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연락을 받고 서둘러 달려왔다.


나는 우리 집 번호보다도 네 집 번호를 더 잘 외웠다. 네 부모님도 모르고, 너도 술에 진탕 꼴이 돌아오는 날이면 종종 까먹곤 했던 번호를 난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었다. 가끔 풀어진 목소리로 전화가 걸려 오는 날이면 난 새벽에도 나갈 채비를 했다.


0305. 그 날은 네 생일이었잖아. 그렇지만 너는 생일을 싫어했다. 스스로의 생일을 잊으려는 그 노력은, 가끔 강박적으로 보이기도 했다. 그토록 오래 알고 지냈는데도 난 네 생일을 축하해 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특별한 날에만 소중하게 대하는 건 이상하다며, 정말 내가 소중하다면 평범한 날에도 그렇게 대해달라고. 너는 그리 웃었다. 너는 사람들이 언제나 한결같을 수는 없다는 걸 이해하지 못했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이라도 늘 좋은 말만 할 수 없다는 걸.


문을 열고 들어선 네 방 안에서는 재의 향기가 났다. 창문을 열고 아무리 환기해도, 무언가가 타들어간 냄새는 사라질 줄은 몰랐다. 매캐한 연기는 빠져나갔지만 재 냄새는 수십 년 전부터 배인 듯, 네 마음을 태우는 작은 불꽃이 방 전체를 물들인 듯.


처음에는 감기약, 다음에는 밧줄, 이번에는 연탄. 너는 항상 새로운 도전을 했고, 언제나 좌절되었다. 과거에도 지금에도, 네 발목을 붙잡고 네 날개를 꺾는 것은 언제나 네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이었다. 어쩌면 앞으로도.


이제 너는 곧 깨어나겠지. 그리고 울며, 화내며, 소리치겠지. 왜 날 붙쟙느냐고, 왜 날 살렸냐고. 그렇지만 조용히 잠든 지금의 너는 어떠한 불행도 없이 천국에 사는 천사 같아서. 그 평화로운 목을 지그시 누르고 느리게 뛰는 맥박 소리를 듣는다.


조금만 더 힘을 주면, 내 손으로 네가 가장 바라는 안식을 줄 수 있겠지. 그러나, 나는 결국 손을 떼고 만다. 그리고 잠든 너를 바라본다. 너는 죽겠지. 머지않아. 그렇지만, 네가 죽는 날은 적어도 오늘은 아냐.


프리지아 꽃이 피는 날. 세상이 축복하는 것처럼 꽃비가 내리고, 네 얼굴에도 웃음이 만개하는 날. 오랜만에 서로 손을 붙잡고, 밖으로 나가 마냥 어둡지 않은 세상을 만끽하는 날. 이제껏 미뤄두기만 했던 고민에 답을 내리는 날.


네가 네 입으로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게 되는 날.

적어도 그때까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