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이야기













검열 사유 : 생애 첫 야스신을 이걸로 때우고 싶지 않았습니다.


*







"싱거웠네요."

"안 싱거웠어."


빛 한 줌 안 드는 어두컴컴한 동굴 속을 지나는 두 남자가 있다.

한명은 소년, 그리고 다른 한명은 금발 태닝의 남자다.

어둡고 눅눅한 동굴의 분위기 때문일까.

들뜬 소년과 달리 금태양은 외모에 걸맞지 않게 차분한 말투와 침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싱거웠잖아요. 한번 -검열- 하고 난 다음에 협박했더니 바로 배지를 넘겨 받았고."

"안 싱거웠다고."

"싱거웠는데. 그렇게 간단히 배지 딸 수 있는 거면 나도..."


투덜거리는 소년을 보고 금태양은 역정을 냈다.


"안 싱거웠다고! 내 사회적 생명하고 맞바꾼 건데 싱겁긴 개뿔이!"

"금태양이 무슨 사회적 생명이 있어요!"

"있어! 내 이미지가 금태양에서 금태게로 바꼈잖아 인마!"

"금태게가 뭔데요!"

"금발 태닝 게이!"

"... 오히려 좋은데."


따악.

동굴 안을 가득 메울 정도로 성대한 소리가 났다.

놀란 공벌레와 박쥐들이 동굴 속 구석진 곳으로 가서 숨는다.


소리의 발원지는 금태양의 주먹, 그리고 그 주먹과 맞닿았던 소년의 정수리.

소년의 정수리가 빨갛게 부어올랐다.


"아으..."

"꼬맹이가 보자보자하니까 못하는 소리가 없어!"

"엄밀히 따지면 야오이 축도 아니었잖아요!

-검열- 하기 전에 비상이 -검열- 이란 걸 알게 되었으니까 물리적으론 -검열- 이 아니라 합법이라고요.

-검열- 까진 안 가기도 했고."


기관총처럼 쏘아대는 소년의 위험한 발언에 금태양이 물었다.


"야오이가 뭔데 씹덕아."

"BL이요."


소년이 말한 야오이란 무엇인가.

야오이, 그것은 동인지 등지에서 남캐 두명의 음란한 사랑을 주로 다루는 장르를 이르는 은어이다.




어이가 없어진 금태양은 은근슬쩍 화제를 바꿨다.


"그리고 너인마 난 왜 쫓아오는 거야?"

"그야 전략을 보고 옆에서 배우려는 거죠."

"쯧, 내 옆에서 뭘 보고 배우겠단 거야. 꼬맹이가 발랑 까져가지곤."

"뭐라도 배워두면 도움이 되지 않겠어요."


말은 퉁명스레 하면서도 금태양은 조용히 입꼬리를 올렸다.

내심 스스로의 배틀 실력에 -그 해괴망측한 배틀 실력에- 자신이 있었던 그이기에

자신을 따라다니며 배틀을 배우겠단 소년의 존재가 반갑지 않을 리가 없었다.


"아, 저기! 빛이 보여요!"

"저기가 출구인가 보네."

"... 동굴 나가면 다시 그 이상한 말투하는 거에요?"

"당연하지. 이미지 관리라는 게 얼마나... 중요한 건데www 역시 꼬맹이는 모르는? www"


금태양이 동굴 출구로 발을 내딛으며 말투를 전환했다.

체육관 전에서 쓰던 그 말투로.

익숙한 솜씨였다.



"그건 그렇고 왜 이렇게 비가 많이 오는www 이래서야 진심 홍수www"

"인근 마을인 '고동 마을' 의 랜드마크, '야돈의 우물' 때문일 거에요."

"'야돈의 우물' ? 아아... 그 꼬리마약제조기 말인? ww"

"야돈이라는 포켓몬이 많다는 우물이에요. 야돈의 힘으로 이 일대는 거의 항상 비가 내리고 있다고 들었고요."

"나루호도www"

"잠깐 거기 두 사람."


검은 빵모자, 검은 상의, 검은 바지.

전체적으로 검은 색을 중시한 복장.

손에는 회색 장갑을 끼고 발에는 장화를 신은 남자가 둘을 가로막았다.

패션센스가 구시대에서 강림한 듯한 남자였다.


"여길 지나갈 거면 통행세를 내야지."

"오이오이www 처음 보는 사람한테 아무 꺼리낌 없이 돈 타령이라니 그게 무슨 돈희롱이냐고www 쵸 한심한www"

"누구신데 그런 말씀을... 저흰 돈이 없어요."

"우효www 승전금 같은 건 오기 전에 먹은 핫도그에 다 함☆락되었다제www"


누가 양아치 깡패인지 모를 대화.


그러나,

검은 남자는 소년의 '누구신데' 에 반응하여

뒷말은 듣지도 않은 채 기이한 자세를 취했다.

손을 각이 지게 펴서 얼굴에 대는 자세.

어쩐지 중2병스러운 자세였다.


"우리는... 로케탄니..."

"?"

"?"

"아."

"?"

"?"

"... 우리는... 로켓단님이다!"


혀 끝에 난 이빨자국을 애써 외면하며

'로켓단' 을 자처한 사내는 승부를 걸어왔다.



*





혀를 깨물어 부끄러워 하던 표정은 간데 없이,

일단 배틀이 시작되자 로켓단 사내는 지루한 표정으로 일관했다.

압도적인 승세를 보이고 있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것일 지도 모르겠다.


"웨이www 두번째 빠따는 꼬렛이라는www"

"주뱃, 날개치기."

"그 전에 전광석화다제~~! 먼저 박지 않으면 죽어버리니까 곤란하다구 (쑻)"


시작 후 단 3초 만에

금태양의 꼬렛이 넉다웃되었다.

이걸로 두마리째 넉다웃이었다.


금태양 이전에 치뤄졌던,

소년의 배틀까지 포함하면 5마리째 넉다운이었다.

주뱃이라는,
박쥐처럼 생긴 로켓단 사내의 포켓몬은 그만큼 강했다.

"벌써 쓰러진 거냐고 체력 완전 허접인www 어쩔 수 없으니까 볼 안에서 편히 쉬라고www"

"쓰러진 건 네 포켓몬이잖아. 배틀 끝났지? 어서 통행세나..."


태연한 자세로 일관하는 금태양이었지만 퍽 위험한 상황이었다.


주특기인 능욕을 하려들면

'어차피 나도 얘, 강탈한 애라서 별 신경 안 써.'

라며 타격이 없었고


트레이너 자체를 공격하기엔 제복이 방해가 되었다.


그렇다고 포켓몬 승부로 이어나가기엔

상대가 너무나 강했다.


"아, 아직 한마리 남았다제ww 벌써 가버리려 하다니 이 얼마나 음탕한www"

"다음 내보낼 거면 빨리 해. 바쁘니까."

"칫. 아까 함락시켰던 게 분명..."


금태양은 자신의 허리춤을 짚었다.

방금 동굴에서 잡았던 포켓몬을 찾는 것이었다.


"우효www 다음 암컷을 내보내겠다제www"

"걔 수컷인..."

'펑'


다음으로 나온 포켓몬은 [꼬마돌].

돌덩이를 닮은 포켓몬이었다.





"주뱃, 쪼아대기!"


금태양이 꼬마돌에게 뭐라 지시를 내리기도 전에

상대 포켓몬의 공격이 들어왔다.


레벨은 꼬마돌이 더 낮았지만

상성 상 금태양의 포켓몬이 우위에 서 있었기에

한번에 치명상까지는 가지 않았다.

문제는 기술의 부가효과였다.


"어? 체력이?"


그렇다.

꼬렛 이전부터 계속된 전투로 인해

겨우 체력이 깎였던 주뱃이

쪼아대기를 썼더니 체력이 회복된 것이었다.


"쪼아대기에 회복효과는 없을텐데?"


금태양의 곁에 선 소년의 질문을

방금부터의 배틀에 신물이 올라오던 로켓단 단원이 심드렁하게 받아주었다.


"회복 효과는 없지. 대신에 강탈효과가 있거든."

"강탈효과?"

"상대가 나무열매를 지니고 있으면 뺏어먹는 강탈효과. 트레이너스쿨에서 졸았니?"


금태양과 소년이 모르고 있었던 것은

방금 금태양이 동굴에서 잡았던 꼬마돌,

그 꼬마돌은 우연히 나무열매를 지니고 있던 개체였다는 것이다.


포획한 지 얼마 안 된 상태에서 바로 배틀에 돌입했기에 일어난 문제였다.


"나무열매라니... 체크를 했었다면 이길 수 있었을텐데..."

"보아하니 먹은 건 위키열매 같네. 체력의 1/2이 회복되는 아이템. 안 뺏었으면 내가 졌겠어?"


벌써 다 이긴 듯한 말투.

그러나 그런 말투를 취할 만도 했다.


앞의 포켓몬들이 죽기살기로 덤벼서

겨우 빨개진 상대 포켓몬의 피통이, 반 이상 회복되었다.

게다가 상대에게는 두번째 포켓몬도 있다.

패배敗北.

하나의 단어가 소년의 눈에는 선명히 비치는 듯 하였다.


인신매매, 살인, 테러 등등 각종 흉악한 범죄를 자행한다고 알려진 로켓단.

이 남자 또한 로켓단의 단원이었다는 걸 떠올리며 소년은 떨었다.


"꼬, 꼬마돌이 쓰러지면 더는 포켓몬이 없는데요...?"

"알고 있어."

"돈도 없는데요?"

"알고 있어."

"저희... 곧 질 거 같은데요?"

"그러겠지."

"그럼 저흰 어떻게 되는 거죠?"

"몸으로 때워야지 그럼."

"힉!"


소년의 허파가 놀란 숨을 한아름 들이마셨다.

여행 떠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런 일을 맞다니!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

지하의 노역장으로 가서 한평생 일하는 걸까?

아니면 수상할 정도로 심심한 어느 갑부의 데스게임에 강제 참가?


절망하는 소년과 달리

금태양은 눈을 빛내고 있었다.

두개의 흑안.

금태양의 어두운 눈동자가 밝게 빛나고 있었다.

먹잇감을 노리는 표범의 눈이었다.





현재 자짤 이건데 좀 애매함.
추천 받겠음.
선택지 맘에 안 들면 다른 거 제안도 괜찮고.
다음화 선택지에 반영할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