 즉, 그런 고난을 겪지 않아도 능히 하늘에 도달하는 방법이 있으니 그런 방법은 쓰지 않아도 되오."


"그렇군."


호랑이는 가증스러운 웃음을 짓고 있는 늑대를 보았다.


"대답은 잘 들었소."


호랑이는 동굴 입구에서 박차올라 늑대에게 돌진하여 목을 물었다.

허나 강추라는 이름의 뜻은 '벼린 송곳', 말 그대로 털 하나하나가 벼려진 송곳처럼 날카로워 이내 호랑이의 입을 이리저리 찢어놓았다.

호랑이는 뒤로 크게 뛰며 물러났다.

입안은 따금했으나 입안의 피가 오히려 무뎌진 정신을 날카롭게 해주었다.


"이런, 여전히 그자를 믿는다는 것입니까? 어쩔 수 없군, 그럼 내가 산중의 왕이 되는 방법을 택해야지."


호랑이와 늑대는 서로를 바라보며 탐색했다.

그리고 말없이 서로를 노려보다가 다시 달려들었다.

이번에는 서로가 몸을 크게 들며 부닥치며 싸우게 되었다.


그러나 강추의 송곳과도 같은 털이 호랑이의 몸 이곳저곳을 성치 않게 만들었다.


"아무것도 먹지 못한 호랑이는 별거 없구먼? 이럴 것 같으면 처음부터 공격할 걸 그랬어!"


"잠깐 우세를 점했다고 우쭐하면 안 될걸?"


"그대의 몸을 보게. 입안의 피하며 나에게 찔려진 몸이며 내 생에 처음으로 적호(赤虎)를 다 보는구려."


"다음은 없을 거다."


"그대야말로 다음은 없을 것이오."


말이 끝나자마자 다시 서로는 달려들었다.


강추는 호랑이가 다시 자신을 물 것으로 생각했으나 호랑이의 생각은 달랐다.

호랑이는 강추에게 달려가던 몸을 오른쪽으로 틀어서 경로를 틀었다.


그리고 늑대가 당황한 틈에 다시 강추에게 돌진하여 재빨리 앞발을 들어 손톱을 꺼내 얼굴의 좌상으로 그어버렸다.

강추는 휘두르는 힘으로 인해 멀리 떨어졌다.

"너의 털보다는 내 발톱이 좀 더 날카로운 것 같구나."


"크아아앙!"

이제는 말도 잊어버린 강추가 다시 호랑이에게 달려들었다.


호랑이는 오히려 달려들지 않고 기회를 보았다.


강추가 가까이 다가왔을 때 호랑이는 순간적으로 몸을 뒤로 빼서 자세를 낮춘 다음에 왼 손톱으로 강추의 목을 위로 긁어버리고 강추의 몸이 떠오르자 앞발의 오른쪽으로 강추의 목을 짓눌러버렸다.


"캐....캥...!"


"내가 다음은 없다고 하였을 것인데."


"크....크큭, 하지만, 너도.... 인간이 될 다음 기회는 없구나..."


"그래 그렇지."


호랑이는 밟혀있는 늑대를 바라보며 말했다.

"허나 다른 방도가 있지 너같이 헛소리를 지껄이는 녀석들을 전부 죽여버릴 것이다."


"좋은 계획이군... 허나 그렇다면, 너는 산중에 갇혀 천하를 볼 수 없겠구나."


호랑이는 답하지 않고 강추의 머리를 물었다.


강추는 그저 깽꺵거리며 반항을 했지만, 호랑이는 그대로 머리를 뜯어버리고 삼켜버렸다.



그러나 강추는 괴이한 것이라 이내 호랑이의 몸에 이변이 일어나게 되었다.

강추를 삼키자 몸속에서 바늘을 삼킨 듯이 강렬한 고통이 찾아왔다.

그리되자 호랑이의 몸은 하얗게 세어버렸고 황금 같은 눈동자는 창백한 푸른 빛이 되어버렸다.


"강추... 이놈은 갈 때도 곱게 가지 않는구나..."

내부에서 장기가 찟어지는 듯한 강렬한 고통이 있었으나, 동굴에는 아직 곰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호랑이는 주변을 보니 동굴 입구 근처에 볕이 바른 곳에 쑥과 마늘을 두었다.

아마 둘이 도발에도 나오지 않는다면 그것들로 도발할 생각이었던 모양이였다.


"호랑이, 그대 털과 눈이...! 어찌 된 것이오?"


호랑이는 곰에게 쑥과 마늘을 건네주며 말했다.

"나는 약조를 어긴 대다 삿된 것을 먹었으니 인간이 되기는 그른듯하오. 그러나 그대는 아직 약조를 어기지 않았으니 인간이 될 수 있을 것이오. 내가 한 짓을 후회하지 않게 해주시오."


"그대는 이제 어떡할 것이오?"


"또다시 강추같은 놈이 오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 주변을 지키다가 그대가 인간이 되면... 그때 생각하겠지..."


그러나 하루가 지나자 곰은 인간이 되어 동굴 밖으로 나오게 되었고 그것을 본 호랑이는 말없이 동굴 주변을 떠났다.

동굴에 들어선 지 21일이 되는 날이었다.




"흥미로운 이야기네요."


외할아버지에게 그렇게 맞장구를 치자 잠시 목을 축이고는 말했다.

"이놈아, 아직 안 끝났어."


시계를 보자 어느새 1시간 이상이 지났음을 알게 되었다.


"곰은 웅녀가 되었고, 웅녀랑 환웅이랑 만나서 짝짜꿍하였고, 그리고 태어난 게 단군왕검이다 잖아요?"


"그래, 하지만 호랑이의 이야기는 거기서 끝이 아니다."

나는 시계를 보고 한숨 쉬며 이 이야기를 얼마나 들어야 하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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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편급 분량이라서 어디에 올리지 하다가 발견하고 여기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