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당신을 잊지 못해요.


죽음도 갈라놓지 못할 사랑이 있다고들 하죠.


하지만.. 저는 죽음이 두려워요.


당신을 향한 사랑이 덧없이 끝나게 될까 봐..


부디.. 이 영원할 것 같은 사랑이 끝나지 않기를.


이 달달한 사랑을 속삭이는 내가.


죽음이라는 거대한 벽을 만나도 당신을 볼 수 있도록.


황혼의 시간 속에서 눈물과 함께 두 손을 맞잡고 


당신을 위해 기도드린 그 모든 밤들이 허무하지 않기를.


사무치게 그리운 그대의 잔인한 사랑을 담아


부디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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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피비린내가 대지에서 진동하며, 뼈와 살을 짓이겨내며 나오는 피, 수 많은 사람들의 애달픈 애원과 절규.


죽어버린, 허공을 한없이 맴도는 공허한 눈동자


이미 떠나버린 자들을 위한 것일지 남겨져 고통받을 이를 위한 것인지는 모를.


그런 지옥의 단말마가 여기까지 들리우는 이 곳에.


그 존재만으로도 찬란히 빛을 내는 듯 한 여인과 묵묵히 그녀의 옆을 지키는 한 기사가 있었다.


"...성녀님 이 앞은 위험합니다, 시간이 지체되는 한이 있더라도.."


"아녜요.. 저 보다는 제 눈 앞의 환자가 더 중요합니다."


싱긋 웃어보이며 두 발을 지옥도로 향하는 그녀.


-탁


그는 그녀의 팔을 붙잡고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말했다.


"...당신은 제 마음은 헤아려주지 않으십니다."


부르르 떨리는 그녀의 앵두같은 그 입술.


약간 붉어진 뺨을 어루어 만지며 그녀가 답했다.


"아무리 당신의 부탁이라 하여도.. 이 가여운 분들을 이렇게 둘수는 없어요..."


그랬지.


내가 사랑한 그녀는 이런 모습이었지.


약간의 미소가 입에 맺힌다.


"대신.."


그녀에게로 다가가


"이건 대가.. 당신을 지키는 대가 입니다."


그녀와의 가볍게 두 입을 부딪히는 입맞춤.


새파란 바다를 담은 듯한 눈, 잘 가꾸어진 꽃밭을 거닐고 있는 거 같은 부드러운 향기


그 어느 하나 매혹적이지 않은 것이 없었다.


떨어지고 나보니 눈 앞에는 잘 익은 홍시 하나가 있었다.


부끄러운지 한 팔을 들어 손가락으로 입술을 매만지며 하는 소리.


"...정말.. 리히트씨는 무례하시네요.."


"그래서.. 싫으십니까... 성녀님?"


혹여나 그녀가 당황했을까봐.. 나도 약간의 심중을 담아 말했다.


그러자 작게 고개를 숙인채로 머리를 흔드는 그녀.


한 마리의 귀여운 말 잘듣는 강아지를 보고있는 느낌이다.


"...그럼 가도록 하죠."


방금까지의 행위를 애써 모른척하며 넘어가는 그녀의 모습조차 귀여웠기에


"...대가는 시급입니다."


약간의 생각을 하는 듯 고장난 시계처럼 멈춰있다 역시 작게 고개를 흔드는 그녀.


그녀 몰래 웃음을 훔치고는 뒤를 묵묵히 따라갔다.


---


"그대에게도 빛이 있기를.."


피와 시체들이 모이고 모여 진창과도 같은 분위기를 만들었고 말라 붙은 몇몇 살점에 등에들이 달라붙어 그들의 죽음을 허용할 때.


그 어느 어스름


"성녀님.. 오늘도 너무 무리하셨습니다.. 이만 돌아가시는게.."


그녀가 머리에 미세하게 맺힌 식은땀을 몰래 훔칠 때 그가 나즈막하게 물었다.


마치 걱정되어


그녀가 안쓰러워 어찌할 바를 모르는 강아지처럼


"...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흡!"


끝났다는 말이 울려오기 무섭게 그가 그녀를 끌어 안으며 말했다.


"..오늘도 수고 하셨습니다."


그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고는 옷자락을 약하게 잡는 그녀.


그리고는 그에게만 들릴 것 같은 흐느끼는 듯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흐윽, 고마워요. 오늘도 당신, 수고해줘서.. 사랑해요."


들판에 자란 코스모스와 같은 색의 머리카락을 두 세 번 만져주고는 천천히 그녀를 떼어놓으려 했지만..


떨어지지 않으려 옷 자락을 더 강하게 붙잡는 그녀가 귀여워 잠시 세계가 멈추어있는 거처럼 그에게 느껴졌다.


"..좋아해요.. 당신을, 당신이라는 이름의 사람을. 당신의 모든 것을"


이런 말은 언제 들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런 귀여운 얼굴로 칠칠치 못한 행동만 하는 사람이..


적어도 나를 위해서 이런 말을 해준다는게 그런 하나하나가 정말 그녀에게 고맙게 느껴지게 한다.


"...이제 돌아가도록 하죠."


이미 산등성을 넘어간 해와 점점 짙어지는 피의 안개가 현실감을 그에게 다시 주었다.


그는 그녀의 어깨에 두 손을 사푼히 올려 그녀를 떼어놓았다.


굉장히 붉은 그녀의 얼굴, 그녀의 얼굴을 보니 약간 그녀를 더 괴롭히고 싶었다.


"...제가 정황이 없어 제대로 보수를 못 말한 것 같습니다. 오늘 밤은 외로워 함께 잘 사람이 필요했는데... 부디.. 함께 해 주시겠습니까?"


"....네."


정황없이 떠도는 그녀의 당황한 두 시선은 긍정의 대답과 함께 이어졌다.


그녀 몰래.


그녀의 홀로있어 외로워 보이는 손을 잡아주고는 


"앗!"


의미모를 그녀의 비명 소리와 함께 끝끝내 모른척 하며 끝까지 걸어갔다.


---


"습격이다!!"


시끄럽게 울려퍼지는 종소리, 사람들의 고함과 비명, 절규.


두텁게 감낀 그의 두 눈이 떠지고는 몇 초, 아니 그에게 있어서는 몇 십분과도 같은 시간이 흐르고 그의 옆에 그녀가 있는지 확인했다.


"..하아..하아..하아.."


새근새근 잘 자는 그녀를 몇 번 약하게 흔들어 깨우고는 잠결에 두 손을 허공에 허우적대는 그녀의 두 손을 잡아주어 일으켜 세워주었다.


곧바로 무장을 하고는 전쟁의 전선으로 향하는 두 사람.


그렇게 두 사람은 발걸음을 서둘러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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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라! 여기!"


"네!"


즉시 달려와서 경황이 없을 건데 곧바로 영창을 준비하는 그녀가 안쓰러웠다.


"그대에게도 빛이 있기를.."


그 고우디 고운 두 입에서 나가는 선명한 목소리.


"리히트씨! 후방에 환자가 너무 많습니다! 빨리 그 곳으로 가야..."


-펑!


곧장 그녀의 옆으로 가 방패를 치켜세워 폭발물의 화력을 줄이고 그녀를 지키고는 그는 말했다.


"...지금 너무 적들의 공격이 거셉니다. 지원군이 도착한다 하니.. 그때까지 만이라도 빠져.."


"안돼요! 환자들이.. 불쌍한 사람들이 지금 안 보이시는 건가요..!"


글썽글썽거리는 두 눈으로 호소하는 그녀.


"...제게는 당신이 더 소중합니다."


짧막한 한 마디.


부디 이 한 마디가 그녀에게 전해졌기를..


"제발.. 리히트.. 저는 성녀입니다.. 사람을, 인류를 구해야해요.."


아... 제발 신이시여..


그렇다면 제 사랑하는 그녀는 누가 지켜준다는 말이십니까..


"...미안해요.. 리히트."


눈물을 머금고 내게 반복하듯 사죄의 말을 전하는 그녀의 이런 모습을 보기 싫었다.


이 세상이 원망스러웠다. 처음으로


"...알겠습니다. 대신 제 뒤에 계십시오."


그렇다면.


세상이 나를 무너뜨리고 파괴시키며


신 또한 거기에 동참한다 하더라도...


적어도 


적어도 나만은.


내가 그녀를 지키겠다.


그렇게 굳게 다짐하고는 그녀의 대답을 들었다.


"..네.. 고마워요.. 리히트.. 사랑해요.."


그 말에 피식 웃고는 그녀의 울먹거리는 두 눈을 맞추고는 말했다.


"저.. 삐진 거 아닙니다.. 제 말 들어주지도 않는 성녀님."


"...삐진거 맞잖아요.. 훌적."


"정말 그렇게 보이시나요?"


그녀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약간 온화한 말투로 말했기에 그런지 작게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흘러내려 약간 굳어버린 그녀의 눈물을 닦으며


그 온기를 느끼며


그녀의 주체하지 못할 사랑을 느끼며


그녀와의 모든 추억을 회상하며


다시 발걸음을 지옥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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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돼.. 안돼요.. 흑.. 흐윽.. 제발 안돼요..."


그녀의 찡그러진 얼굴이 보인다.


왜 그래.. 베라


울지마.. 나도.. 그러니까 울고 싶어지잖아..


-쿨럭


비릿한 피가 내 입에서 역류하였고 이미 뚫여버려 내장과 피로 수 놓은 바닥을 그녀는 움켜 잡으며 울었다.


그저 한없이


이 비어버린 공간을 가득 채우듯이


계속


계속...


뭐라 그녀에게 하고싶은 말은 수백, 수천가지지만..


그녀에게 닿지 않았다.


"그러지마요... 그러지마.. 리히트.. 내가 다 미안해요.. 네 말 들었어야 했는데.. 그렇죠? 리히트.. 제발.."

 

천천히 그나마 기력이 있는 팔을 들고 그녀의 코스모스와도 같은.


이제는 피의 붉은 색으로 점칠되어 버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리히트! 제 말 들려요? 곧 있으면 신성력이 돌아올거..."


그녀의 입을 다른 한 손으로 가리고는 고개를 돌린다.


당황한 듯이 크게 커지는 바다를 담은 듯한 그녀의 눈.


예쁘다.


이런 사람과 천 년이고, 만 년이고 함께...


하지만 이제는 이루어지지 않을.


그런 꿈을 꾸었다.


힘이 빠져 그녀의 머리에서 손이 떨어졌고 그녀는 떨어진 그의 손을 다시 붙잡고 머리에 계속 올려두었다.


다시 살아날 것 마냥


계속 그녀의 작은 두 손으로 잡고 있었다.


홀로 남겨진 들판에는


이미 모든 건 불로 인하여 본래의 것으로 돌아간지 오래였고


하염없는 백색소음만이 이 전쟁의 끝을 아름답게 꾸몄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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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님.. 성수를 사용하게 해주세요.."


본래 수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과 찬양을 받으며


"그가... 제게 매우 귀중한 그가.."


사람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앉혀줄 성스러운.


그런 고귀한 사람들이 목소리를 높여가며 싸우고 있었다.


"..그러게 리히트가에 이런 임무 시키는거 아니라고 하지 않았.."


"아니! 왜 성수입니까! 본디 용사나 성녀님께만 사용..."


"...제발.. 자애를.. 내려주세요.."


그 사이에서 뭐가 그리 서글픈지 눈물을 흘리는 그녀.


"조용하게!"


교황의 소리와 함께 잔잔해 지는 방 안.


"알겠네.. 성녀에.. 자네의 요구를 허락하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연신 꾸벅거리며 고마움을 표시하는 그녀.


하지만 실속 없이 허울 좋은 대가는 어디에도 없었다.


"대신.. 조건이 있다."


"네... 뭔가요.."


"... 그 조건은 이 교황청 지하의 악마를 수용하게나."


청천벽력과도 같은 잔인한 소리.


"안됩니다! 교황이시여.. 어찌.. 작은 저 아이에게.."


"3대 성녀님도 봉인하다 돌아가신 그... 악마를..."


주위에서 울려퍼지는 비탄과 한탄.


간접적으로 나마 그 악마의 위험성을 직감했다.


그럼에도


"네.. 알겠습니다."


"성녀님! 안됩니다!"


주변에서 흘러져 나오는 곡소리가 가득채우고 있을 때


"조용하게나.. 요근래.. 봉인이 약해져 이렇게라도 그 악마를 다시 봉인하지 않으면 다시 그 악마가 교황청에서 활개친다는 걸 모르지 않은거 아닌가.."


교황은 한탄 섞인 한숨을 거세게 내쉬며 눈 주위을 주물렀다.


"미안하네.. 성녀여..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아닙니다.. 교황이시여.. 오히려 감사드립니다.."


조용한 바람만이 밀려오는 것을 느끼며 성녀는 지옥으로 한 발걸음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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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스하다.


온화한 봄 공기와 달빛이 내려오는 밤이었다.


"이제야.. 눈을 떴네.."


옆에서 들려오는 그녀의 목소리


은은하게 미소를 머금고 그녀의 얼굴을 보자..


상태가 심각했다.


말라붙은 눈물, 깊게 배인 다크서클.


"괜찮으십니까... 그 얼굴은.."


"괜찮아.. 별거 아니야.."


평소에 쓰던 높임말을 쓰지 않는 그녀.


매우 이상해보였기에.. 


"높임말은... 쓰지 않으십니까?"


"어.. 너인데..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너 인데.. 쓸 필요가 없는거 같아서.."


일종의 광기.


아니.. 그 이상의 무언가가 그녀의 눈 안에서 보였다.


"사랑해."


담담히 하고싶은 말을 전하는 그녀였기에


"제가 더 사랑할 겁니다."


나 또한 그리 하였다.


옆에 둘러보니 예쁘게 리본으로 포장된 상자를 볼 수 있었고 그 것에 대해 그녀에게 물어보니


"아.. 오늘 화이트 데이.. 너 주려고"


하는 말마다 이렇게 귀여울 수 가 없다.


"그럼.. 먹여주시는 겁니까?"


괜시래 장난을 그녀에게 쳐 보니..


그녀는 담담히 상자를 거침없이 뜯어내고는 사탕을 입에 물어 내게로 다가와 입을 맞추었다.


내가 원한 반응은 이게 아닌데... 라는 생각도 잠시


그녀와의 달달한 키스와 함께 그 모든 의문은 점차 사라졌다.


그리고는


"너.. 이제 아무대도 못가."


"예?"


"앞으로는 내 옆에만 있어줘.. 내가 다 잘못했어.. 내가 앞으로 더 잘할게.."


급격히 몰려오는 졸림.


방금 먹은 사탕에 무언가가?


"그렇게 안 놀라도 돼.. 방금 사탕.. 내가 뭘 넣었어.. 해독제도 있으니.."


혼자 뭐라 중얼거리는 그녀의 모습은 귀여웠지만 동시에 소름끼쳤다.


"이제.. 우리는 영원히 함께야♥"


그렇게 눈은 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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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이 정도로 괜찮게 쓴 건 이거 하나 뿐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