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화창한 날 이름 모를 화실에서
흰 머리를 한 남자가 물구나무를 선채로 땀을 흘리며 비틀거리고 있었다.

"야, 종수야 가만히 좀 있어 봐. 그림 그리기 힘들어. 30분 밖에 안 지났어."

그의 모습을 캔버스에 담고 있던 여자는 옆으로 그를 보면서 말을 했다.

"말로만 30분이지 누나 나 지금 5시간째 이러고 있는거 알아? 이러다가 나 머리박고 죽으면 누나가 책임져...."

"그러길래 누가 그렇게 조금씩 흔들리라고 했어. 이럴 줄 알았으면 진석이 불렀다."

"아... 그 형은 지금 의대생이잖아 정신 없을텐데 어떻게 도와준데... 그러지마..."

그렇다.
진종수, 그는 아무생각없이 동네소꿉친구이면서 같은 대학을 다니던 주민정의 부탁을 들어주어서 이러한 꼴을 당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그는 그림을 그리고 있던 민정을 쳐다보다 손이 땀에 미끄러져 넘어진다.

"으악! 아이고 허리야....."

"어? 뭐야 종수야 괜찮아? 힘들면 말을 하지."
주민정은 그가 넘어지는 걸 보고 다급하게 달려와 그를 보며 어쩔줄 몰라하는데
종수는 인상을 찌푸리며 허리를 잡고 일어나 짜증을 냈다.

"아니 누나 그러니까 내가 말했잖아 힘들다고..."

"그래 미안하다. 내가 몰랐네. 일단 의자에 앉아있어. 스케치는 끝났으니까 이제 채색만하아.... 제기랄."

"왜? 이야.... 내 5시간 다 날려버렸네."

종수가 민정의 한숨을 듣고 그녀가 바라보는 곳을 보니 넘어진 물통의 물이 바닥에 엎어진 캔버스를 적시고 있었다.

"그치... 젠장 저거 과제로 낼 생각이었는데..."

"그걸 과제로 내도 되는 거야?"

"아니 사실 네 생일선물로 그려주려고 한건데 저리 됐네."

"뭐? 아니 그럼 왜 나보고 물구나무 시킨거야?"

진종수의 말에 그녀는 살짝 웃으며 엎어진 캔버스가 있는 곳으로 가 그것을 들고 말했다.

"이런거도 추억이잖아. 전에 재혁이한테 한거처럼 너를 놀라게 하고싶어서 그런건데  물거품이 되어버렸네. 하하....."

종수은 그녀의 울적한 표정을 보며 손을 꽉 쥐었다.

"누나.... 다시 그리자!"

"뭐? 아하하... 아나야 괜찮아. 어차피 너도 허리 다쳤고 오늘은 그만하자."

"아니야. 방법이 있어. 같이 우리가 마주보면서 그리자."

주민정은 종수의 말을 듣고 눈을 번뜩였다.

"오! 내가 그 생각을 왜 못했지! 잠만... 그래도 그러면 서프라이즈가 아니잖아."

"서프라이즈가 아니면 어때 누나가 날 위해 해주는 거잖아. 누나는 항상 놀래키려고 한다니까."

"하지만 그런 반응이 재밌으니까... 근데 너 그림 잘 그려?"

진종수는 민정의 말에 허탈하게 웃으며 뒤돌아 자리를 만들었다.

"일단 그리자! 내 생일까지 얼마 안남은거 알지?"

"그래. 우선 그리는 걸로 하자."

그렇게 진종수와 주민정은 서로를 마주보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힐끔보면서 조금씩 그려나간 그림은 완성이 되어가고 서로가 눈을 마주치면 눈웃음을 짓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몇시간이 지나고 주민정은 붓을 들어 채색을 하기 시작했다.

종수도 밑그림은 다 그렸지만 아쉽게 비어있는 공간이 눈에 거슬려 사족을 넣기 시작했다.

그렇게 밤 12시가 되었고 둘은 그림을 서로 보여주었다.

"야 종수야.... 너 진짜 그림 못 그리네."

"내가 오늘은 잘 그리려고 노력한거야 그래도...."

민망해 하는 그를 보며 주민정은 피식거리며 웃었다.

"꺄하하핫.... 괜찮아. 잘 그렸어. 오늘은 노력한게 보이네. 그나저나 내 옆에 그린 건 뭐야?"

종수는 고개를 돌리며 작게 말했다.

"장미 꽃 한송이...."

"뭐라고?"

"아니야 아무것도...."

주민정이 제대로 들리지않아 재차 물었을 때 그는 쭈뼛거리며 얼버무렸다.

"좋아. 일단 여기 생일선물이야. 생일 축하해. 종수야."

"그래 고마워. 이번에는 이런 선물도 받아보네. 아, 그래도 아까 나 고생시킨건 보답해줘."

"아~ 진짜 까먹은 줄 알았는데 알겠어. 그렇게 해줄게."

주민정은 종수에게 그림을 주고 종수가 그린 그림을 들면서 말했다.

"이건 여기에 둘게. 너가 그려준거니까 두고두고 봐야지."

"뭐... 부끄럽지만 그렇게 해."

주민정은 자신이 잘 보이는 곳에 그림을 두고 생긋 웃으며 종수를 바라보았다.

"자! 술 한잔 하러 가자! 생일 기념이면서 너 고생시킨거 보답으러 내가 쏜다!"

"좋아. 가자. 치킨?"

"너가 원하는 거 먹어."

"오캐이 치킨!"

그렇게 둘은 화실에서 나왔다.

.
.
.

며칠 후 주민정의 화실 안에는 그녀와 담배를 피며 그림을 보는 마른 남자가 있었다.

"그러니까... 이게 너가 아끼는 동생인 진종수 그녀석이 그린 그림이라는 거구나?"

마른 남자는 담배를 물고 그림을 들어 보고 있었는데 그녀는 그의 행동을 보고 말렸다.

"야야 그거 재 떨어지니까 담배 끄고서 봐. 그리고 실내 흡연 금지인거 몰라?"

"내가 신경 쓸건 아니지. 애초에 여기 환풍구도 있잖아?"

"진석아 은주에게 말한다. 계속 그러면 말할거야. 당장 꺼."

"워우... 그건 안되지. 근데 의외로 얘 잘그리네."

진석은 담배를 끄고 그림을 이리저리 둘러봤다.

"근데 네 옆에 있는 거 장미인거 같은데? 얘 의외로 당돌한 녀석이구나."

"엥? 장미라고?"

진석은 그림 속 주민정의 옆에 그려진 그림을 가리키고 말했다.

"어어. 여기 봐봐. 그녀석이 장미를 그릴 때 이렇게 그리잖아."

오진석이 그녀에게 가르쳐주자 민정은 그림을 잡고 부들거렸다.

"뭐, 나같이 눈썰미가 좋은 사람이 아니였으면 몰랐을 거야. 게다가 그녀석 성격상.... 어이쿠야 너 얼굴이 빨개졌다. 아, 슬슬 은주한테 갈 시간네. 난 간다 안녕~"

그가 문을 닫고 사라지자 주민정은 부들거리며 고개를 들었고 앞에 있던 거울 속에 비친 그녀의 얼굴에 홍조가 짙게 피었다.

"진종수.... 이 멍청이가.... 왜 이제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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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시험 전날에 쓰니 재밌다!
아.... 시험 망할 거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