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에 찬 백면서생은 항상 향해야 할 길이 있다.

자신의 좁은 시야와 짧은 식견을 조금이라도 넓히고 밝히기 위해 수많은 고통을 감내하며 쏟아부은 찰나의 시간, 그 귀중하고 기나긴 세월을 바쳐가며 뇌세포 하나하나에 새겨진 귀중하고 많디 많은 지식과 정보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우물 안 개구리라 믿어 의심치 않은 채 더욱 더 많은 것을 익히기 위해 노력하는 삶.

오히려 그런 자세가 독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사람은 어떤 것을 격하게 부정하고 싶을 때면 오히려 그것을 자신의 자존심이 상처입지 않는 선에서 얕고 가볍게 인정해버린 척을 한다는 사실은 모두가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굳은 웃음을 짓는 백면서생의 마음 속 깊은 곳에 가라앉아 있던 최소한의 자만심마저 찰나적인 인식에 부서져 버릴 때의 감각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또한 그 자만심과 인식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도 이미 다들 알아채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물 안 개구리가 자신이 개구리가 아닌 물웅덩이 속의 물벼룩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게 된다는 것은 꽤나 쓰라린 일이다. 굳이 물벼룩이 아니라 두꺼비라든가 맹꽁이같은 다른 것이였더라도 마찬가지다.

이해하는 건 쉽지만 그것을 느끼는 것은 자신이 실제로 그런 입장이 되어보지 않는다면 꽤나 어렵다. 자신이 정말로 우물 안 개구리보다도 못한 존재였음을, 지금껏 자신이 행해온 숭고한 자아성찰은 정말로 편향된 지식과 사고에 의한 자기만족에 지나지 않았음을, 뇌세포에 차곡차곡 쌓아놓은 방대한 학식들은 정말로 창고 깊숙한 곳에 처박힌 한 자루의 몽당 연필과 폐지와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을.


인간은 잊어버린다.

잊어버릴 수 있다는 것은 삶에 있어서 축복이다.

과거의 쓰라린 기억들을 묻고 밝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기능이다. 인간을 망각의 동물이라고까지 표현할 정도로 이 기능은 중요한 기능이다.


하지만 그래봤자 동물.

필연적으로 생물이라는 존재는 처음 생겨났던 수십억 년 전 부터 회피할 수 없는 본능이라는 이름의 숙명을 가지고 태어난다.


~작성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