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방패의 전설 모음집(계속 업데이트) - 창작문학 채널 (arca.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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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화, 아주 오래전 이야기


그날로부터 일주일이 지났다. 놀라운 회복력으로 부상에서 회복한 아인은 다른 사람들을 만나며 시간을 보냈다. 샌디는 온 몸에 붕대를 감은 채 아인을 반겼고, 레드암스 역시 한쪽 팔이 부러져 있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던 와중, 한 늙은 오크가 아인을 불렀다. 놀랍게도 오크의 말이 아니라 인간의 말로.


“자네, 미안한데 시간 있나?”


아인은 그 오크가 자신들의 말을 하는 것에 짐짓 놀라면서도 예의를 갖춰 답했다.


“네, 있습니다.”


“그렇다면 잠깐 날 따라와주게. 궁금한 것이 있어서 말이야.”


아인이 늙은 오크를 따라 간 곳은 도서관이었다. 트리움피한이나 불의 산에 있는 도서관 수준은 아니었지만 계속 이동하는 오크에게 기준을 맞추면 굉장히 큰 도서관이었다. 늙은 오크가 말했다.


“나는 필립 메이스라고 하네.”


“아인 발터입니다.”


“내가 여기 도서관을 맡고 있는데, 혹시 자네. 솔리스를 아나?”


“알다마다요. 신화의 창조신이자 ‘빛의 아이들’이 섬기는 신이잖습니까.”


“잘 아는군. 그렇다면 그와 관련된 창조신화도 알겠지?”


아인은 잠깐 생각을 했다. 분명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신화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부끄럽게도 잊어버렸습니다.”


“부끄러워할 일이 아닐세. 내가 이야기해주면 되는 일 아닌가. 잠시 거기에 앉아 있게.”


아인이 자리에 앉자 필립은 책장에서 낡은 책 한 권을 가져오더니 먼지를 털어낸 다음 책을 펼쳤다.


“잘 듣게나.”


필립은 헛기침을 몇 번 하더니 책을 읽기 시작했다.


“오래 전 이 세계에는 오로지 칠흑 같은 어둠과 잔잔한 바다뿐이었다. 무한한 시간동안 고요히 존재하던 바다 한가운데에서 어느 순간 거품이 일더니 그곳에서 태초의 거인 ‘이미르’가 탄생했다. 바다조차 그녀의 무릎을 젖게 하지 못하는 거인 이미르가 탄생한 직후, 하늘에서 태초의 빛이 반짝이더니 빛 속에서 태고의 신 ‘솔리스’가 탄생했다. 정적뿐인 세계에서 두 존재는 서로 공존할 수 없었기에 이윽고 둘은 싸움을 시작했다. 그러나 둘의 싸움은 전혀 끝날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솔리스는 그녀를 쓰러뜨리기 위해 그녀가 탄생한 바다의 깊숙한 곳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이미르는 자신의 승리라고 자신하며 바다 속에서 대지를 끌어올려 최초의 대륙, ‘티타노하임‘을 만들고 곧이어 자신의 힘으로 거대한 피조물을 만들었으니, 그 존재가 바로 ‘거인’이다.

 태양이 없어 차갑고 얼어붙은 대륙에서 이미르는 자신의 피조물에게 추위에서 버틸 수 있는 무기질의 피부와 어둠에서도 앞을 볼 수 있는 눈, 그리고 추위를 이길 수 있도록 불을 다룰 수 있게 해주었다. 기나긴 세월이 지날 동안 솔리스는 바다 속에서 바다의 힘을 받아 만들어진 푸른빛의 금속 ‘아쿠아메탈’을 발견하고, 그것으로 그녀를 쓰러뜨릴 수 있는 무기를 만들었다. 마침내 그녀를 쓰러뜨릴 수 있는 무기를 만든 솔리스는 물 위로 뛰어올라 그녀에게 싸움을 걸었다. 둘의 싸움은 이전보다 훨씬 거칠었다. 둘의 싸움에 휘말린 티타노하임은 산산조각이 나 여러 조각으로 나뉘었고 수많은 거인들이 몰살당했다. 처절한 싸움 끝에 결국 솔리스는 그녀의 목을 베었다. 승리한 솔리스는 이미르의 두 눈을 하늘에 띄워 각각 해와 달을 만들었다. 바다에서 대지를 끌어올려 다시 대륙을 만들고 그 땅의 이름을 ‘리븐하임’이라고 지었다.

 빛과 대지가 만들어지자 솔리스는 자신의 피조물을 만들 계획을 세웠다. 이미르의 뇌로 높은 지능의 엘프를, 근육으로 강력한 힘을 지닌 오크를, 뼈로 가공할 대장기술을 가진 드워프를, 심장으로 무엇에도 굴하지 않는 용기를 가진 인간을 만들었다. 네 종족을 만든 솔리스는 무언가 허전한 느낌을 받았다. 자신은 하나뿐인데 지켜보아야 할 것들은 여러 가지 인 것이다. 생각 끝에 솔리스는 그들을 다스릴 수 있는 생명체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네 종족을 만들고 남은 부산물로 그는 지능이 높고 그 무엇보다도 강하며 손재주가 좋고 무한한 용기를 지닌 ‘용’을 만들었다. 용들은 솔리스의 기대대로 네 종족들을 잘 다스렸다. 그것을 본 솔리스는 안심하고 이미르와의 싸움에서 생긴 상처를 회복하기 위해 긴 잠에 빠졌다. 하지만 이 평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솔리스가 잠에 들자 용들은 자신이 만들어질 때 섞여 들어간 이미르의 피가 만들어낸 잔인한 본색을 드러낸 것이다. 그들은 자신이 다스리던 종족들을 핍박하기 시작했다. 피조물들은 저항했으나 번번이 용들의 능력 아래 무너졌다. 피조물들의 무기로는 용들의 가죽조차 뚫지 못했던 것이었다. 

창조주의 그림자에서 벗어나려 하던 용들은 솔리스가 잠든 곳을 알아냈고, 끝내 자신의 창조주를 죽여 버렸다. 그러나, 솔리스는 자신이 죽기 직전 인간의 육신을 만들어 자신의 무기와 함께 사라졌으니 그가 바로 ‘드래곤베인’ 왕가의 시조이자 ‘용들의 전쟁‘의 영웅 ‘미카엘 드래곤베인‘이었다. 그는 용들의 가죽을 찢을 수 있는 아쿠아메탈로 만든 무기로 용들을 쓰러뜨리기 시작했다. 몇 년간의 싸움 끝에 그는 마침내 용들의 수장 ‘토트’를 쓰러뜨렸다. 전투에서 승리한 미카엘은 최강의 마법사들과 함께 대륙의 동쪽 끝, 경계의 숲에 거대한 탑을 세우고, 그 탑에 용들을 봉인시켜 땅 속에 영원히 잠들게 했다.”


책을 다 읽은 필립은 다시 책을 책장에 꽂았다. 아인이 말했다.


“이제야 좀 기억이 나는군요.”


“내가 뭘 물어보려는 지 이제 알겠나?”


아인은 곰곰이 생각했다.


“…아니요. 모르겠습니다.”


“자네의 그 방패와 검 말일세. 어디서 구했나?”


아인은 자기도 모르게 방패에 손이 갔다.


“저희 부모님이 남긴 유품입니다. 아버지는 아버지의 아버지에게, 또 그 아버지의 아버지에게. 그렇게 내려왔다는 군요.”


“…역시나. 자네의 검과 방패는 보통 무기는 아닐거야.”


그 말에 아인은 엄청난 결론이 머리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듯했다.


“그렇다면… 설마 이 방패는!”


필립은 당황했는지 손을 막 휘저었다.


“아니아니아니아니, 그렇게 엄청난 결론은 아니야. 애초에 ‘아쿠아메탈’이 실존했다 하더라도, 그 무기는 너희 제국의 1대 카이저가 그의 아들 딸 둘에게 나눠줬다네. 그걸 가지고 있는 건 너희 제국의 카이저와 그 여자의 후손이겠지.”


“그렇군요. 혹시, 필립 씨도 제가 게비알과 싸울 때 거기 있었나요?”


“그렇지.”


“그럼 그때 제 검에서 나온 그 ‘빛’. 그게 무엇인지, 혹은 어떻게 발동하는 건지 아시나요?”


“나도 모르네. 여기 기록에는 적혀 있지 않아서 말이야. 혹여나 떠날 거라면 ‘그리힌리즈’에 가보게. 엘프들은 기록에 집착하니 분명 관련된 이야기가 있겠지.”


“감사합니다. 다만 떠나려면 레드암스에게 허락을 받아야지 않겠습니까?”


“그건 그렇지.”


아인은 밖으로 나와 레드암스가 있는 곳으로 움직였다. 그러면서 아인은 엘프들의 땅, 그리힌리즈에 대해 생각했다. 대륙의 중심부, 숲이 우거진 삼림에서 유독 높게 솟아오른 나무를 중심으로 살아가는 엘프들은 수 백 년 전 교류가 없었을 때만 해도 인간들 사이에서 각종 소문을 불러일으키는 종족이었다. 키가 2미터가 넘는다, 귀가 아주 길다, 몇 백 년을 살아간다, 남녀 모두 미남미녀 뿐이다 등등. 약 400년 전, 인간과 엘프가 교류를 시작하며 허무맹랑한 소문은 잦아들었지만 그래도 나이가 있는 엘프들은 여전히 그곳에서 나오기를 거부하고 있었다. 엘프들을 생각하며, 아인은 이번엔 어머니를 회상했다. 어머니는 엘프였고, 기억이 맞다면 옛날에 그리힌리즈에서 살았다고 했으니 아마 그곳에 가면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아인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생각을 거듭하는 동안 아인은 레드암스가 있는 곳에 도달했다. 아직도 온몸에 붕대를 칭칭 감은 레드암스가 아인을 반겼다.


“정말 놀라운 치유 능력이군. 자네는 대단해.”


“감사합니다, 레드암스.”


“그래서, 나를 만나려고 온 이유는 뭔가?”


“떠나고 싶습니다.”


레드암스는 아인의 말을 제대로 못 알아들었는지 멍하니 앉아 있다가 다시 물었다.


“떠난다고?”


“네, 엘프들의 땅인 ‘그리힌리즈’로 말입니다.”


“떠나는 건 상관없는데,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아나?”


아인은 말문이 막혀버렸다. 그러고보니 그리힌리즈로 간다고만 했지, 어떻게 어디로 가야 하는지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남쪽에 그리힌리즈로 가는 길이 있네. 오래전 엘프들과 포로를 교환하기 위해 만든 길이지.”


아인은 반색하더니 레드암스에게 감사를 표하며 동료들에게 돌아갔다.


“잔, 마리. 이제 너희들의 고향으로 갈 거야.”


갑작스럽게 소식을 들은 잔이 물었다.


“갑자기? 어디로 어떻게?”


옛날에 엘프와 포로교환을 위해 만든 길이 있다고 했어. 둘 다 갈거지?”


“당연하지.”


“마누엘 씨, 가실거죠?”


그런데, 마누엘의 표정이 좋지 못했다.


“마누엘 씨?”


“미안하지만 아인, 나는 갈 수 없네. 이미 레드암스나 샌디와 이야기가 다 끝난 상태야. 나는 돌아갈걸세.”


“네?!”


“미안하네, 나는 아내와 자식들이 있어. 소식이 완전히 끊겼으니 다들 걱정할 거야.”


“알겠습니다. 마누엘 씨.”


며칠 후, 마누엘은 남서쪽으로, 아인 일행은 남쪽으로 떠나게 되었다. 레드암스와 샌디를 필두로 많은 오크들이 그들을 배웅했다. 레드암스가 아인의 손을 잡았다.


(“고맙네, 아인. 자네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용의 수족으로 부려졌겠지.”)


샌디가 그의 말을 통역해주자 아인은 미소를 지었다.


“아닙니다, 레드암스. 당신이 저를 믿어준 덕분입니다.”


“아인, 건강하그라.”


“당신도요, 샌디.”


그리고, 마누엘이 말했다.


“아인, 그러고보니 여기까지 오도록 통성명도 안 했구만. 나는 마누엘 후멜스라고 하네.”


“아인 발터입니다. 마누엘 씨, 건강하세요.”


“그래, 아인. 다시 만나는 날이 오길 빌겠네.”


두 사람은 사나이의 악수를 나눴다. 마누엘이 먼저 영원한 불의 땅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자, 아인은 운 좋게 오크들이 끌고 온 자신의 말에 올라탔다. 뒤이어 잔과 마리가 자신들이 소환한 말 위에 올라타자, 레드암스를 시작으로 오크들이 그를 향해 경례를 했다.


“잘 가게, 형제여.”


아인은 잠시 당황하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차리곤 그들과 똑 같은 경례로 화답했다.


“안녕히, 형제여.”


셋은 그렇게 남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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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딩 때 쓴 습작에선 저 창조신화가 소설 제일 앞에 나올 예정이었습니다. 차라리 지금이 더 낫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