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몇 주 전부터 소설쓰기 튜토리얼을 써놓고 싶다는 생각은 했었는데

 미루고 미루다가 이러다간 영원히 못 쓰겠다 싶어서.. 휴일 하루를 제물로 바쳐 소환하기로 했다.

 좀 생각해봤는데 하나 하나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건 너무 어려울 것 같고. (그럴 능력도 안되고..)

 짧은 단편을 구상하고 쓰는 과정을 고스란히 해체해서 보여주면 참고가 되지 않을까 싶어서 적어봄.



 0. 들어가기 전에


-먼저 말하고 싶은 건 (당연하게도) 이게 전부가 아니라는 거임. 수많은 방식이 있을 수 있으니까. 애초에 내가 소설을 쓰는 방식도 여러가지고 이건 그 중 하나임.

 일단 여기서 소개하려는 방식은 기본적으로 <화성으로 날아간 작가>에서 나온 내용이 많은 것? 같다. 읽은 지 좀 오래된 데다 난 내용을 섞어서 기억하는 편이라... 암튼 그렇다. 이 책도 되게 추천함. (친애하는 영감탱이ㅎ)


-두 번째는 이건 기본적으로 이야기에 재능이 없는 사람을 위한 방식이라는 거임. 나처럼...

 이건 비틱질이 아니라 정말 그런 게, 자주 웹소설 쓰는 사람들이 그렇듯 이야기를 숨 쉬는 것처럼 쓸 수 있는 사람들이 있음.

 스티븐 킹이나 히가시노 게이고 같은 많은 유명 작가들도 그렇게 한다.

 

 나는 소설을 처음 쓸 때부터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느껴진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음.


 뭐라고 해야 되지... 글재주는 있는데 이야기 솜씨가 없다고 해야 하나.

 실제로 말할 때도 난 즉흥 설명 같은 걸 준내게 못하는 편이고..(얘기가 뱅글뱅글 돔)

 그런데도 어떻게든 소설을 쓰고 싶었고, 그러려면 결국 노력을 때려 박는 수 밖에 없었다.


 아무튼

 그래서 나처럼 이야기를 쓰고 싶은데 도저히 줄줄 나오지 않는다. (나와도 개쓰레기 같다.)

 백지를 쳐다봐도 아무 생각도 잘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면 어떻게 하느냐.



 단계를 나누는 거임.



 1. 착상


 나는 컴퓨터 화면을 보고 있으면 아이디어가 잘 안 떠오르는 편이라 기본적으로 샤프와 공책을 많이 쓴다.(-틀-)

 항상 찢을 수 있는 스프링 노트를 씀. 여러장을 펼쳐서 동시에 참고할 수 있거든.

 사실 최대한 느슨하게 쓰기 때문에 나 말고는 알아보기 힘들다. 대충 이런 느낌 (이것도 그나마 의식해서 또박또박 적은 편) 

 


 사실 개인적으로 구상 단계는 느슨하게 하는 게 좋은 것 같다.

 실제로 쓰는 걸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너무 잘 정리해 놓으면 같이 머가리도 굳어버리더라고..

 하지만 이래놓으면 잘 설명할 수가 없으니 좀 정리해서 적어보겠음.


 여기서 말하려는 방식은 창문챈의 단어 챌린지랑도 비슷함. 여러 단어들을 늘어놓고 엮는 거지.

 대신에 여기서는 난이도를 좀 낮춰서 


1) 내가 좋아하는 (관심이 가는) 그리고 서로 비슷한 결을 가진 단어들을 늘어놓아 보는 거지.


 내가 적은 단어들은 이랬다.


 붉은색 ㅣ 위스키 ㅣ 천사 ㅣ 학생 ㅣ 겨울 ㅣ 가을 ㅣ 휴일 ㅣ

 갑옷 ㅣ 사자 ㅣ 샤프 ㅣ 고구마 ㅣ 봄 ㅣ



 적어놓고 멍 때리다가 이중에서 특히 관심가는 단어를 동그라미 쳤다.



 붉은색 ㅣ 위스키 천사 ㅣ 학생 ㅣ 겨울 ㅣ 가을 ㅣ 휴일

 갑옷 ㅣ 사자 ㅣ 샤프 ㅣ 고구마 ㅣ 봄 ㅣ



 여기서 특히 휴일천사라는 단어에 여러번 동그라미 쳤는데 연결해 보면 이렇다. <천사의 휴일>


 아직 소재로 확정한 건 아니지만 마음엔 든다. 계속 멍 때리면서 밑에 적은 내용은 이랬다.


    천사의 휴일 -> 위스키 (알코올 중독자) -> 위로 -> 처벌


 나는 그래도 짬밥이 있어서 천사고 위스키고 한 번씩 다 써봤던 소재들이어서 쉽게 엮어진 편이었음.

 그러니 이런 내용이 떠오르는 건 사람마다 시간이 다를 수 있음.

 

 여기서 아이디어를 좀 덧붙임


    천사의 휴일 마지막 휴일 -> 위스키(알코올 중독자) -> 위로 -> 처벌

  =사자(본모습)


 * '천사=사자' 는 이거 생각할 때 바닥에 던전밥 11권 표지가 있었거든. 걔는 악만데 천사도 어울리겠다 싶었음. (사자 모습의 천사는 성경에도 나왔나? 잘 기억이 안나네)

 

그리고 휴일 앞에 마지막을 덧붙였음. (지금 보면 아마 영화 제목<화려한 휴가>를 떠올리려다 잘못 생각한 거 같음)

아무튼 

<천사의 마지막 휴일> 이러자 이젠 꽤 내 취향의 소재가 되었음.



2) 그러면 생각해 보자.  왜 '마지막 휴일'이 되었을까? 나한테 있어 구상은 기본적으로 질문의 연속임.

 아, 해야 할 일을 던졌기 때문이겠지.

 그런데 마지막 휴일...?

 => (여기서 뭔가 단어가 잘못된 건 깨달음. 휴일이 아니라 근무일이겠지. 마지막 근무. 하지만 일단 넘어간다. 이야기가 떠오름)


 이제 떠오른 이야기를 A-B-C-D-E... 알파벳 읊듯이 간단하게 이어봄.


3) A->B->C


: A 수호천사가 있었다. 알코올 중독자의 수호천사.

  B 휴일에 중독자와 직접 대화를 나누기 위해 나타남.

  C 대화를 나누고 실망함.

  D 물어 뜯어 죽이고 타락 (휴일->근무)


여기서 기본 설정을 좀 더 덧붙여 본다.

 수호천사 ->여자 

 알코올 중독자 -> 남자, 한국인. 위스키 -> 소주로 변경



여기까지가 착상 (아이디어 단계)

이제 이걸 가지고 플롯(구조)를 다루는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거임.




2. 구상


 이 단계에서도 제대로 줄 글을 쓰진 않음.

 나는 이 방식으로 소설을 쓰면, 영화를 찍는 과정을 많이 생각해 보거든.

 기본 아이디어가 나왔지만 아직 촬영을 할 시기는 아님.


 이 단계에서 하는 건 이야기를 짜는 동시에 약간 대본도 짜는 짬뽕 느낌임


 일단 스토리(A,B,C)를 대충 짠 시점에서 앞 부분은 그대로 적을 수 있었음. 공책을 그대로 옮겨 적어 보겠음

 (지금 설명하기 위해 추가적으로 적는 부분들은 기울임으로 표시할 게)



A. 수호천사가 있었다. 알코올 중독자의 수호천사. 


-남자: 꿈이 있었다. 하지만 그 꿈은 사라졌다.

        일을 끝내고 매일 밤 술을 마시는 게 그의 일상.


-수호천사 :어린 시절부터 그 모습을 지켜봐왔다.

Q 질문: 어떤 모습?

(떠오르는 대로 나열해 본다. 이걸 다 쓰겠다는 건 아님. 그냥 떠올려 보는 거)

-임무를 내려받는 순간

-아기로 태어나는 순간, 걸음마

-학창시절, 처음으로 사람을 치는 나는 히어로가 될 거예요!

-학창시절 처음으로 사람을 치는

-고시 준비 중 술을 먹고 싸움을 하고

-책을 태우고 일용직을 시작하는 모습



B. 휴일에 중독자와 직접 대화를 나누기 위해 나타남. -> C. 대화를 나누고 실망함

이제 만나는 부분을 써야 되는데, 여기서 잠깐 막히더라고.

그래서 남자가 천사를 만났을 때 어떻게 반응할 지 생각해봤음.

막장 인생이니까 당연히 화를 내... 덮친다는 생각이 잠시 떠올랐지만, 너무 달라지니 바로 삭제.

화를 내보자. (나는 인물이 되어 연기를 해본다고 생각하곤 함)


 남자: 지금까지 뭐 했어! 내가 이렇게 될 때까지!


 (이유가 뭘 지 빠르게 고민해봄. 이 부분은 앞에서 이미 좀 생각돼 있기도 했음)

 천사: 그렇지만 신 님은 인간을 존중하려고 하셨는 걸. (모든 게 본인 선택)

        천사가 막은 건 학생 때 맞은 애가 칼로 찌르려는 생각을 바꾼 것.


 남자: 네 잘못이라고! 씩. 씩.


 천사: 얼어붙은 모습으로 봄


----------------------------------------------------------------꿈  <-이 때 처음 꿈으로 하면 좋겠다고 떠올렸음

D. 물어 뜯어 죽이고 타락 (휴일->근무)


 남자: 일어나자마자 더듬거리면서 소주를 찾음.

        (수염, 눈 게슴츠레) 

 천사: 그 모습을 보며 남자가 아기였던 시절의 모습을 떠올렸다.

        순결한 모습, 부모가 좋아함(?) <- 좀 안 맞는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일단 적음


본 모습으로 돌아온

사자로 변한 천사가 남자를 작아먹음. 

= <마지막 ???>

이게 제목이 될 텐데, 아까 전에 이미 '휴일'은 안 맞는다는 걸 깨달음.

하지만 '근무'도 좀 모자란 것 같다. 다양한 단어를 집어넣어 보자.

마지막 + 보호ㅣ 소망ㅣ 기도ㅣ 희생 (제일 마음에 듬, 수호천사니까.

->여기서 결말이 생각남그리고 천사는 지옥으로 떨어졌다!


제목: <마지막 희생>

하지만 나는 간결한 제목을 더 선호함. 그래서 마지막 희생.

여기서 이 소설의 제목을 <희생>이라고 일단 결정해 둔다.



3. 스토리 작성

보통 소설에서 이야기의 구조를 '플롯'이라고 함. 사건의 순서와 연속 등을 결정하는 단계.

근데 나는 머리가 구려서 인지... 플롯을 확실하게 정해 놓으면 오히려 잘 안 써지더라고.

그래서 나는 이 단계에서도 느슨하게 진행하는 편임.

다만 긴 소설이면 훨씬 더 자세하게 정해놓는다. 싀벌 30페이지 넘어가는 거 몇 번 말아먹으니까 무서워서 안되겠더라고..


아무튼 그래서 나는 플롯이 아니라 '스토리'를 작성해 놓는다.

시놉시스(줄거리)와 플롯과 대본을 섞어 실제로 쓰기 쉽게 내 마음대로 두는 편임.


다만 이제 소설의 큰 모습. 즉 시점인물포인트(서술포인트)는 미리 정해놓는 편임.

안 그러면 이야기가 엉키고 매력이 없음..


시점) 여기선 간단하게 바로 3인칭 전지적 시점으로 결정. 공을 들이는 소설이 아니니까 내 손에 맞고 쉬운 걸로 결정


인물)

천사: 원래는 그냥 여자였지만, 이 이야기가 '희생'으로 정해진 이상 소녀로 정하기로 했다. 본 모습은 사자. 자그마한 날개가 달림.


남자: 중년. 30대 후반 정도. <-내가 타락해서 이렇게 되는 거 아닐까 하는 두려움도 좀 있다. 그래서 빠른 결정.

       근데 꿈이 히어로는 좀 아닌 거 같다! (원펀맨도 아니고.. 이야기랑 안 맞는다.) 경찰로 바꾸자.


포인트)

이건 내 취향, 내 문체에 따른 서술 선택. 기억해 놓고 나중에 챙겨야 할 부분.


-마지막 창백하고 잔혹하게 묘사.

-지옥에 떨어지는 건 담담하게.

-아기였던 시절 아름답게 묘사 (독자가 천사의 선택을 생각 못하도록)



이렇게 잡아 놓고, 옆에 지금까지 적어놓은 내용을 둔 채로 빠르게 적어본다.

*말했듯이 여기선 '줄글'을 적는 게 아님. 초고랑 다름! 그냥 문장의 나열인데다 추가로 떠오르는 생각도 바로바로 적는다.


 공책에 적은 걸 최대한 그대로 옮겨 봄



 남자에겐 경찰이 되고 싶다는 꿈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는 매일 소주를 마시고 잠드는 일용직 노동자일 뿐이다.

 소녀(수호천사)는 그 과정을 모두 지켜 봐왔다.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떠나갈 시기가 가까워서?) 그녀는 마음이 아파서 꿈 속에 나타나 대화해 보기로 했다.

 남자는 아름다운 소녀를 봤다.(하얀 머리) 소녀의 어깨엔 날개가 달렸다.

 그녀가 자신이 남자의 수호천사이며 삶을 지켜봐왔다고 하자, 남자는 윽박지르며 달려들었다. "지금까지 뭐 했어! 내가 이렇게 될 때까지!" 멱살을 잡자 천사는 "하지만 신 님은 인간의 뜻을 존중하라고 하셨는걸요. (-> 나중에 꿈 깨고 남자 독백 추가하자. '나는 계속 이렇게 살아가겠지...')

 (변명) 내가 막은 건 남자가 때린 애가 칼로 찌르는 생각을 고친 정도.

 그러지 말았어야지! 남자는 절규했다. 모두 네 잘못이라고!

 천사는 얼어붙은 채로 꿈 속에서 절규하는 남자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남자는 꿈에서 깨어나 누운 채로 눈을 떴다. 옆으로 흘러내리는 눈물 방울.

 더러운 수염이 난 채로 남자는 손을 더듬거리며 소주를 찾았다.

 남자의 눈에 있는 건 지독한 피로였다. '나는 앞으로 계속 이렇게 살아가겠지...' 하고 생각하는 체념이 기미처럼 끼어 있었다.

 그런 그의 눈 앞에 꿈에 서 본 하얀 소녀가 X

  -> 날개가 달린 아름다운 사자가 나타났다. (여 시점에서 곧바로 사자 형태로 나타나는 게 더 좋겠다고 생각함)

 믿을 수 없었다. 두렵다기 보다는 신성한 모습. 동물의 얼굴인데도 어딘가 (나중에 추가로 적음 너무나 자비롭고) 슬픈 표정처럼 보였다. 남자는 어째서인지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황금. (사자 묘사할 때 황금이란 단어 꼭 넣자.)

 날개 달린 사자는 (좋은 비유)처럼 달려들어 남자의 목을 물어뜯었다. 남자의 좁은 방에, 소주 병에, 쓰레기 더미에 새빨간 피가 튀어올랐다. 남자의 눈이 시꺼멓게 서서히 꺼져갔다. 비현실적인 통증이 사라져가며 남자는 죽음의 평온을 맛보며 어릴 적 경찰을 꿈꿨던 순간을 떠올렸다.

 남자의 죽은 목덜미를 물고 있는 사자의 자애롭고 커다란 눈동자 아래에 눈물이 맺혔다. 누구를 위한 눈물이었을까.(이건 그대로 넣자)

남자의 방바닥과 땅이 찢어지며 아래에 시뻘건 불길이 보였다.

 천사는 지옥에 빠졌다. (떨어졌다?)


 

 여기까지 적으면 내 기준엔 어느 정도 준비가 끝난 거임... 어디까지 짧은 소설을 쓸 때 한정이지만.


 4. 실제 글쓰기


 이제 글을 쓰는데.

 이걸 보고 다시 한 번 더 공책에 손으로 쓰는 과정을 거칠 때도 있고(순문학, 공모전용 등)

 보통은 여기서 바로 컴퓨터로 쓴다.

 

 다만 내 경우엔, 여기까지 해도 실제로 글을 안 쓰거나 묵혀둘 때가 많다.

 개인적으로 이건 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한 번 생각했다고 굳이 꼭 바로 소설로 써야 할 필요는 없다.

 본인이 끝까지 쓸 체력이 되면 모르겠지만, 괜히 이건 아닌 거 같은 글을 억지로 써내면 즐겁지도 않고 지칠 뿐임.


 실제로 이 소설도 이 단계에서 이틀 정도 묵혀둔 다음에 썼음. 그리고 나한텐 지금도 이 단계에서 묵혀둔 소설이 여러 개 있다.

 걔네들은 나중에 더 재밌는 디테일이 떠오르면 쓰거나 아니면 다른 소설에 추가 재료로 쓰거나 한다.

 좀 써보니까 1,2년 후에 갑자기 쓰게 되기도 하고 그러더라고. 왜 그런지는 모르겟다.


 이제 여기서 지금까지 적은 걸 모두 다(중요! 절대로 마지막 부분만 보고 쓰는 게 아님. 쓰다 보면 처음 떠올린 아이디어가 훨씬 더 좋을 때도 많음) 옆에 펴놓고 타자를 두드리기 시작하는 거지.


 여기서 내 방식은 쓰면서 본격적인 영화촬영을 찍는다고 생각함.

 나는 감독이기도 하고 배우이기도 함.

 카메라로 여기저기 어떻게 비출지 결정하면서도 가끔씩은 인물 속으로 들어가서 애드립도 치고 그런다.

 즉흥 연기가 갑자기 돋아서 이야기가 완전히 바뀔 수도 있음 (근데 이러면 보통 망함...)


 

 암튼 그렇게 쓴 소설은 이렇다.


 바로 밑에 있는 거 희생


 밤 새고 적은 거라 비몽사몽한데 좀 설명이 됐는지 모르겠다. 도저히 퇴고는 못하겠네ㅠ


 아무쪼록 처음 소설 쓰는 사람들한테 도움이 되었음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