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러분, 멸망은 사실 생각한 것보다 가까이에 있습니다.




내가 언젠가 한 원주민 거주 구역을 가보았을 때의 일이다.

 

대륙을 서에서 동으로 가로질러 여행하려던 내 계획에 예기치 않은 차질이 생겼던 그날, 나는 하는 수 없이 일정을 변경하여 마침 지나고 있던 원주민 거주 구역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되었다. 이때는 아직 10월밖에 되지 않았지만 워낙 추운 지방인지라 일대는 하얀 눈에 뒤덮여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얼어 죽을 만큼 추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밤에 묵을 숙소를 급하게 예약을 하고 보니 해는 이미 중천에 떠 있었고 나에게는 저녁까지 지역을 자유롭게 둘러볼 여유가 있었다. 애초에 아무 계획이 없었던지라 나는 그저 발길이 가는 대로 마을을 돌아다녔다. 나는 그곳도 꽤 최근까지 주민들이 들짐승을 잡으며 생활하던 시절이 있었다고 들었다. 하지만 내가 가보았을 때는 이미 그러한 생활 방식은 시대의 뒤안길로 사라진 뒤였다.

 

“뭐… 볼 것도 별로 없네.”

 

한참을 돌아다니면서 주민들과 조금씩 담소도 나누고 했던 나는 드디어 흥미가 떨어지던 참이었다. 곧 저녁이 될 것 같았고 그래서 나는 그냥 일찍 숙소로 돌아가려고 했다. 그런데 마을의 입구를 나서려던 그때 한 기념품 가게가 내 눈길을 끌었다. 그건 가게라기보다는 그냥 사람 사는 집같이 생긴… 아니 그냥 집이었던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 그 집에 걸려있는 ‘기념품 가게’ 라고 쓰인 간판이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이런 외진 곳에도 손님이 오나?’

 

무엇을 파는지 궁금했던 나는 가게의 문을 열고 들어가보았다.

 

“안녕하세요? 여기는 기념품 가게인가요?”

 

“오 그렇소. 밖에도 써놓았듯이 여기는 관광객들에게 기념품을 파는 곳이지. 잘 오셨소.”

 

가게의 주인은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인이었다. 그는 백인과 그곳 원주민 사이에 태어난 혼혈이었던 것 같다. 상당히 큰 키에 흰 피부를 가지고 있었지만 수염이 나지 않은 턱과 전체적으로 풍기는 인상은 원주민들의 것이었다.

 

“한번 둘러보시게. 찾아오는 손님들은 드물지만 물어보면 모두들 이 가게에서의 경험이 나쁘지 않았다고 하더군. 분명 자네의 관심을 끄는 부분도 한두 개쯤 있을거야.”

 

가게에는 정말 많은 물건들이 있었다. 나무나 동물의 뿔로 만든 조각들과 18세기에나 썼을 법한 전장식 라이플. 파는 물건 같아 보이진 않았지만 계산대 뒤에는 여러 장의 흑백 사진이 액자에 담긴 채 걸려있었다.


“꼭 사지 않아도 돼. 물건에 대해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보게. 재미있는 사연을 가진 물건도 많아.”

 

가게 주인이 말하던 중 계산대 앞에 있던 파이프담배가 눈에 들어왔다. 누군가 손으로 직접 나무를 조각한 수공예품이었다. 꽤나 공들여 만든 물건인지, 아름답기도 했고 무엇보다 곳곳에 새겨진 전통 문양이 인상적인 파이프였다.

 

“이 파이프는 뭔가요?”

 

“아, 종말의 파이프 말인가? 하하. 그래. 아주 재밌는 물건이지. 아쉽게도 파는 건 아니라네.”

 

이름을 듣자 나는 조금 섬뜩했다. 참고로 나는 무서운 전설 같은 게 담긴 물건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혹시 뭐 이걸로 담배를 피면 세상이 멸망한다거나 하는 전설이 있는 건가요?”

 

“비슷해. 근데 그 반대야. 그건 세상이 멸망할 때 사용하는 파이프야. 음…”

 

노인은 잠시 벽에 걸린 시계를 보더니 말을 이었다.

 

“마침 시간이 딱 좋군. 다른 물건들을 먼저 한번 보게나. 이따가 종말의 파이프가 어떤 물건인지 내 제대로 보여주겠네.”

 

솔직히 조금 사양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의 기분이 상할까 봐서 별 말은 하지 않았다. 대신 파이프에 대해 잊어버리기 위해 다른 물건들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때 내 눈에 들어온 것은 혼자 한쪽 벽에 걸려있던 색이 바랜 컬러 사진이었다. 빈 벽에 덩그러니 위치한 그 사진을 들여다 보자 나는 조금 놀라고 말았다.

 

‘이건…’

 

“하하하, 너무 그렇게 빤히 보지 말게. 그래 그거 내 젊을 적 사진이야.”

 

사진 속에는 두 인물이 있었다. 젊은 가게 주인과 한 백인 남자. 그들은 자신들이 사냥한 순록의 가죽을 펼쳐놓고 환하게 웃고 있었다.

 

“전에는 사냥을 하셨었나 보네요.”

 

“그래… 그땐 다들 그렇게 살았어. 옆에는 내 친구 놈이야. 우리는 대대로 이 지역에서 모피를 팔며 살아왔어. 우리 할아버지도 친구 놈의 할아버지도 훌륭한 사냥꾼이셨지. 저 라이플이 걔네 할아버지가 쓰시던 거야.”


노인은 조금 전에 봤던 전장식 라이플을 가리키며 말했다. 노인의 눈은 과거의 일을 회상하기라도 하는 듯이 회색으로 빛났다. 노인이 말했다.

 

“사실 이 가게에서도 원래는 모피나 사슴 뿔 같은 것들을 팔았어. 그땐 손님이 참 많았지. 이곳 마을에서 나는 물건은 대륙 전역에서 최상품으로 쳤거든. 하지만 내가 나이가 들면서 그런 상품을 찾는 손님들의 발길이 끊기더군. 시대가 변했지.”

 

“그래서 지금은 다들 사냥을 하지 않는 것이로군요…”

 

“그래. 대대로 이어오던 영광이 저물고 새 아침이 밝은 거야.”

 

노인의 이야기는 왠지 모르게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과거의 번영이 언젠가 사라져버렸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기분이 조금 씁쓸해졌다.

 

“아 참, 자네 이 마을의 이름이 이곳 원주민 언어로 무슨 뜻인지 아나? 멸망의 마을이야, 멸망의 마을. 으하하. 웃기지?”

 

이런. 재미있는 이야기가 끝나고 나니 또 무서운 이야기 시간이었다. 나는 그가 더 이야기를 하기 전에 그만 그 가게를 나와야겠다 싶었다. 내가 인사를 하고 문을 나서려고 하자 그는 나를 멈춰 세웠다.

 

“어허… 자네. 조금만 기다려. 아직 이야기 안끝났어. 무엇보다 아직 이 파이프의 진짜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잖나.”

 

그러면서 노인은 파이프를 챙기고 자신이 먼저 문을 나서더니 나에게 따라오라는 손짓을 했다. 무슨 전통 의식 같은 걸 하나 싶어서 불안했지만 예의를 지키고 싶었던 나는 그의 손짓을 무시할 수 없었다. 노인이 나를 데려간 곳은 가게의 뒤편이었다. 그곳에는 가게의 지붕으로 올라갈 수 있도록 사다리가 놓여있었다. 노인은 민첩한 움직임으로 사다리를 오르더니 말했다.

 

“뭐하나 자네. 설마 젊은 녀석이 이 정도 운동도 못하는 건 아니겠지?”

 

노인과 나는 가게의 지붕 위에 걸터앉았다. 나는 그가 무엇을 하려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는 이미 나를 매우 피곤하게 하고 있었다. 내 인내심이 바닥이 날 때 즈음 노인이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저길 보게. 세상이 멸망하고 있어.”

 

나는 그가 가리킨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엔 태양이 붉은 빛을 내며 울창한 숲의 너머로 저물고 있었다. 그리고 주위의 하늘은 노을빛으로 밝게 타오르고 있었다. 그 광경은 마치…

 

“멸망이군요. 모든 게 붉게 타오르고 있어요.”

 

나는 그 모습을 한참동안이나 바라보았다. 세상의 멸망이란 그토록 아름다웠다.

 

“자. 자네도 한 모금 마셔보게.”

 

노인은 미리 가게에서 파이프에 다져넣은 담뱃잎에 어느새 불을 붙인 뒤였다. 그제서야 나는 그가 나에게 말해주고 싶었던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이 모습을 꼭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었어. 오늘 본 것을 잊지 말게. 언젠가 자네가 나이를 먹으면 자네의 시대도 저물게 될 테지. 그때는 다시 한번 알게 될 거야. 모든 끝에는 아름다움이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