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일스의 알려지지 않은 작은 마을에서 앞으로 쓰이지 않을 마티니 헨리 라이플과 알록달록한 붉은색 군복을 창고 구석에 가득 쌓아두고 지하실에는 적어도 나폴레옹이 살아있을 적에 담근 염장육을 관리하는 하급장교가 한 명 있었다. 그는 평소에 일은 하지 않고 윌리엄이라는 친구와 함께 술을 마시러 마을 아래 펍으로 향했다. 오늘도 그러기 위해서 그는 친구가 은둔하고 있는 별장으로 향했다.


그곳은 다 낡아서 무너지고 있는 교회였다. 벽에는 이끼와 덩굴이 붙어있고 천장은 반쯤 무너진 데다, 오래된 청동 종은 무너진 첨탑의 잔해 아래에 파묻혀있었다. 그 장교가 친구의 집 앞에서 서성거릴 무렵에는 아직 해가 뜨지 않았고 하늘은 붉은색으로 물들어 있을 때였는데, 그들은 매일 이 시간대에 교회 앞에서 약속한 듯이 만났지만, 오늘은 윌리엄이 그 시간을 한참을 넘겨도 밖으로 나오지 않아서 남자는 계속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이끼 가득한 교회 문을 억지로 열었던 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장교의 친구는 목에 동아줄을 걸었고 허공에 2미터쯤 떠 있는 상태였다. 남자는 워낙 자살한 친구가 많아서 그런 모습을 보아도 이제는 놀라지도 않았다. 또한, 그는 슬픔도 느끼지 않았는데, 그가 매정한 인간이어서가 아니라 지난 전쟁을 포함해서 겪은 전쟁이 다섯 가지가 넘었고 그 순간마다 감정이 마모되어 지금에 이르러선 전부 사라지고 말았기 때문이다. 덕분에 굳이 친구의 자살이 익숙하지 않다고 해도 그는 지금 이 순간에서 느껴지는 게 없을 정도였다.


그는 친구의 시체를 찬찬히 살펴보았는데 죽은지 그리 오래되지 않아 보였다. 귀나 코에서 구더기가 꿈틀거리는 모습도 없었고 썩은 고기 냄새도 나지 않았다. 약간 벌어진 눈꺼풀 사이에선 여전히 촉촉한 눈이 있었고 벌어진 입에서도 이빨이 빠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장교는 친구가 대강 어제나 아니면 오늘쯤 자살했다고 추측했다. 그들은 바로 어제 펍에서 술을 마셨는데 그때도 자살할 기미가 보이기는 해서 남자는 조만간 그가 자살할 거라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그게 오늘이 되리라곤 생각하지도 못했다. 장교가 시체를 한참 동안 벽에 걸린 신기한 장식처럼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동안 시간은 흘러서 이제 세상은 더 밝아지고 태양이 지평선을 모두 불태웠다. 그는 교회를 떠나서 마을로 내려갔다.


이른 아침인데도 마을은 활기차고 사람들이 분주하게 돌아다녔다. 자전거를 타는 노인이나 무리를 지어서 뛰어다니는 소년들이 숱하게 보였고 좌판을 여는 사람이나 아일랜드가 보이는 해협에서 생선을 잡아온 사람들도 있었다. 무엇하나 남자의 마음에 드는 게 없었다. 이곳은 작은 마을이며 분명 사람이 적은 장소인 게 분명한데도 남자가 혐오하는 도시냄새도 감돌았다. 그는 곧장 펍으로 향했다. 사람은 보기만 해도 속이 매스꺼워지고 기분이 나빠졌기 때문에 그의 발걸음은 어딘가 급하고 힘들어 보였다. 펍에 도착할 즈음에는 그의 기분은 완전히 망가져 있었다. 그는 사람으로 태어났지만, 사람을 엄청나게 혐오하고 싫어했다.


친구 없이 자리에 앉자 주인은 의아스럽고 걱정스럽게 남자에게 질문을 했지만, 그는 전쟁에서 턱과 혀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말을 할 수 없어서 오묘한 시선만을 보냈다. 이후로는 주인도 질문을 하지 않았고 남자는 에일을 계속 마셨다. 그대로 시간은 더 흘러서 태양은 반대편 지평선으로 가라앉았고 펍으로 사람들이 더 들어웠다. 이곳저곳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고 남자는 에일을 더 마셨으며 마실 수 없을 때까지 억지로 마시다가 결국 주인이 그를 걱정해서 더는 술을 주지 않았다. 그쯤 되야 남자는 재발로 펍을 나갔으며 평소의 세배는 무거워진 뱃속과 뇌까지 차버린 에일 탓에 넘어지지 않는 것이 기적일 정도로 위태롭게 걸었다.


빛이 사라진 거리에는 그 같은 사람이 몇몇 걸어갔으며 그보다 더 많은 쥐와 개들과 고양이와 같은 작은 짐승들이 남자를 쳐다보고는 거리와 하수구 속으로 도망쳤다. 남자는 걸으면서 계속 과거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가 아직 머릿속에 생각이 가득하며 마음에는 감정이 살아있을 무렵의 기억이었다. 남자는 지금보다 더 젊었을 때 스페인의 식민지인 작은 섬들이나 혼란스러운 아시아나 분열된 인도 같은 장소에서 크고 작은 전쟁을 겪으며 사람을 많이 죽였다. 그 행동은 살아있다는 걸 느끼고 싶다는 어떠한 충동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어리석은 일이라고 남자는 생각했다. 그러나 후회하지는 않았다. 그가 유일하게 인생에서 후회하는 것이라면 그의 부모와 관련된 것이었다. 그의 부모들은 아프리카에서 죽었는데 아버지는 남자의 동료가 죽였고 어머니는 수용소에서 남자가 보는 앞에서 죽어버렸다. 그들이 죽은 이유는 보어인이라고 한때 남자의 적이었던 자들과 내통하고 있다는 혐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남자는 그때 자신의 부모와 사이가 좋지 않았고 그들이 죽는 걸 내버려뒀다.


그 생각을 할 때마다 드물게 기분이 울적해졌다. 그것 말고도 잊으려는 기억은 더 많았다. 그러나 잊으려는 것들은 기억하려는 것들보다 강인하고 사라지는 일이 없어서 항상 그의 머리에 남아 있었다. 덕분에 그는 항상 정신이 나가 있었고 뇌는 텅 비어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고 했다. 감정을 견디기엔 그 머리가 너무 작았던 탓이다. 그래서 감정이 사라진 탓이겠지만, 이것의 단점은 바로 그것이기도 했다. 감정과 생각이 비어버린 머리는 멍청해진다는 걸 의미했고 그것은 이미 죽어버린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결국에는 육체적인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잊어버리고 결국에는 죽음을 매력적으로 생각하고 말았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남자는 그랬다. 그는 잠을 자기 직전에는 감정을 되찾고 말았다. 그러면 지난날에 감정 없이 보낸 날들과 무지하게 보낸 모든 날을 회상하였고 내일은 더 많은 술을 마시고 그대로 죽음에 이르기를 그는 기도했다. 오늘 자살한 그의 친구인 윌리엄도 남자와 비슷한 현상을 겪었다. 남자는 그가 자신과는 달리 두려움을 극복했다고 생각했다.


평소보다 많이 마신 에일의 탓인지 남자도 윌리엄이 겪었던 묘한 자신감과 용기를 얻었다. 그것은 몇 배는 크고 강렬한 광기와 충동이 얽혀 들어간 깊은 생각의 결과인 자살에 대한 용기였다. 실은 그는 자신은 이미 죽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미 머리는 멈췄고 인간으로 존재하기 위한 감정 또한 느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에게서 더는 살아있을 가치와 이유도 찾을 수 없었으며 그것 외에 자신이 살아있어야 할 그 어떠한 작은 이유조차 찾아내지 못했다. 심지어 자신이 죽는다고 해서 알아봐 줄 사람이 없다는 것은 그의 확신에 믿음을 박아넣었다. 


어느새 남자는 자신이 머무는 보급창고에 도착했다. 거북이를 닮은 건물 내부로 들어가자 지하에서 올라오는 썩은 음식 냄새가 그의 머리를 맴돌았다. 그는 곧장 창고로 달려갔고 수백 정의 고장 난 총기 중에서 유일하게 작동하고 지금까지 세심하고 정성 들여서 닦고 보살폈던 후장씩 소총 한 자루를 꺼내서 총구를 입에 물었다. 그는 의자에 앉아서 마지막 마음의 준비를 했다. 그는 벌써 자신의 머리가 터지는 상상을 하면서 묘한 해방감을 느끼고 있었다. 또한, 지금까지 죽여온 것 중에서 유일하게 정당한 살인을 저지르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는 빨리 방아쇠를 당겼다. 잘 관리해온 총은 주인의 애정에 걸맞게 멋지게 작동했다. 총알은 그의 반만 남은 얼굴을 아래에서 위로 꿰뚫고 천장에 박혔다. 머리는 두 조각이 났으며 몇 초 동안 그는 살아있었다. 그리고 짧은 시간 그는 의식을 잃어버렸다.


다음 날, 한때 죽었던 윌리엄이 이상한 표정으로 그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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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다시 쓸 글인데 그냥 쓰레기통에 박아두기엔 뭔가 슬퍼서 올립니다.

그리고 챕터가 열두 가지 정도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