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어두컴컴해지기 시작했던 하늘은 이내
완전히 어둠으로 뒤덮혔다.


상욱은 이런 상황을 대비해서 챙겨온 랜턴을
배낭에서 꺼내고 조심스럽게 사냥꾼들을
쫓아갔다.


하지만 박수나무 숲에 가본 적이 없는
두 사람이 이곳의 지형을 전부 꿰뚫고 있는
사냥꾼들을 따라가기에는 무리였다.


"저희는 간신히 사냥꾼들을 쫓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이 박수나무 숲 어딘가에 6•25 당시에 북괴군들이 지뢰를 매설한 곳이 있다고 합니다.
전쟁이 끝나고 민간 단체들과 군이 협력해서
지뢰들을 제거했지만 절반 밖에 제거하지
못했답니다."


사냥꾼들이 근처에 있을 수도 있기에 상욱은
최대한 작은 목소리로 말하고 있다.


"저기 보이네요. 카메라맨, 몸을 최대한
낮추면서 움직입시다."


카메라맨과 상욱은 모닥불을 피워놓고 이런 저런 잡담을 나누고 있는 사냥꾼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박수귀를 잡으면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할 생각이야?"


"그 가죽을 팔고 수익을 공평하게 나누자고.
전 처럼 밀렵만으로는 먹고 살 수가 없으니까."


"나는 정말 이해가 안 된다니까. 날 못하는 짐승 새끼들을 잡을 뿐인데, 그게 뭐가 잘 못 된 거라고..."


'밀렵?"


상욱은 그들의 입에서 밀렵이라는 단어가
나왔다는 것을 파악하고 카메라맨에게 말했다.


"카메라맨 똑똑히 들었죠? 지금 저 사냥꾼들은 밀렵이라고 자신들의 입으로 말했습니다."
저들은 평범한 사냥꾼들이 아니라, 밀렵꾼들었습니다."


'그래서 박수귀를 잡을려고 하는 건가? 가죽을 팔아 먹을려고? 정말 바보같은 사람들이구만. 그 소문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도 잘 모르는데, 뒷 생각도 안 하고 잡을려고만 한다니...'


상욱은 조용히 핸드폰을 꺼내서 112에 연결한다.


"젠장, 전화가 안 되잖아."


"그럼 어떻게 해요? 저 사람들은 총이 있는데."


"일단 전화가 연결될 만한 곳을 찾아보자고."


상욱과 카메라맨은 밀렵꾼들이 알아채지 못하게 조용히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나마 나무들이 별로 없고 하늘이 보이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겨서 전화를 다시 걸었다.


"걸렸다!"


다행히도 전화는 정상적으로 걸렸다. 전화기
너머에는 아랫마을의 파출소 경찰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112입니다. 무슨 일이십니까?"


"여기 박수마을, 박수나무 숲인데요, 지금 여기에 밀렵꾼 대여섯 명이 있어요. 총도 있고요.
빨리 좀 와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전화를 마친 상욱은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카메라맨에게 말했다.


"이제 우리는 조용히 마을로 돌아가야 해,
거기서 경찰관들과 만나고 놈들을 잡는 거지."

한시라도 빨리 마을로 돌아갈려는 그때,
저 멀리서 총소리가 들려왔다.


탕!


탕!


탕! 탕!


분명 밀렵꾼들 엽총 소리였다. 상욱과 카메라맨은 카메라의 촬영 기능을 이용해서 숲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순간을 두 눈으로 확인한다.

등산복 차림의 밀렵꾼 두 명이 무언가를
사냥개와 함께 쫓으며 엽총의 방아쇠를 당기고 있다. 


사냥개 두 마리 중 한 마리가 무언가의 냄새를 맡고 짖어대자 밀렵꾼들이 자신의 동료들에게 소리쳤다. 


"놈이 저쪽으로 도망치고 있다! 빨리 이쪽으로 외!"


도대체 무엇을 쫓고 있는 걸까? 밀렵꾼들의
표정이 잔뜩 긴장하고 있을 걸로 봐선 제법
위험한 동물을 쫓고 있는 것 만은 확실하다.


"가까이 가서 촬영해보겠습니다."


밀렵꾼들이 동물을 불법으로 사냥하는 모습을 증거로 잡을 수도 있기에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나도 밀렵꾼들의 총소리는
멈출 틈이 보이지 않았다.


카메라맨은 카메라를 확대해서 밀렵꾼들에게 쫓기고 있는 동물의 생김세를 자세히 관찰했다.

그런데 동물의 모습을 자세히 관찰한

카메라맨의 표정이 공포에 질리기 시작했다.


"저게 도대체 무슨 동물이지? 

온 몸에 검은색 털이 뒤덮혀 있고.."


"그게 무슨 소리야? 자세하게 좀 말해 봐."


"그, 생긴 건 곰보다 조금 더 크고... 


네 발로 걷고, 큼지막한 입에는 날카로운 이빨들이 촘촘하게 나있어요... 그, 그리고.. 누, 눈이 있어야 할 자리에 털이 뒤덮혀저 있고... 저거 설마.. 박수귀

아니야?"


"뭐? 카메라 줘 봐."


상욱은 카메라맨에게 카메라를 받아 자신이 집적 밀렵꾼들이 쫓고 있는 동물이 무슨 동물인지 자신의 두 눈으로 집적 확인했다.


상욱은 카메라맨이 갑작스러운 상황으로 인해 헛것을 본 것이라고 믿었다.






갑자기 숲 속에서 박수를 치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정체불명의 동물을 쫓고있는 밀렵꾼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있던 카메라맨과 상욱은 무언가를 

깨닳았다.


저 온 몸이 검은색 털로 뒤덥혀 있는 동물, 

그러니까 박수귀는 저들을 유인하고 있는 거라고

그렇지만 이런 박수귀가 함정이라도 만들어놓았단 말인가?


"여러분, 지금 저희는 매우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지금쯤이면 경찰이 마을에 도착했을 겁니다."


잔뜩 긴장한 상욱은 카메라맨을 데리고 마을로 다시 돌아갈려고 했다.


쾅!


무언가 폭팔하는 소리가 조용한 밤하늘에 울려퍼지고 날짐승들이 그 소리에 놀라 이러저리 날개짓을 하며 도망쳤다.


"이, 이게 무슨 소리지?"


카메라 렌즈를 확대할 수 있는 최대치까지 

확대해보니 뿌연 연기가 스멸 스멸 올라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연기 속에서 오른쪽 다리가 방금 전의

폭팔 때문에 오른쪽 다리가 날아가버린 밀렵꾼 한 명이 비명을 지르며 기어 나왔다.


"내, 내 다리가....."


밀렵꾼은 비명을 지르려고 했지만 비명을 지르기도 전에 연기 속에서 또다른 형체가 튀어나왔다.

길고 가느다란 털을 가지고 눈이 있어야 할 곳도 

털이 뒤덮고 있는 모습과 길고 날카로운 발톱, 마치 상어의 것 처럼 촘촘하게 자리잡고 있는 이빨, 영락없는 박수귀였다.


박수귀는 고통에 몸부림 치고 있는 밀렵꾼에게

다가가서 필사적으로 기어가는 그의 머리를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의 앞 발로 마치 장작을 패는 것 처럼 내리찍었다.


밀럽꾼의 머리는 높은 곳에서 떨어진 수박처럼 

산산조각이 났고 살조각과 뻣조각, 뇌수가 온 사방에 튀었다.


동료의 비명 소리를 듣고 달려온 나머지 밀렵꾼들은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는 박수귀와 처참한 모습으로 죽어있는 동료의 모습을 보고 얼굴이 새파랗게 질렀다.


그들이 데리고 온 사냥개들도 처음에는 으르렁 거리다가 꼬리를 내리다니 밀렵꾼들의 등 뒤로 숨어버렸다.


"도망쳐!!!!!!!!!!"


분명 박수귀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하지만 상욱은 저 목소리는 박수귀의 목소리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목소리일 것이라고 확신했다.

잠시 멍하니 있던 밀럽꾼들은 서둘러 방아쇠에 

손가락을 갖다대고 총알을 박수귀에게 쏫아부었다.

박수귀는 잠시 휘청거리는가 싶더니 다시 무턱대고 총알을 쏫아부은 탓에 서둘러 재장전을 시도하는

밀렵꾼들을 한 명 한 명을 끔찍할 꼴로 만들었다.

밀렵꾼들 중 맨 오른쪽에 서 있는, 

낮에 상욱과 카메라맨을 마을에 데려다줬던 밀렵꾼은 박수귀가 휘두른 앞 발의 발톱에 얼굴 가죽이 통채로 뜯겨져 나갔고, 가운데에 있던 밀렵꾼은

박수귀에게 머리가 통째로 사람이 사과를 씹어 먹듯 뜯어 먹혔다.


동료들이 속수무책으로 죽어나가자 겁에 질린 

가장 젊은 밀렵꾼은 허겁지겁 도망가다가 굵고 튼튼한 날카로운 나뭇가지에 몸이 통째로 꿰뚤렸다.

하지만 몸이 꿰뚤려도 단번에 죽지는 않았기에 젊은 밀렵꾼은 피를 토하면서 몸을 부들 부들 떨다가

그 모습을 반찬 삼아 구경하고 있던 박수귀를 

바라보면서 숨통이 완전히 끊어졌다.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두 명은 총구를 자신들의 턱에 겨누더니 그대로 방아쇠를 당겼다.


전부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 끔찍한 모습을 전부 카메라에 담으면서 지켜보고 있던 상욱과

카메라맨은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김 기자님, 지금 생각난 건데요, 

헉헉... 이 숲, 뭔가 이상했어요..."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정말 모르시겠어요? 저희가 이 숲 속에 들어왔을 때 다람쥐 한 마리도 보이지가 않았어요."


"잠깐만..."


카메라맨의 말이 사실이라면 분명 매우 위협적인

포식자가 나타났다는 징조였다. 작은 쥐 한 마리들 조차 박수귀가 나타날 것을 알고 있었다.


"그, 그리고, 기자님... 사실 제가 박수귀에 대해서

조사해봤거든요?"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박수귀는 자신과 눈이 마주친 사람은 몇 년이 걸리더라도 잡아 먹는데요.. 저, 사실, 박수귀와 눈이

마주쳤는데.. 어떡하죠?"


"뭐?"


상욱이 카메라맨에게 더 자세한 사실을 물어보기도 전에 어느샌가 그들을 따라온 박수귀에게 오른쪽 팔이 씹어 먹히고 이내 몸통에 큼지막한 구멍이 뚤려버렸다.


상욱은 카메라맨의 카메라를 챙기고 숲을 벗어나기위해 달리고 또 달렸다.


"헉, 헉, 헉...."


겁에 질려 눈물로 범벅이 된 상욱은 박수귀가 자신을 쫓아오고 있는지 뒤를 돌아봤다.


"도망쳐!!!!!!"


박수귀에게는 눈이 없었지만 자신을 노려보고 았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죽을 힘을 다해서 숲을 빠져나온 상욱은 이제 살았다고 생각했지만 자신의 는 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 이내 절망했다.


마을에는 사냥꾼 다섯 명과 구경 나온 마을 사람들, 그리고 사냥꾼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경찰관 세 명이 있었다.


상욱은 경찰관의 목살을 잡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당장 사람들을 집 안으로 들어가라고 해!"


하지만 마을 사람들과 경찰관들은 상욱을 이상한 사람 취급하듯 바라볼 뿐이었다. 


이미 자신은 박수귀와 눈이 마주쳐 버렸기에 이대로 있다가는 마을의 모든 사람들이 박수귀에게 죽을 것이다.


그때 숲 근처에 있던 마을 사람 다섯 명의 비명 소리가 들러왔다.


박수귀다 숲 속에서 나와 자신과 눈이 마주친 마을 사람들을 게걸스럽게 잡아먹고 있었다.


그 끔찍한 광경을 마주한 경찰관들과 사냥꾼들은 

뒤늦게 권총과 엽총을 꺼내들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상욱은 비명을 지르며 근처에 있는 마을 회관으로 달려가 문을 굳게 잠그고 숨었다.


상욱은 구석에 몸을 웅크리고 밖에서 들려오는 끔찍한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사람들의 비명 소리, 사람들이 도망가는 소리, 

머리가 박살나거나 팔 다리가 뜯어 먹히는 소리 

문이 부서지는 소리, 그리고 총소리가 들려왔지만 얼마 안 가 조용해졌다.


그 어떤 소리도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상욱은 더욱더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한 소리가 들려왔다.


박수 소리가 서서히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내 마을 회관의 낡은 문이 부서졌고 

온 몸의 검은색 털들이 피칠감이 된 박수귀가

서서히 들어왔다.


박수귀에게는 눈이 없었지만 상욱은 박수귀가 자신을 저녁 식사감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리고 박수귀가 입을 열었다.

"박수귀는 자신과 눈이 마주친 사람은 몇 년이 걸리더라도 잡아 먹는데요.. 저, 사실, 박수귀와 눈이

마주쳤는데.. 어떡하죠?"


죽은 키메라맨의 목소리였다. 박수귀는 서서히 

피칠감 되어있는 이빨을 내밀면서 상욱에게 다가왔다.


"으아아아아아아악!!!!!!!!!!!!!!"


한 밤중의 박수 마을은 고요했다. 어떤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 흔한 사람들의 발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유일하게 들려오는 소리는 한 남자의 처절한 비명 소리 뿐이었다.


"으아아아아아아악!!!!!!!!!!!!!"



TMI: 박수귀 삽화(내가 그림을 잘 못 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