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적, 깊은 산속에 사악한 한 요괴가 살았답니다.


  그 요괴는 타고난 강함으로 다른 요괴들을 마음대로 죽이고 잡아먹을 수 있었어요. 뿐만 아니라, 틈만 나면 산에서 내려와 마을을 습격하여 인간들을 닥치는대로 죽여댔어요. 아무리 인간들이 뭉쳐서 맞서 싸우려 해도, 요괴에게는 창도 칼도 박히지 않았답니다.


  요괴를 퇴치할 수 없자, 인간들은 요괴를 수호신으로 섬기기 시작했어요. 요괴가 사는 산을 신성한 산이라고 부르고, 요괴가 자주 다니는 길목에 사당을 세우고, 마을 중심의 신사에는 요괴의 살점을 신체(神體)로 모셔다 두고, 매년 마을의 아이를 하나씩 제물로 바치며 제사를 올렸어요.


  인간들의 신앙을 받자, 요괴는 자신이 더더욱 강해진다고 느꼈어요. 지금까지 산짐승이나 다른 요괴들을 잡아먹는 것과는 비교가 안되게 강해졌죠.


  어느날 요괴는 생각했어요. 

  '인간들을 더더욱 공포에 떨게하면, 더더욱 나를 신앙할테고, 나는 더더욱 강해지겠구나!' 

  그 이후로 요괴는 더욱 자주 마을을 습격하고, 맛있는 어린 아이들만 골라먹으면서, 입도 대지 않을 어른까지 마구잡이로 살해하고, 일부러 사냥한 인간들의 머리를 모아 자신의 신사 입구에 걸어두는 등 잔혹함이 날로 심해졌어요.


  결국 마을의 마지막 아이마저 살해당하고, 버티다 못한 어른들은 오랜 세월 조상님으로부터 대대로 자신이 살아온 터전을 버리고 떠날 수 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요괴는 떠나는 인간들을 보며 생각했어요. 

  '하하하, 이 몸의 무서움에 결국 도망치는구나! 하지만, 누가 곱게 보내준대?' 

  결국, 요괴가 사는 산과 그 주변에는 단 한명의 인간도 남지 못하게 되었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요괴는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자신보다 약하기 짝이 없지만, 이 산에는 다른 잡요괴들이 많이 있었는데, 인간들이 사라진 뒤로 그 요괴들을 한번도 마주치지 못했어요. 최근에 사냥한 먹잇감들은 모두 산짐승일 뿐이었죠. 요괴는 자신의 강함에 두려움에 질려 다른 요괴들까지 모조리 도망갔구나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것은 자만하기 그지없었던 그 요괴의 착각이었습니다.


  요괴는 날이 갈수록 자신이 쇠약해져간다는 것을 눈치챘어요. 그리고 아무리 짐승들을 배불리 잡아먹어도 알 수 없는 배고픔에 고통스러워했어요. 요괴는 뭐가 필요한지 본능적으로 알아챘어요. 인간고기, 인간의 신앙, 하다못해 다른 요괴의 고기라도. 그러나 아무리 산을 헤집고 다녀도 다른 인간이나 요괴는 더 이상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어요.


  결국 요괴는 자신이 살아오던 산을 떠나 평원을 거니기 시작했어요. 한참을 거니던 요괴는 거대한 장애물에 가로막혔어요.


  눈앞에는 여태껏 산 속에서 절대 볼 수 없었던 어마어마한 양의 물이 넘실대고 있었어요. 하도 많아서 눈 닿는 끝까지 모조리 물이었고, 심지어 하늘에까지 맞닿을 정도였어요. 여기도 물, 저기도 물. 맛을 보니, 얼굴이 찌뿌려지도록 짯어요. 마치 암염덩어리가 통째로 연못에 빠진듯. 하지만 이 많은 물이 이렇게 짜게 되려면 대체 얼마나 많은 암염이 필요할까요. 결국 요괴는 물가를 따라 하염없이 걸어갔어요. 언젠가 이 거대한 연못도 끝나겠지 하면서요.


  요괴는 이것이 바다이고, 바다에 끝은 없다는 사실을 몰랐어요. 그리고 자신이 살던 곳이 사실 화산에 의해 만들어진 고립된 거대한 섬이라는 사실도 몰랐고, 자신이 벌써 몇바퀴나 섬 둘레를 돌았다는 사실도 눈치채지 못했답니다.


  결국 약해질대로 약해진 그 요괴는 해변 한 구석에 쓰러졌고, 얼마 가지 않아 한줌의 재가 되어 바닷바람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답니다.


  이것이 인간들에게 잊혀진 요괴의 말로에요. 요괴는 인간의 부정적 감정과 무의식속에 태어나 인간의 공포를 먹고 강해지지만, 정작 자신을 인식해줄 인간이 완전히 사라진다면, 그 존재를 유지하지 못하고 점차 약해지다가 끝내 사라져버리고 말죠. 


  요괴가 살던 그 섬은 수십년이 지나고 배를 타고 건너온 다른 인간들이 살기 시작하면서 다시 새로운 요괴가 탄생했어요. 이번에 태어난 요괴는 인간을 좋아했어요. 새롭게 지어진 인간마을 근처에 살며, 다른 난폭한 요괴들로부터 인간들을 지켜주면서도, 인간이 자신에게 신앙을 주지 못하도록 어디까지나 친구로서 지냈어요.


  그렇게 세월이 흘러, 습격하던 요괴들이 흔적을 감추고, 어른들은 늙고, 아이들이 자라며 평화롭게 인간들과 어울리며 세월을 보내던 착한 그 요괴는 쓰러졌어요.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그 요괴 역시 재가 되어 사라졌답니다. 


  하지만, 인간들은 요괴를 잊지 않았어요. 단지 더 이상 그 요괴에게 공포심을 느끼지 않았을 뿐이에요. 나아가 수십년동안 잔인한 요괴들을 전혀 보지 못하는 동안, 사악한 요괴라는 것은 그저 미신일 뿐, 실재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믿음이 퍼지고 있었어요. 


  그래요, 요괴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인간들이 있기만 해서는 안되요. 인간들이 요괴의 존재를 진심으로 믿고, 그들에게 공포심을 바쳐야만 요괴는 요괴로서 존재할 수 있어요.


  그래서 이곳, 환상향이 만들어지게 되었답니다.


  점차 강해지는 인간들이 요괴를 완전히 물리치기 전에, 한 무리의 인간들을 납치하고 나갈 수 없는 이 세상속에 가두어 영원토록 요괴를 섬기고 두려워하게 만들도록. 절대로 요괴를 이길 수 없는 인간무리를 유지하기 위해서. 인간들의 자유를 제한하고, 발전을 멈추고, 힘을 합치지 못하도록 이간질 해왔답니다.


  그렇게 이 세상은 요괴, 그리고 잊혀져가는 환상들의 낙원이자 최후의 도피처가 되었답니다.




원래는 더 커다란 단편의 일부였지만, 진행이 지지부진해서 걍 이거먼저 올림. 원래쓰던건 언제 쓸지 모르겠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