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음집


 중원.

 정파와 사파가 이 땅에서 끊임없이 부딪치며 무인들이 끝없이 발전해 나가는 기나긴 세월동안 중원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중원만이 천하의 전부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고 있었다.

 그 천하의 무림고수들이 혈기 넘치는 풋내기들을 보며 입에 담았던 정중지와(丼中之蛙)가 본인들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세월은 아무 문제도 없다는 듯이 고요히 흘러갔다.


 모든 것이 바뀌기 시작한 것은 광동 바다에 처음 보는 기이한 범선이 나타난 날 부터였다. 중원의 모습과는 크게 다른 이들은 전혀 알아 들을 수 없는 괴상한 언어를 소리치며 항구를 향해 진격해왔다. 

  항구의 무인들이 그들에게 대응하기 위해 전투태세를 잡자 한참동안 소리를 치던 우두머리로 보이던 자는 손을 들어올렸다. 순식간에 기묘한 진이 하늘을 뒤덮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기도 전에 우두머리는 손을 휘둘렀다.


 사천당가 최고의 절기인 만천화우( 滿天花雨 )는 하늘을 가득 메운 꽃 비처럼 무수히 쏟아지는 암기술이기에 그런 이름이 붙었다. 그 날 광둥 땅에서 펼쳐진 것은 꽃이 아니라 불덩이의 만천화우( 滿天火雨)였다. 무수한 진에서 쏟아져 나온 불덩이는 항구를 삽시간에 불태워 버렸고 그 압도적인 무위에 사람들은 빠르게 싸움을 포기했다.


 개중에는 용감히 싸움에 나선 무인들도 있었으나, 어느 정도 무를 수련한 고수들 조차 하얀 피부를 한 오랑캐들의 군대의 기이한 요술에 당해 쓰러졌다. 얼마 안 가 광동 땅은 그 괴이한 오랑캐들의 손에 들어갔다. 중원 사람들은 그 괴이한 오랑캐들을 거대한 바다를 건너 넘어온 요괴 같은 이들이라는 뜻으로 양귀(洋鬼)라고 일컫었다.


 이들이 사실은 바다 건너의 나마(羅馬)라고 하는 대륙에서 넘어온 오랑캐들이라는 사실이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은 무림세가와 구파일방, 흑도와 마교에 이르기까지 여러 무리들이 그들과 격돌하고 난 이후였다. 중원 또한 이 넓은 바다 위에 떠다니는 땅 덩어리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이때까지 이 땅에 살던 사람들의 생각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었다. 


  하지만 중원은 그다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중원의 정파들에게 여전히 중원은 세상의 중심이었고 나마 땅에서 온 자들은 그저 오랑캐에 불과할 뿐이었다. 그들이 쓰는 요술도 그저 눈속임 정도의 장난이며 무공은 쌓는 이들의 그것에는 전혀 비견할만한 것이 되지 못할 것이라 믿었다. 급격하게 변해가는 것은 그것이 어떤 것이라도 힘이라면 손에 넣으려고 하는 흑도와 마교의 무리들, 그리고 항구를 개방한 무역도시의 학자와 민초들의 삶이었다.


 시간은 또 다시 무심히 흘러 역귀가 처음 광동 땅에 발을 들였던 그 날로부터 두 갑자정도의 시간이 흐른 떄에, 검은색 적삼을 입은 채 삿갓을 눌러 쓴 소협이 나마의 땅으로 향하는 배에 몸을 실었다.