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리먼은 걸었다.

군대의 마지막 잔존병들과 경찰, 소방관들이 모여있다는 스퀘어역을 향해, 기름때가 묻어 번들거리는 선로 위를 걸었다.

그의 할아버지가 집에 걸어두었던 산탄총 한정을 들고 길리먼은 걸었다.


길리먼은 딱히 종말에 생각해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아니였다.

이라크에서 종말과 가까운 경험을 해본 적은 있지만, 아무튼 그곳에서도 작은 시장이 열리고, 아이들이 달려다니는, 인간은 남은 곳이었다.

하지만, 종말은 종말을 대비하던 사람들조차 감히 예상하지 못한 형태로 찾아왔다.


누군가는 환경오염으로 인간이 멸망할것이라 했다.

누군가는 전쟁으로 인간이 멸망할것이라 했다.

누군가는 외계인의 침공으로 인간이 멸망할것이라 했다.

누군가는 운석이 떨어져 인간이 멸망할것이라 했다.

누군가는 강력한 전염병이 인간을 멸할것이라 했다.


멸망은 지구 바깥에서 왔지만, 그 누가 생각한 것보다 끔찍했다.


다행히도, 포자에 면역을 가진 '인간'은 의외로 많았다.

불행하게도, 포자에 면역을 가지지 못한 '생명체'도 의외로 많았다.

그는 다행히 면역을 가진 인간이었다.

그의 가족은 불행하게도 면역을 가지지 못한 인간이었다.


긴 터널을 지나 처음으로 나온 정거장은 텅 비어있었다.

그는 변이되고도 부서진 열차 조종석에 끼어 발버둥치던 조종사에게 납이라는 이름의 안식을 전해주었다.

정확히는, 수없이 많은 감각기관의 수없이 다양한 자극에 고통받던 육신 하나에 안식을 전해주었다.



수조개의 의식이 하나로 연결되는건 끔찍했다.

특히 인간의 것이 아닌 것이면 더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